[예술가 엄마의 육아일기] 그 남자와 힐링캠프_두근두근연두콩(2)

2013. 4. 12. 13:17Feature

 

그 남자와 힐링캠프

글_두근두근연두콩

 

임신 전 나의 몸은 그야말로 성한 곳이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이 그러했다. 죽을 만큼 크게 아픈 곳은 없었지만 깨알같이 구석구석이 잘근잘근 아팠다. 오죽하면 몸을 주제로 매일 새로운 희곡의 내용이 떠오를 정도였을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 만성적인 목통증, 비염과 알레르기, 유관유두종, 난소물혹으로 인한 생리불순, 수족냉증,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더 말하기 창피하다. 남들에게 동정받기는 힘든 그런 아픔 같아서이다. 그래서 일을 할 때에도 더욱 몰아쳤다. 작은 몸의 불편 때문에 남에게 배려 받는 것이 여간 거북했다. 그럴수록 작은 불편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말을 듣지 않는 컴퓨터에 리셋버튼을 누르듯이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을 한 번에 리셋 시킬 수 있는 버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여자가 출산을 하는 순간에는 온몸의 뼈와 신경, 세포가 재정렬되면서 우주와 교감을 나누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 재정렬의 순간을 내 몸의 리셋버튼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출산의 때에 나는 반드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주와 대화하겠노라고.

나는 일반 병원에서의 출산을 거부(!)하고, 집 같은 분위기의 조산원에서 은은한 조명아래 두근 씨를 힘껏 끌어안으며 행복한 출산을 이루어냈다. 16시간의 짧지 않은 진통시간이었지만 연두와 내가 만들어내는 그 시간을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나는 진통 내내 연두의 움직임을 느꼈고, 두근 씨의 품안에서 그의 호흡을 느꼈으며, 또 우주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온몸에 흐르는 숨쉬기 힘들 정도의 아픔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금방 지나갈 거야. 그리고 내 옆에는 곧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존재가 있을 거야.’ 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우주와 두근과 새로운 존재를 창조해내는데 몰두하였다. 그렇게 그는 내게로 왔다.

 

 

엄청난 후광을 가진 그의 뜨끈뜨끈한 몸뚱아리를 내 가슴에 올리는 순간, 내 입에서는 히히히어쩔 줄 모르는 웃음만 나왔다. 조산사가 그에게 첫 인사를 하라고 시간을 줬을 때, 두근 씨는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반가워, 반가워, 정말 반가워.‘ 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다. 이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건만 멋진 인사를 침착하게 건네기에 그는 너무 신기했다.

이 행복한 출산의 과정을 겪고 내 몸은 리셋이 되었을까? 그와 만난 지 134일째 되어가는 오늘, 그의 배냇머리는 거의 다 빠져서 베개와 이불 곳곳에 거뭇거뭇 흔적을 남기고, 동시에 나의 머리도 많이 빠져서 우리 집 방바닥은 머리카락과의 전쟁이다.

출산하는 순간 나는 우주를 느꼈고,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젖을 물리는 순간 그 고차원의 나는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와 현세의 희로애락을 진하게 맛보고야 말았다. 출산의 순간은 수없이 상상하고 시뮬레이션 했건만, 육아의 과정은 티비 속 아기의 까르르 거리는 기저귀 광고에서처럼 환상적일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저절로 될 줄 알았던 모유수유는 젖몸살로 위기를 맞이하였고, 아기는 웃는 시간도 많지만 울고 보채는 시간도 많다는 사실을 이론이 아닌 몸으로 알게 되었다. 따뜻한 햇살아래 유모차를 끌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부부를 로망으로 바라봤던 나는, 바람과 햇볕에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나갔다가 겁이 나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친정 엄마가 왜 가끔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봤는지, 왜 늘 밥을 급하게 먹어 소화불량에 걸렸는지, 왜 집에서는 늘 후줄그레한 츄리닝 차림으로 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모두 그 남자 덕분이었다.

몸의 리셋을 이룰 시간을 충분히 갖기에는 그 남자에게 내 손길이 너무도 필요하다. 어느새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는 없던 통증이 생기고, 목에 이어 허리까지 만성적인 통증이 심해졌다. 급하게 먹는 밥 때문에 소화는 더 안 되는 것 같고, 초봄의 따뜻한 바람에도 뼈가 시리다.

몸은 약간의 에러코드(?)로 리셋이 된 것 같지만 나는 다르다. 분명 리셋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안을 비추는 햇살을 쫓아다니고, 하루의 대부분을 웃고 지내며 노래 부른다. 사두고 모셔놓았던 우쿨렐레를 시작하게 되었고, 집 안에 돌아다니던 천조가리들로 인형과 장난감을 만든다. 내일의 시간 약속 같은 것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일까지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없다. 바깥에서 나는 새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었고, 집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 말을 걸게 되었다. 집 안의 공간 구석구석에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주게 되었고, 라디오를 들으며 춤을 춘다. 규칙적으로 낮잠을 자고, 만나고 싶은 친구는 우리 집으로 찾아온다. 고요함과 심심함을 갖게 되었다. 그가 내게 선물한 힐링캠프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이 힐링캠프에 한 번씩 다녀와야 한다. 아기의 눈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며, 자신의 눈을 단련해야한다.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대상에 집중하지만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아기의 눈은, 무대 위 배우의 눈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극장 공간 전체에 의식을 두고, 극장 너머 세상을 향해 확장 되어 있는 배우의 눈은 아기의 눈과 닮아 있다. 또 아기와 대화를 하며, 무대 언어를 의식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기의 소리와 말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관찰하며, 고대의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소리와 말이 별과 행성들의 음악임을 느껴야 한다. 이렇게 아기와 좌빈둥우빈둥하는 일상을 보내면서도 나는 늘 무대를 그린다. 육아의 시간동안 가지는 공백기가 나를 실업자로 만들지 않게 하도록, 톡톡한 직업훈련을 하는 중이다. 아기와 함께 매일 배우가 되고 연출이 되는 경험은 이전의 어떤 연극 작업보다도 강박은 덜하고, 즐거움은 더하다.

 

 

내 삶에 이런 순간이 다시는 또 있을까.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나에게 삶의 질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준 그. 그는 나에게 무대의 비의(秘意)를 전해주었다. 그러니 잊지 말자.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어있는 아가의 눈을 바라보고 아가의 웃음에 웃고, 아가의 말에 대답하자. 그럼 나는 좋은 엄마, 더 나은 연극인, 꽤 괜찮은 인간이 되어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해야겠다. 미안하지만 연두야, 넌 잘 때가 제일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