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엄마의 육아일기] 400일의 동동이와 도히엄마

2013. 6. 27. 00:56Feature

 

400일의 동동이와 엄마/기획자의 이야기

 

글_도히 

 

여전히 깊은 밤이라고 믿으려는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세게 당겨진다.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니 다시 누우라며 밀어낸다. 그렇게 몇 차례… 어느 알람시계보다 끈질기고도 소중한 동동이와 함께한지 어느덧 408일째의 하루가 시작된다.

 

계획적인 삶, 이 사라지는 순간

극단에서 한창 연극작업을 하던 20대초, 연출선생님의 왕성한 작품 활동이 결혼과 육아로 인해 잠시 멈춤되는 것을 보고 그저 방해되는 행위로 치부하였다. 삶의 계획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그것이 마냥 좋아 보이지 않았고, ‘연애는 있을지언정 결혼은 없을지도’라고 채 확언할 새 없이 동동아빠를 만났다. 그리고 동동이도 만났다.

 

태어난지 30일의 동동

 

돌이켜보면 계획적인 삶이란 게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싶다. 춘천에서 연극기획을 하다가 배움의 필요를 느끼고 서울로 거처를 옮기며, 언젠가는 돌아와 다시 연극을 하리라 다짐했다. 프린지에서 축제 기획을 하며 참으로 많은 예술가와 기획자를 만났고, 욕구로 가득 찬 수다를 두서없이 나누며 새로운 판을 짜고 흥겨움에 몸서리치며 경험치를 무한대 레벨업하는데에 미쳐 지냈다. 그것이 전부라 여겼고, 전부가 완성되면 나는 왕을 깨러 갈 것 마냥 자신 넘쳤다. 통곡의 기운이 스미는 줄도 모른 채… 그러고는 이유 없이 몸과 맘이 많이 아팠고, 감자꽃을 인연삼아 춘천으로 돌아왔다.

분명 충실히 계획을 수행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왜이러지 싶었다. 수다도 기획으로 이어지던 시절의 정점이었는데, 맘먹고 해야 할 기획안도 하기 싫어 끙끙댔다. 일거수일투족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시장 상인들의 시선이 따가워 골목만 배회하고, 내 진심을 몰라준다고 꺽꺽 눈물을 쏟아냈다. 감자꽃 대표님은 100여명의 상인을 상대해야하는 지금이 기획자로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며 믿지 못할 말씀을 해대셨다. ‘기획자’로서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동동엄마’가 되기엔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대학원에서 지질학까지 전공했지만 이혼하고 친정엄마의 수입품전문점 물려받아 홀로 두남매 키우며 장사하는 언니, 안개가 좋아서 부산에서 춘천까지 시집왔는데 알콜중독이던 남편과 결국 사별하고 시어머니랑 모자가게 운영하는 언니, 열여섯에 시집와서 젊을 땐 남편이 하도 때려 집도 여러번 나갔지만 이제는 육남매 다 키우고 번듯한 속옷가게 사장님 된 어머니 등 추억 없고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엄마다.

 

알고보면 우리는 모두 엄마!

시장 기획을 하며 엄마사람과 그들의 삶을 보았다. 노점 구석, 손때 묻어 더러운 곳마다 깃든 시간은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소중히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들을 위해 나를 버리거나 꿈을 접는 것, 예술가 엄마라고 뭐가 다를까. 나보다 소중한 동동이를 위해 계획을 변경하고 꿈을 선회하는 것이 아직은 많이 갈등스럽지만,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가나보다.

강감독(동동아빠)은 간혹 꿈이 무어냐고 묻는다.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고 싶은 욕구를 억제 못해 힘들어하지만, 쉼호흡 한번 하고 생각하면 이제는 동동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그 안에서 나는 그것이 축제이던 예술이던 문화이던의 기획자가 될 것이고, 동동이의 엄마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다른 것은 의미 없다 여겨진다.

아가를 낳기 전, ‘이 세상에 태어난 나의 아가가 힘들어 눈물을 흘려야 할 때 내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면’을 상상하며 자신 없음에 출산을 거부했었다. 그런데 무엇이 먼저가 아닌 것이다. 동동이가 없었다면 나는 평생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 치부하며 자신없어했을 것이나, 동동이로 인해 나는 엄마가 되었고 또 엄마가 되기 위해 단단하고 아름다워지고 있다.

 

동동이를 위한 태교, 엄마가 되기 위한 공부

감자꽃스튜디오 팀장님이 꿈에 냇물을 따라 반짝이는 귀한 것이 떠내려 오기에 두 손으로 소중히 꺼내 안았다며, 누구 태몽이냐고 처녀 스태프 여럿과 나를 두고 물었다. 아니라고 발뺌했는데 내 것일 줄이야. 2박3일 전통시장 워크숍 가서 술도 퍼마시고, 낭만시장 야간개장한다고 계속되는 야근에 시장을 100m달리기하듯 뛰어다녔다. 그저 생리를 안하기에 털털털 스쿠터타고 근처 산부인과에 간 것뿐인데, 아기가 생겼다고 축하한단다. 멍-해 있으니, 결혼은 했느냐- 이미 늦었으니 딴 생각마라- 대답도 하기 전에 다다다다 쏟아낸다. 마지막으로 아기는 계획대로 생기는 게 아니란다. 나는 계획대로 되는 줄 알았지 뭐.

 

무럭무럭 자라는 동동이, 낭만쌀롱에서

 

동동이를 통해 새롭게 보이는 예술+기획의 가능성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불러오는 배를 보며, 시장 엄마들은 하나같이 소리를 보탰다. 배를 보니 아들이다, 애 낳을 땐 너무 힘들어 별이 보인다,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 찬란하게 펼쳐지는 저마다의 육아 노하우는 남자가 가진 군대이야기 저리가라였고, 덕분에 삐뽀삐뽀911등의 육아서적은 조금 멀리해도 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락밴드 노래도 열심히 들었고, 좋은 공연도 잔뜩 보았고, 졸리면 쌀롱에서 늘어지게 잠도 자고. 따로 태교랄 건 없었지만, 동동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평소와 달리 부담 없는 시간을 보내니. 지금에 와 동동이는 낯가림 하나 없는 아가이고, 까르르르 잘도 웃는 동동이덕에 엄마로서 태교 참 잘했다 칭찬까지 받으니 이래저래 동동이가 참 고맙다!

동동이의 이름은 강로원이다. 길로, 근원원, 길의 근원이 되라고 외할머니랑 동동아빠가 한문사전 뒤지며 찾은 이름인데, 좋은 이름 두고도 태명이었던 동동이가 입에 붙어 여전히 동동아, 동동아 한다. 이름은 불러줘야 빛을 발한다며 잔소리를 들었다. 아기를 낳으니 주변의 잔소리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아무래도 ‘동동’에게도 그럴싸한 뜻 하나를 심어야겠다.

엄마가 되고나니 전혀 관심 없던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눈이 뜨였다. 여전히 현장에서 예술가들과의 복닥거림을 포기할 순 없고, 그래서 시작한 춘천마임축제로 인해 동동이에게 많이 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동동이와 함께 그릴 수 있는 문화예술기획으로 발길이 향한 것이다. 관심이 없었으니 필요한 자격증부터 사례 조사까지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어린이집에 장시간 맡겨두고 미안함으로 끙끙대는것보다야 낫지 싶다.

기획자이지만 프리랜서가 아닌 상근직으로 일을 해왔으니,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갖는 만큼 문화예술 흐름은 조금이라도 관심을 멀리하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되어버렸으니, 자책의 시간도 그만큼 커졌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아기는 적어도 세 살까진 엄마 품이 소중한 것이고, 아기를 키우는 것만큼 좋은 기획과 경험은 없다고. 그렇다면 아기와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강감독네 회사(문화프로덕션 도모)만 해도 기획팀 대다수가 출산과 육아를 앞둔 시점인지라 함께 고민할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또 화천의 주황이와 혜진감독님네를 비롯해 시골마을 예술텃밭(극단 뛰다)은 나와 같은 고민을 먼저 한 선배들인지라 직장어린이집, 공동육아 등 풍부한 조언을 들을 수 있고.

지역에서, 엄마로서, 문화예술 기획자의 직함을 유지하는 것, 시작은 어렵지만 동동이가 있으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린 함께 커가는 중인 거니까.

 

 춘천마임축제 기념티셔츠를 입은 동동이, 몽도리 몽순이와 함께한 동동이

 

동동이와 함께, 다시, 계획하는 삶

예술가 엄마, 기획하는 엄마라고 특출난 건 없다. 동동이가 6개월가량이 될 때까진 하루하루 우왕좌왕하는데 시간을 쏟았고, 나는 매일 다르게 전개되는 동동이로 인해 지쳐가는데 강감독은 몰라준다 여겨 다투기도 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하는 엄마의 세계를 고달파했다. 그런데 강감독과 크게 다툰 어느 날, 방글거리던 동동이가 느닷없이 우는걸 보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투덜거리고 끙끙대는 순간에마저도 이 아이는 열심히 탐색하고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데, 엄마인 내가 이러면 안되지 싶었다. 그즈음부터 블로그에 글을 썼다. 매일은 어려워, 동동이가 큰 변화를 보일 때만 기록을 남기며 감탄으로 나를 달랬다. 가끔 몇 안 되는 글을 되짚어보면서 감상 젖는 밤이면, 하나의 생명이 다 커버린 인간도 변화시킬 수 있음에 놀라곤 한다. 어쩌면 아가의 성장이 가진 힘이 가장 큰 기획력인지도….

 

해질녘 꽃놀이, 동동이 엄마와 동동이

 

아기와 함께 꾸는 꿈, 만약에 나에게 '돈' 이 생긴다면?  

마임축제를 시작하면서 열심히 월급을 모으면 동동이와 함께 세가족 여행을 떠나고자했다. 결혼여행을 남해로 다녀오며 한 달 짜리 긴 여행을 다음해로 미뤘는데, 동동이가 생기며 그마저도 미뤄놨었다. 동동이 키우며 다행히 아직은 크게 돈이 필요하진 않았다. 돈이 필요한 돌잔치나 사진촬영도 가볍게 대체했고, 차라리 그 비용으로 동동이와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던 것이다(후에 동동이가 기억 못할지라도). 실제로 일을 하니 계획했던 만큼 돈이 모이진 않았지만, 오롯이 세 가족이 서로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여행은 추진하려 한다. 사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그만큼 소비는 줄어든다. 일하면 부자가 되겠지 욕망을 꿈틀거렸는데, 그만큼 지출도 많았고 그것이 동동이와 강감독을 위한 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서운해졌다. 결국 ‘돈’마저도 엄마하기 나름이라는 진리(?)를 터득했고, 아가를 소중히 키우는 일이 ‘돈’으로 해결되는 것만은 아님도 알았다.

그럼에도 돈이 좀 생긴다면 문화예술교육을 특화하여 모델화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꾸리고 싶다. 실제로 직장어린이집 자료 조사를 하는 중인데, 시설 조건도 까다롭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만만찮은지라 시작부터 난관이다. 어린이집의 고정형태가 아닌, 문화예술교육만을 두고 유동적으로 생각해보려하지만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으니. 아무래도 돈이 생긴다면 그 방향으로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동동이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 "동동, 나의 소중한 아가야"

엄마가 아빠의 맨살을 사랑하듯

동동이는 사람의 속살이 가진 솔직함을 좋아하고,

엄마가 갖힌 집보다 밖을 즐기듯

동동이는 바람과 하늘과 땅의 여유와 자유를 좋아하고,

엄마가 편식이나마 음악과 글과 무대에 파묻혔었듯

동동이는는 나불대는 입이 아닌 또 다른 언어를 좋아하는,

그런 아가이고 남자이고 사람이 되어지길 엄마는 오랜만에 다짐을 하고 바람을 가진다.

일하느라 함께하지 못한 시간 더 많은 후회로 차기 전에

엄마는 다시 인생의 소중함 그 진정을 찾아,

동동이를 만나 행복할 수 있음에 의미를 두련다.

고맙다 나의 동동

사랑한다 나의 아가야.

-블로그 일기 중에서

(+390 여섯발자국 : http://blog.naver.com/happydohi/120191620217)

 

 필자 _ 도히

 소개 _ 극단 Art-3 Theatre, 서울프린지네트워크, 감자꽃스튜디오, 춘천마임축제를 거치며 문화예술기획자로 일해왔으며, 현재 낭만시장 사업을 통해 만난 강감독과 함께 춘천에서 살며 동동엄마가 되기 위해 고민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