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앨범발매 쇼케이스

2013. 7. 17. 16:27Review

 

꿈을 꾸는 시간,

우주로 가는 길 위에서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앨범발매 쇼케이스 -

 

 

글_나그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장마가 한창인 여름의 한 가운데에, 2년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음악이라 하면 간소한 가사와 여백이 느껴지는 사운드가 먼저 떠오르는 나로서는 이번 5집이 첫 곡을 재생했을 때부터 내가 제대로 재생한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게 했을 만큼 새로웠다. 음악을 떠나 그들의 지난 앨범 자켓들을 살펴보아도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겨있거나, 자연의 소재가 담겨있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 음반은 그 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검정색 바탕에 우주를 연상시키는 하얀 별이 촘촘히 박혀있어 이 또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1. 꿈길

2. If You Leave

3. 순간 (Title)

4. 해피 론리 데이

5. 다가다가

6. Almost Blue

7. U.F.O.

8. 다녀온 이야기

9. 사람

10. 아름다운 것

11. 지금

12. 파티2

13. 다녀온 이야기 (Noise Ver.)

14. Bird

 

이번 5집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을 트랙 리스트 순서대로 한 곡씩 한 곡씩 듣다보니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제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있는 '수면의 과학'이라는 영화가 그것이었다. 우리들이 꾸는 대부분의 꿈은 깨고 나면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음을 알게 한다.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소재들이 교묘하게 얽히고 설켜 예기치 못 한 흐름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이번 앨범 역시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다. 한곡이 끝나고 다른 한곡이 시작되는 그 연결점이 어색하게 분절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또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각각의 작은 이야기들은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시켜, 앨범을 끝까지 다 듣고 난 후엔 "아 꿈을 꾼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이 무엇에 관한 꿈이었느냐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우주 속의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싶다. 꿈이 시작되면서 내 몸이 천천히 떠올라 우주에 다다르고, 우주를 떠다니며 지구에서의 나의 삶이 가끔 외롭지만 한편으론 또 참 아름다운 것임을 되돌아보는 것. 내 옆을 스쳐가는 UFO를 신기해하고, 저 아래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꿈이 끝날 즈음엔 다시 지구로, 나의 방으로 돌아와 나의 사람들에게 그 곳에 다녀온 이야기를 조근조근 전해주는 것.

 

 

 (영화 ‘수면의 과학’ 중에서)

 

워낙 '꿈'이라는 소재를 좋아하고 늘 궁금해 하는 사람으로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이번 앨범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공상을 위한) 재료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비가 들쑥날쑥 내리던 날에 그들이 5집 앨범을 정식으로 소개하는 쇼케이스 공연에 함께 했다. 공연 장소는 아주 작은 스튜디오. 관람 인원은 40명 내외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공연인만큼 정말 '소규모' 공연이었다. 그 스튜디오에서 그들이 합주를 하고, 공연 준비를 했을거란 생각에 공연을 보러왔다기 보다는, 그들의 일터에 놀러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좁고 낮은 방 안에 아마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을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기다렸고, 곧 보컬 송은지 씨를 제외한 멤버 둘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대 뒤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천막 위로 바다의 모습이 비춰졌고, 김민홍 씨의 잔잔한 통기타 소리와 함께 공연은 시작됐다.  

 

 

보통의 공연에서 관객들은 노래를 부르는,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멤버들에게 미안한 말일지 고마울 말일지는 모르겠으나 멤버들을 볼 시간이 참 부족했다. 2시간 가량의 시간 동안 총 20여 곡을 들려주었는데, 그 모든 곡들에 관한 영상이 뒤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영상이 아닌. 정말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만들어 낸.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노래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깊숙히 빠질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영상들이었다. 

 

 

영상에 더해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요소는 바로 음향 효과이다. 사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곡은 통기타와 멜로디언 정도로 굉장히 압축된 사운드에 간소하고 반복되는 가사를 입혀 놓아 공연을 보게 되면 서너곡 정도는 눈 감고 차분하게 들을 수 있겠지만, 2시간 가량의 공연일 경우에는 조금 힘이 들 수도 있을거란 생각을 했는데. 한곡 한곡 보는 이의 마음을 이리로 데려갔다가, 저리로 데려갔다가 하는 영상에 더해 사운드 사이의 빈 공간을 자연스럽게 메꿔주는 음향 효과 덕분에 공연을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더욱 놀랐던 것은, 기타나 베이스, 드럼, 건반 등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소리'도 하나의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런 연주를 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저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빗소리에, 새 지저귀는 소리에 그 노래는 이미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또 그들은 Leonard Cohen의 'Seems so long ago, Nancy'와 Daft Punk의 'Get Lucky'를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특유의 분위기로, 송은지 씨 특유의 보컬로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이 역시 공연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이번 공연의 이유이자 하이라이트였던 5집 앨범 수록곡들. 내가 처음 5집을 들으면서 떠올렸던 이미지들과 영상들이 내 눈 앞에 저 하얀 천막에 그려져나가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내가 그들과 비슷한 생각으로 이 곡에 대한 접근을 했구나, 라는 생각에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고. 내가 받았던 느낌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보여질 때에도, 아 저런 이야기가 가능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놀랍고 재미있었다.

사실 지난 '이야기해주세요' 공연을 보면서 송은지 씨가 전하고 싶어했던 생각과 그 말들에 적지 않게 감동을 받았었는데, 어찌 보면 이번 앨범도 일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라는 것. 외롭지만 아름다운 것.." 길어지는 장마. 텁텁한 공기 속에 가득한 습기로 끈적해진 날씨.쉽게 기분이 상하고 뾰족해질 수 있는 이런 계절에,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또 다른 스타일의 따뜻한 음악을 맞이하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