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한 시의 몽유록

목요일 오후 한 시의 몽유록.

  • 김도히
  • 조회수 685 / 2008.06.09

프린지. 그리고 F+놀이터프로젝트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이가 몇인가 싶더니, 넓지 않은 마루가 금방 꽉 찼다. 평소에는 듬성듬성 비어있기도, 맨 앞줄에 민망한 듯 앉아 괜히 힐끔거리는 눈빛도 있더만, 오늘만큼은 어쩐 일인지 다들 초롱초롱하다. 아마도 지난밤 꿈자리가 썩 맘에 들었나 보지. 오히려 밤을 샜다며 옆에 기대앉은 마뇨의 안색이 더욱 불안할 따름이었다.

 

미닫이문의 뻐근한 마찰음과 함께 짜잔 등장할 것만 같던 ‘목요일 오후 한 시’가 등 뒤에서 슬금슬금 들어온다. 대기실로 쓰던 방에서 들려오던 화통한 웃음소리가 누구 것이었냐는 듯한 그 수줍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만다. 그렇게 슬며시 풀려버린 긴장감을 준비 삼아 ‘목요일 오후 한 시’는 관객에게 시작의 신호음을 던진다.


만나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7. ‘목요일 오후 한 시’를 처음 만난 곳이다. 어두침침한 홍대 어느 바에서 벌어지는 즉흥극이라는 것 외의 정보는 나에게 없었다. 그러나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메워 앉은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꿈의 고요 속에서, 나는 충분한 평안을 느꼈다. 베개가  옮겨질 때마다 새나오는 꿈의 악마성과 순수의 혼란 속에서도 말이다. 왜일까.


‘목요일 오후 한 시’의 플레이백씨어터(Playback Theater).

 

관객 없이도 공연될 연극이 세상 몇이나 될까. 상상만 해도 기운이 쫙 빠져나간다. 그러나 비교도 말아라. 플레이백씨어터는 한 술 더 뜬다. 관객에게 꿈을 가져와라 요구하고, 뱉어내라 어르고, 이젠 참견까지 하려든다. 개든 돼지든 내 안에서만 소중할 것이라 여기던 꿈을 남 앞에 내놓자 부끄러울 새도 없이 목요일 오후 한 시의 요리는 시작된다.

 

‘목요일 오후 한 시’는 배우와 악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리를 낼 수 있는 각종 악기와 의문투성이의 소품들로 무대를 준비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목요일 오후 한 시는 관객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낯선 그 모습에 슬금슬금 물러앉을 태세이던 관객들이 어느 순간 긴장을 풀고 입술을 움직인다. 지난밤, 어느 밤, 몇 년 전 밤, 내일 밤의 꿈들을 이야기하는 관객 사이로 고요한 긴장과 집중과 끄덕임과 빠르게 회전하고 입력하는 배우들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동시에 느껴진다. 혼란스럽지 않다. 자아를 반영하고, 심장의 고독을 의식하는 개개인의 꿈이 가진 섬세함에 ‘목요일 오후 한 시’가 반응한다. 때론 극단적이고 요란스럽게, 때론 잔잔한 흐느낌으로 반응하는 그들의 ‘연극’에 사람들이 웃지만 운다. 또는 울지만 웃는다. 그렇다. ‘목요일 오후 한 시’의 플레이백씨어터는 서로의 반응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연극이다.


5월 25일.

하산명령을 받은, 전생에 연극의 꿈을 꾸던 가슴이 큰 어머니. 외로울 때면 창문 밖을 내다보던 소녀는 늘 마주하던 피어나는 연꽃 대신 외계인을 만나고, 늘 자신을 맴돌던 옛 연인과의 기억에서 벗어나 그 외계인과 결혼하게 된다. 소녀가 원하던 특별한 결혼식을 어머니는 반대하지만, 어머니의 꿈을 들춰낸 딸은 결국 설득에 성공하여 ‘목요일 오후 한 시’가 만들어낸 축복의 공연 속에서 결혼을 한다.

 

허무이지만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연결고리의 설득력과 기승전결의 분명함으로 극적 요소를 창출해내야 하는 연극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는 소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허무인 동시에 분명한 사실이었고, 설득력과 기승전결은 없지만 극적 요소는 무엇보다 뚜렷했던 ‘꿈’을 듣고 엮어낸 연극은 허무맹랑함이라곤 느껴질 수 없을 정도의 진심이 배어있다.


‘목요일 오후 한 시’의 움직임과 표현에 관객은 꿈의 소유권과 관계없이 위로를 나눈다. 삶은 저마다의 소유를 갖고 있으나 그 예시는 누구에게나 해당되기에, 오늘만큼은 다른 이의 꿈에도 그저 너그럽다. 아니, 가슴 저릿하게 스미는 이야기는 마치 기억하지 못하는 언젠가의 내 꿈인 듯하다.



몽롱한 낮잠에 취해 현실의 경계를 헤매던 흥얼거림과 ‘목요일 오후 한 시’의 소박한 몽유록. 현실의 나를 반영하지만 철저하게 이상(異常)인 꿈과 함께 사는 우리들의 환영(幻影) 같던 그들의 몽유록은 무의식에서 얻은 생채기로 따갑던 우리의 정신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보충설명

▷목요일 오후 한 시
2004년 창단부터 연극과 무용, 퍼포먼스 등을 기반으로 한 즉흥연극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re 활동을 하는 즉흥연극 전문 집단이다. 이들은 누구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숨은 개인들의 값지고 소중한 생활을 주목하면서 플레이백 씨어터를 '목요일 오후 한 시'만의 색깔로 재창조하고자 한다. 따라서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갤러리나 까페, 클럽 등의 대안적인 공간들을 좋아한다. '목요일 오후 한 시'는 플레이백 씨어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할머니가 될 때까지 '척하면 척'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흥연기, 무용, 움직임, 악기 연주 등을 훈련하며 이야기를 듣는 태도와 말하는 기술, 공간에 따른 공연 형태 분석과 응용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공연한다.
++)club.cyworld.com/playback-theater

▶F+놀이터프로젝트
매달 마지막 일요일 오후에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연남동 564-35 공간에서 진행되는 공연+공간재생 프로젝트.
지난 2월부터 박창근, 예기프로젝트, 신성아, 가재발 등이 공간을 찾아 다양한 공연을 벌여왔으며, 오는 6월 29일에는 '극단 숨은그림'의 마임극 <까막눈>이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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