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기라고해도, 느낌아니까! 베이비드라마 <까꿍! 삐까부>

2013. 11. 5. 23:54Review

 

아기라고해도, 느낌아니까!

<까꿍! 삐까부>

일본 카제노코큐슈 극단

글_정진삼

 

지난 여름, 인디언밥에서는 "예술가엄마의 공연일기" 를 기획하였습니다. 육아가 전부인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엄마와 함께 공연보기를 시도해보고자 했지요.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기와 엄마를 떨어뜨려놓는 것도 문제거니와, 함께 본다고 하더라고 상당한 자극을 주고받는 '공연'이 아기에게 과연 적합한지 걱정이 들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은 만 60개월 (혹은 48개월) 이하의 어린이를 쉬이 받아주지 않는 극장과 작품의 제한 때문이었지요.  

다행히도 이러한 엄마와 아기를 위한 '베이비드라마' 라는 장르가 있었습니다. 베이비드라마는 신생아와 갓난쟁이,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영유아를 위한, 체험적 놀이 연극입니다. 그리하여 인디언밥은 육아로 무뎌져가고 있는 예술가 엄마들의 감각과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그리고 그녀들의 새로운 도전영역인 '베이비 드라마' 를 탐색해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기 보다는 그저 아기와 함께 어울려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드물고 신기한 기회를 놓치기 싫었습니다. 예술가 엄마와 그의 아기, 그리고 인디언밥이 함께 본 작품은 아시테지 축제의 초청된 카제노코큐슈 극단의 <까꿍! 삐까부> 입니다.

 

 

<까꿍! 삐까부> 에는 세명의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가가 하는 까와 비비비 하는 삐, 그리고 부우~ 하는 부입니다. 나름 소프라노, 엘토, 베이스를 맡고 있어서 절묘하게 화음을 이룹니다. 가가가가, 비비비비, 부우~ 하는 소리에 아기들이 배시시 웃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노래를 시작합니다. 노래라고 해봐야 자신이 내는 소리에 음의 높낮이를 더하는 정도지만, 아기들은 마냥 신나합니다. 삐와 까와 뿌는 아기들과 까꿍놀이를 즐기는데, 아기들은 점점 마음이 동하는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들썩들썩 했습니다. 둥그렇게 원을 이루어 앉은 아기들은 공연자들이 보여주는 간단한 퍼포먼스에 넋을 잃고 있어서 그들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반대로 어떤 아기들은 용감하게도 준비, 땅! 을 들은 선수들처럼 기어서 혹은 아장아장 가운데로 돌진하기도 했답니다.

삐, 까, 부 새들은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빨간천으로 동물을 흉내내기도 했고,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사계절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세가지 색의 천을 공중에 크게 펼쳐 아늑한 공간감을 느끼게도 해주었답니다. 다채로운 연극적 장치 덕에 아기보다 더 재밌어하는 어른 관객들도 더러 있었답니다. 대체로 세살이 안된 아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모들의 나이대가 비슷했고, 묘한 동질감이 있어서인지 정겨운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다만... 아기와는 별 상관이 없었던 인디언밥 필자는 조금 뻘줌한 표정으로 자유로워진 엄마와 아기의 상태를 관찰하게 되었지요. 공연에서 기고, 구르고, 까르르 웃는 아기들이 멋진 배우들 같아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빠말고) 삼촌 미소가 입에 걸려 내려올 줄을 몰랐지요.

 

 

일본에서 온 극단이지만, 이들은 한국어로 드라마를 진행해나갔습니다. 배우들이 전하는 어눌한 한국어는 옹알이를 하며 모국어를 배울 아기들의 모습과 겹쳐서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긴, 베이비드라마에서는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좋은 것, 나쁜 것, 아름다운 것, 추한 것 등의 이분법적 논리구조가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관극하는 것이 참 편안했습니다. 구체적인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음악과 인물과 분위기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을 수용하면 되니까요. 왜? 라는 질문이 허물어지고, 와! 라는 느낌을 받아들이면 되는 특이한 연극이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삐,까,부 배우가 호기심반 두려움반의 얼굴을 한 아기들을 살짝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장면입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낯선 광경때문에 엄마에게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아기들은 잠시나마 엄마와 멀어져도 아무일 없는(?) 착지를 맛보고는 그 안전감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습니다. 짦은 순간이지만, 주인공이 된 아기들이 연극적으로 소박하게 꾸민 이 무대 안에서 자기만의 모험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적인 사건의 긴장감이 없어도, 연극에서 열어준 감각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겠지요.

사실, 별거 안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카제노코큐슈 극단의 세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력과 음악실력은 수준급이었습니다. 고양이와 새, 원숭이에서부터 재현하기 어려운 동물인 플라멩고 새와 쥐, 그리고 낙지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움직임을 수행해냈고, 이들이 연주한 첼로와 기타, 오카리나 삼중주는 아기들에게 흥을 더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이비드라마는 간단하고 소박한 서사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 딱히 두드러지는 교훈이 없을거라는 편견을 깨고 - 나름대로 충실한 내용을 갖고 있었지요. 설명을 덧붙이자면, 삐와 까와 뿌라는 애초부터 '소리' 로 설정된 세가지 부분은 어떤 편가르기가 아닌, 조화를 이루는 세가지 합으로서 안정감있는 그리고 균형잡힌 스토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는 동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함께 어울릴수 있으며, 그 소리냄이 곧 칭찬과 격려를 받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삐까뿌>에서는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가치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모두가 기분좋게 인정해준다는 서사구조를 통해, 아기들 모두가 가치있는 존재로 성장할수 있음을 일러주고, 또 응원해주고 있었습니다. 실은 이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하지않아도 되는 것이 바로 베이비드라마의 미덕이겠지만, 몇년 전부터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베이비드라마를 처음 겪고 받은 문화적 충격이 기분좋게 얼얼하여 말이 많아졌습니다^^ 또 한번의 양해를 구합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세계의 전부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벗어나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베이비드라마 <삐까뿌>는 어쩌면 그 과정을 아기가 미리 겪게 하는 체험적 예술은 아닐까요. 아이는 예술을 통해 아슬아슬한 모험과 위대한 도전이 그리 상처 입을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때로는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엄마의 입장에서도 이런 식의 '분리' 경험이 억압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환영할 만한 것이 되겠지요. 그리하여 아이가 예술을 통해 독립성과 주체성을 갖는 것이, 어른이 되는 가장 안전하고도 바람직한 방법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베이비드라마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 라고도 할수 있겠지요.

인디언밥이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있는 육아일기/공연일기 시리즈는 생명창조로 인해, 예술창조를 잠시 쉬고 있는 예술가+엄마를 위한 코너입니다. 베이비드라마는 어쩌면, 이러한 예술가 엄마가 자신의 아기들을 관객으로,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연출해볼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겠지요. 그리하여 예술가는 주어진 조건 하에서 좌절하거나 그만두지 않고, 이를 수용하고 극복하는 가운데 새로운 예술을 창안해 낼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살짝 해봅니다. 베이비는 커서 어덜트가 되더라도, 그 베이드라마의 미덕을 그대로 이어받을수 있는 엄마 예술가를 기다리며, 글을 마칩니다. 예술가 엄마, 만세! 아기도, 만세! 

 

**사진제공_ 제21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사무국 사진은 일본의 공연사진입니다)

 

 제21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  해외초청작 <까꿍! 삐까부> /  일본 카제노코큐슈 극단  

 장소 : 세종문화회관 예인홀

 공연설명

 얼굴을 가렸다가 '까꿍' 하면서 나타나는 놀이를 삐까부(peekaboo)라고 한다. 우리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공연인 만큼, 엄마 아빠와 함께 동그랗게 무대에 둘러앉아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공연을 보면 된다. 포근하고 따뜻한 엄마 품속에서 세마리의 새 Pee, Ka, Boo가 들려주는 달콤한 하모니와 부드러운 천이 감싸는 놀이를 하다보면 어느새 초롱초롱 박수로 공연을 한껏 즐기고 있는 우리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몸 색깔이 싫어 풀이 죽어있는 검은 새에게 빨간새와 파란새가 검은 색이 얼마나 멋진지 짹짹거리며 알려준다. 단순한 의성어와 아름다운 아카펠라 노래와 악기연주 그리고 재밌는 율동으로 어린관객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관심과 집중을 잃지 않도록 한다. 세상 모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에 호기심이 많은 우리 아이의 첫 베이비 드라마 <까꿍! 삐.까.부> 엄마 품속이라면 울고 웃고 떠들고 소리쳐도 된다.

 단체소개

 1985년 설립. 우리나라에도 카제노코 극단의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상상력 가득한 놀이를 중심으로 극을 만드는 오랜 전통의 어린이 전문 극단이다. '어린이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간다' 는 뜻의 카제노코는 그 이름처럼 해외 연극계에서도 주목 받고 있어 세계 유수 축제에 가장 많이 초청되는 일본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어린이 전문 극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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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Ken Nakajima / 대본: Ken Nakajima, Jiro Kawashima

안무: Yumiko Koga / 작곡: Miho Kawashima, Yuji Koike, Reiko Kawanishi

의상: Yuji Hushinuki / 조연출: Yumiko Asano

배우: Jiro Kawashima, Yumi Nakayama, Mei Takaha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