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트라이앵글 프로젝트 <서 울 연 애>

2014. 3. 13. 12:32Review

 

합니다 서울에서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트라이앵글 프로젝트

<서 울 연 애>

 

글_김송요

 

서울이 참 넓으면서도 좁고 가까우면서도 멀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다 보면 그게 실감이 난다. 서울지하철노선도의 빽빽한 선이 가 닿는 그 모든 곳이 서울이라면, 서울만큼 드넓은 도시도 드물겠지 싶을 정도다. 거기에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넓은 땅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제 짝을 만나선 그렇게 성심성의 연애를 하는 건지. 종종 지하철에 나란히 탄 연인을 볼 때면 그 광경이 황망하리만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서울연애>는 서울독립영화제의 인디트라이앵글 프로젝트 세 번째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다. 영화 속에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이십 대들의 연애가 한 줄씩 여섯 갈래로 늘어져 있다. 최시형의 <영시> 이우정의 <서울 생활> 정재훈의 <상냥한 쪽으로> 김태용의 <춘곤증> 이정홍의 <군인과 표범> 정혁기, 조현철의 <뎀프시롤 : 참회록>이 그 낱낱의 가닥이다. 이 영화들은 각각의 색과 구조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나란히 놓임으로써 미묘한 색조의 혼합색을 칠해 올린다. 지하철로 치면 서로 다른 개수의 정거장을 지나 서로 다른 행선지를 향하는, 그러나 환승구간에서 한 번씩은 만나곤 하는 제각각의 노선들 같다.

 

 

첫 번째 영화 <영시>는 강변을 스치는 중간 채도의 유선형 구간이다. 서울에 살며 매일 보는 한강이어도 어느 날엔 평소와 다른 감정을 불러올 때가 있다. 이 영화도 그렇다. 같은 집에 살던 친구 사이의 남녀 종수와 영주가 조금씩 서로의 누군가가 된다. 옆에 있으면 뽀뽀해 보고 싶은 뺨을 가진 누군가. 두 사람에게 이 마음은 고수부지의 물소리처럼. 주말의 명화 속 무채색 연인의 속삭임처럼. 밤거리 가로등의 깜박임처럼 사부작거리며 다가온다.

<영시>에서 보여주는, 친구가 연인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그 어떤 단언의 문장 없이도 의심하지 못할 만큼 분명하고 직설적이지만, 영화가 유지하고 있는 에둘러 말하는 화법, 쑥스러워 중언부언하는 말투는 곡선구간의 오락가락하는 선로 같다. 그 오락가락함은 의혹 없이 일직선으로만 뻗어 나가는 구애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맛을 준다. 마치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순간 같다. 흔들거림이 생경하면서도, 흔들거림에 기대가 되는. 익숙하고 잘하던 것을 두고 시작하는, 어색하고 잘 못하는 것. 매일 그저 바라보던 것이 나의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얼마나 낯설어질 수가 있는지.

 

 

<서울생활>은 번화가를 거쳐 가는 순환선이다. 이 영화엔 서울생활의 평범하고도 희한한 면모가 들어 있다. 민하와 기철이 같이 사는 집, 민하가 자리를 비운 하룻밤 새 후배 여자애가 들어와 짬뽕을 먹고 있다. 민하는 어차피 이사를 하려고 했고, 전날엔 친구의 옥탑에서 잤다. 옥탑의 계단을 내려와 언덕길을 올라야 나오는 집, 벌레도 많고 여러모로 잘못 지었지만 집 구하는 사이트에서 사진을 하도 잘 찍어 놓아서 사람을 깜박 속인 집. 멋없는 색의 가구와 누런 박스가 시야 닿는 곳마다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그런 집. 그녀는 이제 서울에 버젓이 부모님 집이 있는 애인과 갈라서서 남산이 비호하는 서울 중심에 가서 살 것이다.

서울생활의 평범하고도 희한한 면모는 서울생활이라는 것 자체가 서울에 사는데도 정작 서울사람은 아닌, 서울생활을 하지만 서울의 중심에 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을 그 주요 구성원으로 삼고 있다는 거다. 영화는 집으로 올라가는 경사진 언덕길, 베란다에서 건너다보는 민하와 기철의 거실, 삼 년을 살아도 어제 이사 온 것 같은 짐더미들을 가만 쳐다본다. 서울생활을 하는 많은 이십대들의 공간, 번화한 대학가 뒤편에 즐비한, 집이라기 보단 자취방.

연인이 선선한 이별을 맞이하는 동안 짬뽕 배달부는 그릇을 갖고 가고, 이 집의 반원형 벽돌 테라스는 바깥을 향해 잠잠히 돌출해 있다. 갑자기 폭발하거나 UFO로 변신하거나 미미의 이층짜리 인형 집으로 탈바꿈하는 대신, 잠잠히. 어쨌거나 우리가 하는 건 스펙타클 대상경쑈가 아니라 서울생활이니까.

 

 

<상냥한 쪽으로>는 서울의 위아래로 길게 연장된 노선이다. 연인이 산에 오른다. 서울 바깥에서 일자리를 얻은 철은 일을 하지 않는 날 상경을 해서 윤과 시간을 보낸다. 연인의 시간은 딱히 서로의 것이 아닌 것들의 밀도로 채워진다. 누군가의 텃밭, 텃밭에 난 파, 사람 없는 산길. 얕건 깊건 철이 주의를 돌리는 것들은 사실 곧 증발해 버릴 순간적 관심사들이다. 산만한 집중은 전쟁이라는 비상사태를 향해 막연히 움직인다. 제멋대로 앞서 걷고 떠드는 철에게 윤이 마침내 ‘전쟁 그렇게 안 하거든?’ 말하고 혼자 산길을 내려가 버릴 때,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디 먼 데를 향하던 시선과 말들은 산등성이에 조각조각 흩어져 버린다. 떨어져 걷는 산의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지나간다. 대기를 헤집는 소음이 빽빽한 녹음을 꿰뚫는다. 산이 지저귀고 웅성거리고 푸드덕대는 동안 윤은 아무 말 없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상냥함은 왜 필수가 아닐까. 왜 소리처럼, 가만히 있어도 귀를 멍멍하게 잠식하지 못하고, 스르륵 흘러서 저편으로 가 버리는 걸까. 연인에게 쌓인 서운함은 잠들 무렵, 서로의 소리, 숨, 살결, 땀이 더 나지막한 높이로 느껴지는 밤에야 저편으로 물러선다. 우주전쟁으로 태양이 조각날지언정 좋은 꿈, 속삭였을 때의 상냥한 감정만큼은 품에 있다. 이 영화는 연인에게 흐르는 그 섬세한 긴장의 높낮이를 포괄하는 음역으로 만들어져 있다.

<춘곤증>은 지상으로 가는 노후한 노선이다. 늙었다거나 낡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동적인 열기를 뿜어내는 것과 동시에 밤이면 사람이 사라지는 오래된 도심의 공간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가 손님 없는 전자상가, 여관방이 모여 있는 골목길에 머무르는 순간들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가 제목대로 춘곤증의 증세―봄을 타 울렁거리는 마음과 나른해지는 눈꺼풀을 감각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서울연애>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 삽입하는 손글씨 타이틀의 배경색과 가장 맞춤한 듯 어울린다. 졸음 어린 눈알을 삭 핥는 혀의 돌기, 그 감촉에 색이 있다면 이런 진분홍이지 않을까.

 

 

앞선 작품들 역시 배우들이 보여주는 것이 적지 않지만, <춘곤증>에서 윤박의 얼굴이 해내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여러 작품에서 복학생 오빠의 야구모자 냄새 혹은 막 깎은 수염 냄새를 풍기던 윤박은 한동안 드라마에서 온갖 양아치를 도맡더니, 여기선 그전의 이런저런 전형을 모두 쓸어 담는 ‘이십대’의 말랑말랑한 표정을 짓는다. 짙은 눈썹 아래로 펼쳐지는 감정들, 조급함과 노곤함이 번갈아 진동하는 그 얼굴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최면은 옆 가게 유부녀 누나를 독차지하지 못해 발을 구를 때의 욕정과 누나를 멀찍이서 지켜볼 때의 달관인지 체념인지 모를 감정, 둘 모두를 연애의 범주로 묶어내는 얼굴이 여기 있다.

<군인과 표범>은 짧은 구간을 오가는 국지적 노선이다. 군인과 표범, 활동반경에 제약이 있거나 지구력이 좋지 않은 두 종의 생물이 이 영화의 제목을 차지한다. 군인과-표범. 보초를 서는 군인. 먼발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표범. 유격하는 군인. 사냥하는 표범. 군인과 표범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라도 될 수가 있어서, 누가 군인이고 누가 표범인지는 모호하다.

 

선풍기만 달달 돌아가는 무료한 한낮. 바깥이 부서지는 햇볕에 달구어질 때 쉬는 시간의 일식집은 불을 꺼 놓고 낮잠 시간을 가진다. 알바생 지홍은 민재의 차를 얻어 타고 나와 다른 가게 알바생인 선지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민재는 차 안에서 그 모습을 본다. 카메라는 민재나 지홍을 가까이서 보여주는 대신 차의 사이드미러를 찍는다. 거절당해도 쫓아가 손목을 붙잡아서 돌려세우는 민망하게 절박한 구애의 순간은 사이드미러라는,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시선을 통해 관찰된다. 거울 이미지엔 소리도 없고 거울과 두 사람 사이를 지나치는 장애물로 화면이 가려지기도 하지만, 그 불완전한 시야와 반경 자체가 이 상황을 관찰하기 적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군부대나 동물원의 키 큰 볼록거울을 대신한 이 대체-눈알은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는, 제 3자로서는 그 외에는 도리 자체가 없는 군인/표범/연애를 위해 존재하고, 실은 하나도 중립적이지 않은 관찰도구다. 그리고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체험하게 하는 것은 연애의 순간이기도 하고, 그냥 영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뎀프시롤 : 참회록>은 진한 색감의 노선, <영시>와는 다른 경로로 한강을 횡단하는 선이다. 이 영화는 불치병 환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건강한 이야기다. 펀치드렁크 증후군에 걸린 복싱선수가 친구와 연마했던 판소리 복싱에 재도전하고, 체육관의 수강생과 감정을 나누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권투만화의 건더기로 육수를 내어 순정과 코믹을 채쳐 넣은 이 초현실적 영화엔 소박하게 샘솟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걸 영화 스케일의 소박함과 혼동해서는 안 될 텐데, 줄거리대로 <뎀프시롤>이 겪어내는 사건들 자체가 종잡을 수 없이 큼지막하기 때문이다.

 

 

복싱을 그만둔 친구 병구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길바닥에서 장구를 치며 함께 했던 판소리복싱을 떠올리게 하는 교환의 애절한 자진모리(자진모리가 애절하기 쉽지 않다) 장단, <더 파이팅>에 나와도 될 것 같은 더벅머리의 병구와 스포츠만화에서 연습이 끝난 부원들에게 에너지드링크를 타주는 여자 매니저 느낌의 민지가 나란히 조깅을 하는 모습도 그렇고,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뮤직비디오 회상 장면에서나 사용할 것 같은 흰 침대시트 위 교환과 병구의 한때, 판소리복싱이라는 주인공의 필살기의 존재여부 자체를 미궁에 빠트리는 종장부의 ‘꿈 드립’까지, 아무래도 서로 다른 장르 같아 보이는 장면들이 일관성 있는 연출로 기워져 <뎀프시롤>의 변칙을 만들고 있다. 소년점프의 만화가들이 한데 모여 각자 한 시퀀스씩을 맡자고 해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은 둘이서 해냈다.

여섯 편의 영화는 예기치 못할 만큼 각자 다른 리듬으로 서울을 여행하고 연애를 묘사한다. 그렇지만 분명하다. 서울지하철에는 여섯 개의 배가 되는 노선이 있고, 그것들이 다 있어서 서울 생활, 서울 연애가 순탄하다.

 

***사진출처_네이버 영화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바로가기 >>>> www.siff.or.kr

 

 필자_김송요

 소개_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도 애정도 욕심도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혹해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꾸준히 감각의 그릇을 키워서 넉넉한 감정을, 이야기를 고봉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영화제_서울독립영화제2013 (제39회)

 작품명_서울연애

 감독_최시형, 이우정, 정재훈, 김태용, 이정홍, 정혁기&조현철

 작품정보_2013 | Fiction | Color | HD | 120min

 

 

 Episode 1. 영시 | 감독 최시형 | 주연 고현, 박주희

여름날 종수는 떠나간 룸메이트인 영주를 그리워한다. 연인도 아니고 그저 편한 친구 사이였던 영주를 그리워하는 것이 창피하지만 어쨌든 그리워한다. 한편 영주는 예전부터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

 Episode 2. 서울생활 | 감독 이우정 | 주연 구교환, 이채은, 류혜영

생활력이 강한 민하, 민하가 일궈 낸 온실 속에 살고 있는 기철. 둘은 그렇게 동거한 지 삼년이 되어 간다. 불쑥, 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간 지혜.

 Episode 3. 상냥한 쪽으로 | 감독 정재훈 | 주연 한슬기, 조현철

연인 사이인 윤과 철은 동네에 있는 산에 올라가 좋은 하루를 보내려 한다. 그러나 갑자기 철에게 사나운 마음이 생긴다. 윤은 그동안 쌓인 서운한 마음이 터져 나온다.

 Episode 4. 춘곤증 | 감독 김태용 | 주연 윤박, 김수아

전자상가에서 알바 중인 상원은 띠 동갑은 넘어 보이는 건너편 가게의 여사장 문주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갖고 있다. 나른한 봄이 오자 상원은 슬슬 자신에 대한 문주의 마음이 불안해진다.

 Episode 5. 군인과 표범 | 감독 이정홍 | 주연 김민재, 문지홍

나른한 오후.

낮잠을 자는 주방장 민재. 그를 깨우는 알바생 지홍.

 Episode 6. 뎀프시롤 | 감독 정혁기, 조현철 | 주연 조현철, 이민지, 구교환, 박종환

과거의 복싱 선수 병구는 펀치드렁크에 걸렸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깨달은 병구는 다시 복싱을 시작한다. 미완의 판소리 복싱을 완성시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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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시 | 감독 최시형

여름날 20대 젊은이들의 일상적인 ‘하루’를 찍고 싶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서울생활 | 감독 이우정

서울에서 일을 하며 살고, 사랑을 하며 살고.

3. 상냥한 쪽으로 | 감독 정재훈

맹렬하고 상냥한 힘을 담고 싶었습니다.

4. 춘곤증 | 감독 김태용

외로운 건 죄다.

5. 군인과 표범 | 감독 이정홍

주변의 영화.

6. 뎀프시롤 | 감독 정혁기, 조현철

몸으로 울어 본 적이 없는 자, 이 영화의 티켓을 끊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