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홍리경 감독, 2014, <탐욕의 제국> - 어떤 연대의 방식

2014. 4. 24. 14:48Review

 

어떤 연대의 방식

홍리경 감독, 2014, <탐욕의 제국>

 

인디다큐페스티발 2014

 

글_K

 

 

 인간은 본래 오늘을 위해 사는 존재였다. 오늘을 위해 채집을 했고, 오늘을 위해 사냥을 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점차 축적에 몰두하게 되었다. 잉여 생산물을 많이 가진 자가 지배계층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축적의 문화는 자본주의와 만나며 타인을 착취하고 그의 미래를 담보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굳어진다. 그 예로, 삼성 반도체 공장의 피해자들이 삼성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던 노동자가 과거를 회고하며 말한다. 그녀에게 삼성은 단지 지나가는 직장이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기숙사를 같이 쓰는 동료들 중 누구는 돈을 모아 대학에 진학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누구는 경력을 쌓아 더 좋은 회사에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삼성 반도체 공장의 탁한 기숙사를 롱샷으로 찍으며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그녀는 분명하고도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삼성 자체가 목적이었던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이다. 이들은 아마 이들이 각자 꿈꾸던 미래를 위해 유목민처럼 삼성을 스쳐갈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작업하던 이들 중 많은 인원은 백혈병이나 뇌종양에 걸리고 말았다. 이들이 오늘을 담보로 설계하던 미래는 투병의 나날 속에서 침몰해버렸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과거의 시간에 묶인 오늘을 풀기 위해, 몇년에 걸친 지난한 싸움을 한다. <탐욕의 제국>은 이들의 투쟁 상황을 카메라로 끈질기게 추적한다. 특이한 점은 <탐욕의 제국>에 리얼리즘적인 기승전결 구성을 그다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그리고 있는 시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뒤죽박죽이고, 투쟁의 성과 역시 극적인 상태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막이 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 반도체 공장 피해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는 이에게 무력감을 안겨줄 정도로 거대하고 아득한 대상,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삼성은 답이 없다. 빗줄기가 굵어지는 날에도 가족들은 어김없이 시위를 하러 나서지만 언제나 닫혀버리는 본사의 문 앞에서 그들은 애통하게 심정을 부르짖을 뿐이다. 때로 그들의 아우성은 음성 제거 상태가 되어 오직 이미지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 어떤 울부짖음에도 묵묵부답인 삼성을 묘사하는 장치로서, 음성 제거는 매우 감각적인 수단이다. <탐욕의 제국>은 피해자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모두 제거한 상태로 카메라를 천천히 위로 들어올린다. 근경에서 원경으로 빠지면서, 카메라는 가족들이 아닌 삼성의 한 건물을 응시한다. 건물은 너무나 길어서, 하나의 화면에 들어오지 않는다. 카메라를 꽤 오랜 시간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린 후에야, 건물의 상층부가 드러난다. 도시 위에 하나의 거대한 탐욕처럼 존재하는 그곳 앞에서, 관객은 가족들의 오열을 일종의 메아리처럼 품게 된다.

 

 

 

 

앞서 같은 사건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도 개봉을 하였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족 멜로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클리셰 덩어리인 화면이 많지만, 문제의식이 분명했다는 점에서 얼마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탐욕의 제국>은 훨씬 서늘한 방식으로 관객의 심경을 건드린다. <탐욕의 제국>에는 멜로가 없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본질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탐욕의 제국>은 사건 발생 이후의 투쟁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탐욕의 제국>은 백혈병에 걸리고 장애 진단을 받은 ‘꿈 많은’ 이들이 삼성에 입사하기 전에는 각자 얼마나 빛나는 청춘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 전체에 걸쳐 그것이 드러나는 부분은 단 몇개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는 첫 문단에서 밝혔듯, 피해자 중 하나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당시의 동료들 모두 삼성 반도체 공장 이후의 삶을 계획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때도 <탐욕의 제국>은 불필요한 화면 구성은 최대한 생략한 채로, 멀리서 아득하고 뿌연 공기에 휩싸인 기숙사만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른 하나는 다큐멘터리의 후반부에서 한 고등학교 졸업식장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잔잔한 음악을 깐 상태로 카메라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천천히 담는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다. 다만 다큐멘터리의 초반과 중반에 등장한,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삼성 반도체 공장에 입사하였던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오버랩될 뿐이다. 그리고 간간히 입사 이후에 결혼을 했던 노동자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처럼 <탐욕의 제국>은 피해자들에 대한 불필요한 스토리텔링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서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욕의 제국>은 관객들의 감정선을 일면 자극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즐길 수 없는 사람들, 개개의 꿈을 간직한 채 착취당하는 사람들, 착취당하는 와중에 본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실은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입 가능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의 신분으로 생을 마감한다. 삼성 반도체 공장 피해자들의 비극은, 거시적으로 볼 때 이 땅에서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비극이다.

 

 

 

<탐욕의 제국>을 보는 내내, ‘노동자’라는 단어에 대해 재고해보았다. 노동자, 문자 그대로의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와는 별개로, 대한민국에서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연대체인 ‘노조’ 자체에 대한 반감도 높다. 작년에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A/S 기사로 일하던 고 최종범 씨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노조활동을 시작한 이후 회사의 표적 감사를 받았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본인이 선택한 직장’이라며 고인을 두번 죽이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 사건 후 얼마 되지 않아 철도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철도민영화 반대 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노조를 대하는 보수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노동 3권 보장하면 툭하면 파업할 것’이라는 발언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여 충격을 안겼다. 절망스러운 사실은 이것이 일부 우파 기득권만의 시선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 그들과 같은 노동자들의 입에서, 노동자를 향한 경멸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인기 급훈으로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가 나오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음성을 하염없이 소거시키는 것은, 대자본인 삼성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로 일생을 살아가는 국민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탐욕의 제국>에서 삼성의 입장이 드러나는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짧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삼성은 거의 모든 순간에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이다. 장애 판정을 받고 혀가 어눌해진 딸을 어머니가 삼성의 고위 임원에게 데려가도, 임원은 애써 시선을 회피한다. 카메라가 자본가에 주목하는 것은 오직 회피하는 시선 그 자체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자본가는 그저 침묵하기만 해도 반은 이긴 셈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본인도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며 노조를 규탄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향한 연대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언젠가는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체화하면,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처우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삼성 반도체 공장 피해자들이 아직까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함에도 극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체화시키며, 노동자를 그저 약자로만 규정하는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탐욕의 제국>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하여 투쟁의 모습과 그것이 좌절당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내보낸다. 때론 그것은 지나칠 정도로 여과가 없기에, 서늘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여과 없음’ 이야말로 동시대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말걸기’가 아닐까 싶다. ‘여과없이’ 그들의 상황을 담는 방식은, 관객들이 그들을 타자화하기보다는, 그들의 상황에 이입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사진제공_씨네21 (http://www.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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