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길피디 블로그와 ‘애티튜드’

2014. 5. 4. 02:44Review

 

유투브의 독립+예술/문화+채널,  길피디-를 보다

길피디 블로그와 ‘애티튜드’

 

글_김송요

 

▲ 길피디의  영상블로그 시작화면 (사진=유투브 영상캡쳐)

 

길피디는 본인의 유투브 계정에서 블로깅을 한다. 블로그처럼 이런저런 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되 영상을 매체 삼는 것이다. via video, 이 길피디의 블[v]로그는 아주 간결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주제는 주로 문화예술 쪽의 행사나 장소, 사람 등이다. 십 분이 채 되지 않는 재생시간에 서두르는 느낌 없이 차근차근 서론본론결론이 진행된다. 더 짧았으면 이야기를 넣을 자리가 없었을 것이고 더 길었으면 중간에 정지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적당한 밀고당기기의 러닝타임을 유지하면서, 길피디는 매회 열심히 사람, 장소, 사건을 소개한다.

‘길피디 블로그’에는 IMAX며 4D를 망라한 스펙타클이 있거나, 뭐랄까 영화적 감흥에 몰두하는 영상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하긴 둘 중 하나였다면 유투브계의 듣도 보도 못한 아방가르드가 되었을 것이다) 그 나름의 명료한 스토리보드를 기반으로 해서 단정하고 기복 없는 편집을 고수한다. 로케이션 촬영(!)때의 무람없는 핸드헬드도 그다지 불안정하지 않고, 음성변조를 비롯 올망졸망한 기술들도 제때 제 몫을 한다. 여기에 노크 없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도라에몽이 고명 노릇을 한다. 화면 어딘가에서 두더지처럼 불쑥 튀어나온 도라에몽 캐릭터의 만담꾼 같은 대사는 인터넷 말투로 치면 ‘괄호체’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럼 그냥 대충 넘어갈까요? (←어이어이, 똑바로 하라구~)>

…바로 여기서의 괄호 같은 역할 말이다. 즉 도라에몽은 자학을 위해 존재하는 길피디의 페르소나인 것이다. 이 도라에몽을 이용하여 스스로의 부족함을 나무라는 엄청난 특수효과는 길피디 블로그의 형식미를 나날이 발전시키고 있다.

 

▲ 페스티벌 봄을 소개하고 있는 길피디 (사진=유투브 영상캡쳐)

 

길피디의 블로그는 누구나 편히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특히 힙스터 꿈나무들에게 친절한 여행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 본인이 그러길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러하다.

길피디의 여정, 잔다리페스타나 오일플51+, 페스티벌 봄 같은 행사들과 꽃땅, 무브홀, EXIT 같은 장소들은 그 얼마나 아는 척하기 매력적인가. 길피디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 그거~’ 하는 순간 사람을 트렌드세터로 만들어 주는, 그러니까―상당히 힙스터적 소재들 아닌가.

아예 나미비아 전통민요 악단을 좋아해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 팬레터를 보내는 수준으로 매니악하거나

―인터넷 콘텐츠가 주제인 김에 인터넷 용어를 조금 덧붙이면, 이렇게 같이 호응해 줄 사람이 적은 관심사를 파고드는 것을 ‘사약 마신다’고 하고, ‘사약 마실’ 앞날이 뻔히 보이는 대상을 좋아하게 되는 문제의 찰나를 ‘덕통사고 당한 순간’이라고 한다―,

컴백하자마자 음원사이트 스트리밍 1위로 차트인하는 수퍼파워아이돌을 그냥저냥 TV 나올 때에만 '꺅 멋있다 나 오늘부터 쟤네 덕후야~' 라고 말로만 핥을 정도로 가볍거나 하면

―이런 것은 문자 그대로 '라이트팬'이라고 한다―

이런 소재 앞에 퍼덕거릴 일 자체가 없다. 그리고 이런 사약러er와 라이트팬을 제하면 상당수의 공통분모를 가진 집단이 나온다. 레코드포럼과 레코드폐허에 다 가고 싶은, 꿀과 꽃땅을 그리워하는, 시청각과 커먼센터를 찾아가는, 페스티벌 봄 예매 기간에 컴퓨터 앞에서 거듭 전화를 거는 종류의 사람들. 그 모두를 힙스터(꿈나무)로 부르는 건 어렵지만, 그들 사이에 힙스터 꿈나무가 끼어 있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 길피디는 현장에 가서 '체험' 을 하고, 그 과정을 낱낱이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유투브 영상캡쳐)

 

아아, 힙스터 꿈나무. 힙스터 꿈나무라면 모름지기 어떡해야 하는가. 모든 아이템을 활용하여 온몸으로 힙스터힙스터 외치며-이것은 반드시 소리 없는 아우성이어야 하는데, 모든 명명은 타인의 입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결코 쭈뼛거리지 않는 자신의 능숙함을 뽐내며, 여유! '쿨'으로 수렴하는 그 모든 키워드, 프렌치시크, 차도남녀, 또.. 얼리어답터(?) 엑스세대.. 아니 엑스세대는 열렬했으니까.. 오렌지족(?) 같은 시대의 아이콘들에게 필요했던 바로 그 여유를 선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이 향유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취준생들이 모든 회사에서 경력직만 뽑아서 대체 그 경력은 어디서 최초로 쌓는 것인가 의문을 느끼는 것처럼, 힙스터 꿈나무들은 모든 힙스터들이 이미 모르는 게 없는 상태여서 아무에게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길피디다. 길피디의 여정을 착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힙스터의 배경지식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경지식만 익히면 어떡하느냐, 힙스터의 생명은 ‘애티튜드’ 아니냐 한다면―길피디의 블로그엔 힙스터의 태도와는 사뭇 다를지 몰라도, 길피디만의 진행방식에서 느낄 수 있는 ‘태도’의 감흥 역시 존재한다.

블로그에 게스트가 왕왕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 매회를 끌어가기 위해선 호스트인 길피디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길피디는 씩씩하고 똑똑한데, 흔히 생각하는 ‘예술맨’의 전형과는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여기서의 예술맨은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가 바로 예술맨이다!!’ 하고 외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하염없이 예민하거나 똑똑하시고 심미안이 처마 끝에 달려 있으시며 싫은 것에 NO라고 말씀하실 적 한없이 단호해지시는 일련의 군상들을 편의상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런 예술맨을 접해 본 사람들, 혹은 그들을 접하기 좀 두려운 사람들, 예술맨이 나쁘단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좀 더 평온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문화 예술 사람 사회 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길피디를 찾을 수 있다.

 

▲ 쾅 프로그램의 참여밴드와 인터뷰하고 있는 길피디. (사진=유투브 영상캡쳐

 

길피디는 자신이 알고 있는, 또는 알게 된 것들과 그에 대한 생각을 얘기할 뿐, 자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관을 숨기지 않고 말하면서도 남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지 않는 건 길피디의 좋은 재주다. 길피디는 일단, 무슨 주제에 대해 누구와 얘기를 해도 말투가 똑같다. 잘 알고 있는 것을 말할 때나 모르는 것을 말할 때나, 역시 말투가 똑같다. 저자세와 고자세, 떵떵거림과 자신 없음의 급류타기를 하는 대신 항상 잔잔한 상태로 (비난과 분노는 도라에몽에게 맡기고) 썰을 풀어내는 태도. 이건 정말, 정말 중요하다. 이 위대한 *예술* 이야기를 할 때 말투만큼 신경 쓰이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없다. 해박한 배경지식과 뛰어난 심미안과 폭넓은 인간관계와 화려한 경력사항 등등을 알리고 싶다는 유혹을 물리치고 예술을 소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틈에서 길피디의 선전은 재미있으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구슬모아당구장을 찾아 진짜 당구장에 가고, 입김을 술술 내뱉으며 통닭 봉지를 들고 낯선 골목을 걸어 인터뷰이에게 전화하며, 괜히 이른 시간에 와서 서먹한 공기가 감도는 클럽 앞에서 취재 타이밍을 기다리는 그의 성실함인지 깜찍함인지, 그 꾸민 데 없는 모양에 슬쩍 웃다 보면 길피디의 블로그 한 편이 후딱 끝나 버린다.

 

▲유투브 페이지 상에서 시청자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길피디. (사진=유투브 영상캡쳐)

 

 아마추어리즘은 칭찬이다가 욕이다가 자기 기분대로 성깔을 바꾸는 말이기에 함부로 써먹을 수가 없다. 그리고 굳이 (여기서) (내가) 길피디 블로그에 아마추어리즘이 있다 없다를 얘기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실은 그것이 이 블[v]로그라는 콘텐츠를 말하면서 제일 쉽게 쓸 수 있는 수사일지라도 말이다.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건, 어쨌거나 내가 길피디 블로그를 보는 이유 중에는 그렇게 살짝 불완전한 매무새에서 스며나는 당혹감이나 유쾌함, 부르르한 진동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길피디 블로그가 힙스터 인강 101이 아니라 더 훌렁훌렁하고 재밌는 무언가가 되는 게 아닐까?

 

 필자_김송요

 소개_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호기심도 애정도 욕심도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혹해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꾸준히 감각의 그릇을 키워서 넉넉한 감정을, 이야기를 고봉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길피디의 트위터 계정 (사진=트위터 페이지 캡쳐)

 길피디는 유투브의 블로그를 통해 동시대의 젊은 문화/예술을 전하고 있는 영상쟈키(VJ) 및 프로듀서(PD)이다. 스스로 촬영, 편집, 대본, 연출을 소화해내고 있으며, 자기만의 관점으로 '핫' 하거나 '매니악' 한 문화예술계의 현상들을 조명하고 있다. 인터넷 TV에서 개인방송을 운영하는 BJ나 기존의 IT업계의 얼리어답터 뉴스, 혹은 컨슈머 리포트와는 사뭇 다른 포지셔닝이다. 상업적 목적이나 유용성 혹은 관음증적 시선이 아닌, 자발성과 공유성, 유희성 등을 키워드로 삼아, 하나의 채널로서 기능하고 있다. (편집자 주)

 *** 길피디 블로그 바로가기 >>> youtube.com/user/sanaihg 

  

▲길피디의 유투브 블로그 메인화면 (사진=유투브 영상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