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보리의 사진 작업에 관한 소고(小考) "어두운 방(Camera Obscura)"

2014. 5. 8. 01:03Review

 

어두운 방(Camera Obscura)

김보리의 사진 작업에 관한 소고(小考)

 

글_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단순한 초상(肖像)을 찍기 위해서라면 만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서로가 그랬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의 얼굴을 이미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바깥에 남는 것들을 이름 모를 잔영(殘影)으로 간직하는 일이었다. 사진에서 그 힘이 느껴졌으므로 만나기를 청했다. 우리는 함께 산책을 하고, 시장에서 빵과 치즈를 사와 음식을 해 먹었다. 그리고 또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실제로 정작 사진을 찍은 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은 그 모든 시간 동안 그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언제나 “처음 가는 장소, 처음 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김보리의 작업 순간은 그 밀도가 아주 높을 수밖에 없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몇 평짜리 방을 찾아가, 주어진 조건들을 두고 그는 지극히 짧은 시간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낸 뒤 예리하게 선택한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본인이 선택한 피사체가 아니므로) 그 사람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재빨리 찾아낸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각자가 지닌 매력의 어마어마한 힘으로, 차마 눈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뛰게 된다고도 말했다. 그리하여 뛰는 가슴을 숨기기 위해 작은 카메라 뷰파인더에 단단히 눈을 대고, 그는 짐짓 여유롭게 나머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한없이 느긋해서 묘한 든든함을 주는 그 자세로, 김보리는 그 순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잠재(潛在)들과 치밀하게 씨름한다.

 

<사진찍어줄게요(Let me take your picture)>를 진행하면서 그는 “집”에 대한 스스로의 애착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집에서 부모님이 찍어주셨던 사랑이 가득한 사진들처럼, 무릇 사람의 초상이란 밋밋한 흰 바탕이 아닌, 현재 몸 담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집과 함께 촬영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그때부터 그는 “의뢰인들”의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 그들의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해 런던으로 건너온 뒤에도 그 행보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에 더해 <지침서(Guide book)>라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 또한 “집”이라는 개념과 근본적으로 연결된다. 실상 워킹홀리데이는 부풀었던 뭇 꿈들이 현실을 만날 때 그러하듯 작가 자신에게 막막함과 절망을 맞닥뜨리게 했으며,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정직한 이면을 기록하고 또 나누고 싶어졌다. 막상 해외에 나와 겪게 되는, 소속됨이 불분명한 영혼의 정처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어찌어찌 갖고 있는, 작은 한 몸을 붙일 손바닥만한 공간을, 거기 부유(浮游)하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그는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기서 “집”이란 것은 이제, 함께 밥 먹을 식구(食口)가 있는, 세상의 풍파로부터 몸을 숨길, 그런 따뜻한 은신처가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그저 물리적으로 몸을 누일, 살기 위해 지고 가야 하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것일는지도.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우리의 가장 정직한 밑바닥이 고개를 드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집”이라는 것의 본령에 더 가깝다. 김보리는 그 “집”들의 문을 두드린다.

 

해외에 나와 살면서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그 어떤 풍경도 너무 쉽게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걷고 있는 강변이, 공원이, 골목골목이 “파리”가 아니라 그냥 “우리 동네”에 불과한 그 기묘한 느낌. 일상은 그렇게 너무나 빨리, 우리의 몸 속으로 흡수돼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내 몸은 이미지화될 수 없다.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나라는 이미지의 외양으로서가 아니라 부피와 넓이를 가진 “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진 찍히기를 바랐던 것은 바로 그 몸이었다. 한 시절 내 살 같은 일상이었다가 그 언젠가 사라져버릴, 그러고 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체취(體臭) 같은 것. 여전히 사랑하고 있기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아득한 옛 연인 같은 것. 그와 보냈던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했던 시간 같은 것. “집”은 그것들이 부유하는 내 몸의 공간이다. 그리고 김보리의 사진은 철저하게 그것들을 존중한다. 셔터가 눌러지는 찰나가 아닌, 그 앞과 뒤의 시간들을 담는 것. 사진이라는 평면 속에 박제되지 않고, 그 너머에서 영원히 떠다닐 깊이를 담는 것. 실제로 <지침서> 작업의 사진들을 김보리는 영화 화면의 비율대로 트리밍(trimming)하는데, 이는 자신의 사진에게 있어 사진됨의 큰 특성을 버리게 하면서까지 개개인의 (마치 영화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존중하려는 그만의 기법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의 작고 소란한 카메라인데, 그것은 철컥, 하고 순간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것들에게 제대로 자리 잡을, 혹은 도망가버릴 시간을 주겠다는 듯, 사진 찍히는 순간의 앞뒤로 아주 길게, 길게 기계음을 낸다. 정직하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밝은 방(Camera Lucida)>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사진기의 전신(前身)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어둠” 개념에 눈을 가리우지 말고, 사진 속에서 발하는 풍크툼(Punctum)의 “빛”에 주목하자는 의미에서 “카메라 루시다”라는 용어를 앞세운다. 그런데 사실 카메라 루시다는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기는 일을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다시 말해 몸-덩어리의 평면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외부의 오브제를 다각도로 굴절된 프리즘 속에서 반사시켜 망막에 맺힌 이미지의 상(像)을 보고 따라 그리게끔 하는 기계였다. 반면에 카메라 옵스큐라는 외부의 오브제를 굴절시키지 않고, 빛의 구멍을 통해 있는 그대로 투영시킴을 그 원리로 한다. “어두운 방”에 여과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빛” 자체, 살 자체. 바르트와 달리 나는 거기서 더욱 강렬한 풍크툼의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김보리의 카메라가 저 “어두운 방”이라는 사진기의 본령에 매우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어색하고 쓸쓸한 것들을 사진 찍기 좋아하는지 자문하고 있노라고 말했다. 바르트가 폐기하려 했던 카메라의 저 “어둠” 때문에, 아마도 그의 사진은 쓸쓸함의 곁으로 자꾸만 돌아가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어둠의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때문에,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의 사진이 쓸쓸하지 않다고 답했다. 따뜻하다고 말했다.

 

Camera Obscura Portsmouth Natural History Museum Cumberland House

 

이때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 우리가 미처 다스릴 수 없는 것들을 품는다. 같은 맥락에서 김보리는 “타인의 집”이라는 지극히 우연적인 상황과, “기계”인 카메라, “화학작용”을 하는 필름, 그런 것들의 잠재적인 도발을 인정한다. 사실 그를 애초에 사진의 길로 이끈 건 “기계식” 카메라의 매력이었다. “좁쌀만한 숫자가 써있고, 철컥거리고, 묵직하고, 쇠 냄새 나는” 그것이 어린 김보리에게 퍽 멋있었던 것. 줄곧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그는 사진을 통해서라면 저 멋진 “기계”와 더불어 미술을 할 수 있으리라는 매혹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이미, 그림을 그릴 때처럼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통제하는 것이 아닌, 저 작은 기계에 어떤 큰 부분을 맡길 수밖에 없는 사진작가의 운명을 그는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마음대로 의지대로 카메라를 다루고자 했던 초기의 욕망은, 때로는 예기치 않은 실망과 감탄을 안겨주는, 있는 그대로의 카메라와 “함께 가고자” 하는 부대낌으로 바뀌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극히 엄격하고 치밀하되 기타 여건들이 가져다 주는 우연성에는 느슨하게 마음을 여는, 최선을 다해 예측하지만 그 예측의 오차범위를 언제나 기대하는, 그 이중적인 태도로부터 김보리만의 사진이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그로부터 진짜 “집”이 담기고 진짜 “몸”이 담기는 기적이 발해진다고.

 

런던의 집으로 돌아가면 그는 필름을 찾고, 스캔하고, 사진들을 고르고 약간의 손길을 더한다. 각 사람에게 알맞은 톤을 맞추고, 영화 화면의 비율대로 프레임을 조정하는 등의 일은 모두 촬영의 순간 못지 않은 애정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확히, 김보리에게서는 늘 형식과 의도가 일치한다.) 그런 후에 그는 완성된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당시에는 또렷이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것들,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붙잡을 수는 없을 것들을 마주하며, 각 사람에게서 본인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찾는다. 사진들에 덧붙여 그 말을 기록함이 그의 작업을 완성한다. “사진 찍을 때, 그 사람에게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찍게 되는 것 같아요. 굳이 담으려고 애써 하진 않는데, 가져와 보면, 그런 것 같아요.” 글 쓰는 일에 익숙지 않아 매번 곤혹을 느끼면서도, 그는 각 사람을 담아낼 문장들을 (마치 집을 짓듯이) 공들여 짓는다. 사진작가에게는 분명 사진 작업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 단계일 것이다. 나는 그 어려움을 감당하는 것이 피사체에 대한 김보리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작업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를 진중하게 염려하는 작가였다. 일례로 2010년 겨울, 김보리는 <안 오면 니가 손해>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한다. 네 시간 전부터 홍보를 했고, 대부분 지인들로 채워진 일곱 명의 관객이 왔다. 김보리는 그들에게 설명한다. 전시를 한 번 하려면 30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자신의 작업을 보고 과연 그 30만원어치를 사람들이 가져갈지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고. 그래서 전시를 준비하는 대신 30만원을 이 자리에서 나눠주기로 했다고. 이 돈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각자에게 최소한의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이후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누군가는 그날로 표를 끊어 고향으로 내려가 엄마를 만났고, 누군가는 훌쩍 여행을 떠났다고도 한다. 그렇게 여행의 여운이 담긴 몇 장의 필름사진도 김보리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그때 그들 각자가 찾아낸 그 작은 의미들이 아마도 작가에게는 이후의 작업에 남겨진 길잡이 같았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진찍어줄게요>와 <지침서>를 통해서도 그는 자신에게뿐 아니라 참여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발생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그는 쓴다.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해외에 나와 있다 보면 정말이지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싶은 순간들이 부지기수로 찾아온다. 언젠가 그런 내게 한 친구가 말해준 적이 있다. “너는 너, 거기는 네가 있는 곳.” 그 단단한 문장이 김보리의 작업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라는 소설에서, 끝내 죽음을 택한 여자가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너에게 묻고 싶었어. 나는 어떤 사람인가고.” 혹시 물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을 수 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것이었다. 김보리라는 작가가 생전 처음 만난 나를 사진 찍고, 나에 대해 몇 개의 문장들을 공들여 기록하는 것, 그것은 감히, 나를 살리는 일과 닿아 있다. 그것은 내게, 살아갈 “집”을 주는 일이다.

 

끝으로 또 한 가지 역설적인 얘기를 해보자. 나에게는 어딜 가든 사진을 찍어주는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있다. 그 할아버지는 바닷가에 가면 바다가 예쁘다고, 어떤 극장에 가면 빨간 벽돌담이 예쁘다고 자꾸만 나를 그 앞에 세우고 셔터를 누른다. 그런데 현상된 사진을 받아보면 그 프레임 속에는 언제나 탐스럽고 커다란 내 얼굴뿐이다. 그곳이 바다였는지, 산이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실물처럼 거대하게 다가오는 그 얼굴에 거부감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말이다, 할아버지가 찍어준 그 사진 속의 나는 우리 엄마의 마음에 꼭 들게 예쁘다. (혹시 특정 연령층이 선호하는 사진 속 얼굴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될 정도였다.) 해서 고향집 엄마 방의 화장대 거울에는 그 사진이 고이 끼워져 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염려가 된다.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우리 엄마는 그것을 나의 영정사진으로 쓸 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은, 그 사진이야말로 “밝은 방(Camera Lucida)”에 가깝지 않은가. 허나 나는 부디 나의 최후의 진실이 “어두운 방(Camera Obscura)”이었으면 한다. 사람의 초상을 집과 더불어 찍는다는 김보리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 그래서 내게는 그것이,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진정으로 말해주는, 그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김보리는 우리를 살리면서, 자신이 살리고 있는 우리의 가장 예쁜 영정사진을 찍어준다. 그러므로 쓸쓸하고, 그러므로 따뜻하다.

 

김보리 작가 웹사이트 _ http://kimbo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