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옆 사람과 '함께'하는 쇼 - '양양'의 <이웃집 라디오 쇼>

2014. 7. 13. 22:28Review

 

양양<이웃집 라디오 쇼>

- 옆 사람과 함께하는 쇼

글_전강희

 

고등학교 2학년 때,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시절은 사교육을 많이 받던 때가 아니어서 대부분 반 친구들이 늦게까지 함께 공부를 했다. 공부를 했을까? 했겠지... 9시전까지는.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유명한 가수들이 라디오 진행을 했다.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시절 여고생들은 모두 소형 카세트를 가지고 다녔다. 각자 귀에 이어폰을 꼽고, 책상 위에 문제집을 펼쳐 놓았지만, 어떤 순간, 모두가 동시에 웃었다. 어떤 사연에 동의를 표하듯 서로 눈길을 주고받기도 했다.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 공간, 그 시간 속에 우리는 함께 했다. 함께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라디오는 나에게 이런 것이다.

지난 달 이런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방송 양양의 <이웃집 라디오 쇼>를 만났다. 613일 금요일 저녁 8, 카페 ‘1984’에서 있었던 현장형 라디오 라이브 쇼. 싱어송라이터 양양(양윤정)이 직접 DJ를 맡았다. 쇼를 소개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어느 밤 나긋한 DJ의 음성과 아름다운 음악, 세상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포근하게 넘치는 라디오가 전파를 벗어나 무대를 만나고 실제 사람들과 만나는 노래하는 양양의 DJ SHOW'

따뜻한 이 문구가 사실 처음에는 필자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쇼의 도입부에서 추억을 추억하러 갔다가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라는 말을 들을 때만해도 다른 라디오 공개방송 프로그램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무한히 따뜻하기만 한 그저 그런 공연일까,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멀어지고 있는 순간, 나의 눈과 귀를 확 잡아끈 말이 있었다.

제 꿈이 라디오 DJ였어요. 하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스스로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제 꿈과 욕망을 위해 모이게 된 거예요.”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해보기로 했다는 고백을 듣는 순간, 그녀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녀의 곡 <오늘의 주제는...>에는 오늘의 주제는 사람 사람입니다.”라는 가사가 있다. 그녀의 쇼가 다른 라디오 공개방송 프로그램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힐링을 가장한 억지 감동이 아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기꺼이 시간과 재능을 내어주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여타의 라디오 프로그램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을 보여주었다.

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고독입니다. 그것은 절대 슬픈 말이 아닙니다. 고독이기 때문에 우린 때지어 날아가는 새들의 사정이 궁금하고 그래서 나도 그댈 찾아가게 되는 겁니다. 사람 곁에 사람, 사람 그 곁에 사람

아티스트와 노래 가사가 만나며 더 큰 울림을 만들어 냈다.

 

특별 게스트 좋아서 하는 밴드조준호의 이야기도 쇼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었다. 새로운 앨범을 13개월 동안 만들면서 들었던 이 길을 포기해야 할까? 나는 이것밖에 안되었나?”와 같은 고민, “안타까운 하루들이 모여 앨범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는 예술가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20-30, 혹은 40대 초반까지, 어찌 보면 평범한 학생, 직장인도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관객이 있는 형태의 쇼나 공연이 주는 미덕이 있다. 필자의 경우 관객이 무대에 보내는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관객 중 한 명으로서 함께 앉아있을 때 느끼는 정신적인 충만함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이 기쁨보다 더 클 수는 없다.

요즘은 팟캐스트에서 좋은 방송을 들을 수도 있고, 유튜브에서 좋은 노래를 감상할 수도 있는 시대다. 내가 보고 싶은 가수나 논객들을 언제, 어디서나 소환해 낼 수도 있다. 비록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지금, 여기에 함께 하지 않을 지라도 웃고, 웃을 수 있다.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깨우침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혼자다. 다른 이의 미소와 웃음소리에서 느꼈던 어릴 적 위로와 안도감을 느낄 수 없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오랜만에 <이웃집 라디오 쇼>를 통해서 편히 쉬었다. 관객 한명 한명을 앉아주며 공연을 마무리한 양양에게 수고했다는 인사와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쇼의 형식과 분위기를 제목에 맡게 이끌어간 그녀의 센스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낸다.

 

*사진제공: 서교예술실험센터

 

 

양양 1집 시시콜콜한 이야기 2009 

 

양양 2집 사랑의 노래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