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리뷰, 청소년 희곡집, <B성년> IT GETS BETTER

2014. 7. 14. 09:19Review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서는 ‘여름휴가’ 기간 동안, 독자여러분들과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2013년에 출간된 청소년 희곡집 『B성년』 을 소개합니다.

 

청소년 희곡집, <B성년>

: IT GETS BETTER!

 

글_영균

 

▲청소년희곡집 『B성년』 의 표지

 

‘청소년’이라는 단어에 ‘연극’이라는 키워드를 꿰어 인터넷 검색하면, 실제로 학생(으로 추정되는)들이 문의한 내용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의 질문은 꽤나 단출하게 요약될 수 있다.

하나, 연극을 보고 감상문을 써야하는데 무엇을 봐야 할까요?

둘, 남자 독백으로 괜찮은 대사 있나요? 여자 독백으로 괜찮은 대사 있나요?

셋, (고등학교 연극반인데) 할 만한 작품 있나요?

첫 번째 질문은 사전적 의미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일 테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은 경우가 다르다. 이 책의 가장 유력한 독자이기도 한 ‘연극반 학생’들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연극반’학생들뿐만 아니라 좀 더 윗세대라 할 수 있는 연극영화 관련 전공자들, 게다가 프로 무대의 오디션을 지원하는 성인연기자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통통 55부터 마른 77까지’ 라고 해놓은 상세 사이즈 설명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처럼, '할 만한'  작품이 있는지를 (서로에게) 묻는 것은 우리 희곡의 상연 범위가 얼마나 편협한지를 추측하게 해준다. 따지고 보면, 실제로 연극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프로냐 아마추어냐, 성인이냐 미성년이냐를 떠나서-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은 그렇게나 좁은 것이다. 이제 막 연극의 문지방을 넘는 이들에겐 더더욱. 다양한 상황과 필요에 따른 다양한 희곡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 연극은 계속해서 옹졸해질 수밖에 없다.

<B성년>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적어도 연극하는 청소년들의 사정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책이다. 여기 모인 젊은 작가들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수정하고, 변형하여 이 작품을 ‘가지고 놀 수’있길 바라며 글들을 보탰다.

 

▲청소년희곡집 『B성년』의 서문, 청소년 희곡집을 내면서 (『B성년』중에서)

 

청소년을 위한 희곡을 쓴다는 것은 작가로 하여금,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관심사를 잠시 밀어 두고, 지난날의 관심이 ‘였던’ 문제들을 재탐색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한 재탐색의 과정은 ‘현재의 청소년’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연결된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청소년을 ‘위한’ 희곡집 발간이라는 기획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기도 했다. 사춘기, 과도기,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의 청소년을 향한 시선의 방향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그 시선을 굴절시키려는 노력의 일부기도 하다.

청소년희곡집으로 배봉기 작가의 <UFO를 타다>나 김영수 작가의 <고딩만의 세상> 등의 책이 출판되었고, 구민정과 권재원이 지은 <학교에서 연극하자>라는 연극 만들기에 대한 책도 2012년에 세상에 나왔다. 이것만 보더라도, 청소년을 위한 희곡집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점점 넓어져가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B성년>은 수록된 작품의 예술성이나 완성도를 떠나, 그 기획의 실용성과 목적의 분명함에 있어 기존의 책들과 차별화되는 첫 번째 책이다. 매 작품마다 수록된 무대장치에 대한 제안이 이러한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는 특징이다. 여기에 <B성년>의 특징이 있다.

 

▲청소년희곡집 『B성년』에서 「방과후 앨리스」를 쓴 김나정 작가 (『B성년』중에서)

 

수록된 여섯 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나정의 <방과 후 앨리스>, 이오진의 <바람직한 청소년>, 이양구의 <복도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일들을 중심으로 관계, 사랑 등의 문제를 다룬다. 이 작품의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대면한 문제와 그 문제해결에 주체라는 점에서, 기존 다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상화된 청소년과 구별된다.

김슬기의 <美성년으로 간다>는 다른 작품과 다르게 학교가 아닌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다. ‘팬픽을 쓰는’ 소녀의 가정은 가출 18년 만에 돌아온 친오빠의 등장으로 갑작스런 변화를 맞이한다. 현실 속의 아이돌이 소녀의 팬픽 속에 등장하고, 상상 속에 존재하던 친오빠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소녀의 심리를 담았다.

한현주의 <개천의 용간지>는 한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들 대다수가 정리 해고된 한 소도시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실제로 일어난 특정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청소년들이 사회적 파장에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먼저 실린 희곡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의 대상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세혁의 <한 번만 좀 때려 볼 수 있다면>은 유일하게 등장인물 전원이 남자다. 삥 뜯기는 아이-삥 뜯는 아이- 그의 형- 형의 친구-아버지- 아버지의 친구라는 수직적인 권력관계가 수시로 뒤섞이고 뒤집힌다.

 

▲청소년희곡집 『B성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를 쓴 김슬기 작가 (『B성년』중에서)

 

책의 표지에는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작가들의 청소년 희곡집’이라는 수식어가 입간판처럼 세워져 있다. 많게는 40대에서 20대 후반의 작가들이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 귀여운 엄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발적인 구속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벗어나 지 못함’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완력을 이기지 못 한다는 뜻이니까. 작품 속 인물이나 책이 겨냥한 독자가 ‘고등학생’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사전적 의미의 ‘청소년’의 범위에 비해 좁은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연극하는 학생들의 안과 밖에 큰 도움이자 즐거운 선물이 될 것이다.

청소년을 과도기적 존재로 정의하는 순간, 그들은 타인이 부과하는 불합리한 의무를 짊어지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 더 잘 살기 위해서, 하루를 성실하게 견뎌야 하는 의무와 그러면서 동시에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을 찬란히 채색해야 하는 모순적인 의무들. 나 역시 그 시기를 거쳤고, 그 시절의 내가 ‘주변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후회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폄하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경꾼에게 조차 그 시기는 가혹했기에, 내 정체성의 일부는 여전히 그 시기에 속해있다.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나를 그 시기를 떠나서야 시시 때때로 마주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기만이 유일하게 대단한 날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시기만 눈부신 것은 아니니까 특별하려고 노력할 것도 없다. 사전적으로, 청소년은 15년이나 되는 넉넉한 시간이다. 책의 독자들이 다만 이 작품들을 잘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다. 이 희곡집이 아무거나에 불과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를 바란다. 연극이 그렇게 쉽고, 다정한 것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가지고 놀고 연극하기를 즐기게 될 때, 이 책은 버려지지 않는 희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희곡집 『B성년』에서는 학교 연극반에서 직접 만들수 있도록 무대세트와 대도구에 대한 설명이 희곡당 하나씩 수록되어 있다. 김다정 무대미술가가 직접 스케치하고 설명을 곁들였다.   (『B성년』중에서)  

 

*사진출처 :  청소년희곡집 『B성년』 각 페이지 캡쳐

 필자_ 영균

  소개_ "영균아 넌 천사야, 아주 많이 웃긴" 이라는 말이 세상에서 들어본 칭찬중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