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에 대한 포퍼먼스(performance)가 아닌 포퍼먼스의 선'

2009. 4. 10. 14:14Review

'선(禪)에 대한 포퍼먼스(performance)가 아닌 포퍼먼스의 선'

  • 조원석
  • 조회수 467 / 2008.08.25

「선사가 제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두 사람이 가면, 하늘은 한 사람을 적시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 제자가 대답하길 “한 사람은 도롱이를 썼고, 한 사람은 도롱이를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제자가 대답하길 “한 사람은 길 한가운데로 걸어갔고, 한 사람은 처마 밑으로 걸어갔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 대답을 듣고 선사가 말하길 “너희는 모두 ‘한 사람을 적시지 않는다.’라는 말에만 집착해 전체를 못 보는구나. 한 사람을 적시지 않는다는 말은, 즉 두 사람 모두 비에 젖게 한다는 의미를 말한다.”」

 

이 일화는 문자의 집착이 주는 오류를 얘기하고 있다. 또 다른 비유가 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달이 손가락 끝에 있는 건 아니다.’ 즉, 문자가 진리를 가리키지만, 진리가 문자에 있는 건 아니다. 이러한 선의 특성을 가리켜 선종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子)라고 한다. ‘불립’이란 언어나 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선은 넌버벌nonverbal(비언어적인)하다. 넌버벌한 선을 넌버벌하게 보여 주는 곳이 있다. 홍대 근처 어디쯤에 있는 <씨어터 제로>. 선을 보여 준다니, 보러 갔다. 손가락만 보는 실수는 하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심철종의 넌버벌 포퍼먼스 ‘젠’을 보았다? 아니, 보려 했는데 볼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려 했는데, 손가락이 없다. 저 멀리 달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눈앞에, 아니, 눈앞보다 더 가까운 곳에, 아니, 아예 눈앞도 없다. 왜? 눈앞에 눈이 있으니까. 배우들의 눈. 지하에 있는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치는 배우들의 눈. 배우들은 관객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친다. 마주치는 순간 배우의 눈앞에 있는 것은 관객. 당황스럽다. 눈앞에 눈이 있고 그 눈앞에 눈이 있는 형국. 눈앞이 눈앞이 되는 형국. 단순히 무대와 관객석의 구별이 없는 자유로운 공연이 아니라, 무대와 관객석의 구별 자체를 부정하는 공연. 관객이 있는 곳이 무대가 될 수 있고, 배우가 있는 곳이 관객석이 될 수도 있는 공연. 관객과 배우를 모두 감싸고 있는 공연. 감싸고 있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이것은 또한 선과 닮았다.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에게 묻는다. “바다란 무엇인가요?” 큰 물고기가 답한다. “네 주위에 있는 게 바로 바다야.” 작은 물고기는 궁금해 한다. “그런데 왜 안보이죠?” 큰 물고기가 답한다. “바다는 네 안에도 있고, 네 밖에도 있어. 너는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돌아가지. 바다는 마치 네 몸처럼 널 감싸고 있는 거야.”」

포퍼먼스 ‘젠’에는 없는 것이 많다. 스탠딩 공연이니 의자도 없다. 의자가 없으니 관객석도 없다. 관객석이 없으니 무대도 없다. 비언어적이니 대사도 없다.(외마디 대사들은 있다.) 퍼포먼스니 딱히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없는 것이 많으니 있는 것도 많다. 의자가 없으니 앉는 곳이 의자다. 관객석이 따로 없으니 관객이 있는 곳이 관객석이 된다. 무대가 없으니 배우가 있는 곳이 무대가 된다. 비언어적(음성,문자)이니 모든 것이 언어(모든 행위)가 된다. 스토리가 없으니 순간, 순간이 절정이고, 모든 배우가 주인공이다.


포펀먼스 ‘젠’에는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 어둠. 라이터 불로 얼굴을 비추고 ‘나?!’, ‘너?!’라고 외마디 말을 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배우들. 이 때 ‘나’는 ‘너’가 되기도 하고 ‘너’는 ‘나’가 되기도 한다. 즉 서로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다’는 것은 ‘서로 같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뜻한다. 공연 ‘젠’에는 하얀 헬멧을 쓴 여섯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이 여섯 명은 한 사람처럼 행동한다. 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거울에 비춘 것처럼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하나라는 뜻이다. 즐거울 때는 함께 춤을 추고, 끈 달린 막대기가 눈앞에서 펄럭일 때는 모두 고양이가 되고, 사과가 눈앞에 있을 때는 모두 먹고 싶어 한다. 이 하나의 감정은 점점 커져서 관객에게로 전달된다. 배우들이 춤을 출 때는 돌이 들어있는 깡통을 흔들고, 끈 달린 막대기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는 관객의 눈도 이리저리 움직이고, 사과를 먹고 싶어 하는 배우를 볼 때는 관객도 사과가 먹고 싶어진다. 배우와 관객의 이심전심. 이것은 또한 선과 닮은 모습이다.


「작은 파도가 불평을 한다. “난 이게 뭐람! 딴 파도들은 저렇게 큰데 난 이렇게 작고, 딴 파도들은 저렇게 빠른데 나는 이렇게 느리고.” 이 불평을 들은 큰 파도가 말한다. “네 본래의 모습을 보지 않으니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파도란 너의 잠깐 동안의 모습일 뿐, 사실 넌 물이야. 큰 파도도 너와 같은 물이지.” 작은 파도가 깨닫는다. “알았다! 내가 너고, 너가 나구나. 우리는 ‘커다란 나(大我)’였구나!”」

 


공연‘젠’이 원하는 세계는 이심전심의 세계였다. 처음 공연을 시작할 때, 관객의 눈과 마주쳤던 배우의 눈은 일종의 두드림이다. 관객의 닫힌 문을 노크하는 두드림. 이 두드림은 음악이 되고, 배우의 춤이 되어 관객들을 두드린다. 그리고 관객의 몸은 이 두드림에 공명되어 열리기 시작한다. 활짝 열린 사람도 있겠고, 반쯤 열린 사람도 있겠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공연의 막바지에 관객과 배우가 뒤섞여 춤을 출 때는 그 차이 역시 춤이 된다. (적게 흔들든, 많이 흔들든 춤이다. 춤은 차이를 두지 않는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면, 공연은 놀이가 된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색종이에 가슴 설레고, 플라스틱 공으로 눈싸움 하듯이 놀고, 배우와 관객이 어울려 큰 원을 만들고, 배우의 인사가 끝나면 모두 하나가 되어 극장을 청소한다. 청소를 하면서 아쉬움을 느낀다. 이런 놀이가 계속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극장 밖으로 나서면 감성의 언어가 이성의 언어로 바뀌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공연‘젠’은 보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고, 그 흔적은 머리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 보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연”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젠’은 새롭지 않다.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경험은 자주 마주치기 때문이다. 주문진에서 인천까지 도보로 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가슴 설레고 들떠 힘든 줄 몰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어느새 익숙해졌고, 더 이상 ‘새로움’은 새로운 것이 아닌 게 되었다.

그래서 ‘젠’은 새롭다. 새롭지 않아서. 여러 공연을 보았지만 똑같은 공연을 본 적은 없다. 다른 줄거리. 다른 무대. 배우는 배우답고, 관객은 관객다운 공연. 공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연. 그런데 ‘젠’에는 공연이 없다.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이 극장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은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관객(觀客)이 될 줄 알았는데 관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극장 밖으로 나오면 관객이 된다. 거리와 거리의 사람들. 그들을 보는 관객이 된다. 타인은 타인답고, 나는 나답다. ‘젠’은 보지 말고 겪으라고 하는데, 겪어야 할 일상은 오히려 보는 것이 되었으니, ‘젠’이 새로운 것은 잃어버린 일상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에 나온 ‘선’에 대한 일화는 「만화 중국 고전」(채지충, 대현출판사)에서 인용했습니다.

보충설명

Non-Verbal 퍼포먼스극

○ 기 간: 2008년 6월17일(화) ~ 8월 3일(일)
○ 장 소: 상상마당-씨어터제로 (홍대 정문앞 놀이터 옆)
○ 기 획: 씨어터제로 기획실
○ 주최· 제작 : 씨어터제로(theater ZERO)

■ 제작진 ■
공동구성
연출 : 심철종 / 조연출 : 문경태 / 안무 : 박진원 / 드라마투루기 : 박성현 / VJ : Kissing Cousins / 조명 : 김호진 / 기획 : 한영배, 이서우

■ 출연진 ■
박진원, 홍승현, 조수아, 이상윤, 김영훈, 조하늬, 최주아, 황인선\

필자소개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주중에는 충북음성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학원 선생.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