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음악회 <칸토 오스티나토> "Inspire ; 숨을 불어넣다"

2014. 12. 27. 09:53Review

 

Inspire; 숨을 불어넣다

<CANTO OSTINATO>

 

글_김신록

 

Intro

나는 연극배우다. 음악을 즐겨 듣는 축도 아니고, 연주회에 가본 적은 손에 꼽는다. 내 인생을 흔든 연극 공연은 여럿 있지만 기억할 만한 음악 공연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음악 공연 리뷰를 써본 적은 당연히, 없다.

 

 

Inspire - 숨을 불어넣다.

‘영감을 주다’는 뜻을 가진 영단어 inspire의 어원은 ‘숨을 불어넣다’라고 한다. 2014년 12월 13일 토요일 저녁 5시. 경복궁역 근처에 위치한 갤러리 ‘팔레 드 서울’에서 지친 심신에 ‘숨을 불어넣어 준’ 피아노 연주를 만났다.

자신들을 ‘아방가르드 레퍼토리의 활성화와 젊은 창작곡의 소통에 주력하는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소개한 손세민과 이상욱의 듀엣 연주회 <칸토 오스티나토>.

칸토 오스티나토는 네델런드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시메온 텐 홀트의 대표작으로, 간결한 단편의 무한한 반복이 이어지는 소위 ‘미니멀 음악’이라 불리는 장르의 작품이다. 간결한 리듬과 멜로디가 정말이지 오래오래 반복되는데,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지난하고 집요한 변주가 계속되는 것이 꼭 우리네 삶의 과정과 닮았다.

작은 갤러리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검정색 그랜드 피아노 두 대가 마주 놓여 있고, 피아노 주위 바닥에는 매트가 깔려 있고, 매트 주변으로 의자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었다. 요새 ‘누워서 들으세요~’라는 편안한 컨셉의 공연들을 종종 봐왔던 터지만, 막상 갤러리에 들어선 사람들은 우왕좌왕 의자에 앉았다가 말았다 의자를 옮겼다가 말았다 매트에 앉으려다 말았다가 드디어 엉거주춤 누웠다가...말았다. 관객 모두 어색하고 어수선한 와중에 두 연주자가, 역시나 어색하게 피아노 앞에 와서 엉거주춤 앉았다. 여기저기서 커피를 들었다가 놨다가 코트를 벗었다가 걸쳤다 가방을 내려놨다 올렸다 방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덩~!!’하고 건반이 울렸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나는 툭, 하고 울었다. 그 한 번의 울림이 일깨워준 명백한 살아있음, 단호한 생명력, 활어 같은 날것의 생생함, 그리고 돌이킬 수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전심을 다한 한 번의 선택. 문득, 지쳐 잠들어 있던 심신의 세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현란하지는 않지만 물러서지 않고 한 음 한 음 전진했던 연주는 총 세 파트로 구성되었다. pre-concert에 해당하는 Jurriaan Andriessen의 Portrait of Hedwig,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된 Arvo Part의 Fratres, 그리고 연주회 전체의 제목이기도 한 Simeon ten Holt의 Canto Ostinato. 처음 두 곡은 각각 5분에서 10분 정도로 체감되는데, 100분에 육박한 총 연주의 나머지 80분 정도는 오롯이 칸토 오스티나토로 채워졌다.

간결한 단편의 끈질긴 반복 속에서도 시나브로 집요하게 이어지는 변주를 들으며 관객들은 서서히 기대고, 눕고, 서고, 거닐고, 때론 졸았다. 나는 울었고, 숨을 쉬었고, 마음으로 춤을 췄다. 마치 홀로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양팔을 위로 올리고 가슴을 뒤로 젖히고, 처음 숨을 마셔보는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서, 폐부 깊은 곳 마음 깊은 곳에 소리의 파편이 기억의 파편이 영감의 파편이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수 없는 생각들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때론 지난날이 때론 앞날이 때론 영원이. 나와 나란히 거닐고 있는 피아노의 숲 속에서 어떤 것을 계획했고 어떤 것을 놓아 보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반복과 아주아주 느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변화 속에서 몽환과 각성상태를 오가다, 뜻밖에 ‘내 삶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구나...’하는 깨달음을 만났다.

 

 

이 곡에 대해 리플렛에는 ‘1979년 초연된 이 작품은 Canto(노래)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긴장과 이완의 여정을 극대화한 조성과 화성의 물결 속에서 풍성한 선율의 층들이 끊임없이 포개지고 교차하는 곡이다. 부단한 리듬 패턴의 운동이 명상적 미니멀 음악과는 구별되는 동시에 응축과 고조의 전개가 미니멀에서는 보기 드문 서사력을 뿜어내며 연속하는 106개의 단편을 강한 인력으로 접합한다.’라고 적혀있다.

관객을 압도하지 않고 나란한 연주였다. 의도 없이 무심한 듯 하면서도 차갑거나 무책임하지 않은 두 사람의 연주가 끈질기고 집요하게 관객과 함께 걸었다. 손세민의 연주는 무심한 듯 수줍은 듯 흘러갔고, 이상욱의 연주는 단단하면서도 완고하지 않았다. 곡의 특성상 단편들의 반복과 조합 횟수가 연주자의 자유와 직관에 놓인 탓에, 예민하게 서로를 듣고 읽고 교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두 연주자의 모습이 너무 예민해서 퍽 아름다웠다. 시간을 변주하는 즉흥연주답게 둘은 어느 한 순간도 허투로 흘려보내지 않고 충분히 음미하는 듯 했고, 나 역시 시간의 무한정한 확장과 섬광 같은 찰나를 경험했다.

공연이 끝나고 얼추 5년 넘게 알고 지낸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이상욱에게 어색하게 사인을 받았다. 단단하지만 완고하지 않은 그의 연주가 내게 계속 살아 낼 용기를 주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깊이깊이 숨 쉬고 마음으로 춤췄다. 무대는, 공연은, ‘살아있음으로 해서 살아나게 하는 것’인가 보다. 내 생의 연주였다.

 

 

Outro

공연 리플렛에서 ‘다양한 차원에서 생성되어가는 단편의 구조물들은 마치 에셔(Mauris Cornelis Escher, 1898-1972)의 작품과 같은 기하학적, 환영적 패턴의 형상을 상기시킨다.’는 문구를 보고 에셔의 작품들을 찾아보았는데, 정말 이 공연의 질감과 직관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에셔의 작품을 찾아본다면 공연의 감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상으로 생애 첫 음악 공연 리뷰를, 마친다. 휴~!

 

*사진출처_이상욱 작곡가 제공 및 텀블벅 페이지 (작곡가 上.손세민 下.이상욱)

  필자_김신록

  소개_연극하는 김신록입니다. 오늘부터 잘 살아야지!

 

 

칸토 오스티나토 Canto Ostinato

피아노_이상욱, 손세민

기획_손승희 / 영상_신글라라

일시_ 2014. 12. 12(금) 오후 8시 / 2014. 12. 13(토) 오후 2시, 5시

장소_ 팔레드서울

프로그램_

Jurriaan Andriessen (1925-96) - Portrait of Hedwig (Pre-Concert)

Arvo Pärt (1935) - Fratres (1977) arranged for 2 pianos

Simeon ten Holt - Canto Ostinato (1976-79) for keyboard instruments

 

연주자 소개

손세민과 이상욱은 아방가르드 레퍼토리의 활성화와 젊은 창작곡의 소통에 주력하는 작곡가이자 연주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를 졸업하고 작곡집단 ‘서정적 전위, 숨’을 결성하여 B Music (2010, 클럽 오뙤르), Jazz or Not?! (2013, LIG아트홀 합정), 피아노 프리즘 (2013, 클럽 오뙤르), MTK 26 (2013, 크누아홀) 등 다수의 공연을 함께 해왔다. 손세민은 새로운 테크놀러지와 컬트적 요소를 반영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상욱은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2014, 오디오가이)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 (본문 내용출처 칸토 오스티나토 텀블벅 페이지)

*손세민 (soundcloud) : https://soundcloud.com/livethisage

*이상욱 (youtube) : http://www.youtube.com/user/wooko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