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중간’에 대한 어중간한 보고서 <퉁: 인간 어중간에 대한 보고>

2015. 1. 8. 15:49Review

 

‘어중간’에 대한 어중간한 보고서

<퉁: 인간 어중간에 대한 보고>

프로젝트 잠상 공동창작

 

글 유혜영

 

‘퉁’과 ‘어중간’이라. 제목을 이루는 단어들은 특정한 암시를 주기보다 대충의 애매함을 풍긴다. 영어로 번역된 표현은 한술 더 뜬다. ‘Mass’와 ‘About’이라니.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게다가 ‘인간 어중간(Mr. About)’이다. ‘어중간’은 누군가의 고유한 이름일까? 아니면 인간들의 어중간한 속성을 가리키는 것일까? 나는 우선 사전을 검색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단어들의 명확한 정의를 단서 삼아 제목의 의미를 확정하고 싶다. 그것은 분명하지 못한 상태에 처했을 때,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상황에 섰을 때, 어느 쪽으로든 확실해지고 싶은 욕구의 발동이다.

잠상이 ‘어중간’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빌려 ‘어중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 것도 사실은 ‘어중간해지고 싶지 않은 욕구’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설명할 수 있는 명료한 단어들을 찾아내 선명하게 정의해내고 싶은 욕구. 그러한 욕구는 그들이 예술을 하는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사회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보다 더 잦은 빈도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의해내기를 요구한다. 그들에게는 이 시대 무적의 패스 ‘돈’이 몇 장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떠한 정의를 가질 수 있을까? 잠상의 질문은 진지하다. 그들은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분신과도 같은 ‘어중간’을 추적한다.

결론적으로 잠상은 인간 ‘어중간’에 대한 보고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결코 어중간하지 않은’ 그들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 ‘치지 마라, 퉁!’을 외치는 연출가의 강단은 아름다웠지만, 그것은 선언일 뿐, 그들이 왜 ‘퉁’ 칠 수 없는 존재인지에 대한 결론이 되지 못한다. 제목에서 부딪혔던 어중간함은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는다. 나는 몇 가지 질문들을 통해 어중간한 아쉬움을 남긴 그들의 시도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어중간에 대한 보고의 방식: 말 모으기

관객들은 5~60명 정도 수용될 만한 크지 않은 지하 공간으로 안내된다. 객석으로 마련된 방석에 앉으니, 액세서리 쇼케이스와 유사하게 삼면이 투명한 사각의 작은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무대 바닥과 벽에는 단어와 오려낸 이미지들이 여러 개 줄지어 붙어있고, 몇 개의 단어카드가 바닥에 뿌려져 있는 것도 보인다. 공연장 입구에서 받은 하얀 클레이를 조몰락거리며, 공간 곳곳에 흩뿌려진 그들의 생각이 어떻게 모아질까 머리를 굴려보는 즐거움이 있다. 공연은 작은 박스 안에서 상영되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이후 객석을 둘러싼 삼면의 벽, 앞쪽 바닥, 객석 중간의 기둥은 자유롭게 스크린으로 활용되고, 관객들은 그 곳에 투영된 영상을 통해 ‘어중간 씨’를 만난다.

‘어중간’은 영화를 한다. 명확한 영화감독이나 제작자는 ‘아직’ 아니고 추구하는 장르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린이를 위한 것은 아니며, 박찬욱 감독에 대한 열등감 또는 그 비슷한 어떤 불편함을 가지는, 그런 영화를 하는 사람이다. ‘어중간’은 그의 속성이기에 이름이다. ‘어중간’은 쉽사리 해갈되지 않는 가슴의 어떤 뜨거움 때문에 예술계통을 방황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그룹 잠상이기도, 이 글을 쓰는 나이기도 하다.

‘어중간’에 대한 보고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어중간’에 관한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시작부터 무대 한쪽에 앉아있던 연출과 미술을 맡은 창작자는 공연의 진행을 위해 마이크를 잡거나,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는 등 공연의 퍼포머로도 활동한다. ‘어중간’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감자튀김에 관한 것이다. 정면 벽에 가득 투사되는 영상에는 그의 뒷모습과 감자튀김 가게 내부를 쫓는 카메라의 현장감이 담기고, 그에 대해 진술하는 사람들은 신체 일부만 드러낸 채 변조된 목소리를 가진다. 이처럼 초반 잠상의 보고서는 TV 추적보도 프로그램의 영상 스타일을 빌린다. 이후 친구들과의 술자리, 소개팅, 어머니와의 인터뷰는 인물들의 확대된 실루엣과 목소리로 처리된다. 정면과 측면을 가득 채운 영상은 실루엣과 배경으로 분리되어 강렬한 명암대비, 다양한 형광색들 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영화관 스크린처럼 거대한 이미지들은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미적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영상에 입혀진 것이 하나 더 있으니, 실루엣만 드러낸 인물들이 발화하는 ‘어중간’에 관한 단어나 짧은 문장들이다. 영상에 직접 쓰인 것 말고도, 무대의 양쪽 벽과 바닥에 붙어 있는 단어들은 카메라로 촬영되어 흰 벽에 투사된다. 그 단어와 이미지들은 친구들과 소개팅녀, 어머니의 입을 통해 말해진 것들을 줄지어 붙여놓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연출가는 바닥에 뿌려진 단어카드들을 낚싯대로 낚아 어중간의 얼굴이 상영되는 작은 박스 안에 모빌처럼 건다. 어중간의 얼굴과 단어들이 겹쳐 보이는 박스 안의 모습은 크게 확대되어 벽으로 투사된다. 걸린 말들은 친구들이 ‘어중간’과 나누던 대화에서 오간 것들이다.

[자유롭게 사네/ 꿈을 먹고 사네/ 돈 좀 벌어?/ 어중간하네/ 고집/ 재미있으면 됐지/ 언제 유명해져?]

관객들도 한 번쯤 들었거나, 말해봤던 것들이다. 보고를 위한 ‘어중간’에 대한 데이터는 이처럼 말의 형태를 띠고 수집된다. 구체적인 하나의 사건추적과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어중간’의 몇 마디 변론까지 해서 잠상은 ‘어중간’을 설명하는 말들을 모아왔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단어 타자게임을 하기도 하며 재미있게 그 말들을 풀어놓는다.

잠상은 다양한 놀이와 영상 실험으로 흥미롭게 공연을 엮어 나가며 자신들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어중간에 대한 보고’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그에 대한 구체적인 단어들, 표현들, 문장들을 정리하여 관객에게 전달한다.

 

‘어중간’이 어중간한 이유는?

‘어중간’은 감자튀김에 케첩이 뿌려졌다는 이유로 방금 나온 튀김 봉지를 엎어 버리고 가게를 나간다. 사소한 것에도 민감한 논리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그는 어중간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분명한 것이 탈이다. 그는 어린이와 관련된 영상 작업으로 돈 좀 벌어보라고 충고하는 친구에게 삼겹살집에서 초밥 파는 거 봤냐고 대꾸한다. 논리 하나는 똑 부러진다.

그러나 그런 ‘어중간’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하는 일이 재미있다고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돈은 좀 버냐는 질문에도, 꿈을 먹고 산다는 평가에도 긍정이든 부정이든 자신의 논리를 세우지 못한다. 무슨 일을 하냐는 소개팅녀의 질문에 차근히 대답하는가 싶더니 ‘그럼 감독이 될꺼냐, 박찬욱 같은 감독이 되는 거냐’는 그녀의 반응에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난다. 커피값은 나중에 돈이 들어오면 계좌로 부쳐주겠다면서. 휴. 일하는 곳이 일정하지 않으니 어머니는 그가 어디를 가는 건지 항상 궁금하다. 잠상은 이러한 상황들의 나열과 오가는 말들로 어중간에 대한 데이터를 매듭짓는다.

 

 

어중간은 왜 어중간한가? 감자튀김 앞에서는 명확하던 어중간의 논리는 친구와 가족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소개팅녀의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는 그는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공연은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관객들은 ‘어중간’의 행동에 깊이 공감하기보다는 가벼운 호기심을 갖는 수준에 머문다. 잠상은 ‘어중간’을 비추는 시선을 일관되게 외부에서, 그것도 ‘어중간’을 어중간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조명하고 있다. 그것은 한 개인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확인해주지만, 그를 충분히 설명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데이터의 원천이 한 곳으로 지나치게 제한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해왔던, 어중간하게 부유하는 그 말들 이면의 진짜 이야기가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잠상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어중간’에 대한 보고를 통해 완성된 메시지라기보다 창작자들의 공허한 외침으로 남는다. 잠상은 공연의 시작과 함께 코끼리를 만져본 장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각 장님들이 본인이 만져본 부위만을 가지고 코끼리를 정의하려고 할 때, 코끼리는 외친다. 퉁 치지 말라고. 공연을 마무리하며 ‘어중간’의 몸 부위별로 소리를 모으는 퍼포먼스도 코끼리를 관찰하는 장님과 비슷한 메시지를 담는다. 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입과 손만이 아닌 모든 곳의 소리를 수집해야 하는 것이다. 끈질기게 소리를 다 모은 사운드 아티스트는 그 데이터들을 통해 한 곡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후, 연출과 미술 그리고 소리를 맡은 세 명의 스태프는 무대로 나와 작은 박스에 얼굴을 넣고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고개 숙인 그들의 얼굴은 반대편 벽에 영상으로 보여진다. ‘어중간’의 얼굴과 그를 설명하던 말들이 걸렸던 그 박스는 ‘인간 어중간’ 그 자체이자 우리 존재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약속 지어진다. 세 명은 자신들의 시간과 작업이 부모님이나 친구들에 의해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들은 결코 어중간하게 여겨질 사람들이 아니라는, 그들의 일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이 보고서의 마무리 문장들이다. 모든 ‘보고’는 결론을 포함한다. 광범위하게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특정한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이 보고서의 완성이다. 어중간에 대한 제한된 사실들만이 나열된 잠상의 보고서는 분석의 가능성을 좁혀 설득력 있는 통찰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그리하여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더구나 ‘어중간’이 어중간하게 보인다는 사실들을 가지고 그가 사실은 어중간하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퉁 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우리는 정말 어중간한가?

관객의 시선을 시종 적극적으로 이끄는 잠상의 영상과 퍼포먼스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언어로 관객에게 하고자 했던 말, 그 문장은 시작되었을 뿐, 완성되지 못했다. 잠상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자 답변이기도 했던 만큼, 그들의 마지막 선언에 무게를 실어 줄 더욱 깊이 있는 탐구 과정이 필요했다. ‘인간 어중간’은 여전히 그냥 어중간하게 남겨지고 말았다.

우리는 정말 어중간한가? 잠상이 던진 질문은 나에게도 절실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든,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든 우리는 모두 어중간한 어딘가에서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단 예술을 하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고민 하는 것일 뿐. ‘어중간’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중간하다는 진단을 받은 것 같지만, 사실 그 뒤에 숨어버린 ‘어중간’ 스스로가 자신을 어중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고 ‘거의 중간쯤 되는 상태’에서 방황하는 것은 스스로를 정의할 더 분명한 기준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예술을 하는 우리는 ‘소득수준’으로 증명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어중간하게 비춰진다. 그러나 잠상이 계속 공연을 하는 것도, 내가 계속 글을 쓰는 것도 우리만의 기준을 세우고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다. 하, 너무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에겐 우리의 자리가 있다. 좀 더 용감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그 자리를 확인하자. 해피뉴이어.

 

*사진제공_프로젝트 잠상

**프로젝트 잠상 지난리뷰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741

***프로젝트 잠상 웹페이지 바로가기>>>  http://jamsang.org / facebook.com/projectjamsang

 

 필자_유혜영

 소개_연극을 공부하기 시작한 새내기입니다. 공연장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