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2015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프리뷰 (8.1 ~ 8. 9)

 

그리하여, 상암예술경기장 사용법

2015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프리뷰 (8.1 ~ 8. 9)

@서울 월드컵 경기장

 

글_정진삼

 

▲ 축제 포스터, 예술 경기장의 초석(혹은 애도를 의미하는 비석)을 연상시킨다.

 

그 어느 때 보다 시기도 앞당겨졌습니다. 기간도 짧습니다. 한 주를 놓치면 영영 놓칠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준비했습니다. 18년을 맞이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어떻게 ‘사용’ 하면 될까요. 인디언밥이 앞서 축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몸’ 을 바꾸는 일입니다. 홍대 앞을 누비던 ‘몸’ 에서, 경기장을 거니는 ‘몸’ 으로 말이지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8월 1일부터 9일까지, 홍대 앞이 아닌 상암동에 있는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립니다. 독립예술의 성지 버린거야? 젊음의 정신 까먹은 거야? 싸우다가 후퇴한거야? 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올해 프린지의 변화들을 먼저 짚어 드립니다. 아마도(?) 축제는 이미 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올모스트 프린지(Almost fringe)” 라는 이름으로요. 한데 모여 우리의 축제 상태를 점검하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여섯 번에 걸친 ‘포럼’ 이 있었고, 그 결과로 프린지는 홍대 앞에서 경기장으로의 축제 이전을 공표했습니다. 눈치보지 말고, 방해받지 말고, 그나마 예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이제는 ‘우리’ 를 좀 챙기자, 는 발상이겠지요. 예술가들은 7월 한 달 간 상암 경기장에서 자신의 스튜디오를 꾸렸습니다. 여러분은 홍대 앞에서 만났던 예술가를 경기장에서 보게 됩니다. 그 예술가들이 변했듯, 관객들도 변해야겠지요. 그리하여 변화의 포인트는 어쩌면 ‘패션(fashion)’ 일지도 모릅니다. 한껏 꾸몄던 홍대 앞을 위한 패션에서, 오로지 나의 관극을 위한 패션으로! 이번 축제에선 편한 신발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한 작품만을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홍대앞의 극장으로 분산되었던 예술가들은 경기장이라는 층별 공간으로 집합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게 이번 축제의 가장 큰 변화일지도 모르지요. 작년까지는 축제 공간이나 극장에서 반짝, 그 존재를 확인했던 ‘동료’ 라는 이름의 예술가들을, 몇 주 전부터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함께 시공간을 공유하고, 수익도 나누고, 공연물품도 같이 쓰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담론을 함께 구성하는 “마이크로 포럼” 이라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경기장 안쪽에 마련된 예술가들의 공연은 개별적인 방식이 아니라 집합적인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 경기장의 3층, 4층, 5층이 각각 공연무대로 꾸며진다. 관객들이 동선을 설정할 수 있다.

 

공연 공간은 크게 3층과 4층 그리고 5층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3층 철문 안쪽의 공간에선 -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 야외극과 실내에서 해도 무방한 작품들이 선을 보입니다. 공연의 규모가 있고, 신체적인 역동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배치되었습니다. 또한, 3층에는 의무실과 터널, 그리고 경기장 전체를 이용한 특이한 작품도 선을 보입니다. T&S 프로젝트의 <경기장 즉흥>은 1인 프로젝트 태평소 주자가 들려주는 이동형 음악 혹은 추적형 음악 공연입니다.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소리를 따라 관객이 이를 쫓아가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의무실에서 벌어지는 <올비도>는 극단 뛰다의 배우 공병준이 연출한 1인극입니다. 내공을 가진 배우가 보여주는 움직임의 향연이 기대됩니다.

이름풀이를 통해 퍼포먼스를 구성한 궁리현상소의 <너의 이름>은 ‘관객 특정적’ 공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불려왔던 이름들이 어떻게 다시 예술적으로 거명될지 궁금합니다. 유랑점유극단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극단 여로의 <어느 날, 사라지다>라는 공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회당 5명으로 참여를 받고 있는 이 공연은, 상실과 방황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아버지’ 라는 자기 정체성의 뿌리를 되살피고자 합니다. 하루하루의 매뉴얼을 가지고 만드는 과정의 연극입니다.

4층에서는 ‘스카이박스’ 라고 하는 ‘방’ 을 스튜디오로 삼아 작품을 준비한 예술가들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경기가 있는 날에 귀빈석이나, 기자실로 사용되던 공간이 개별 예술가들에게 허용된 것이지요. 주로 극장을 지향하는 작품이나, 소규모 프로덕션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소음을 허락하지 않는 음악작품도 있고요.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 작품들이 있으므로, 하루에 다양한 경험을 몰아서 하실 관객분들에게는 4층을 추천합니다.

매머드머메이드팀은 이오네스코의 희곡 <왕은 죽어가다>를 각색한 <왕은 홀로 죽어가다>를 무대화합니다. 죽음에 대한 권력의 허망함을 다룬 원작에 더해진 ‘외로움’ 이라는 코드는, 당대의 ‘부조리’ 를 압도하는 서글픈 ‘동시대성’ 을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잡온론>은 렉쳐 퍼포먼스라도 할 것 같지만, 두 명의 배우들이 등장해서 외려 가정을 꾸리고 사는 남녀의 진솔한 세상살이를 들려줍니다. 클레프는 프린지 축제에서 귀한 클래식 음악 팀입니다. 현악 7중주로 구성된 밴드는 귀에 익숙하고 대중적인 레퍼토리의 고전음악을 선보입니다. ‘콘서트 썸’ 이라고 이름 붙여진 공연은 가족들로 이뤄진 관객이나 많은 실험공연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관객분께 제격입니다.

공연예술 부족은 라디오극 <마이리틀라디오:마리오>을 선보입니다. 경기장 안쪽의 객석에서 앉아 ‘소리’ 를 감상하게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됩니다. 속삭이는 병원, 멜로이즈는 차례대로 관객을 만나, 치료를 명분으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작품입니다. 속병이 깊은 관객이나, 다양한 감각을 느껴보길 바라는 관객이라면 병원의 대기표를 받을 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연극 장르를 관람하길 바라는 관객께는 벗과 꽃의 합성으로 팀이름을 지은 ‘벗꽃’ 의 <헤프닝 : 어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추천합니다. 완전, 연극입니다.

5층에서는 총 일곱 작품이 무대화됩니다. 밀도가 높은 3층과 4층에 비해, 서로 독립적인 공간을 운영하면서 공연을 진행합니다. 온전하게 ‘작품’ 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3층과 4층을 지나 바로 5층으로 직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를 상상하며 만든 <파도, 그 일렁임의 아름다움>을 극단 과학자들이 여자화장실에서 선보입니다. 두들리안은 관객들과 함께 쓰레기를 두드리는 <쓰레기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시도합니다. 별의별 팀은 <붉은 배꽃 아래>라는 공연을 무대화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드림워커의 <나는 혼자다>는 공동창작의 형식으로 만들어낸 연극입니다. 외로움을 느끼고, 토로하고, 달래는 과정을 포착하였습니다.

 

▲ 축제 직전에 열린 아티스트 파티, 50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프린지의 프로그램북은 무료로 배포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들여다본다고,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다만, 예술가 홀로 출연하는 작품의 경우, 그 작품과 함께 예술가의 개성과 삶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추천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관객을 참여시키는 작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작품 안에 위치한 ‘나’ 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축제에서 실망감을 느끼기 싫은 분들은 ‘나’ 와 ‘나’ 를 대면하게 하는 작품들을 놓치지 마시길.

여러 작품을 추천하긴 했으나, ‘복불복’ 의 난점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복불복이 무엇이냐면 신작-초연이 많은 프린지 축제의 경우, 작품을 선택했을 때 이를 ‘무를 수 없음’ 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올해는 한 번의 입장으로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으니, 복불복에 대한 공포(?)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술공연은 ‘상품’ 이 아니라 ‘작품’이기에, 그것은 하나의 인류학적 '경험' 으로써 여러분과 만날 기회를 제공합니다. 더하여 여러분은, 경기장을 구석구석 걸으면서, 한편으로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리고 지하철역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산책의 기회’ 또한 얻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프린지 페스티벌은 “거대 공간의 스케일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서로 얼굴을 마주하자” 는 우회적인 답을 제시하였습니다. 물리적 거리감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지요. 한편으로 이러한 질문, “경기장이 시민의 품에 온전히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앞선 질문을 예술가와 함께 풀었다면, 이젠 관객과 함께 고민해보아야 겠지요. 그리하여, 축제라는 기회를 통해 ‘월드컵 경기장’ 이라는 낯설고 멀기한만 공공(公共)공간을 직접 겪어보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나름대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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