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화답하는 목요일오후한시

2009. 4. 10. 14:1907-08' 인디언밥

리뷰에 화답하는 목요일오후한시

  •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 조회수 456 / 2008.09.25


지난 여름 목요일오후한시는 인천 스페이스빔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리트머스에서 <꿈의 탐험가들>을 공연하고, 2008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꿈꾸는 플레이백씨어터>를 공연했다. 여름의 공연 횟수를 헤아려보니 총 12회. 즉흥연극이니 모두가 다 다른 작품이다. 저마다 겪었을 열기를 가라앉히고 있을 즈음, 인디언밥의 기고가 김민관씨와 <플레이 위드 햄릿>의 연출가 박선희씨의 리뷰를 읽게 되었다. 반가웠다. 공연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구나’ 싶었다. 목요일오후한시는 지금의 고민을 더욱 발효시킨다는 생각으로 리뷰에 화답하기로 한다. 마치 주고받으며 꾸려나가는 플레이백씨어터처럼.

 

현수, 서진, 홀, 해진은 배우로서 적고 있다. 이어지는 늦잠의 글은 배우들의 글과는 사뭇 다르다. 늦잠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지난 봄부터 목요일오후한시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으며 함께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글에는 ‘안팎’의 시선이 스며 있다. 


목요일오후한시의 꿈 _ 현수


“그래도 묻고 싶다. 이들은 진정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_김민관씨의 글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지난 시간을 더듬어 되물어보지만 ‘그래도 답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꿈꾸는지 알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손에 잡아볼까 싶어서 오늘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말과 글로, 그리고 몸으로 나누는 대화를.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커녕 그 생각과 말하는 방식에서부터 움직이는 방식과 취향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더 자주 확인한다.-당연한 말이지만. 그리고 관객은 공연을 보고 신기해한다. “당신들은 호흡이 척척 맞는군요!” 목요일오후한시가 꾸는 꿈은 혹시……, 동상이몽?
공연을 보고 신기해하는 관객을 보고 우리는 더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보려고 조바심이 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이 점점 구색을 갖춰갈수록 더 소박한 무대와 편안한 대화의 장소가 플레이백씨어터의 형식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어찌된 일일까? 아마도 그런 장소라야 서로의 다름과 미세한 균열을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장소라야 갑자기 찾아와 꿈결처럼 스쳐가는 ‘이심전심’의 순간을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연극이 ‘즐거운 대화’이길 바라는 원대한 포부 때문일 것이다.  
 

현수,해진

2008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꿈꾸는 플레이백씨어터> (8.22~24. 소극장 예)

 

生生 _ 서진

 

목요일오후한시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느끼는 우리 공연의 장점은 생생함이다. 그 생생함은 ‘죽은 연극’을 지양하는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바이고, 플레이백씨어터 본래의 형식과 관계가 깊다.

플레이백씨어터는 관객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삶과 밀착되어 있다. 삶과 분리된 불필요한 부속물로서의 예술이 되지 않는다. 또한 반복이 불가능한 즉흥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어서 연습 과정뿐 아니라 수많은 공연에서도 반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이 우리 공연의 ‘생생함’을 만들어낸다. 관객들은 자신들과 긴밀한 상황이 우연적이고 우발적으로 펼쳐지는 것을 긴장하고 관찰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자주 일어나는 어긋남과 가끔 벌어지는 사고를 즐기고, 또한 가끔 발생하는 훌륭한 앙상블을 반가워한다.

 

오해와 갈등 _ 홀


이 공연은 텔러(이야기를 들려준 관객)와 배우(악사와 조명감독까지 포함하여) 사이의 대화, 관객과 배우 사이의 대화, 텔러와 관객 사이의 대화 그리고 배우들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있다. 이 중 배우들 사이의 대화에 대해 여러 관객은 ‘호흡이 잘 맞는다’고 말한다. 정말? 배우들 서로 오해하고, 기다리고, 충돌하고, 헤매는 것이 조명 아래 모두 드러나고 있는데! 갈등과 오해가 찾아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모습으로 비친다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의 연극이 평자들에게 “단순한 장난” 혹은 “황당 대답”으로 보였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갈등을 숨기는데 너무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어긋남의 순간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마술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속임수를 쓰거나, 관객의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려 한계를 감추고 항상 놀라운 광경만 선사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좋고 나쁨을 따져 가리거나, 텔러가 듣고 싶은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들려온 이야기에 마땅한 응답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부러 친절해지지 않고, 심각해지지 않고, 짐작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그저 이해를 하려는 노력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를 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대화 _ 해진

 

플레이백씨어터에서는 관객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가장 극적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또 ‘내가 왜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목요일오후한시는 공연으로 대화하는 풍경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대화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오해, 염려, 공격과 방어, 제안과 수용, 차단, 소통의 쾌감, 편안함, 불편함, 아름다움과 추함, 비밀과 거짓말, 호기심, 끄덕임, 눈빛, 우연, 웃음, 제스처, 그리고 더 가볼 수 있는 길. 이 대화의 목적은 베푸는 것이나 위로에 있지 않다. 우리는 섣불리 관객에게 무엇을 베풀 수도 위로할 수도 없다. 다만 목요일오후한시는 그 현장에서 정말 듣고 즉흥의 위험천만한 바다에 풍덩 뛰어 들어갈 용기가 있을 뿐이다. 따뜻한 손을 내밀거나 말을 건네서가 아니라, 관객을 포함한 우리 모두 그 현장에 있기를 선택하고 정말 듣고, 무엇이 벌어질지를 기다리기 때문에 공감은 생겨난다.


 서진,홀

더불어사는사회문화제 참가작 <꿈의 탐험가들>(9.6~7.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별무리극장)


유머러스한 괴물 _ 늦잠 
 
다큐 촬영을 인연으로 목요일오후한시(이하 목한시) 배우들과 한솥밥을 먹은 지 벌써 5개월. 이제 플레이백씨어터는 연극이기 이전에 하나의 삶의 형태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의 관심은 배우들 개개인의 삶의 현장으로 옮겨간다. 자기주장이 강한 목한시 배우들은 무대 밖의 장시간의 토론 속에서 갈등을 노출시킨다. 이는 무대 위에서 관객의 판단력에 강하게 어필하는 대사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배우들의 '언변'은 우리가 흔히들 비난하는 독선적인 정치인처럼 상대의 의견을 물리치려는 소피스트의 수사법과는 다르다. 토지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능란한 화술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이들의 대화는 재판을 이기려는 분명한 목표로 상대방을 감성적으로 배려하지 않았다. 한편 매번 목표가 뚜렷하지만은 않은 목한시 배우들의 논쟁 속엔 늘 유머가 있다. 단어의 이중 의미나 소리의 유사성을 이용한 언어유희와 익살스런 몸짓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조롱하고 자신이 웃음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된다.
공연 때마다 배우는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를 반복해서 묻는다. 감정은 배우연기에 결정적인 모티브가 된다. 그렇지만 이는 '시혜'를 베푸는 모습은 아니다. 감성적 대화의 시작인 '눈물'과 결합․충돌하는 웃음은 배우와 관객 서로가 대등하게 대화에 참여할 때에 가능한 소통이기 때문이다. 유머는 일상의 논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의미의 탈출구를 열어준다. 자유의 공간이다. 눈물과 웃음… 이 균형이 깨졌을 때 관객은 소외되거나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플레이백씨어터가 도모하는 소통은 대화가 펼쳐지는 공동의 공간 속에 있다. 이는 앞 뒤 맥락이 두서없이 전개되는 꿈의 파편을 서로 수용할 수 있는 있는 밑그림이다.
관객의 꿈이 흘러들어왔다 빠져나가는 배우의 신체는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괴물은 이질적인 요소와 잡음과 일탈로 가득한, 순수함을 방해하는 은유적 존재 방식이다. 선악의 경계, 지위의 높낮이에서 독립된 모습이기에 흥미롭다. 순수함으로 자행되는, 순수함을 위해 빚어지는 무수한 배타에 대적할 만큼.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뒷줄 맨 왼쪽에 늦잠


목요일오후한시는 리뷰에 화답하는 글을 쓰면서 지난 여름을 정리할 가닥을 잡게 되었다. ‘즉흥’, ‘웃음’, ‘꿈과 연극’, ‘이야기’ 등 여러 키워드에 대해 좀 더 머리를 맞대보고 싶다는 열망에도 사로잡힌다. 다시 한번 우리의 공연에 말과 글로 리액션을 보여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조각보처럼 합쳐진 목요일오후한시의 이 화답이 지난 공연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열기를 조금 더 붙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해진


보충설명

* 2008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꿈꾸는 플레이백씨어터>를 보고 인디언밥 기고가 김민관씨와 <플레이 위드 햄릿>의 연출가 박선희씨가 리뷰를 쓰셨습니다. 이 글은 두 편의 리뷰에 대한 화답으로, 각자 리뷰를 읽고 키워드를 잡아 작성한 것을 모아서 정리한 것입니다.
* 사진촬영_전석병, 사진제공_목요일오후한시
* 다음 공연은 2008월미평화축제 참가작 <평화책 전시와 함께하는 즉흥연극, 평화공감>으로, 10월 4일(토) 오후 2:30, 10월5일(일) 오후 2:00 인천 월미공원 한국전통정원에서 있습니다.

필자소개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목요일오후한시라는 극단명의 유래는, 창단 멤버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 한 시마다 퍼포먼스를 하던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즐거움과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하는 목요일오후한시는 현재 플레이백씨어터를 전문으로 하는 공연예술창작집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플레이백씨어터가 관객의 이야기로부터 비롯하는 연극이기에, 목요일오후한시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예술을 위한 무대는 물론이고 교실이나 카페 등 생활의 무대까지, 우리들의 대화는 때론 엉뚱하고 때론 진지하게 이어져갑니다.

목요일오후한시는 누구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개개인의 소중한 경험에 주목하면서 그 이야기에 진솔한 응답을 하기 위해 충실하게 훈련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목요일오후한시만의 플레이백씨어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목요일오후한시는 자체 훈련과 워크숍을 통해 즉흥 공연예술의 기량을 늘리는데 노력할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되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목요일오후한시는 플레이백씨어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척하면 척’하는 공연을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홈페이지 club.cyworld.com/playback-theater
이메일 thursday1p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