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앙상블 시나위, 정재일, 극단 골목길의 <소월산천>

2016. 6. 14. 22:21Review

 

모든 소월은 불쌍한가

앙상블 시나위, 정재일, 극단 골목길의 <소월산천>

@플랫폼 창동 61

 

글_안태훈

 

<소월산천>은 시인 김소월의 생애와 주요 작품을 앙상블시나위, 정재일, 극단 골목길이 규합해 ‘아버지와 가족’ 이야기로 재조명한 장르 복합 공연이다.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 술과 눈물을 달고 살았던 무능력한 가장, 부조리와 비논리가 횡행하는 현실 속에서 뒹굴고 버티다 쓰러진 소월의 삶을 공연은 '불쌍했던 아버지'라 규정한다. 불쌍함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데 탁월한 박근형이 연출을 맡았으므로, 김소월의 파란만장했던 삶은 연출 특유의 의뭉스러운 시각을 대입하기 매우 이상적인 장이었다.

앙상블시나위와 정재일이 창조한 음악은 소월의 여리고 요동치는 내면을 서정적으로, 극단 골목길 배우들이 구현한 소월-소월 아들과 딸-소월 아내는 불쌍한 아버지 김소월의 삶을 서사적으로 증언한다. 아름다운 시 탄생 이면에 절망과 슬픔으로 점철된 김소월의 삶을 이성과 감각이 조화된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결과는 부조화였다. 단조로운 음악 전개와 감정적 연기의 뒤엉킴은 김소월의 삶이 불쌍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수준에 그쳤다. 소월의 삶에 대한 재조명으로 동시대 관객의 삶을 성찰하도록 인도하지 못한 것이다.

먼저 박근형이 ‘소월의 아들과 딸-소월 아내’라는 인물들을 공연에 가져온 목적은 소월 삶에 대한 입체적 증언자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경숙이-엄마-주변인들’로 경숙이 아버지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냈던 이력의 소유자다. 담백함과 연민, 객관과 원망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한 인간의 삶을 다층적으로 해부해 나가던 경숙이-엄마-주변인들이기에, <소월산천>에서 소월의 아들과 딸-소월 아내의 등장은 비슷한 두 인물구조와 이야기를 비교하며 관람하도록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붕괴된다. 소월이 현실의 벽에 계속 좌절했던 불쌍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음을 한껏 강조하는 대사와 호흡은 공연 내내 변하지 않았다. 정서의 과잉은 결국 서정성 강한 음악과 충돌했고 부조화로 귀결됐다. 이는 공연이 ‘소월 삶에 대한 통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아버지' 라는 전제에 그 삶을 끼워 맞췄음을 자백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소월산천>의 배우들이 낭송한 <진달래꽃>, <산유화>, <접동새> 등이 소월 삶의 불쌍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격하된 점이다. 소월-소월 아들과 딸-아내는 소월 삶의 주요 순간을 증언하면서 울분 혹은 비애에 가득한 정서로 위의 시들을 낭송한다. 하지만 삶에 대한 입체적 통찰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러한 대사 처리는 소월 대표작에 대한 새로운 환기나 해석의 가능성을 관객이 음미하도록 열기보다, 주입으로 그 가능성을 폐쇄시킨다. 이 의도가 “시인 김소월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동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비추며 흘러가는 소월의 인생” 보여주기라면,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도 민중의 생명력을 신뢰한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라면〉이나 생명에 대한 간절한 울부짖음과 자신을 둘러싼 절망을 초월하려는 의지가 절절했던 <초혼> 같은 작품도 그저 '불쌍했던 인간의 절규' 정도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이러다보니 앙상블시나위와 정재일이 창조한 음악도 소월 삶에 대한 다양한 변주와 해석이 아닌, 불쌍함에 천착한 단선적 구성에 그친다. '삶의 피폐와 고독-언어(시어)로 자신의 삶과 시대에 저항하고픈 의지의 약동-의지의 폭발-현실의 높은 벽과 부딪쳐 사그라지는 생의 의지'로 이어지는 음악 전개는 가야금, 타악, 기타, 피아노 등의 다양한 크로스오버로 관객과의 정서적 동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 구성이 1시간 20분 공연 내내 반복됐고, 표면적 변주는 연극이 도달하지 못한 소월 삶의 입체적 조명을 미봉하느라 급급했다. 매 곡의 끝을 장식한 처연한 음색은 갈수록 빈곤해졌다.

어수선한 특수효과와 배우 블로킹도 아쉽다. 무대 뒤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 효과가 계속 이어졌는데, 몽환적 분위기 연출을 일반적 용례로 삼는 이 효과가 과연 공연에 적절했는지 되짚어야 겠다. 또한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난해한 조명 움직임과 원색 컬러는 이 공연의 중심이 소월의 삶과 시가 아닌, 음악 콘서트임을 어필하려는 의도였는지 묻고 싶다. 배우들의 등장도 공연장 좌우를 기반으로 여러 갈래에서 이뤄지는데, 관객의 지루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장치 그 이상으로 보기에 어려웠다.

고통과 희생, 절망과 좌절 속에 아름다운 작품을 외로이 잉태했던 소월의 삶을 '불쌍함'이라는 서사와 장르 복합으로 재완성하고자 했다면, 공연 <소월산천>에게 필요한 것은 소월의 삶처럼 외로운 자기성찰과 현실 안주에 저항하는 간절함일 것이다.

 

*사진출처_네이버 예매페이지 / 플랫폼창동61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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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안태훈

 소개_남에게 인정받으려 급급하기 보단,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글을 쓰자고 요즘 다짐하고 있다. 모바일 글쓰기 연습이 여간 녹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