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두 편의 댄스씨어터, 무척 다른 길 -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 「낙원을 꿈꾸다」, 온몸컴퍼니 「IF」를 보고

두 편의 댄스씨어터, 무척 다른 길
-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 「낙원을 꿈꾸다」, 온몸컴퍼니 「IF」를 보고

 

  • 김해진
  • 조회수 752 / 2008.10.31

 




지난 9월 17일부터 21일까지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한국프린지 섹션에서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의 <낙원을 꿈꾸다>가 공연됐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지난 10월 3~4일 씨어터제로에서 온몸컴퍼니의 <IF>가 공연됐다. 두 작품 모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출연하는 공연으로, 춤추는 몸짓으로 한국사회의 경직된 시선에 답하고 있다.


각각의 공연을 본 9월 20일과 10월 4일 이후 내 머릿속에는 다소 무거운 생각들이 지나갔다. 첫 문장에 ‘장애인의 예술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라고 적었다가 다시 지우기도 했다. 장애인의 예술활동 자체를 이슈로 삼는 것보다, 그 예술활동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포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들여다보니 두 편의 공연은 ‘장애’를 소재로 삼아 공연 속 화자가 특정한 상황을 가정하고 상상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공통점이 있는데도 두 작품은 무척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낙원을 꿈꾸다>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 장애인배우 길별은이 ‘사후의 낙원을 꿈꾸며 스스로 드라큘라가 운영하는 의상실에 취직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리는데 사실 이 줄거리는 공연팸플릿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내게는 오롯이 내용이 정리되는 그런 공연이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왁자한 음악과 화려한 춤, 은평천사원 지적장애인들의 춤, 그리고 뜬금없다고 여겨졌던 자기고백과 자기호소였다.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



춤과 음악은 관객들을 들썩이게 만들었지만, 배우 길별은의 자기고백으로부터 불러일으켜진 동정과 연민은 공연이 원하는 전개와는 사뭇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예쁜 애인이 있었지만, 자신의 장애 때문에 떠나갔다는 이야기, 장애가 죄나 전염병이라도 되느냐며 외치는 소리,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배우가 되려한다는 고백,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 무대에 설 수 있었다며 갑자기 어머니가 그립다는 말. 배우의 자기호소도, 그 외침과 고백을 듣는 관객들의 묵묵한 표정도 나는 불편했다. 이 부분은 ‘판타지’라는 공연의 짜임새로부터 갑자기 아슬아슬하게 삐져나와 거칠게 관객들과 맞대면하고 있었다. 그 고백은 통쾌하지도 놀랍지도 가슴이 찡하지도 않았다. 고백의 타이밍도, 고백의 방식도 어정쩡하게 연출돼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삶이 객석으로 잘 넘어오지 않고 있었다.


마네킹으로 분한 무용수들의 훤칠하고 섹시한 몸은 오히려 10여명의 장애인배우들의 몸과 비교할 빌미를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뇌쇄적인 마네킹들의 몸짓이 공연 속의 화자인 배우 길별은의 내면에 깃든 욕망과 절망으로 쉽사리 접합되면서, 그의 고단한 삶과 고민보다는 ‘다른 육체’가 부각되는 효과를 낳곤 했다. 그만큼 <낙원을 꿈꾸다>는 시각적으로 육체가 두드러져 보이는 공연이었다. 한 관객의 마음 속에서 공연에 대한 반응과 현실에 대한 남루한 걱정이 점차 뒤섞여갔다.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는 <낙원을 꿈꾸다>를 준비하면서 은평천사원의 지적장애인들에게 무용교육을 했다고 한다. 공연에서도 비장애인 배우들은 장애인 배우들이 무대 중앙으로 나와 춤을 출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자주 맡는다. 비장애인 배우들이 박수를 치거나 행위를 제안하거나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일 때 나는 ‘보살핌’을 넘어선 다른 것이 연상되곤 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하는 듯한 제스처랄까. 공연에서는 작은 것 하나도 표현의 장 안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너무 과민한 것일까 스스로를 의심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모종의 불편함이 남아 가슴이 답답했다. 의미의 얼개는 헐겁고 그 바깥은 때로 절벽이었다. 


 

ⓒ온몸컴퍼니


<낙원을 꿈꾸다>가 비장애인 연출자․안무가가 장애인 배우들을 무대 위에 위치시키는 반면, <IF>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직접 연출과 안무를 맡아 비장애인 무용수들과 함께 출연한다. -사실 계속해서 글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어 부르는 것이 스스로도 탐탁지 않다. 하지만 두 작품이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하기 위해 괴롭게 쓰고 있다. 이런 구분없이 공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IF>는 총 4장의 에피소드식 구성을 취한 무용극인데, 안무와 연출을 맡은 강성국은 퍼포먼스 및 다양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행위예술가이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역지사지’의 상황을 공연에 담고 있는데, 어느 조각가가 손가락을 다쳐 당분간 조각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낙담하는 모습으로부터 공연은 시작된다(1장). 이어서 춤추던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2장), 저마다의 춤을 추자고 제안하는 춤꾼이 등장해 모두들 흥겹게 춤을 추다가(3장), 긴 꿈에서 깨어난 조각가가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며(4장) 공연은 끝난다.         


<IF>는 <낙원을 꿈꾸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담백하다. 손가락을 다쳐 조각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극중의 조각가가 감당해야 할 하룻밤의 꿈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악몽같은 현실’(팸플릿 중에서)이다. 그렇지만 춤꾼들은 절망하거나 절규하지 않는다. 대신 춤을 춘다. 진홍빛 종이 꽃가루가 쏟아지는 가운데 춤꾼들은 관객에게 함께 나와 춤추기를 권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타워즈’에 나오는 요다 마스크를 쓴 강성국은 잊혀지지를 않는다.


ⓒ온몸컴퍼니

                           

 

작은 귀가 쫑긋하고 얼굴에 주름이 진 초록색 외계인 요다가 무대 저 멀리서 시름없이 춤을 추더니 내가 앉은 객석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춤의 형태는 상관이 없었다. 춤꾼의 몸이 흥에 겨워 들썩인다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몸, 자신의 춤에 대한 유머러스한 의연함이 <IF>의 무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강성국은 비장애인 무용수들과 같은 동작으로 춤췄고, 입장을 바꾼 비장애인 무용수는 뇌성마비 장애인 특유의 몸짓으로 춤추기도 했다. 그것은 그저 ‘바뀐 몸’에서 머물지 않고 그 움직임 자체를 하나의 표현으로 관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각각의 무용수들이 가진 아름다움은 주어진 몸으로 판가름나지 않았다. 춤추려는 의지, 춤추는 몸, 춤을 권하는 웃음이 눈에 보이는 몸의 형태보다 더 돋보였다.


춤꾼 요다가 돋보이는 건 무엇보다 그가 자기 춤의 확실한 주체로 보였기 때문이다. 경험과 미소가 배인 그의 몸은 외계의 사물을 직관하는 통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음악 선곡이 아쉬웠다. 영화 <Once>에 나오는 노래가 자주 귀에 꽂혔다. 아마도 익숙한 선율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노래가사가 공연의 메시지와 어울리면서도 공연 안에서는 설명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낙원을 꿈꾸다>와 <IF>는 둘 모두 마지막에 이르러 해방과 화합의 피날레를 연출한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의 천정을 열어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하고(<낙원을 꿈꾸다>), 진홍색 종이 꽃가루를 뿌려 하얀 씨어터제로를 작은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IF>). 그 환한 장면들이 공연뿐만 아니라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가 은평천사원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나눈 무용교육, 온몸컴퍼니가 솔직하게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춤추고 강성국의 춤추는 몸이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그 현장이 공연과 함께 계속 지속되고 깊어지기를 바란다.


저마다의 장애를 하나씩 품고 사는 사람들이 화통하게 웃으면서 함께 춤추는 일…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서로 다르다는 걸 부러 꾸미지 않는 담담한 현실감각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로부터의 해방이라기보다, 장애를 향한 사회의 시선, 또 그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자기규정으로부터의 해방이 결국에는 춤이 될 것이라 믿는다.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

 

보충설명

<낙원을 꿈꾸다>를 만든 사람들

연출 장성원
안무 방희선
예술감독 고충길
조명 추봉길
음악 헤비메탈그룹 나티
헤어드레서 채청수

출연
은평천사원 이경렬 김영수 신철준 최유진 고완규 강청명 김형태 김동운 임영천
루멘 판토마임 댄스씨어터 길별은 이승은 이재진 조아름 김미희 조은지 한재호 김기창
www.lumen.name

< IF >를 만든 사람들

연출․안무 강성국
조안무 성한철
출연 양길호, 김유식, 이형우, 정주연, 김현숙
무대미술 서지영
연주 남윤식 이승현 김성대
조명 이정영
영상 강지원
기획 문유미
홍보 A.E.C(Art Education Center), 문화기획 마당, 신현경
온몸컴퍼니 club.cyworld.com/ifdance

* 이상 팸플릿 참고
* 사진제공 -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 온몸컴퍼니

 

필자소개

글쓴이 김해진은 공연에세이스트.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단원.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re를 한다.
grippen@hanmail.net
http://blog.naver.com/su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