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극단 달나라 동백꽃 <15분>

2016. 9. 8. 08:42Review

 

모두의 ‘15분’ 을 위하여

<15분>

극단 달나라 동백꽃 / 윤혜숙 연출

 

 

글_이은서

 

 

 

 

아무도 관심 없는 15분짜리 공연, 그거 안 하는 게 대수인가.

- 연극 <15분>

 

가슴팍에 팍팍 꽂히는 질문들. 나는 공연을 보는 내내 자꾸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연출 윤혜숙이 지난 해 “팝업씨어터 공연 검열” 사태를 겪으면서 가졌을 내적인 물음들이 배우를 통해서 발화 되었을 때, 나는 내 내면의 어떤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서 몹시도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연극이라는 것, 연극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태도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었다.

에디뜨 삐아프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가 들리면서 누군가에게 공연 의뢰를 받았다는 사실에 가슴 뛰는 밤을 보내고 있는 혜숙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연극을 한다는 것은 그저 미친 짓인 것일지도 모르는 사회에서, 그래도 누군가 내가 공연하는 자임을 인지하고 나에게 공연을 의뢰해 준다고 하는 것, (그것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라는 공공기관에서 말이다.) 그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아직 대학로에서 자리 잡고 있지 못하고, 변변한 극단도 없는 나에게 그런 의뢰가 들어왔다면, 나도 정말 설레었겠지.

15분을 의미 있게 채우기 위해 어떤 대본을 고를까, 어떤 배우를 섭외할까, 까페라는 공간을 흥미롭게 사용하게 위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겠지. 나와 함께 할 많은 스태프들에게도 내가 준비할 15분의 공연을 함께 하자고 말하기 위해 수많은 생각과 계획들을 짓고 또 허물며 많은 시간을 보냈겠지.

 

‘여태까지 연습했던 시간들...그 시간들은 관객을 만나지 못 한다면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연극 <15분>

 

함께 팝업씨어터 의뢰를 받았던 김정 연출의 <이 아이> 공연이 주최 측의 방해를 받아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동시에 너의 공연도 더 이상 씨어터 카페에서 공연할 수 없다는 것을 통보받고, 대본제출을 요구 받은 너는, 남 일만 같아 스치듯 지나갔던 일이 예리한 칼끝이 되어 네 목을 겨누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연습을 했던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내 공연이 관객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시간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결국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를 15분짜리 공연’ 이라고 내 공연을 의심하게 되는 것을……왜. 당신으로부터. 질문. 받아야. 하는가. 왜 스스로 예술가로서 자존감을 갖고, 자기의 작품의 자유로운 비상을 위해 충분히 익힐 기회를 당신이 박탈하는가. 씨발.

 

 

 

 

당신, 누구냐.

 

어느 순간 연극 속의 너는 내가 되고, 전화기 너머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유난히 강조해 들려오는 “개인적”이란 말에 죽죽 빨간 줄을 그어 주고 싶다. 솔직히 공연을 보는 내내, 누군지 잘 모르는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가서 욕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어떤 배후 세력 없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단 말이다.

공연에 맨 마지막 장면에는 팝업씨어터 공연을 방해한 당사자이자 팝업씨어터를 기획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사업부장과의 통화내용이 15분 이상 (정확히 19분 21초) 흘러나온다. 동시에 그 시간동안 함께 하는 관객들의 한숨이 동시에 흘러나오는 순간들이 생긴다. 곳곳에서는 실소가 터지기도 하고, 의도를 뻔히 알 것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저쪽 편의 목소리에서 고개를 동시에 떨구거나 머리를 쥐어뜯는 관객을 느낄 수 있다. 다들 각자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공연을 보러 왔을 테지만, 이 순간만은 일체감이 느껴지는 것이 흥미롭다. 관객은 어느새 한 배를 탄 사람들이 된다. 나는 안전하다고 느꼈었고,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저에는 안도감이 깔려 있었다. 뭔가 두렵기는 하지만 설마 날 해치지는 않겠지 하는 믿음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대화 (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변명)는 그 안도감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말로만 듣던 그 ‘검열’이라는 것이, 자꾸만 자기가 ‘검열’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너무도 명확하게 자기 존재를 변신해가면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게 하기 때문이다. 통화를 하는 저쪽 편의 이야기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목소리와 말로 내가 당한 일이 그저 개인적인 일임을, 하나의 해프닝이었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하기에 현재 우리 사회는 석연치 않은 해프닝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전화기 너머의 당신.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로부터 검열 당하고 있는가.

 

너는 매일 9시간 동안 길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그 ‘매일’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거리에서 피켓을 들었던 20여 일 동안, 당연히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고, 아니 진실은 이미 다 밝혀졌고, 그들은 결국 그 모든 것을 시인할 것이고, ……막연한 낙관에 몸을 실었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극 <15분>

 

극 중 흐르는 음악, 연출가 개인이 겪었을 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대부분 서정적으로 표현되었다. 나는 보는 내내 갑갑하였다. 나에게 무언가 슬픈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 서정성은 희한하게 개인을 건드리고 끝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일체감을 갖게 되는 관객 전체의 의식을 자극한다. 이 얼마나 정치적인가. 여기에서 이 작품의 힘을 느낀다. 사실은 우리 일상의 많은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그것을 똑바로 바라 볼 필요가 있음을 아주 조용히 읊조린다.

 

감히 모든 연극은 정치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연극이 관객에게 하나의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외적으로 표방하면 할수록 공연성과 연극성을 더욱 담보할 수 있는 연극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연극을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즐거운 혁명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에게 연극은 그런 것 아니었는가. 혁명. 작은 혁명.

 

 

 

 

*본문의 기울인 글씨는 모두 연극 <15분> 속의 대사를 인용했습니다.

**사진제공_권리장전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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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이은서

 소개_연극 연출. 두 아이의 엄마. 2014 AYAF 연극 부문 선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