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성격을 잃어가는 한국 단편영화

2009. 4. 10. 07:5007-08' 인디언밥

독립영화의 성격을 잃어가는 한국 단편영화

  • 진영(필명)
  • 조회수 639 / 2007.09.19

 지난 6월에 열린 미장센 단편 영화제를 방문했을 때 난 여러 좋은 작품을 접해 크게 흥분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 동기와 미장센 단편 영화에 경쟁부문에 출품된 작품에 대해 총평을 하면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져 왔다. “이젠 단편영화도 웰메이드 시대가 온 게 확실하군.” “웰메이드라 그건 왠지 상업영화에나 해당 되었던 말 같은데......” “단편영화가 상업화 된거지” “상업화라......” 영화제 내내 마냥 생각 없이 좋아만 하던 난 동기의 말에 모두 동의 할 수는 없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씁쓸함에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90년대까지 한국 단편영화는 독립영화로서 기능을 해왔다. 그 때까지 단편영화들은 시대와 호흡하면서 우리사회의 단면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주었다. 단편영화는 천편일률적인 상업영화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상업영화가 보지 못하는 곳에 카메라를 전혀 다른 영화 문법으로 들이대면서 단편영화는 비주류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2000년 중반 단편영화는 점점 주류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번 미장센 단편 영화제를 통해 단편영화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단편영화는 점점 상업영화의 진입을 위한 포트폴리오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 점을 잘 파악해 단편을 장르별로 나누어 경쟁부문을 만든 것이 미장센 영화제이다. 영화에서 장르라는 것이 대중에게 익숙한 코드를 말하는 것 아닌가? 웰메이드 하다는 것은 단순히 단편영화들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보다 이 익숙한 코드를 단편영화 속에 능숙하게 접목시키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장르를 나누어 경쟁부문을 뽑고 시상을 한다는 것이 단편영화까지 어떤 시장이 형성되어 준 프로들의 상품 전시회장이 되어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미장센 영화제의 존재 자체가 단편영화가 지닌 독립 영화적 성격이 어느 정도 반감된 세태를 증명하고 있는 거라 볼 수 있다. 왜 단편영화는 점차 독립 영화적인 성격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미장센 영화제의 경쟁부문 대부분은 영상원과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독식을 하고 있다. 여타 단편 영화제 역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그 수많은 영화과들은 그저 들러리만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정부는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한국 영화 아카데미와 영상원을 만든다. 그 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이 두 국립기관에 의해 형성된 단편영화계에는 자본이 쉽게 투입되기 시작한다. 마치 태릉선수촌에 될 만한 선수들만을 뽑아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엘리트 코스의 훈련을 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 한국 단편 영화계에서도 일어난다. 그 속에서 한국의 영화과들은 타의에 의해 비주류가 된다. 시대의 아픔을 항변하는 비주류가 아닌 그저 시대의 아픔을 체념하는 비주류 말이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한국정부의 의도는 눈에 보이는 성과이다. 상업 영화에 당장 쓰일 고급 인력의 배출에 두 국립기관의 설립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단체들에서 나온 단편영화들은 마치 번쩍번쩍한 올림픽 금메달처럼 90년대 독립 영화에 비해 눈에 보이는 상업 영화적 성격을 좀 더 추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미장센 영화제의 단편영화들을 공격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미장센에서 본 작품 하나하나는 무척이나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에 독립영화적인 성격 역시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들이 정체된 한국 상업영화 스타일을 많이 개선할 것이고도 믿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매일 같은 식단의 외식을 하는 사람이 없듯이 영화 역시 다른 맛을 찾아야 하는데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 너무 비슷한 양념만을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나에게는 상업 영화 속 레시피가 그대로 쓰이는 단편영화 속에서는 영화 자체가 주는 맛 이외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배어나온 것이다. 단편영화는 더 이상 비주류의 대변보다는 영화적 재미에 너무 많은 할애를 한다. 현 주류단편영화에서는 웰메이드란 달콤한 양념에 가려져 세상을 바라보는 소수적 시선의 부재가 느껴져 너무 아쉽다.  

 

 사로

 

전통적으로 영화는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자본이 많이 투입된다. 그렇기에 소비되지 않는 영화는 존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는 예술품보다는 항상 상품에 가까웠다. 영화만큼 대중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문도 드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단편영화를 상업영화를 위한 포트폴리오로 쓰거나 상을 타는 것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90년에 만들어진 단체인 독립영화 단체인 <청년>은 그 시대에 단편영화를 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청년은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로 시작한다. 그 후 멤버들의 용돈과 등록금을 서로 각출해 사무실과 영화 장비를 마련해 구속 받지 않는 자신만의 영화 만들기에 몰두 한다. 청년에서 나온 90년대 중반의 <그랜드 파더> <생강> <느린 여름>등의 작품은 시대의 아픔과 공존하며 타협하지 않는 단편영화들로 독립영화의 맥을 있어나간다. 그들은 상업영화의 쓰이지 않는 16mm로 시대의 아픔을 담아낸다. 16mm는 그 매체가 가진 단순한 경제성을 뛰어넘어 상업영화에 대한 대안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 미장센 영화제에서는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있었던 16mm가 한편도 올라오지 못했다. 대부분의 영상원과 한국 영화아카데미의 영화들 대부분이 35mm를 쓴 것은 단순히 단편영화 환경의 개선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 단편영화들은 독립적 이기엔 자본의 개입이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린 건 아닐까?


UCC제작도전하는당진‘땡땡땡실버문화학교’노인학생들

 

 하지만 나는 새로운 대안이 있다고 본다. 16mm는 사라졌지만 분명 새로운 대안이 떠오르고 있다. 난 디지털이 가진 독립영화적인 성격을 주시해야 한다고 본다. 앞서서 영화는 자본이 많이 투입되므로 대중 즉 소비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영화는 영화제작 과정의 기술적 매커니즘의 전문성 때문에 소비자에게 영화제작 방법이 잘 알려지지 않아왔다. 이런 이중적인 상황은 그동안 영화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철저히 격리된 상태로 만들어 왔다. 이러한 격리가 영화를 단순히 소비의 산물로만 인식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지털 영화는 경제성과 비교적 쉬운 인터페이스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치하는 프로슈머의 단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디지털 영화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점점 사라지게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현재의 UCC 돌풍이라 볼 수 있다. 얼마 전 읽은 신문 기사에서는 한 실버문화학교에서는 60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작은  UCC 상영회가 열렸다. 그리고 내가 가끔 들르는 인문학 연구소인 수유+너머라는 곳에서도 얼마 전 아마추어끼리 모여 작은 영상상영회를 위해 컴퓨터 영상 편집 프로그램 앞에서 누구보다도 높은 열정으로 편집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미비하지만 체계가 잡히고 자발적 세미나와 영상상영회 그리고 전문가 집단과의 교감이 활발해 진다면 디지털 영화는 분명 단편 영화계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아니 좀 더 희망적으로 얘기하자면 되어가고 있다. 일례로 아마추어 집단뿐만이 아니라 세계적 거장인 데이빗 린치와 지아 장커도 VJ용 캠코더로 널리 알려진 PD-150과 저가의 HDV로 각자의 신작영화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디지털의 힘은 단편영화가 상업영화로의 진입을 위한 포트폴리오의 역할이 아닌 단편영화 그 자체의 독립성을 즐기는 풍토가 생겨나게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너무나 확연히 나누어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를 부수어 독립 화 된 상업영화가 그리고 대중에 좀 더 가까운 독립영화의 출현도 기대해 본다.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그만큼 다양성이 확장되리라 믿고 있다. 디지털이 그 역할을 하리라 난 한번 믿어 보고 싶다.

보충설명

미장센 단편 영화제 취지
차별화된 장르 영화제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은 기존의 단편영화제의 틀을 벗어나 영역과 특징을 좀 더 세분화한 차별화된 영화제이다. 장르영화제라고 해서 그 장르와 딱 들어맞는 영화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엄숙주의와 아마츄어리즘을 탈피하고, 더불어 장르의 특징을 표출하는 단편영화의 ‘발칙함’이 갖는 장점을 존중하면서 기타의 단편영화제들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다.

필자소개

필자는 현재 모모대학 영화과 4학년 졸업영화를 준비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을 늦게 찾아서 한 학기 더 다니려고 하는 중인 불쌍한 중생이다. 영화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으면서 제일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취미는 종로에 있는 아트시네마 순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