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리뷰] 감춰두고 아껴보고 싶었던 빨강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indienbob 2022. 4. 6. 14:35

 

 

 

감춰두고 아껴보고 싶었던 빨강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리뷰

 

글_정혜진 

 

리뷰에 앞서 필자는 시각예술에서 나아가 다원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을 하고 있는 창작자이자 기획자임을 밝힌다. 연극이라는 특정 장르보다 무대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실험들을 관람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리뷰에서는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주체적으로 해체하고 읽고자 한다. 2015년에 초연된 극단 돌파구의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2022년 오늘날 다시금 무대에 오른 극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과 함께 극단 내부적으로 필연적이었을 젠더, 여성, 노동, 소수자를 키워드로 한 스터디를 진행하여 극에 변화를 줬다. 2015년 작품의 경우 자본의 원리에 의해 생겨나는 청소년들 사이 보이지 않는 계급과 교육열 등 부모들의 욕망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 극이었다는 사실을 작품 소개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유효한 의제로 남아 있기에 그 문제의식을 덜어내지 않고 여전히 극의 중심에 두고 젠더, 노동, 소수자에 관한 쟁점 혹은 질문들이 더해져 극이 완성되었다. 극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없기에 무엇도 뒷전으로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엇도 집요하게 벼랑 끝까지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경향성은 그것이 청소년이라는 특정 연령층이 겪는 다층적이며 복잡 미묘한 상황과 감정이라는 것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극에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품으며 변화를 고민하고 시도한 흔적들이 발견된다. 

극단 돌파구 ⓒ보통사진관_김솔

 

무대

특히 무대에도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베리어프리 극을 위한 설정과 실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실 베리어프리 공연에는 완성되지 않은 그리고 영영 완성되지 못할 구성적 아쉬움이 남는 경우들이 많다. 그저 보조 장치로서 그치는 경우들이 그러한데 물론 보조장치 조차 필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나 나아가 입체적인 다각도의 시도가 보다 내용적으로 다양한 구성의 베리어프리 무대의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퇴장하지 않으면서 무대에 머물며 극의 사이사이 자연스럽게 본인으로서 혹은 극 중 역할로서 침범하는 배우들,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나 구조물이 아닌 소품으로 배우와 함께 인식되는 무대 오브제들, 큰 베이스의 사운드 등은 소리가 없더라도 사운드 베이스의 떨림을 통해 느낄 수 있고 보지 않아도 공간을 입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러한 장치들은 비장애 혹은 특정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극을 읽는데 무리 없이 해당 요소들이 무대적 장치로써 자연스레 녹아들어 의미를 만든다. 특히 공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던 무대 위를 크게 도는 배우의 뜀박질 등 시각적 요소들을 묘사하기 위해 할애한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는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제껏 한 장면, 한 대사라도 놓칠까 극을 빠르게 읽기에 바빴던 눈이 다르게 감각해 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하나의 감각을 차단해 보고 있는 신체를 발견했다. 다시 눈을 떠 무대를 바라봤을 때, 3면이 온통 하얀 무대 위 불필요한 암전 없이 이어지는 동선은 극 중 아이들의 촉발되는 사건들에 의해 강자가 되기도 약자가 되기도 하면서 몸과 관계의 위치를 달리한다. 블랙박스 안에 바닥과 3면의 벽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또렷이 인지되는 무대는 그 상황을 하나의 무대 속 이야기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갇힌 세상 속 감각을 온전히 드러냈다. 

 

기호(嗜好)

발레 의상인 여성용 레오타드를 입는 것을 좋아하는 준호의 기호[각주:1]를 우리는 미색의 레오타드를 입고 거울을 보는 준호의 모습을 통해 처음 마주한다. 준호가 사는 세상에서 이는 젠더적 규범에 반하는 혹은 변태적 행위로 비추어 지고 곧이어 다른 친구들에 의해 ‘게이’로 표현된다. 하지만 준호에게 레오타드는 성 정체성이나 성애적 이유가 아닌 그저 기호로서 작용한다. 성애적 게이이기 때문이 아님을 증명하듯, 준호는 또래 그 누구보다 운동을 열심히 해 근육을 기르고 여자친구를 사귀며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 힘의 권력 그리고 재력에 의한 교육 수혜의 면면을 당연하게 받아드리며 또한 적극 이용한다. 이 같은 권력의 작동에 의한 사회적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라온 한 아이의 기호 이면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나의 기호를 감추기 위해 더 열심히 사회에 부응하려 했거나 혹은 그 반대로 힘의 작용을 학습하도록 요구받아온 것의 반작용으로서 자신의 기질의 한 면이 레오타드라는 상징성에 고착되어 표현되었는지 등 그 부분을 덮어둔다면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취향을 존중해야 해’라는 명제 아래 폭력, 권력, 따돌림, 사교육의 불평등 또한 개인의 정체성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경계된다. 또한 대명사이자 형용사로서 남겨진 게이라는 이름은 무엇보다 젠더 규범에 대한 논의 속에서 아직 닿지 못한 현실의 상황 저 멀리에 남겨져  씁쓸함을 남긴다. 변화의 흡수와 기존 체제로 부터의 요구를 동시에 고스란히 맞이해야 만 하는 현시대의 청소년은 불안정하고 정처 없이 혼란하다. 교복 아래 미색의 레오타드를 입고 있던 준호는 극 중반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빨간색 레오타드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희주에게 말한다. 색깔 중 빨간색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래서 아주 가끔씩만 그것을 꺼내어 본다고. 좋아하기 때문에, 아끼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더더욱 억눌러야만 한다. 청소년 시기, 자기와 자신의 기호를 알아가는 시기임과 동시에 그런 자신을 억눌러 담아 세상의 틀에 꼭 맞추도록 요구되기에 더 뼈아픈 시기다. 

극단 돌파구 ⓒ보통사진관_김솔

 

현재 Z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잘 알고 있다. 젠더적 규범으로 누군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세상에는 소수자를 위한 안정망이 필요하며, 성소수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무수한 정보들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나아가 내 삶에 대입하기 어려운 현실에 살고 있다. 미성년 노동자 희주는 틈틈이 알바를 하며 체대 입시를 준비한다. 준호와 달리 친구가 없고 민지와 달리 집이 부유하지 않은 희주는 또한 어떤 결핍으로 민지의 안나수이 거울을 훔치고, 어떤 결의로 인해 이를 다시 돌려주려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좌절되며 기어이 거울을 깨버린다. 엄마처럼 설거지를 하며 살지 않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운동과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희주, 1등급을 놓칠 수 없는 준호와 발레에 소질이 없지만 발레뿐 아닌 각종 악기와 미술 등 각종 예체능을 배우도록 강요받는 준호의 누나의 상황은 현시대 청소년들이 겪는 젠더적 투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여성성의 우위를 차지하는 남성성, 전학을 떠나야 할 정도로 커다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는 ‘사건’으로 받아드려지는 여성성의 발현, <깡>이라는 노래를 통해 아이들이 학습하고 표현해야 하는 남성스러움 등 현실의 당연했던 장면들을 통해 다시 보기를 권유한다. 

 

접촉

극 중 유일한 어른인 체육 선생님 영길은 무던히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희주의 노동환경에 대해 끊임없이 의의를 제기해 환경을 개선시키려 하며 준호의 폭력적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그는 아이들에게 짝을 이뤄 안무를 짜고, 안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파트너를 관찰하여 관찰일지를 쓰는 수행평가 과제를 부여한다. 서로를 관찰하기 시작한 희주와 준호는 서로의 사소한 특징들을 알아채 주는 상대방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희주와 준호의 몸은 부딪혀 상처가 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몸을 지탱하며, 같은 동작을 맞추기 위해 서로를 모사한다. 자신을 인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필요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 또한 스스로에게 받아들여진다. 준호는 팀 안무 발표를 앞두고 옷을 잃어버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레오타드를 노출하고 희주에게 중요한 수행평가 무대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았더라도 더 이상 참지 못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결심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몸을 활짝 열어 더욱 더 확신에 찬 춤을 추는 모습은 그런 짐작에 확신을 더한다. 극은 전반적으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현실적 서사와 표현들을 기반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장면을 통틀어 가장 판타지적 시간에 해당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수 많은 준호들은 그러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해방감의 전이를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극단 돌파구 ⓒ보통사진관_김솔

학교와 아파트 단지 내에 소문이 퍼진 준호는 여전히 학군에서 학군으로 이사를 가고, 희주는 60초의 턱걸이 체력시험 기준에서 이제 겨우 3초를 더해 33초가 되었을 뿐이다. 상황은 아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담담히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희수와 준호는 오히려 감내, 인정, 체념과 같은 감정을 배운 것처럼 보인다. 2022년 현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분홍색과 파랑색을 성별로 나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살색을 살구색으로 명칭 하는 세대가 되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혐오를 놀이로써 유희한다. 젠더, 종교, 계급, 부와 권력의 굳건한 장벽 아래서 약자와 강자를 구별 짓는 단절의 시대에 연결은 합의와 공감이 아니라 ‘너’뿐 아니라 ‘나’조차 스스로를 개별 자아로서 받아들여 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자신의 주체성을 사회적 틀 안에서 마음껏 꺼내어 볼 수 있는 거울을 스스로 획득하는 것. 이는 동시대의 현상들이 남긴 과제이자 중요한 논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7년 뒤 극은 다시 한번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정혜진

미디어 작가이자 독립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흔히 생성되는 타자성에 대해 질문하며 존재 가능한 미래적 공동체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가치들에 주목하여 미시적 관점에서 현상을 기록하고자 하고 있다.

공연소개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포스터

연극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작 | 박찬규
연출 | 전인철
출연 | 안병식 오해영 윤미경 김민하 이규현 조어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022.03.10 - 03.20
사진
(c)보통현상_김솔

 

 

 

 

 

  1. 시놉시스 및 작품설명에는 불안과 초조함에 심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독특한 '취향'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취향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가변적인 현 상태의 경향성으로 보고, 그러한 취향이 쌓여 고착되거나 기질적인 특정 성질을 '기호'로 정의하여 표기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