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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결정하지 않는 것도 당신이기에<비둘기처럼 걷기>@TINC

인디언밥관리자 2022. 6. 29. 21:59

 

결정하지 않는 것도 당신이기에

 

음이온 <비둘기처럼 걷기> 리뷰

 

글_임다영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길에서 비둘기를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구우- 구우- 소리를 내면서 목을 까딱거리며 걷거나, 이따금씩 공중을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존재를 말이다. 음이온의 <비둘기처럼 걷기>는 우리의 일상에서 친밀한 존재인 비둘기에게 50대 남성이 한쪽 눈을 쪼아 먹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본인은 이 글을 통해 <비둘기처럼 걷기>의 경계 넘나들기와 열린 결말의 함의를 살펴보려 한다.

 

  

주인공인 남자는 쪼아 먹힌 한 쪽 눈으로 비둘기가 보는 세상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런 남자의 말에 의사, 가족, 행인 등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 의사는 정신과를 권하며 믿지 않는 눈치고, 도를 믿냐는 행인은 남자가 새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와중에, 가족은 그래도 그의 말을 믿어준다. 이렇게 남자에겐 너무나 자명한 사실인데도 모두에게 이해와 믿음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될 수 없고, 서로는 영원히 타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둘기처럼 보기>에서는 세 배우가 모두 남자 역할을 한다. 남자(가 아닌 인물)가 남자가 아닌 인물(남자)이 되어 행동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들은 남자인 동시에 의사이고, 남자의 가족이며, 도를 전파하는 행인이고, 새로 점을 치는 도인이기도 하다가, 실외기 밑에 비둘기가 사는 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모두 최소 한 번씩은 남자로서 말을 하고 행동함으로써 인물 간의 교차가 이루어진다. 이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 남자와 주변 인물 사이의 경계를 부수어 버린다.

경계 허물기는 극 중 인물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대와 객석 간의 경계도, 화면 속과 실재 간의 경계도 허물고 있다. 배우들의 동선은 비스듬하게 놓인 객석 주변을 맴돌거나, 객석 사이 통로를 지나며 중앙을 꿰뚫는다. 무대는 단상 위나 객석 앞으로 한정되지 않고 콘솔이 설치된 한 층 위의 공간까지 활용된다. 또한, 배우가 들고 있거나 바닥에 설치해 둔 카메라는 인물을 확대하고 형상을 중첩시키면서 단상 위 스크린으로 중계된다. 동작이 스크린에 나타나기까지 몇 초의 지연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원근감을 활용해 배우의 신체가 스크린 속 공간을 구획한다. 비둘기의 시야가 스크린에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비둘기가 도시 위를 날며 보게 되는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를 통해 이야기의 공간은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것은 배우와 관객 간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이다. 별다른 시작 종 없이 어수선하게 시작되는 공연의 첫 장면에서, 세 배우는 2층 난간 앞에 서서 허공을 응시한 채 대사를 내뱉는다. 그들은 '당신'이라는 주어를 사용하는데, 이때의 '당신'은 극 중의 남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호명은 남자뿐만 아니라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인 나를 부르는 것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렇게 주인공과 관객 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보고 있는 우리는 남자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가상의 이야기 속 인물과 실재의 관객은 한 데 뒤섞인다. 어쩌면 남자가 보고 있는 것을 우리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도 같다(그 사이에 어떤 비둘기가 내 눈을 쪼아 먹었던 모양일까?).

 

한편 비둘기의 시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던 남자는 비둘기를 찾으면 무언가 해결이 될까 이웃 주민을 찾아간다. 집 안까지 여러 개의 문을 열고 힘겹게 들어가서는 비둘기를 직접 마주하지만, 남자는 어찌할지 몰라 한다. 그런데 새로 점괘를 보는 노인은 남자에게 이건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말한다. 남자가 상황에 대한 결단을 이제는 내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비둘기처럼 걷기>는 남자의 선택을 열린 결말로 둔 채 비둘기의 시야를 스크린에 재생시키며 끝을 맺는다.

남자에게 비둘기의 시야가 공유되면서 비둘기처럼 보고, 걷고, 만난들, 그는 결코 비둘기도 가족도 될 수 없다. 모두 '처럼'의 노력일 뿐, 결코 남자는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가족을 정신과에서 마주친 것도 믿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극 중에서 무수한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지만, 결국 경계란 온전히 허물 수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결코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없다. <비둘기처럼 걷기>의 결말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온전히 그것이 이루어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나의 삶에서 타자(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도 포함된다)를 이해하려고 한들, 온전히 공감한다는 것이 때로는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나의 공감이 그에게는 공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로 인해 숱한 감정이 쌓이고, 골이 깊어지면서, 뜻하지 않게 멀어지게 된 경우도 왕왕 있다. 비둘기들이 실은 우리를 늘 두고 보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놓고 볼 때,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됨으로써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존재를 그대로 두고 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최근 이옥섭 감독이 모 프로그램에서 그 사람이 미우면 그냥 사랑해 버린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미워하는 사람을 영화의 등장인물로 상정해 놓고 보면 더 이상 밉지 않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비둘기가 우리를 영화의 등장인물로 보고 사랑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었던 대상에 욕심과 개입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건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이유로 극 중에 새 점을 치는 노인의 '결정하지 않는 것도 점괘'라는 대사가 몹시 와닿았다.

 

 

이렇게 경계를 흐리고 결말을 열어 두어 모든 것이 영원히 멈춰 있는 <비둘기처럼 걷기>의 시공간 속에서, 나는 '무엇이 되기'를 멈추고 '그것 그대로 보기'를 취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영원히 가닿을 수 없기 때문에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미워하며 상처받고, 그래서 지겹게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를테면 연극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그것을 영원히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어서 일 것이다. 덕분에 지금 하는 고민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금 더 유보할 용기를 얻었다. 그 고민을 비둘기의 시선으로 보다 보면-경계를 넘나들다 보면- 뜻밖의 점괘를 선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소개 

임다영_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하며 연극을 주로 보러 다닌다. imdarchive@gmail.com 

공연소개

음이온 <비둘기처럼 걷기>
@TINC 2022.6.2 - 6.5


제작진

작/연출 : 김상훈
배우 : 김경헌, 김나윤, 전혜인
시노그라피 : 박이분
조명기술감독 : 김현
영상 디자이너 : 전태환
음향 디자이너 : 이현석
기획 : 전강채, 조윤경
포스터 디자인 : 박서영

제작 : 음이온
후원 :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