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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시대에게 쫓겨나기 1.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

인디언밥관리자 2023. 8. 5. 01:12

시대에게 쫓겨나기

1.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 이다혜 

 

예술계 동료들이 공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리는 시절입니다. 지대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얘기가 아닙니다. 기관장이나 담당자가 바뀌고 정책이 바뀌었다든지, 사실 원래 기관의 소유의 공간이고 이제 새 쓰임을 찾겠다든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이유들 앞에선 공간을 조성하기까지의 맥락도, 그 공간을 꾸려온 예술가들의 노고도, 시민성 그 자체도 바람 앞의 촛불 같습니다. 문득, 자본에게 쫓겨나는 것을 넘어 한 시대에게 쫓겨나는 기분이 듭니다.

인디언밥 기획연재 <시대에게 쫓겨나기>는 독립예술에게 필요한 ‘창조적 공유지’와 비슷한 역할을 해온 공간들이 어떻게 지금 예술가들을 쫓아내고 있는지 살핍니다. 그 안에서 어떤 패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해보고자 합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함께하는 독립예술집담회까지 이어지는 이번 시리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 이다혜

 

“홍대를 가지 않았다면, 창작자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지도 몰라.”

가끔 생각한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합격했던 다른 지역의 대학을 갔다면 나는 어떤 삶의 경로를 따라 갔을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장소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지금도 홍대 언저리에 있는 친구들이 우리처럼 출판인으로 자라나고 있을지도 모르고.”

홍대를 다니며 연남동에 살던 2000년대, 홍대는 문화예술의 성지이며, 다양성이 꽃피는 지역이었다. 학교 정문에서 대형 록 페스티벌이 열렸고, 상상마당 라이브홀, 롤링홀, 클럽 에반스, 클럽 FF 등 규모와 콘셉트에 따라 다르지만 라이브 클럽에서 인디밴드 공연이 열렸는데, 그 덕에 언제나 실험적인 음악과 대중적인 음악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홍대 거리를 걷다보면 기타 가방을 맨 사람이 자주 보였다. 주말이되면 걷고 싶은 거리와 홍대역 9번 출구에서 버스킹 공연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을이면 독립예술축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려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 공연을 눈 속에 담았다. 상수동 상상마당 거리에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책 축제 중 하나인 와우북 페스티벌이 열렸다. 와우북 페스티벌은 인문서와 사회과학서, 문학과 그림책 등 다양한 책으로 시대의 담론을 말하는 출판인들의 축제의 장이다.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발을 디딜 곳 없이 상상마당 거리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모였다. 

그야말로 들숨에 예술을 날숨에 다양성을 논하는 곳, 그곳이 홍대였다. 공대를 다니던 나는 거리에 가득한 문화예술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문화예술 언저리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작가가 됐다. 

언제나 마포였다. 학교를 졸업 후 회사를 다니며 다른 지역에 살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홍대로 돌아왔다. 강북구 쌍문동에서 마포구 동교동으로, 강서구 화곡동에서 마포구 망원동으로 삶 터를 바꿨다. 동료 작가가 물었다. “작가들은 왜 다 망원동에 살면서 고양이를 키울까?” “글쎄, 출판사도 많고.. 그냥 여기 살아야 글이 써지는 기분이야.” 나에게 마포는 그런 곳이다. 글을 쓰며 살아가기에 최적의 공간이자 계속해서 예술의 씨앗을 심고 싶은 곳. 

 

 

친구이자 동료 작가인 박초롱 작가가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 입주했다. 출판인에게 저렴한 사무실을 제공하는 입주 지원사업으로만 생각했는데, 초롱 작가의 활동을 보니 사무실 공간을 제공하는 혜택은 정말이지 빙산의 일각이었다. 

“뭐해?” 

“플랫폼P 세미나 가"

박초롱 작가에게 뭐하느냐 물으면 자주 플랫폼P 세미나에 간다고 말했다. 입주 작가들이 함께 모여 출판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논하는 브라운백 세미나, 출판계의 전문가를 초빙해 진행하는 기획 세미나 등 출판인이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플랫폼P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초롱 작가를 보며 2기 입주사 모집 공고가 뜨면 반드시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렇게 플랫폼P에 2기로 입주했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며 처음 얻는 작업실이었다. 함께 입주한 박의나 작가와 함께 2인실 작은 사무실에 필요한 집기를 구매하며 마치 새로 회사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공간도 좋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출판인들과 느슨하게 공간으로 연결된 감각이 좋았다. 플랫폼P에서 나와 박의나 작가는 각자의 매거진인 프리낫프리와 나이이즘을 만들었고, 함께 외주 작업을 했다. 플랫폼P에 입주한 동안 5권 이상의 아카이브북을 제작했다. 플랫폼P 다목적실을 입주자 혜택으로 대관해 프리랜서 교육 행사 ‘프리랜서 생존키트’를 개최했다. 디자인은 마찬가지로 플랫폼P에서 입주해 일하는 디자이너 키박이 담당했다. 작업 루틴과 브랜딩 등 각자의 고민을 나누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세미나를 운영하기도 했다.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2호에서 프리랜서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상당수의 프리랜서 인터뷰이가 ‘공유공간’이라고 답했다. 직접적인 창작비 지원이 많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나의 생각과 완전 다른 결과였다. 같은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일하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이 창작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깨달음이 플랫폼P에 입주하며 실제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다른 출판인들과 함께 일하며 나는 비로소 출판 커뮤니티에 소속되었다는 감각을 느꼈다. 공대를 졸업하고 마케터로 일했으며 에디터로 업을 전환하고 책을 내기까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듯한 기분으로 일했다. 전공을 살린 기술자도 아니었으며, 성공한 마케터도 아니었고 정통 매체에서 에디터의 일을 배운 적이 없는, 그러던 중 어쩌다 작가가 되어버린 사람. 누군가를 만날때면 내가 과연 출판인이라고 해도 되나? 조심스러운 마음에 “프리랜서로 이런 저런 일을 해요.”라는 말로만 나를 소개했다. 나는 플랫폼P에 입주하며 비로소 “안녕하세요. 출판 프리랜서 이다혜입니다.”라고 확실한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처럼 공간은 단지 물리적인 세계를 넘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브릿지가 된다. 플랫폼P 입주 계약이 만료되면 홍대 언저리에 직접 사무실을 구해 프리랜서 창작자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을 꾸리고 싶다는 꿈을 꿨다.

 

 

어느날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김현호 센터장의 메일이 도착했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운영예산이 원안 그대로 구의회를 통과하였음에도 구청에 의해 예산이 삭감되었으며, 2023년 신규 입주사 선발 예산이 구청의 구체적 지시에 의해 전액 삭감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마포구청에서 위탁운영 계약 연장 심사를 높은 점수로 통과한 운영 위탁사 보스토크 프레스와의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며 정식 계약 연장이 아닌  90일간 임시 연장에 날인할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운영이 불안정해진 순간이었다. 곧바로 입주사들이 회의를 소집했고, 그렇게 플랫폼P 운영 정상화를 촉구하기 위한 협의체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가 발족됐다.

 

마포구청은 출판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마포구민을 위한 공간으로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랫폼P의 운영 방식을 개정하기 위해서 플랫폼P 운영위원회 회의를 통해 의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플랫폼P 신규 입주사 선발을 유예하고 연장심사대상인 2기 입주사 중 1년 이상 마포구에 거주한 마포구민이 대표인 입주사(14개 입주사 중 2개 입주사만 해당)만 연장심사를 하겠다는 공문을 내렸다. 이후 열린 플랫폼P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운영위원들은 마포구민만 연장 심사 대상이라는 기준은 부당하다고 판단, 의결을 유예했다. 하지만 마포구청은 운영위원이 의결을 유예했다는 이유로 마포구민은 물론 전체 2기 입주사가 연장 심사 대상이 아님을 통보했다. 2023년 7월 1기 입주사는 3년이라는 입주 기한을 채우고 퇴거 예정이었다. 여기에 2기 입주사마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이 공간은 50여 개 입주사 중 3기 입주사 몇 곳만 남아 텅 빈 상태가 될 게 분명했다.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는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운영 정상화를 촉구하기 위해 간담회와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서명 운동을 추진했다. 또한, 북페어 ‘마포 책소동'을 개최하며 플랫폼P가 확실하게 마포구민을 위한 공간임을 각인시켰다.

 

그렇게 7월이 됐다. 

 

 

계약 연장 심사조차 받지 못한 2기 입주사 상당수는 퇴거 통보에 불응 중이다. 1기 입주사 몇 곳은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에 입주한 공간에서 퇴거 한 이후에 플랫폼P 2층 오픈오피스에 등록했다. 

 

우리는 왜 계속해서 플랫폼P에 머무르고 있을까? 공간을 점유하는 게 아니다. 출판문화를 억압하는 행정에 불응하며 우리는 마포구 안에서 출판예술인으로서 계속 목소리를 낼 것임을 존재하며 증명하고 있다. 플랫폼P 운영 정상화 촉구 활동을 하는 동안 와우북페스티벌의 구비 예산이 삭감됐다. 작은도서관 축소 움직임에 반대한 마포중앙도서관장은 파면됐다. 출판의 도시 마포가 출판을 죽이는 도시 마포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마포구청은 4억의 세금을 들여 홍대 길에 빨간 물을 들이고 ‘레드로드 선포식과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이 모호한 축제를 개최하는 데 1억 5천의 예산을 소비했다. 경의선 책숲길을 레드로드 발전소로 만들겠다며 경의선 책숲길에 입주한 출판 창작자들에게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책 문화로 물들었던 경의선 책숲길에 책의 흔적이 하루하루 지워지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은 누가 만들까? 홍대거리는 어떻게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을까? 플랫폼P 운영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단편선 이사장은 홍대의 지역 정체성은 지자체가 아닌 이곳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과 그러한 활동에 반응하는 마포구민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역의 정체성은 지역에서 살아가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이때 행정기관은 이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 맞다. 이러한 기조는 수많은 로컬 지자체의 행정 방향성과도 함께 간다. 청년과 예술인, 크리에이터와 사업가 등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지역에서 문화를 꽃피울 수 있도록 로컬에서는 예산과 행정력을 쏟아 붓고 있다. 마포구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은 지자체다. 이미 예술인과 창작자들이 마포구에서 자생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만 지켜도 충분한데, 어째서 마포구는 자생적인 문화를 키우지는 못할 망정 억압하고 없애는 데 집중하는지 모를 일이다.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가 계속 활동하는 이유는 마포구와 출판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출판 문화가 살아 있는 마포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서대문구와 은평구에서 그리고 관악구에서 경기도 광명과 별내에서도 마포구로 찾아와 출판예술 활동을 한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박의나 작가가 “사랑과 혁명은 동일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며 덧붙였다. “혁명의 시작은 사랑이잖아요. 대상을 사랑해야 혁명을 하죠.” 

 

나는 마포구를 사랑한다. 출판인들 중에는 마포구를 사랑하고 계속 마포구에서 활동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마포구를 가장 덜 사랑하는 사람이 박강수 마포구청장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곳을 사랑한다면 마포의 출판문화를 억압하지 않을테니까.

 

필자 소개

이다혜 / 프리랜서 에디터, 작가, 기획자, 활동가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며 돈을 벌고 작가, 기획자, 활동가로 일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중이다.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를 만들며 같은 이름의 느슨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법>을 썼다. 출판인의 거점 공간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 2기로 입주했다. 최근 플랫폼P 입주사 협의회 2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마포에 출판문화예술을 지키기 위해 어떤 활동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