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향해가는 페이크 : 다이빙라인<단델re:ON>
향해가는 페이크
다이빙라인 <단델re:ON>
글_허영균
re:ON
관람 후의 감상을 적기 위해 한참 후에 책상에 앉았다가 이 공연을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뒤늦게 궁금해하게 되었다. 창작집단 다이빙라인은 2019년을 시작으로 <단델re:ON>을 제외하고도 일곱 편이 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단델re:ON>의 제목을 받아 보고는 한글과 영어를 혼합하여 중의적인 표현을 담아내려는 표기에 재미있는 감상을 품었는데, 이전 작품들에서도 적극적으로 기호를 사용해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떤 동일성이랄까에 반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문구/텍스트지만 기호성을 품고 있는 이들의 제목은 웹에서 무수히 보았으며, 생성하고, 스러진 이미지를 향해가는 어떤 것 같다. 동시에 ‘동시대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아도, 아주 동시대적인, 우리 시대의 것만인 폐쇄된 시간감 또한 느끼게 한다. 작품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꽃 민들레가 제목 속에서 피었다가, 지고, 다시 씨를 날리는 중에도.
이동 또는 동행
공간과 장소를 열린 상태로 두는 이동형 공연은 ‘관객을 이동 시킨다’는 형식과 기능보다 ‘작품 내용에 수용하는 움직임’으로 발전했다. 불과 몇 해 전만해도 이동형 공연은 야외나 축제 등에서 주로 시도 되면서, 관객에게나 공연자에게나 여러 다짐을 받아냈어야 했다. 준비할 것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단델re:ON>시대의 이동형 공연은 그보다 훨씬 유순하다. 공연자의 동선은 관객의 관극을 위한 동선을 유도한다. 관객의 감각은 사방으로 열리고, 움직이며 또 그래야 한다. 작품의 동선을 공연자와 관객이 공유할 때,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공연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 주목하자면 ‘이동형 공연’이란 말은 외려 납작할 지도 모르겠다.
극장 로비에서 예인 옛이슬과의 비밀스러운 만남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때는 대한제국 광무 6년, 서력 1902년이라 하니 120년 전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셈이다. (아! 그래서 이동형 공연인 걸까?) 옛이슬은 어느 날부터 활동사진만 상영할 뿐,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는 극장 우화사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자신이 사랑했던 공간을 여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두기’ 위해 비밀스런 시간을 계획한다. 우화사에서 느끼고 경험한 이슬의 사소로운 행복들이 소개된다. 눈을 감고 듣는 조명기의 소리, 조명 빛의 따사로움… 순간, 시간이 이동하여, 현재가 된다. 무대감독 무세라가 관객을 상대로 극장을 안내한다. 시간의 원심력이 작동한다. 무세라의 극장도 폐관을 앞두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무대감독이기에 더 세심하게 남았을 극장의 곳곳이 안내된다. 자국이 남은 벽, 줄곧 눈길이 가는 조명기, 민들레가 자라는 무대, 그 민들레를 꺾고 싶지 않았던 마음까지.
반복 교차 회전 순환
옛이슬과 무세라가 반복하여 극장 여기 저기에 등장하고, 극장의 물리적이고, 보편적인 설명과 자신의 눈으로 본 극장의 모습들을 교차하며 소개한다. 이어 관객들은 연습실로 안내 받는다. 연습실 내부에는 두 개의 영상이 동시에 나오고 있고, 빈백과 다과가 놓인 여기(현재)가 있으며, 연습실 옆 분장실에서 새어 들어오는 또 다른 여기(다른 현재 - 실재)가 있다. 앞서 극장 내부가 원심력을 지닌 이야기가 120년의 시간을 두고 양립한 공간이었다면, 연습실은 이런 나열과 늘어섬이 대신 여러 이야기가 동시에 흘러내리는 장소다. 반복, 교차, 회전, 순환, 융해가 동시에 시도된다. 관객은 명상을 위해 내면에 집중하듯이, 자신의 의식을 어디에 둘 것인가 계속 인식하면서 자기가 존재할 곳을 찾아내야 한다. 분장실에서 너머오는 배우들과 함께 할 것인가? 영상 속에 양파 키우는 일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이들과 있을 것인가? 아니면 빈백에 늘어져, 탁자 위에 놓인 과자를 까먹으며 존재할 것인가? 의식이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다닌다. 자유로운듯 하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어쩌면 순간적으로 그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한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며 존재의 위치가 바뀔 뿐이다.
왜 관객을 여기에 밀어 넣었는가? 연습실에서 분장실을 거쳐 다시 극장으로 옮겨지는 관객 동선이 <단델re:ON> 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극장과 극장을 사랑하는 내(개인)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관계, 장소(공간)과 개인 사이의 수동적이면서도 순수한 사랑, 그 사랑의 흔적이 100년 뒤에도 남은, 그러나 또 폐관을 앞둔 극장에 대한 로망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너무나 동의하기에, 나 역시 몇 차례나 경험한 일이므로) 이 작품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시간을 접착시키는 방법이었고 그러하겠다는 의지였다.
씨앗 다시 생존
시간을 접착시키는 요소로서의 공간, 이야기를 접착시키는 요소인 극장, 극장을 접착시키는 장치로서의 씨앗이 결국 Re:ON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이슬과 세라는 갖은 방법으로 씨앗을 심지만 계속해서 발아에 실패한다. 쉬었다 해보고 멈췄다 해보고 계속 계속 해보아도 그렇다. 한 해만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씨앗이 조정되어 있어 그렇다. 한 해밖에 살 수 없도록, 순환하고 지속할 수 없도록, 생존의 기한을 정해둔 이는 누구인 것인가? 이 불가해함에 반복적인 커튼콜로 질문한다. ‘커튼콜은 끝이잖아, 우리가 여기서 사라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계획적인 생존의 중단보다 우연적인 생존의 지속이 더 어렵다. 120년을 기다려, 그때와 같은 마음을 지닌 누군가가 무대 바닥 한 지점의 옴폭한 곳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민들레의 re:ON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연을 기다리지 않고, 우연을 설계 할 수는 없을까. 준비된 우연 -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든 이치라 부르든 - 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극장이라는 이름의 불안전한 안전장치에 대한 극이라고, 나는 이 작품을 기억한다.
필자 소개
공연예술작가, 기획자. 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고, NHRB의 프론트맨으로 박재용과 함께 활동 중입니다. 퍼포먼스성을 기반으로하는 여러 창작 활동을 모두 공연의 일부로 보고, 출판과 공연 기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작품 소개
[단델re:ON] 일시 : 2023.11.18 ~ 11.26. 평일 20:00 / 주말 16:00 /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천장산우화극장(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18가길 13) 출연 박이슬, 조세라 작/연출 이수림 구성작가 김은한 무대감독 이효진 공간 디자이너 장성진 조명 디자이너 윤혜린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 영상 디자이너 김예찬 움직임 허윤경 접근성 매니저 이청 CD 박은지 PD 김민수 주최주관 : 이수림 제작 : 다이빙라인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