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8월 레터]이야기는 스스로 넓어져서
안녕하세요, 2장의 싱글 음반을 내고 2번의 공연을 하고, 축제 2개를 마치고 돌아온 엠케이입니다. 엄청 대단하게 일하고 온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 하루 8시간씩 꼬박꼬박 잤습니다. 여전히 2024년의 2/3가 다 갔다는 게 믿기지 않고요. 소나기를 직감하고 음향장비에 비닐을 치러 달려가는 축제 무대감독처럼 시간이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붙들고 앉아 시간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과 달리, 그저 시간이 지나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든 텍스트의 의미를 한참 뒤에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번에 공연을 만들면서 저와 동료는 이주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고, 왜 그 얘길 하고 싶냐는 질문을 주고 받았고, 나고 자란 도시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감각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작품을 돌아보자 불쑥, 이야기가 스스로 넓어져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환대에 대한 작업이라고 믿고 만들었는데 어느새 상호교차성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거든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얘기 역시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프린지살롱의 마담이 되어 다섯 번의 비평회와 한 번의 독립예술집담회를 포함해 12번의 대화 자리를 만들었어요.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언젠가 독자분들께도 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살롱의 마지막 날 호스트로 자원활동가인 인디스트 중 축제비평팀 분들을 모셨어요. 한 주간의 공연 평을 나누다, 공연예술에서 비평이 어떤 의미일까 / 비평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같은 얘길 하다가, 개별 공연이 아닌 축제의 비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같은 주제로 뻗어갔는데, 왜인지 마지막엔 호스트에게 케이크와 함께 상장을 받았습니다. 3주 간의 살롱을 잘 기획하고 운영하면 그대로 끝인 줄 알았는데, 과분하게 멋진 마무리를 선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분은 폐막파티에서도 이어져 인디스트들이 스태프들에게 한 명 한 명 글을 써서 상을 전달했고 저는 또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선보이면 그것에서 만족하곤 했는데, 예술가로서 무언가를 선보이는 것이 사실은 시작이었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기분입니다. 이야기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것이 발표된 이후에도 스스로 넓어지곤 하는 모양입니다. 내가 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닿는 과정에서 의미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돌고 돌아 저에게 돌아오는 걸 한 달 간 체감하였습니다.
인디언밥에서도 그런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커스와 관련된 협업에 제안을 받기도 했고, 축제에 대한 대담을 제의한 동료도 있었어요. <일상공간예술비평:잇몸 잘 쓰기>프로젝트와 연계해 필자님의 글을 기다리는 중인 리뷰도 두 건 쯤 됩니다. 아, 제가 써야하는 글도 몇 편 있군요. 모두 새삼스레 기쁜 일입니다.
독립예술 작품을 비평한다는 것이 가진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독립예술비평이라는 작업을 만들고 발표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요. 멀리서 보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며 넓어지고, 전달되며 확장되고, 비평이 되어 새로 태어나서는,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일이겠죠. 작품이라고 불리는 어떤 이야기의 생애주기를 함께 하는 일이란 얼마나 멋진지요. 그 한살이의 파편이 인디언밥에 보관되어서는 누군가 그 시간만큼 새로운 걸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불쑥 2024년의 2/3가 다 갔다는 게 아깝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이 시간이, 한 해동안 관계맺은 무언가가 제게 어떤 의미를 선물해줄지 기대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또 펑펑 우는 레터를 쓸게요. 저는 더 나누고 넓어지고 싶으니까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