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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남하나가 평면으로 대화하는 법- 남하나 개인전 《몸이 말하려 할 때》 (별관, 2024)

인디언밥관리자 2024. 11. 2. 22:23

남하나가 평면으로 대화하는 법

남하나 개인전 《몸이 말하려 할 때》 (별관, 2024)

 

글. 더블데크웍스(강재영 김솔지)

1. 대화의 방법

‘불나방’. 공연과 축제를 만들어온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담은 이름을 세우고 전시를 열었다. 지난 2월 열린 《몸이 말하려고 할 때》(별관, 2024)는 문화기획자로 더 잘 알려진 불나방이 ‘남하나’라는 이름 아래에 모아두었던, 자신으로부터 발화한 이미지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작가 활동의 신호탄이었다. 

남하나의 작업은 그녀의 엄마가 몸으로 말해버린 것들로부터 시작됐다. 작가는 10여 년 넘게 대형마트에서 근무해 온 엄마의 몸에서 징후를 듣고 보아왔다. 퇴사를 (당)한 엄마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신체의 감각적 고통으로 옮겨가는 것을 가까이서 목격하게 된 그는 ‘몸이 말하는 것’, 그 신호와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는 요가 수련으로 이어져 그의 생활과 생각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게 됐다. 

초등학생 남하나의 시에서 엄마의 손은 “사포”로 묘사된다. 엄마의 눈을 바라보면, 이내 피하고 마는 엄마의 눈에서 엄마의 감정을 읽는다. 엄마가 비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둘 때 남하나의 엄마의 몸은 종종 부었다. 언어로 모두 소화할 수도 정제할 수도 없는 엄마의 감정과 신체적 피로를 그녀의 몸은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엄마 곁의 남하나는 엄마의 몸에서 엄마의 말을 들었다, 엄마의 몸은 그녀가 엄마를 느끼고, 그럼으로써 나의 모태이자, 혈연관계의 타자를 이해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던 듯하다. 

감정장기(one’s heart)(4pieces), 12x12cm, acrylic on canvas, 2024 사진 안부

엄마는 자녀에게도 미처 다 드러내기 어려운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몸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고, 남하나는 엄마가 직접 말하지 않는 많은 정보를 섬세하고 예리한 눈빛으로 엄마를 계속 알아차려 왔다. 그렇게 엄마와 말뿐만 아니라 말 바깥의 몸짓들로 소통해온 그녀는 왜 전시 제목을 ‘말할 때’ 혹은 ‘말한 것’이 아니라 “말하려 할 때”라고 썼을까? 이미 엄마는 말하였고, 자신은 들었다면 말이다. “내 몸이 말하려 할 때”는 몸이 말하려고 하는 그 순간을 강조하는 동시에, 말하는 몸(발신자)의 ‘말’을 듣는 몸(수신자)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누군가의 몸이 말할 수 있다는 것,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남하나는 엄마의 몸을 듣고 그리게 된 작품을 전시장 가득 채우며 이 그림 앞에 선 사람에게 ‘말하려는 몸’을 읽어나가기를 제안한다. 

2. 모래: 몸과의 대화를 기록하고, 대화를 이끄는 매체

그림의 표면은 모래 알갱이에 촉촉이 굳은 물감으로 덮여 있다. 이 표면에 남하나가 심어놓은 몸과 마음이 서로 엉겨 이미지를 이룬다. 남하나는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엄마 몸의 부종, 흔들리는 눈빛, 거칠어진 손 외에도 아직 엄마가 더 말하고 싶은 것, 혹은 말해야 하는 것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엄마와 나 사이에 ‘모래’를 가져온 것일까? 모래는 아픈 몸, 견디는 혈관, 무너지는 발의 표면이 된다. 전시공간 ‘별관’에 모빌처럼 매달린 검은 학을 연결하는 붉은 비즈 너머로, 깊은 눈을 그린 〈심안〉이 보인다. 세상과 몸은 ‘눈’을 사이로 넘나든다. 몸은 눈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띄우고, 세상은 눈으로 들어와 온 몸과 마음으로 흩어진다.  

심안(心眼)(3pieces), 25cm, black sand, acrylic on canvas panel, 2024 사진 안부

〈Mother no.1〉에서 작가는 엄마의 삶을 기록하고 있던 장기들을, ‘무심한 듯 놓치지 않았던 말’과 ‘손으로 쌓은 이미지’에 담아낸다. 서로가 듣고, 가만히 품던 것들이 쌓여서 다른 눈들을 초대한다, 우리는 여기 별관에서 다시금 땅을 딛고, 흘리고, 버텨낸다. 남하나의 그림은 거칠고 두툼한 표면에 감내한 시간을 지니고, 무너지던 아픔은 땅을 디딜 힘으로 바뀐다. 석상의 형태로 묘사된 인간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평온하고 자애로우면서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어 변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원하지 않는 변화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대응하지 못하면 죽는다. 단단함으로 묘사된 석상의 모습은 더 이상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빨간색으로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형상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장 속의 핏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것은 프레스코화를 떠올리게 하는 질감과 종교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치 형태의 외형과 더불어 각각의 도상과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다중적 정동을 만들어낸다. 

(오)Mother no.1, 72.7x90.0cm, black sand, acrylic on wood panel, 2024 (왼) Mother no.2, 72.7x90.0cm, black sand, acrylic on wood panel 2024 사진 안부

작가가 평면에 모래를 가지고 만들어낸 질감은 모래의 거친 느낌이기보다는 포용하는 느낌을 전달한다. 몽글몽글한, 더 감싸 안는 에너지가 모종의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촉각적 경험은 모래알로 이루어진 거친 회화 평면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관람자에게 전이된다. 나무 패널에 정착제를 특정 비율로 섞어 제작한 특수한 평면은 작가가 거친 피부결의 느낌을 내기 위해 수많은 실험 끝에 만들어낸 결과다. 그녀는 수차례에 걸친 재료실험을 통해 판넬 위에 모래가 붙을 수 있는 배합을 찾아냈고, 그 위에 채색을 통해 색과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발색을 찾아내기 위해 또한 오랜 시간을 작품 앞에서 보내야만 한다. 이때 시간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작가의 에너지가 평면에 정착된다. 모래라는 매체가 색상과 형태가 종합된 평면에 지닐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평면 앞에 선 남하나가 쏟는 에너지를 흘려보내지 않고 그대로 응축시키는 모래 평면. 이것이 남하나 회화의 힘이 가진 작용을 배가시킨다.

3. 요가: 몸의 대화를 위한 수행, 그리고 추상회화 방법론

요가는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종의 수련이다. 요가에서 나의 존재와 정신을 외부와 연결시켜주는 것은 바로 촉각이다. 몸은 그 촉각을 수용하는 매체이며, 요가는 이러한 촉각의 균형을 찾아 나라는 존재와 외부 세계와의 균형을 찾게 해주는 수행적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몸이 말하려 할 때》에서 남하나의 회화 작업은 이러한 요가의 수행적 경험이 회화평면으로 옮겨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요가에서 그라운딩은 몸이 지닌 힘을 잘 쓰기 위한 기본 요소 중 하나다. 땅에 발을 온전히 잘 디디는 것, 즉 발의 네 부위가 균형 있게 땅을 딛고 몸을 지지하는 것이다. 작가는 물리적으로 균형을 잡는 그라운딩뿐만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감각하는 방법을 점검하고 설계해나가기로 했다. 별관 출입구 오른쪽을 장식한 〈온전히 땅에 닿는 연습〉과 〈땅을 딛고 서는〉은 작가가 지닌 불안과 욕망의 균형을 찾아 나가는 수행으로써, 몸의 균형을 찾는 과정을 평면으로 옮겨 담았다. 몸과의 대화 시도, 그리고 이 대화를 위한 수행은 평면으로 옮겨지며 대화의 장을 확장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딛는 감각’을 자연스레 연상케 한다. 작가의 수행이 관객의 감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를 이끌어내는 도상은 단연 ‘무드라’이다. 〈사랑의 손짓〉 연작에서 동그란 나무 패널 위에 그려진 손은 ‘무드라’, 즉 불교에서 ‘수인’이라 부르며, 힌두교에서는 무용할 때 손짓을 의미하는 특정한 손 모양이다. 이를테면 〈사랑의 손짓: Kalesvara Mudra〉는 두 엄지를 아래로 맞대고, 두 중지는 위로 맞대어 위로 상승하는 듯한 삼각형의 무드라를 그린 것이다. 여기서 칼레스바라는 ‘시간(Kala)의 군주(esvara)’를 의미하며 삶과 죽음이 달린 시간을 반추하는 의미가 있다. 

사랑의 손짓 : Finger Heart (6pieces), 25cm, black sand, acrylic on wood panel, 2024 사랑의 손짓 : Mudra((6pieces), 25cm, acrylic on wood panel, 2024 사진 안부

〈사랑의 손짓: Yoni Mudra〉에서 요니 무드라는 ‘자궁’을 의미한다. 생명과 권력의 문제를 상징하는 이 손동작의 모양은 마치 실제 장기의 모양을 모사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무드라는 추상적으로 묘사된 에너지 안에서 관객과 평면을 직접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관람객은 이 지점에서 자신의 손과 그림 속 손을 유비하며 회화 평면을 더욱 촉각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무드라는 신화적 신비함을 이야기로 담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요니 무드라는 힌두교의 여성 여신 샤크티(Shakti)에게 바쳐진 것이라 알려져 있다. 작가가 작업에서 요가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처럼 요가에 담겨진 신화적 요소가 여성 신체와 유비되며 그 자체로 자연스레 ‘신비함’과 ‘감정 장기’라는 작가 고유의 관심사를 담아내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평면에 에너지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또 하나 특별한 것은 몸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보통 우리는 몸을 사용하는 대상, 그리고 몸을 사용해서 얻어지는 외적인 결과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평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평면 위에 내가 어떤 대상을 그릴 것이냐가 작업 구상에 가장 앞에 오는 경우가 많다. 남하나의 작업은 다르다. 에너지를 쓴다는 관점이 아니라 에너지 자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느끼고, 이를 전달하는 데에 더 초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하나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일반적 회화 평면이 가진 광택, 마감, 혹은 마티에르와 같은 마주하는 경험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앞)부유하는 머리들(3pieces), dimensions variable, plastic, thread, pendulum, 2024 (뒤)소마(soma), 97x145.5cm, acrylic on wood panel, 2024 사진 안부

작가의 작업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상징과 추상 요소로 구성되어 가고 있다. 바로 삶을 살아가며 만들어진 이야기, 경험이 담겨있던 구체적 도상들은 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도상으로 변모하고, 그러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이 각자 자신의 외면과 내면에 품은 에너지를 평면 위에 투사하고 비교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남하나는 평면에 에너지를 담는다. 점, 선, 면과 모래알로 만든 거친 표면에 그린 도상들이 추상적 요소와 겹치며 에너지가 된다. 이 에너지는 대화의 상대로부터 받은 힘의 강도와 의미를 요가 수행을 통해 소화시키고 이 대화의 결과를 모래를 개고 포갠 추상 회화를 통해 기록한 후, 이 이미지 앞에 선 타자에게 몸의 대화를 제시하며 몸짓의 대화를 이끈다. Ⓓ

 

[필자소개]

더블데크웍스 double deck works 

미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시각예술의 사회과의 연관성을 다방면으로 모색하는 김솔지와 미술기자, 시각예술 큐레이터로 일하는 강재영이 2018년에 공동 설립한 예술기획사입니다. 더블데크웍스는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처럼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이들이 위계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율적이며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합니다. 협업 구조를 기본으로, 전시기획, 출판, 시각예술 아카이브, 연구 등을 진행합니다.

 

[작품소개]





남하나 개인전 @mariposa_xax
《몸이 말하려고 할 때》

일시 :  2024.02.16. - 03.03.
       13:00 - 20:00pm (전시 중 휴관없음)
장소 : 별관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74, 2층)

글 : 김연임 @yunim_kim
사운드 : 호와호 @howaho_official
사진 : 안부 @from_anbuh_to

Special Thanks To
: 안정희, 최상기, 오로빈&배윤정(해남의 아침 커피로스터리)&안젤라&윤수, 강정아, 정혜진, 안현준, 조캐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