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일단 모여서 말해보자면: 컨템포러리 서커스 집담회 -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나타난 환경의 의미
일단 모여서 말해보자면
컨템포러리 서커스 집담회 -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나타난 환경의 의미
글_김민수
혼란한 하루였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든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 들어서자마자 강아지가 세차게 짖어댔다든지, 집담회 장소라고 들었던 다목적실을 찾지 못했다든지, 알고 보니 연습실에서 진행한다는 걸 알아냈는데 이상한 문으로 들어갔다든지. 하여튼 혼란한 하루였다. 새삼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에 기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쉬운 길이지만 지도 앱에, 버스정류장의 노선표에, 누군가 보내준 문자에,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서야 나는 제때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정표가 없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이번 컨템포러리 서커스 집담회는 프로듀서그룹 도트의 컨템포러리 마이스터라는 팀에서 서커스 연구 사업을 해온 최봉민 PD와 최근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나타난 환경의 의미>라는 논문을 발표한 공연학자 손옥주를 중심으로, 최근 활발히 창작을 이어가고 있는 서커스 예술 단체들이 모인 첫 자리였다. 현대무용 등 타 인접 장르와 달리 학계에서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서커스를 연구 주제로 삼는 시도가 거의 없는 상황이 이 집담회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곧 이정표 없는 길 가운데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논문 작성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대부분 해외 학자들의 문헌이었다는 말은 창작자들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얘기였다.
손옥주의 논문은 장르로서 ‘컨템포러리 서커스’가 프랑스에서 본격화될 때 이를 추동시킨 사회적 문화적 맥락으로서 배경을 ‘환경적 요인’으로 짚고, 특히 퍼포머와 퍼포머, 퍼포머와 오브제, 오브제와 오브제, 작품 내부와 관객 등 서로의 ‘타자성’에 집중하여 그들이 서로에게 ‘환경으로서’ 작용하는 양상에 집중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집담회는 혼란한 길에 다시 오르는데, 그것은 예술가들에게 전달된 질문이 “창작 환경에서의 환경을 각자 어떻게 이해하고 발현하고 있는지”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논문의 소재가 된 64J의 <목림삼>이 숲을 되살리는 서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간 서커스살롱을 운영하는 서상현은 ‘환경’이라는 말을 ‘자연’으로 인식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연환경을 주제로 한 공연 창작을 제안받고 <합!?>을 만들게 된 이야기와 서커스 도구를 재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언급했다. 반대로 코드세시의 권해원은 자신이 밟아온 예술교육 과정을 돌이켜보며 국내 서커스씬의 척박한 ‘창작 생태계’에 대해 얘기했다. 화이트큐브프로젝트의 정성태 역시 기후위기 시대의 창작자로서 ‘자연’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고, 이어서 신진 예술가들을 서커스 신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에 대한 ‘창작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컨컨의 김준봉 역시 공연을 만들며 생기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말하며 전반적으로 어떤 환경에 관해 얘기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같은 어려움을 나누는 자리라면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전될 것이고, 다른 시선을 공유하는 시간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논의를 펼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무엇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인지 정리되지 않은 채로 여러 경험이 공유되고 있던 것이다.
그제야 새삼 국내 서커스계 내에서 이런 자리가 얼마나 있었는지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가 9년 전 개관해 <서커스점핑업> 등의 교육 사업과 지원사업 시스템을 만들어왔고, 많은 거리예술축제에서 서커스를 중점적으로 프로그래밍하고 있지만, 장르적 담론의 장은 서커스 예술가보다 거리예술 창작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컨템포러리 서커스계가 전통연희로부터 맥락을 이어 발전한 것도 아니고, 흔히 천막 극장이라고 불리던, 6-80년대 일본으로부터 영향받으며 만들어진 근대서커스의 연장선상에서 구성된 것도 아닌, 과거와의 단절과 유럽 서커스의 수입으로 시작되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코드세시의 권해원은 해외에 비해 교육 시설들이 미비하다며 대부분의 서커스 예술가가 연극이나 무용을 기반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을 했고, 화이트큐브프로젝트의 정성태 역시 새로운 인물을 서커스신 안으로 끌어들이고 함께 성장해 가는 순환 체계 없이는 장래가 어둡다고 발언하였다.
뭉쳐지지 않는 이야기들 가운데 불쑥 솟아나는 질문은 “우리가 컨템포러리 서커스를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볼 것인가”였다. 아무도 그 질문을 받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오갔고, 이는 서커스씬의 창작자와 연구자, 비평가들의 마음속에 그 화두가 늘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커스는 리스크(Risk)”라는 시선에 덧대어 그 역치를 어떻게 관객에게 설정하고 넘어서는 장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 위험성을 의미상으로 재정의하고 실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기예를 통한 엔터테인먼트를 요구하는 유통 구조에 대한 한계가 지적되었다. 그 가운데 손옥주는 그동안 무용계를 중심으로 적극 수용되어온 컨템포러리라는 용어가 서커스의 맥락 안에서는 무용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일종의 아이러니로 포착된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컨템포러리 서커스에서 실험되는 기예의 해체는 대개의 경우 기예의 숙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서커스계에서의 동시대성은 숙련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다음의 단계로서 기예의 해체를 제시하는 고유성을 갖고 있었다. 이는 무용이나 거리예술의 하위장르가 아닌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어느 정도의 숙련도가 서커스를 서커스답게 만드는지, 반대로 그런 시선이 서커스를 비장애인 중에서도 고도로 훈련된 몸에서만 구현한 것으로 가능성을 좁히는 것은 아닌지 같은 논쟁 역시 인상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ANWYZkZT8
2시간동안 진행된 집담회 시간동안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세 명은 집담회에 집중하면서도 논문을 흘끔거리며 이번 집담회가 다루고자 했던 환경의 의미에 대해 찾곤 했다. 환경으로서 타자와 관계 맺는 서커스적 양상을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빌어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떤 길을 닦아놓고 그 위를 걷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역사적인 단절과 비평·연구의 부재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 자리가 시작되었고, 이는 길을 깔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일단 모여서 말해보는 것”은 이제 시작되었다.
필자 소개
김민수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인디언밥, 민수민정, 김선율과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기보다 침묵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데에 더 관심을 두고, 작고 여린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품 소개
컨템포러리 서커스 집담회 -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나타난 환경의 의미
일시 : 2024. 9. 24(화) 11:00-13:00 장소 :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연습실 주최/주관 : 프로듀서그룹 도트 컨템포러리 마이스터 협력 :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후원 :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참여자 : 최봉민(프로듀서그룹 도트), 손옥주(공연학자), 박상현, 최영미(64줄), 서상현(공연창작집단 사람), 권해원(코드세시), 정성태(화이트큐브프로젝트), 김준봉(컨컨), 김민수, 남하나, 채민(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