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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2월 사이 레터] '잘'하진 못하지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 것입니다.

인디언밥관리자 2024. 12. 14. 13:00

11월 레터를 거의 반 이상을 쓰고 게재하지 못했어요. 11월 레터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잘 ’하진 못해도 하고 있다는, 살아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살았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가?’이라는 자문해 보게 되네요. 연말은 회고의 시간이라고 하잖아요.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 그럼에도 일을 잘하는 것 또 다른 문제 같았어요.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과연 ‘잘’하는 게 뭘까"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나 더하게 되었어요. 나름 문화예술 분야의 생리도 아는 것 같고 이런저런 일로 일력도 쌓이게 되니 주어진 일에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들은 더 잘해야 하고 새로운 일은 버벅거리면서 해야 하고 (인간이 만능일 순 없지만) 동시다발적인 일 가운데 프로젝트마다의 집중력과 애정의 안배도 해야 하는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아주 단순한 결론을 내려봅니다. 답정너와 같은 이야기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낄 수 있으나 '잘'하는 건 모르겠으나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라는 것에 조금 마음의 무게를 더해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건강과 마음을 조금 덜 다치면서 여전히 자신의 작업, 주변부를 챙기면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애정과 응원을 보내봅니다. 

여기서 잠깐, 인디언밥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매체라면 해야 하는 것들을 아주 느리고 천천히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때로는 댓글로, 직접적으로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잘 듣고 반성도 하지만 크게 반박하진 않습니다. 새해에는 피드백을 잘 들어 개편도 다시 고민하고 분발도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조금 쉬기도 하고 점검도 하겠습니다. 잘하는 건 여전히 안 될 것 같지만 소홀하진 않겠습니다. 가늘고 길게 하겠습니다. 편집위가 지쳐 떨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분발할 때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바라봐주시고 때로는 따끔한 말로 말씀도 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것도 알기에 조금 더 새해에는 조금 더 분발하겠습니다. 장황한 말을 이어 요즘 제가 주변부를 관찰했던 이야기를 안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발의 첫 움직임으로는 역시 공연과 전시를 관람이지 않을까요. 왜 늘 보고싶은 공연은 가장 바쁠 때 비슷한 시기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약간의 틈을 노려 1-2주 동안 몰아치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대형전시와  작은 단위의 공연까지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더불어 보고 싶은 공연들도 몇개 소개하려고 해요. 

광주비엔날레 : 판(소리)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

매해 광주를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동료의 부름도 있었고 전시 관람을 하기 위해서 등 여러 이유가 광주는 유일하게 익숙한 지역입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니콜라 부리요 감독이 선임되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간을 아우르는 소리, 역사와 사회, 고통과 용기가 서려 있는 동시대의 주요 쟁점들을 한국의 '판소리'와 연결 짓겠다는 계획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저는 시간상 본관 전시만 보았습니다. 막차를 타는 처지에서 많은 이야기를 접하고 간 터라 어쩌면 기대(?)했던 한국적 판소리에 대한 변주 혹은 조금 더 직접적인 것들을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비엔날레는 담담하게 그리고 건조하게 동시대의 문제점을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부딪히고 겹치고 울리는 소리의 운동성을 활용한 부문 구성과 광활하게 펼쳐진 작품들 사이에서 과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알기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파빌리온을 방문하지 못해 그곳에 경험했다면 생각이 변했을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시각예술 작품에 있어 소재, 매체의 흥미를 느꼈던 작품들은 여전히 저를 매혹시켰으며 공간을 가로질러 많은 관람객이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전시 전경  사진 : 불나방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프로젝트 <메모리아> 관람 : 하나의 소리가 가진 역사성

이어서 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다원예술 프로젝트에서 영화 상영회에 다녀왔습니다. 아핏차퐁 감독의 <메모리아>.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갑작스럽게 주인공에게 들려오는 '쿵' 소리 그 소리가 주인공 삶에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사람에게만 들리는 소리리, 그 소리에 의문을 가진 주인공이 다양한 장소를 넘나들며 소리의 근원을 추적하는 긴 여정의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대부분 롱테이크로 로 구성되는데, 이미지 사이를 파고드는 ‘소리’에 모두가 집중하게 되는 구성입니다. 조금은 지루하다 느낄 수 있지만 몇몇 씬에서 깊은 잔상들이 뇌리에 오래 남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소리에도 역사와 시간 그리고 미래가 담겨있다. 누구든 그것을 기억하는 데 의의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를 내포했던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 우주선의 등장이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의 지금은 과거의 어제이며 미래의 내일을 의미하는 공명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이고 시적인 영화로 읽히기도 합니다.

영화와 비엔날레를 통해서 ‘소리’가 가진 힘과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저는 소리가 가진 음과 멜로디, 소음 외에도 ‘진동’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울림, 그것이 몸을 경험하게 하고 다른 감각들을 깨우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보고 있는 지점이에요. 이번 전시와 영화에서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또 언젠가는 만나게 되지 않겠느냐는 약간의 기대를 해봅니다. 

영화 <메모리아> 스틸컷 중 한 장면

 

독립예술 : 자문하는 독립, 어떤 독립? 

공연 작업을 조금 덜 해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끌림의 법칙’이랄까요. 진정성 있는 작품을 하는 몇몇 창작자들과 만남은 늘 배움과 설렘이 있는데요. 역시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하고 싶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좋은 기회로 다장르의 경험하고 있습니다. 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공연은 많은 이들이 모여 협력과 협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기에 많은 이들의 목소리와 생각이 모여야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일렉트로닉 듀오 그룹 호와호 : 코로나 이후 무력했던 지난날,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자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EP 파고를 시작으로 새로운 신곡과 함께 단독공연 <물, 해, 말>을 무대륙에서 선보였습니다. 동료들인 영상작가 정혜진, 시각 작가이자 퍼포먼스인 봄로야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영상, 퍼포먼스를 어우르며 물처럼, 해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자 예술가의 삶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자 했습니다. (홍보팀으로서 준비된 언어) 호와호의 작업에 있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보이지 않은 끈끈함 같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알게 모르게 느끼는 안정감이 저 스스로를 더욱이 분발하게 했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호와호가 지향하는 방향성인 서로를 끌어안고 살아가기, 지치고 힘든 나날들 속에서도 여기 있음을 말하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연대를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어 매진을 치면서 잘 마무리했습니다. 지원금에 기대지 않고 준비가 되었을 때 부단한 연습과 노력이 만들어진 이번 공연은 예술가를 사랑하는 법, 음악이 가진 에너지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호와호 단독공연 <물,해,말> 포스터 일부 디자인 : 정혜진

돌봄노동의 선 3명의 여자 이야기 : 다른몸들의 시민연극  <아이돈케어 I don't care> 

코로나 때 가장 화두가 되었던 '돌봄', 시대가 호명하는 언어로서의 돌봄이 사회 전반 인식에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많은 것이 '돌봄'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돌봄 노동자'들이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다른 몸들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돌봄 노동자 생애사 쓰기 모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 사실적인 이야기를 펼친다고 합니다. 중년의 여성들이 가장 많이 분포된 요양보호사. 이들의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황하게 11월과 12월 사이의 이야기를 펼쳐보았는데요, 지난 시간을 톺아보면서 저는 두 개의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목소리' 그리고 '돌봄'입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한 개인의 무지함과 국가로부터의 위협과 고통 가운데 왜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인지, 여의도에 수십, 수백, 수천의 사람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소리가 가진 힘을 다시금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기나긴 싸움 그리고 한 개인, 시민으로서 삶을 잘 살기 위해 나를 지키는 것. 나를 돌보고 서로를 돌봐야겠다는 것입니다.


2024.12.07 여의도 광장 앞 사진 : 불나방

2024.12.07 여의도 광장 앞 사진 : 불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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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 불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