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되는 오류, 관망의 자세_ 2021 인디포럼 기획전 <인디나우 2: 기억의 업데이트>

2021. 11. 19. 14:26Review

 

 

 

영화되는 오류, 관망의 자세

 

2021 인디포럼 기획전 <인디나우 2 : 기억의 업데이트> 리뷰

 

 글_정혜진

 

*본 텍스트는 인디포럼 기획전 <인디나우 2 : 기억의 업데이트>의 <Honest John>, <자기공명무분간공상여행>, <You can never go home again>을 중심으로 작성한 리뷰 기고글입니다.

 

스스로가 기억하는 하나의 사건을 먼지 한 올까지 묘사해 본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의 장면을 서술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장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묘사는 소설이 되고, 그것은 이미 실체를 잊는다. 기억은 단기기억이 반복적으로 복기 되면서 장기기억화 되는 것을 일컫는다. 기억은 강렬할수록 반복되며, 반복될수록 오류를 범하고, 그렇기에 강렬한 기억일수록 온전하지 못하고 오류투성이일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저장하고자 하는 열망, 강렬한 기억을 양분 삼은 형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저변의 이유일지 모른다. 그것의 의미가 시간의 연장, 정량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하자고 하는 것에 있다면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는 현시대의 기억법은 이상적인 대안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데이터화된 시간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기억 사이 시간의 형태와 무게에 차이가 벌어지며 결과적으로 시간의 정량화에 대한 새로운 계산법이 필요해진다. 결국 우리가 기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정확성이란 생각만큼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시간을 공유하는 기억은 흐릿한 시야와 털끝에 남아 있는 경험적 기억이 비로소 중력을 가지는 시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박스 씨어터라는 공간이 주는 경험은 기억을 생성한다. 몇 차례의 경험에도 매번 낯선 공공의 검정 상자 안에 자의로 갇혀 편한 자세를 찾아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상영의 시작을 기다리는 시간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이내 영화의 시작을 위해 더더욱 어둠으로 가는 찰나의 시간을 경험한다. 문득 영화관이 익숙한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스치며 <인디나우 2 : 기억의 업데이트>가 상영되었다. 6편의 영화를 엮은 <인디나우 2 : 기억의 업데이트>는 흐르듯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유기적이며 단편적으로 영사되었다. 기억의 오류가 만들어 내는 잔상, 기억의 재조합, 실제와 가상 사이 기억이라는 프레임으로 엮어진 잔존, 데이터화된 기억의 재가공 등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만큼이나 시간의 공유가 중요하다는 지점에서 절대적인 공간과 시간 안에 관람해야 하는 당위성이 존재하는 섹션이었다. 6편의 각기 다른 러닝타임의 영화를 보는 동안 그와는 상관없이 머무르지 않는 시간도 있었고 무겁게 내려앉은 시간도 있었다. 논리적 판단이 제거된 상태의 사고, 바로 몽상과 같은 형식으로 전체 섹션의 러닝타임이 흘러갔다. 기억 속 <기억의 업데이트> 섹션을 문자로 표현해 보자면 이런 식이다.

 

You 무제 심리테스트 

home again 공명 상실

Honest 자기 never John 홈비디오 

무분간 can never 공상여행 go 

 

위는 6편의 영화 제목을 무작위로 섞어 놓은 텍스트다. 각각의 이미지가 부딪히다 굴절되어 맺힌 상, 새로운 하나의 덩어리진 의미를 만들었다. 더 이상 상황적 맥락은 중요하지 않은 영화들의 교류로서 이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자가 아닐까 싶다. 왜곡된 기억을 이용해 매끈하게 만들어진 영화는 결국 완벽한 오류일 수밖에 없다. 영화의 이러한 오류들이 경험적 기억을 만드는 핵심적 요소라고 한다면, 현시대의 노련한 기억장치들은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는다. 

 

현시대의 기억장치들, SNS라던가 핸드폰 디바이스를 기반으로 한 무수한 플랫폼들의 시야각은 점점 더 좁고 얕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빠르고 강렬하게 포착되어야 하기에 피사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강조된다. 주인공만이 존재하는 이미지의 시야각 밖, 조연들의 세상을 유추해 내지 못하기에 시간을 갖고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공명무분간공상여행>은 대단히 깊은 심도의 제한적인 프레임을 제공한다. 영화는 자기 공명 영상(MRI) 촬영의 갇힌 감각을 재현하는데, 공상의 오락성과 하나의 초점을 무한으로 늘려 보는 시청각적 쾌락경험을 전달한다. 그것은 MRI 스캐너와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 등 물질적 매체를 통해 더욱더 층층이 깊숙하게 빠져드는 경험의 당위를 획득한다. 사실 공명은 애초에 외부자극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움직임, 울림, 에너지인데 자기 공명은 나와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명의 결과로 어쩌면 동시대 미디어의 속성을 가장 뚜렷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사진1. 김찬민 감독의 <자기공명무분간공상여행> / 출처_인디포럼 홈페이지

 

공명하는 자기기록에 대한 욕구와 같은 비가시적인 강렬한 감각적 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은 자주 서사를 벗어난 오류적 이미지들로 발현된다. 대개 인상적 경험은 그러한 비논리적 충돌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건과 사실을 막론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고에서 사유로 이동시키는 오류가 필요해진다. 결국 영화는 형상의 고의적 실수이며, 굴절이다. 시각적 상만 남은 현존은 오롯할 수 없기에 어떤 기록 픽셀도 온전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모든 영화는 굴절이다. 우리는 시각화할 수 없는 것들을 시각화하고, 조금 더 왜곡하면서 굴절된 현실을 통해 더 중요한 것들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결국 가공된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에 있다. 발굴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은폐된 사실(이라고 알려진)을 영화화하는 방법으로 실체없음의 형상을 표현한 <Honest John>은 춘천 미군기지에 존재했다는 핵무기 ‘어네스트 존’과 그와 관련된 사고들1에 대한 허공의 감각을 남긴다. 하나의 사실을 시작으로 기억을 생성하고 집필하며 애초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의 유해 성분을 가시화한다. 땅속에 묻힌 진실에 대한 증언의 목소리 보다 이러한 몽상적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을 선택한 영화는 이해하기보다 경험할 것을 제안한다.

 

사진2. 장우진 감독의 <Honest John> / 출처_인디포럼 홈페이지

 

6편의 영화들은 계속해서 보는 것과 읽는 것 사이에서 그저 바라보라고 이야기한다. 자세로 치자면 턱을 괴고 상체를 뒤로 젖힌 관망의 자세다. 감독의 오류적 이미지를 바라보는 관객은 헤매고 벗어나면서 시간을 감각한다. 여기에는 기억을 저장하고, 복기하고, 재편성하는 일 그대로를 영화 제작의 형식으로 가져와 만든 영화가 포함된다. <You can never go home again>은 모든 영상 저장 데이터를 34분에 걸쳐 집대성해 놓았다. <자기공명무분간공상여행>과 <Honest John>이 나의 경험적 기억에 대한 묘사라면, <You can never go home again>은 의도적으로 의도를 제거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한발자국 빠져나와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꿈은 램수면 상태-어떤 사건의 이성적, 논리적 분별을 할 수 없는-에서 일어나는 사고(思考)라고 할 때 영화는 그러한 꿈의 원리대로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자르고 붙이는 듯 보인다. 그래서 사건의 맥락은 들쭉날쭉하고 사운드는 싱크가 맞지 않고 유기적이지도 않다. 무분별한 데이터는 왜곡된 감각과 형상으로 발현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데이터가 꿈의 저장, 꿈의 시각화 자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영화적 기억법에 대한 현상 자체를 구현하여 보여주는 실험으로서 가치가 있었다. 특히 이 기억영상은 화자가 영화를 만드는 이이기에 영화 만들기의 과정이 주로 담기는데 그 또한 영화가 기억의 재편성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사진3. 정석주 감독의 <You can never go home again> / 출처_인디포럼 홈페이지

 

우리는 현실의 있는 그대로를 뇌를 데이터화해 저장하듯 다양한 매체의 기억 저장술을 이용해 기억을 담기 위해 더욱 많은 용량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자본주의 권력 안에 속박된다. 하지만 중력을 가진 기억하기를 위해서는 반듯이 망각 능력이 동반된다. 망각이 공존할 때에야 비로소 사이사이 프레임을 빼고 재편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영화는 ‘인간의 사실적 경험을 확장하고 제고하고 집중시켜주는 예술’이라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2의 정의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인간을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근본적 가치에 대한 영화적 오류들이 멈추지 않기를.

 

1. 춘천 미군기지 ‘캠프 페이지’에서 고엽제를 폐기했으며, 핵무기 기지였던 캠프 페이지에서 1972년 핵무기 사고를 겪었다는 전역 주한미군의 증언이 나왔다. (관련기사: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69)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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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러시아의 영화 감독. 대표작으로는 《솔라리스》, 《노스텔지어》, 《희생》 등이 있다.

 

필자소개

정혜진_미디어 작가이자 독립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흔히 생성되는 타자성에 대해 질문하며 존재 가능한 미래적 공동체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가치들에 주목하여 미시적 관점에서 현상을 기록하고자 하고 있다.

 

 


 

 

<인디포럼2021>

일시 2021년 9월 30일 - 10월 4일 (5일간)

장소 메가박스 성수

25주년을 맞은 올해 #인디포럼2021 의 모토는 ‘다른 곶’입니다. ‘곶’은 바다 쪽을 향해 뻗은 육지를 의미하는 동시에 제주 방언으로 나무가 무성한 숲을 뜻합니다. 독립영화의 새로운 영토와 새로운 숲을 상상하는 인디포럼영화제는 타협하지 않는 독립영화의 정신과 실험을 이어갑니다.

기획전 : 인디나우 _ 동시대 한국 독립영화의 현상과 증후를 짚어내는 섹션. 비평적, 주제적, 미학적 지평에서 실험성과 진취성을 보여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기획전

출처 : 인디포럼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