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nbob(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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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3월 레터]오겡끼데스카 와타시도 네 꿈을 꿔
"오겡끼데스카(잘 지내시나요)?" 인디언밥 레터가 말 그대로 편지라는 것을 종종 까먹곤 하지만, 이번 레터는 괜히 새삼스러운 기분입니다. 영화와 를 보고, 일본 훗카이도의 작은 도시 오타루에 다녀와서 쓰는 레터거든요. 두 영화 모두 편지를 통해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이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데, 영화 속 대사인 “오겡끼데스카, 와타시와 겡끼데스(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와 “추신, 나도 네 꿈을 꿔”를 섞어서 제목을 지어보았습니다. 이를 빌어 멀리의 독자분들께 안부를 묻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겨울에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겨울이란 농한기의 배고픔을 견디는 시간이거나, 긴 밤의 지루함을 버티는 시간이어야하는데, 대신 그만큼 빈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채..
2023.03.04 -
[기고] 기꺼이, 시끄럽기를 선택한 극장 : 삼일로창고극장 기획사업 ‘창고포럼’
기꺼이, 시끄럽기를 선택한 극장 삼일로창고극장 기획사업 ‘창고포럼’ 임현진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삼일로창고극장은 참 오래된 극장이다.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기억과 이야기를 쌓아왔다. 올해의 기획사업 ‘창고개방’에서는 삼일로창고극장을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며 ‘불사조’를 극장의 마스코트로 삼기도 했다. 민간과 공공이 함께 운영하는 극장이 되기까지 여러 변곡점을 거치며 재개관을 여러 번 거듭해왔다는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을까. 극장을 매번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올해의 ‘창고포럼’은 극장의 힘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한 대화의 자리를 열었다. 극장의 사람들은 극장을 참 사랑한다. 맹목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극장을 생각하고, 극장에 대한 꿈을 꾸고, 극장에 대..
2023.01.19 -
[리뷰]못 보낸 편지_민들레에게: 민수민정 <방안의 맘모스>
못 보낸 편지_민들레에게 민수민정 글_자림 당신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을 열면, 꼭 당신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차마 손을 뻗기도 전에, 나는 그것을 예감했습니다. 이상하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로 당신을 둘러싼 소문들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 난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요. 기묘하게도, 내가 밟고 서 있는 이곳이 당신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만 같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는 '맘모스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던 청주 중앙시장 상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시다. 1970년대 구 청주역 인근의 집창..
2023.01.08 -
[인디언밥 12월 레터]우린 아직 알 수 없지만
12월입니다. 어떻게 한 해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잘 지내셨나요? 지난 한 달 간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년 간의 인사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레터를 적고 있는 이 카페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해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할 나이는 아니지만, 연말의 즐거움이란 이런 뜻 모를 기대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디언밥은 지난 한 해 동안 26편의 글을 발행했더라고요. 지원사업을 통해 재원을 마련했던 작년보다는 적지만 선방한 한 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론 꼭 다루고 싶었던 장르를 기록할 수 있어 기뻤고, 새로운 필자님들과 연을 맺기도, 기고문을 제안받아 지면을 내어드릴 수도 있어 뿌듯했습니다. 아, 레터를 꾸준히 쓴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었어요. 1년에 한 번 ..
2022.12.24 -
[리뷰]헝거스톤, 눈물이 맺힌 렌즈 사이로: 콜렉티브 뒹굴 <꿈의 방주:Hunger Stone>
헝거스톤, 눈물이 맺힌 렌즈 사이로 콜렉티브 뒹굴 글_윤석 9월 24일을 하루 앞두고 본 연극 헝거스톤은 내가 삼 년에 걸쳐 열심히 잠재워놓은 어떤 심기를 심히 거슬렀다. 다음날 전국에서 3만 5,000명이 모인 924기후정의행진 사이에서 그 마음을 살펴야 했다. 답을 찾아서 열심히도 걸었다. 헝거스톤은 일종의 사기극이다. 팜플렛에 적혀있는 수 명의 배우들은 온데간데없고, 객석 안내자(지나고 보니 연기를 하던) 김정은 배우 혼자 독백을 이어가더니 마지막에는 춤도 추고 랩도 하며 짱 멋있게 퇴장한다. 허탕하고 충격에 휩싸인 채 나오는 길에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성지수 연출가가 “오보요. 오보.”하며 정정된 다른 팜플렛을 쥐여준다. 고양이가 그려진 짱아찌도 줘서 잘 먹었다. 같이 본 친구는 끝날 때까지 연극..
2022.12.18 -
[리뷰]존재론적 회색지대를 마주할 때: 오헬렌, <Recording Room Concert>
존재론적 회색지대를 마주할 때 오헬렌 글_전대한 ‘음악 작품’이란 무엇일까? 혹은 우리는 ‘음악 작품’이라는 표현을 통해 무엇을 지칭하는가? 이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 것만 같아서, 왠지 바보 같아 보이는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연히 그 답은 ‘지금 들려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러한 답변에도 여전히 동일한 물음이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 들려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에 대한 전통적인 답변은 ‘연주’일 것이다. 라이브로 연주되어 실시간으로 청자에게 생생하게 포착되는 소리 사건과 음악 작품을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어떤 곡의 연주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수차례 시도된 연주(들) 중에서 음악가 스스로 가장 완전하다..
2022.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