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천한마당축제1-나의 취향

강말금의 2009 과천한마당축제 공연 보기 1


나의 취향


<4호선 지하철에서>


8월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인디언밥의 잠재적인 필자가 되어, 다섯시나 여덟시가 되면 반사적으로 홍대에 나갔다. 낮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곤 하면서 뜨거운 여름이 지났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고심 끝에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을 때, 어느 한 단위의 시간이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작은 UPGRADE.
그래서 참 고마웠다. 다양한 공연을 보고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만도 충분히 좋은데, 글로 칭찬까지 받았을 땐 기분 최고였다. 신인은 칭찬 먹고 산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날라다니고 있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과천 축제 글 제의였는데 이번엔 고료도 있었다.

캬, 돈 받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9월 24, 25, 26, 27일 오이도행 지하철을 타게 됐다. 축제기간 중 8개의 공연을 끝까지 보았고 2개의 공연을 우연히 만났고 2개의 공연을 보다가 포기했다. 내가 끝까지 지켜본 공연을 본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앨리스 프로젝트  -공연창작집단 뛰다

으라차! Eita! - 스페인의 자히르 씨르코

육체 Flesh - 프랑스의 오스모시스

아코디언 서커스 Le P'tit cirque a Bretelles - 프랑스의 드 리앙 메르씨

웨딩패키지 - 앨리스 김

백일몽 Daydreaming - 프랑스, 이스라엘의 키르카스 가야

목적지 없는 여행 Destination nulle part - 스페인의 이 판

비상 Voala - 아르헨티나의 보알라

마지막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역시 한 단위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거리극 축제를 이렇게 밀도 있게 누리기는 처음이었다. 과천은 사람 살기 좋은 평평한 도시였고, 곳곳에서 음악과 춤이 출몰했다. 주행사장이었던 너른 잔디도 좋은 공간이었지만 도시 구석구석의 노는 땅 - 세모마당, 별양동 쉼터 등이 공연장으로 변모하는 순간이 무엇보다 좋았다. 내가 본 것 대부분이 외국인의 서커스 공연이었다. 현란한 기술도 감탄스러웠지만, 분명한 캐릭터 대조, 음악과 움직임의 조화가 무엇보다 좋았다. 그런 경지는 인생을 두고 한 공부로 얻어낸 것일 것이다. 그분들의 공연을 보고 나서, 나도 이제부턴 아코디언을 미친 듯이 연마하리라, 삼 년 후쯤에는 나도, 그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공들여 만든 옷을 대수롭지 않게 입고, 거리로 나가리라, 꿈꾸곤 했다. 그리고,

어떤 공연을 보고서는 마음이 괴롭기도 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속이 시끄러웠다. 유난히 일정이 겹쳐 몹시 바쁘고 지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같이 어떤 속도의 시간을 살았다. 마지막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이제 환승은 끝.
내일부터는 다른 모드에 놓이겠지.

요청받은 네 편의 글을 써야할 텐데, 어떤 공연에 대해 어떤 글을 쓰게 될까?


<거리에서, 식탁에서, 책상 앞에서>

내가 주로 읽게 되는 감상에 대한 글은 주로 영화평론이다. 영화는 누구나 평할 수 있을 만큼 친숙하고, 영화잡지는 지하철에서도 살 수 있으니까. 읽다보니, 처음의 몇 단락을 읽으면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글이 생겨났다. 그런 글들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큰 공통점은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동기가 강력하지 않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을 보고 작가의 마음 속에 언어와 이미지가 흘러넘칠 듯 솟아오르고, 작가 본인의 윤리와 싸우고, 다시 가라앉고, 문제지점이 미묘하게 이동되는 과정을 거친 글. 쓰는 사람의 동기가 강력하지 않으면 읽는 사람을 흔들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그 영화에 대해 “친화성”을 느끼거나 “적개심”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첫 날 ‘앨리스 프로젝트’를 보고, 말하자면 ‘적개심’을 느꼈다. ‘앨리스 프로젝트’는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거대 공연이다. 전부터 보고 싶어서 뛰다의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메모해놓았었다. 그렇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팀은 아니지만 그분들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잊지 못할 이미지들을 간직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오브제 - 대표적으로 인형 - 을 다룰 때 그들은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그렇게 기대가 커서였을까. 공연 중반부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화가 났다. 생리 때가 다 되서 예민해진 탓도 있었을 테지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언어가 넘쳐났다. 이후 본 공연들 중 훌륭한 것이 많았지만 그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공연들을 보면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러는 걸까 계속 생각했다. 내 문제가 클 것이다. 그분들에게는, 그 공연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앨리스 프로젝트’는 그렇게 강력한 감정, 풀리지 않는 숙제, 새로이 생겨나서 수년을 내 안에서 자가 증식할 테마를 선사했다. 이 글은 과천 한마당 축제 공연 감상문으로 인디언밥에  드릴 첫 번째 글이었고, 스페인에서 온 Yi Fan씨의 줄타기 공연 ‘목적지 없는 여행’에 대해 쓸 예정이었지만, 계획대로 써지지가 않았다. 사실 그의 공연이 좋았던 이유는 ‘앨리스...’의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글을 쓰고 지우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나의 취향>


아래는 내 취향의 도식인데, 쓰다 보니 한 쪽은 ‘앨리스 프로젝트’가, 한 쪽은 ‘목적지 없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주제 < 태도

세계에 대한 이야기 < 나에 대한 이야기
거대담론 < 미시정치
이미지 <내러티브
추상적 < 구체적
슬픈 것 < 재밌는 것
프로젝트 < 배우가 살다가 쌓인 공연

도식은 그 유용성 때문에 언제나 위험하다. 이 도식에도 큰 문제가 있다. 열 명 가까이 출연하는 한 시간이 넘는 연극과, 한 명이 나오는 이십분 남짓의 공연을 비교하는 것은 장편대하소설과 단편소설을 비교하는 것 같이 공정하지 못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써놓고 나니 나와 크게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같은 상황이라도 비극적으로 푸는 것보다 재밌는 뉘앙스로 푸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성격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매일 악셀러레이터를 밟아줘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인생을 밝게 보는 사람/공연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안 그래도 그런 사람인데, 어떤 공연에서 드러나는 고통이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그냥 보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런 성향으로 문제를 푸는 사람/공연이 나에게는 별로인 것이다. 모든 평가는 나만의 성향을 지닌, 한 달에 한번 생리를 하는 내 몸의 반응일 뿐이라고, 공연평들을 쓰기 전에 미리 알려두고 싶었다.


하지만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면, 나의 호불호를 표명하는 것일 뿐이라면, 내가 머리가 아플 이유가 어디 있을까? ‘적개심’으로 공연을 쪼개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내가 왜 적개심을 갖게 되었는지 비밀을 푸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내가 피하고 싶은 내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표명하는 나의 취향은 나의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태생적으로 거짓말인 언어로써 자신이 세운 기만의 성을 조금씩 허무는 게 글쓰기인 것 같다. 그래서 글쓰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것 같다.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졌다. 잘 쓰려다보니 고뇌가 생긴 듯. 혼자만의 주저리는 이만 끝내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현장의 감각이 식기 전에 공연들에 대해 적어봐야지.

2탄을 기대하시라. ^______^


인디언밥의 '필자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개쏭과 강말금의 축제탐방기 2탄
지난 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9에 이어, 이번에는 제13회 과천한마당축제를 다루려 한다. 두 필자가 4일간 과천한마당축제를 둘러보고, 눈에 띄거나 마음에 담은 작품들을 리뷰형식으로 보고할 예정이다.

 

과천한마당축제
마당극, 거리극, 야외극을 중심으로 한 야외공연예술축제로 시민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큰 잔치이다. 예술의 아름다운 눈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이와 아울러 '살아있음'을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축제가 열어준다는 생각으로 열리고 있다.
2009. 9. 23-27 www2.gcfest.or.kr/

공연창작집단 뛰다 <앨리스프로젝트>
학교에서는 경쟁의 논리를 배우고, 돈이라는 허망한 거품을 좇아 미래를 향해서만 달려야하는 이 시대의 앨리스는 누굴까? 어떤 꿈을 꾸고 살아가고 있을까?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앨리스 프로젝트>는 루이스 캐럴의 두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현대사회의 아이러니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앨리스와 동화 속 인물들이 함께 연주하는 시공간적 이미지는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전쟁 같은 현실의 잔인함을 담아낸다. 생생한 음악연주와 노래, 즉흥적인 움직임, 춤, 독특한 인형들이 삶의 일상처럼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어울리는 축제 같은 연극이다.
2009. 9.23-24 www.tuida.com

글 | 강말금
  1. 저는... 강말금씨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공연을 보고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참고로 전 앨리스프로젝트는 못봤어요)
    특히 기대하던 극단의 공연이 형편 없을 땐, 한숨이 절로 나요.
    왜 욕심을 부렸지, 왜 저렇게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거야, 당신들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나를 왜 공허하게 만드는 거야, 왜!!!
    그렇다고 글로 화를 내고 욕을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막 이렇게 혼자 화 내고 있던 차에, 그 공연을 만든 사람들 중 한 명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공연을 만든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고, 뜻이 있고, 마음이 있고 그렇더라구요. 그 생각, 뜻, 마음이 가짜는 아니었어요. 내가 느끼는 화 만큼, 그들에게서도 어떤 열기가 느껴졌어요.
    화는 이미 사라졌어요. 그리고 그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뭐, 그리고, 끝이에요. 뭐 이 일화에 결과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강말금씨가 '적개심'을 느꼈다고 하니까, 제 경험도 생각나서 써본 거죠.

    강말금씨는 이 적개심을 어떻게 해소하실지, 궁금하네요. ^^

  2. 저도 궁금해요.... 헤헤
    다음주 안에는 해소하려구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답장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