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 극단 바람풀 <디아더사이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극단 바람풀 <디아더사이드>





글_ 조형석





콘스탄자와 토미스는 수십 년 동안 전쟁 중이다. 이 전쟁의 한복판에 '아톰로마'와 '러바나 줄렉'이라는 한 부부가 살고 있다. 이 부부에게는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요셉'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을 기다리면서 전쟁 중 죽은 이들의 시체를 처리하며 살고 있다. 뼈대만 남은 집안에 탁자와 몇 안 되는 살림살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어느 날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듣게 된다. 행복해 하는 그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고 곧 '국경경비원'이라는 젊은 청년이 이들의 집에 들이닥친다. '국경경비원'은 집 가운데 있는 침대를 반으로 가르는 선을 긋고 이 두 부부를 국적대로 서로를 갈라놓는다.

화장실을 가거나 음식을 차릴 때 에도 국경 경비원의 허가와 허가증을 받아야만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런 그를 아내 '러바나 줄렉'은 아들 '요셉'과 동일시하고 그가 아들일 것이라 착각을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는 '국경경비원'은 이들에게 부모님의 향수를 느낀 나머지 잠시나마 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허나 규칙에 사로잡힌 '국경 경비원'은 자신의 의무와 이들과의 교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강자의 편에서 싸우겠다고 외치며 나간 '국경경비원'은 이내 곧 폭탄에 맞아 싸늘한 시체로 '러바나 줄렉'의 품에서 죽어간다.


전쟁의 소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극적 휴머니즘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낸 아라엘 도르프만作 <디아더사이드>의 줄거리이다.

   


아라엘 도르프만 (Ariel Dorfman)은 1942년 5월 6일 아르헨티나 생으로 칠레의 대표적 망명 작가로 유명하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유대인계 루마니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970년부터 1973년까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민주혁명에 가담하였었다. 하지만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사 쿠테타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극적으로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후 미국의 시민권을 얻었으며 피노체트 정권이 물러난 후 칠레에서 본격적인 그의 문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비평 문학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극, 희곡, 소설, 시 등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라틴아메리카학문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대표 도서로는 <우리집에 불났어>와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등이 있고 대표적 희곡으로는 흔희 저항3부작이라 일컬어지는<죽음과 소녀>, <리더>, <과부들>이 있다.

 

 

 

 

자 그럼 그의 전반적인 생의 이야기를 보니 어떤 점이 보이는가. 그래 바로 그가 전후 세대라는 사실과 더불어 칠레의 군사독제에 탄압을 받은 인물이란 점이다. 그런 그의 성장배경과 칠레 민주혁명의 중심이었던 경험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철학이 되었고 그러한 사실은 우리의 정서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6.25전쟁으로 남과 북이 분단되는 아픔을 겪고 군사 쿠테타에서 참여문학을 외치던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학가들이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의 삶이 그의 문학들의 배경을 전쟁과 비극 그리고 이에 맞서는 저항과 평화의 공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게끔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연극의 비중보다 연극이 풀어내고자 했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연극이 별로라서 그러냐고!? 턱도 없는 소리! 연극자체가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충분한 여건을 마련했기에 가능한 게다. '국경경비원'의 연기가 배역을 100% 소화해 내지 못한 부분이 아주 조금 아쉽지만 연극은 매우 매끄러웠고 암전 없이 달리는 극 진행이 관객의 감정 몰입을 증가시켰다.

 


  


 


 

 

이분법적 시선

그렇다. 늘 세상을 흑과 백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너 나랑 달라? 어 그래? 한판 해"라고 생각하는 호전적인 원숭이인 것도 문제이고 너와 내가 다름을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거 자체도 문제이다. 사랑하는 남녀사이에서 이런 다툼이 다반사인데 개인이 모인 국가와 국가사이에는 오죽할까. 인류가 태어날 때부터 눈도 여러 개, 귀도 여러 개가 달렸으면 혹이나 달라졌으려나. 이분법적 시선은 다툼을 일으켰고 너와 나를 갈라놓았다. 전쟁을 일으켰고 한 나라를 두개로 나눴다. 많은 희생이 뒤따랐고 연극에서 그 모습이 너무나 탁월하게 묘사되었다. 두 나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해오며 많은 시체들을 생산(?)했고 이로써 두 부부가 삶을 연명하게 하였다. 그리고 '국경경비원'에 의해 두 부부는 가까이 있지만 다가가기 힘들게 되었다.

   

 



타의에 의한

두 부부는 타의에 의해 전쟁 통에 살아왔다. 갑작스러운 종전소식에 기뻐 날뛰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다. 다시 두 부부는 타의에 의해 생이별 아닌 생이별을 하게 된다.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사이.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렇다면 누구의 이익을 위한 전쟁인가. 전쟁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게 바로 극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다. 전쟁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고 더불어 타의에 의해 수없이 희생당한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피해자는 누굴까.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며 전쟁 한복판에서 시체를 묻어주며 살아가고 이 부부? 아님 저 밖에 묻혀져 있는 5천이 넘는 싸늘한 주검들? 아님 총과 칼을 맞부딪치며 싸우는 군인들? 다 맞는 말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없이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가진 채 의무와 규칙에 사로잡힌 '국경경비원' 마저도 피해자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뿐만 일까? 이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물론 저 모두를 가해자로 포함시키는 것은 단순화시키려는 논리의 오류일지 모르겠으나 '아톰 로마'와 '러바나 줄렉'은 시체를 묻을 때 "미안합니다. 우리가 대신 사과합니다. 이제부터 여기가 당신의 집입니다..." 라고하며 시체를 묻어준다. 전쟁을 막지 못한 사람, 전쟁에서 피를 흘리거나 흘리게 한 사람, 그리고 이를 방관하거나 무관하게 느낀 이들 모두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다.

 

 

 

 

소유의 문제

이득을 위한 싸움이 협정으로 끝을 내면 소유의 문제로 다가온다. 땅을 가르고 사람마저도 가른다. 극에서 '국경경비원'은 규칙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둘로 나누려고 한다. 콘스탄자의 소유이거나 토미스의 소유로. 또는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면 제3의 소유로 넘긴다. 의무에 사로잡힌 그는 그릇, 수저, 의자와 식탁마저도 둘로 또는 셋으로 나눈다. 심지어 그가 그은 선 위에 걸쳐진 시체마저도 소유의 문제로 나누려 한다. (시체는 결국 '국경경비원' 자신의 의무와 감성의 타협으로 콘스탄자에 묻히게 되지만..) 그렇게 외압에 의한 이분법적 시선은 그들의 모든 것을 나누었다.

 

 


 

 




비극

누군가는 삶 자체를 비극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쟁은 그 비극을 최 정점으로 극대화 시킨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상대편의 소유를 빼앗는다. 도처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비명과 피 비릿내와 온기를 잃어버린 시체의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 와중에 시체처리로 생을 연명하는 부부의 삶도 비극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처리하며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부부는 전쟁한복판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지만 이 모습마저 비극 아닌 비극으로 비춰진다. 시체를 다루는 부부는 이미 타성에 젖었고 희망고문을 하는 라디오의 거짓연설에 더 이상 속지 않기 때문이다.


'국경경비대원'의 삶 역시 비극이다. 평화에 목이 말라있는 그는 그가 교육받는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하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는 어머니를 두 손으로 묻고 군대에 입대 하였다 라는 단편적인 향수만 남겨져있다. 여기서 '국경경비원'의 부모님에 대한 향수와 자식을 잃은 부부의 향수가 오묘하게 겹쳐진다. '국경경비원'은 자신의 의무에 대한 책임 때문에 두 부부를 막 대하면서도 아릇한 부모님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자식을 잃은 '러바나 줄렉'과 '아톰 로마'는 '국경경비원'을 '요셉'이라 부르며 돌아온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습이 너무나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비극적 휴머니즘의 전개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국경경비원'은 침대 밑에서 '요셉'의 물건을 발견하게 되고 부부에 대한 호칭이 "당신"에서 "아버지, 어머니"로 바뀐다. 하지만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국경경비원'은 그토록 바라던 평화의 순간이 영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강자의 편에 서겠다는 다짐에 집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폭탄에 맞은 채 다시 돌아와 '러바나 줄렉'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전체적인 흐름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여미고 슬프게끔 한다.

 

 

 

 

 

 

아프리카 소년, 소녀병

아프리카에는 25만 명의 아이들이 소년, 소녀병으로 징집되어 마약에 취한 채 총을 든다. 어린아이의 꿈이 채 피기도 전에 어른들의 이기에 의해 거침없이 짓밟혔다. 이들에게는 그 흔한 인권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책 대신 총을 들었다. 배고프고 가난한 죽음보다는 명령에 의한 살인기계가 되었다. 이 작품에서 아프리카의 소년, 소녀병들의 모습까지 유추해 낸 것이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극에서 어린 시절 집나가 돌아오지 않는 '요셉'과 이에 상응되는 국경 가운데 걸쳐진 어린 시체와 어린 시절 기억이 없는 '국경경비원'의 모습에서 아프리카 소년, 소녀병들 뿐만 아니라 나아가 명령에 의해 하루에도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는 지구의 모든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평화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부부에게도, 저 시체를 찾으러 올 누군가에게도, 그리고 '국경경비원'에게도 종전과 평화는 간절한 소망이다. 평화가 오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갔다. 그렇게 찾아온 평화는 과연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인류가 전쟁과 평화를 되풀이 해왔듯이 언젠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도 무참히 깨지지 않을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우발적 사고와 테러 그리고 분쟁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면적인 국가적 전쟁이 아니겠지만 이도 분명한 전쟁의 범주에 속한다. 지구상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당신이 이들의 아픔을 무관하게 여긴다면 이 역시 당신을 가해자로 피해자로도 만든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는 절대적 사실이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전 세계의 모든 시선과 자신의 평화에 젖어 사는 모든 이들에게 따끔한 질타를 날린다. 비록 극이 담고 있는 의미와 뜻이 매우 커서 모호해 질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전쟁의 참상과 그 속에서의 비극적 휴머니즘을 관객에게 훌륭하게 전달한 작품<디아더사이드>였다.




 

2010 대학로소극장축제 참가작
극단 바람풀 - 디아더사이드
2010 1027-1102 상상아트홀 화이트

과거 혹은 현재, 또는 미래의 전쟁 중인 두 나라 사이의 국경 인근에서 시체처리를 하면서 실종 된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
20년 넘게 휴전협상이 타결되고 평화가 오기를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종전이나 평화 보다는 도시로 나가 번듯한 삶을 다시 살게 될 것을 희망하지만 자신의 아들 또래의 시체가 집안으로 들어 올 때마다 혹시나 자신의 아들이 아닐까 싶어 가슴을 졸이며 실종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인의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들이 살아 돌아 올 길이라고 믿고 종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어느 날 마치 농담처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전쟁 중이었던 두 나라는 평화를 선포하는데 느닷없이 이들 부부의 집 한 복판을 가르며 새로운 국경선과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겠다며 국경 경비대원이 나타난다.
이 군인의 등장으로 인해 부부와 군인은 삼각구도의 갈등을 형성하게 되는데 부인은 군인의 얼굴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가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믿게 된다. 이 때문에 이들 세 사람은 다시 새로운 갈등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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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해태 조형석.
잘하는 건 없고 부족함만 가득한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아! 잘하는 거 하나 있네요. 신도림역에서 1등하는 거.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는 필자는 스스로 뿌듯해 합니다. 아싸! 오늘도 1등! 뭐 맨날은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