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9. 19:36ㆍFeature
행복한 왕자, 예술가
글_성지은
0.
“맙소사! 행복한 왕자가 저렇게 초라해 보이다니!” 시장이 말했다.
“정말로 초라하군요!” 시의원들도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조각상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기둥으로 올라갔다.
“칼에서 루비가 떨어져 나가고, 눈도 없어졌습니다. 금박도 다 떨어져 나갔군요. 정말 거지와 다를 바가 없네요!”
(...)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왕자 조각상을 철거했다.
“행복한 왕자는 더 이상 아름답지도, 쓸모 있지도 않습니다.” 하고 대학에서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가 말했다.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 『별에서 온 아이』 중 「행복한 왕자」
1. 춥고 배고픈 사람들
이번 겨울은 너무나도 추웠습니다. 아니, 지금도 추위는 계속되고 있네요. 45년 만의 추위가 몰아닥친 데다 눈도 많이 내려서 몸과 마음이 전기장판에 들러붙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강추위 덕에 이번 달 주제는 ‘추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추위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추위, 겨울, 추운 겨울, 배고픔, 가난함, 예술... 사실 추위와 예술은 오래도록 깊은 관계를 맺어온 것 같습니다. 흔히 “예술가는 배가 고프다, 춥다”라고 생각하니까요. 누군가가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할 때 모두들 그 사람이 ‘먹고 살 걱정’을 해 줍니다. 그러니 추위와 예술이라는 주제로 글 쓸 거리는 넘쳐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라는 단편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미주의자로 유명하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이나 <공주의 생일>을 보면, 정말 인정머리 없는 유미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그였지만 모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행복한 왕자>입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들 아시겠지요. 화려하게 보석과 금박으로 치장된 왕자 동상이 무리에서 떨어진 제비를 만나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보석을 하나씩 떼어주다가 결국 심장이 깨어져 죽게 된다는 이야기. 자신을 내던져 선행을 베푸는 아주 착한 이야기입니다.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 『별에서 온 아이』 중 「행복한 왕자」
그런데 저는 참 이상하게도, 갑자기 이 소설 속의 가난한 사람들이 마치 예술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명성과 부를 얻지 못한 대다수의 예술가들이요. 놀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왕자의 빛나는 사파이어 눈처럼, 다른 사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국가나 기관의 공모에 당선이 되어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즉 품을 팔아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또는 죽을 때까지 부모의 등골을 뽑아먹는 방법도 있겠네요. 어떤 모습이든,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예술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해서는 돈을 벌 수 없는 걸까요?
▲예술인소셜유니온 블로그 메인페이지 이미지
춥고 배고픈 예술가와 그 사회적 지위, 대우에 대한 논의는 최근 몇 년 들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 국회의원이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는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8961) 그리고 작년에는 마침내 ‘예술인소셜유니온’이 탄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의 기조가 마음을 찌릅니다. “밥 먹고 예술 합시다.” (http://blog.naver.com/artist_union)
2. 아름다운 왕자
하지만 식상하게 가난한 예술가 이야기를 하려 이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행복한 왕자>를 읽으며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행복한 왕자 또한 요즘 예술가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보면, 행복한 왕자는 아름다운 동상으로 만들어져 광장 한 가운데에 세워졌고, 많은 사람들은 이 왕자를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에게 작품으로써 행복과 아름다움을 주는 예술가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그렇게 작품을 만들었을 때, 그것은 혼자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고,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사람들은 작품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더 많은 감탄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마치 왕자의 동상을 본 사람들이 동상 앞에서 내뱉은 감탄은 놔둔 채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 앉은 저녁 식탁에서 다시 한 번 동상의 아름다움을, 작품의 아름다움을 기억해 이야기해 준다면, 감사한 일일 것입니다.
▲ 훈데르트 바서 <Barbacan Castle in poland>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왕자의 금박이 벗겨지고 눈이 없어졌을 때, 그것을 다시 채워 줄 생각은커녕 왕자를 녹여 없애버렸습니다. 더욱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지요. 행복한 왕자의 시대가 아닌 오늘날, 예술가의 금박이 벗겨지고 눈이 없어져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없어진 부분을 다시 채워 예술가가 또 한 번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나요? 아니면 더욱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예술가였던 사람을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게 만들어 버리나요?
이것은 좀 더 고민해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네요. 다만, 순수미술을 하다 상업으로 전향해 필통이나 달력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자신의 유일한 재능을 살려 입시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 그리고 최근 논의되기 시작한 예술인 복지법 등의 모습들이 눈길을 끕니다.
3. 무엇이든 나누어주는 왕자
요즘의 예술가와 행복한 왕자의 비슷한 점은 비단 ‘아름다움’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왕자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자신을 덮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어 줍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해지지만, 왕자는 결국 자신의 것을 모두 잃고 죽고 맙니다. 물론 왕자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런 선행을 베푼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선행을 베풀기를 ‘강요’받는 것 같습니다. 소위 ‘재능기부’라는 이름하에 말입니다.
▲ 네이버의 재능기부 캠페인 (http://campaign.naver.com/givebean)
▲ 대표적인 재능기부 매체인 <빅이슈>
물론 ‘재능기부’란 너무나도 훌륭한 일입니다. 자신이 남들에 비해 더 갖고 있는 재능을 기부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무형의 기부이니까요. 그래서 ‘번역’을 잘 하는 사람들은 외국어로 된 글을 번역해서 번역을 못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해 주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예쁜 그림을 그려서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면 번역을 못하는 사람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기부하나요? 그 사람들은 아마도 ‘돈’을 기부하겠지요. 여러 재능기부를 통해 만들어진 무언가를 돈을 주고 가짐으로써 그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쓰이도록 하는 것이, 요즈음 ‘재능기부’의 메커니즘입니다. 다시 말해, ‘재능기부’의 목적은 여러 사람들이 돈이든 재능이든 자신이 기부할 수 있는 것을 기부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독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예술가들에게 예술이란 그들의 직업이고, 이는 그들이 예술을 통해서 돈을 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유일한 재능, 즉 예술을 기부하기 시작하는 순간, 돈을 벌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과 기부를 하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의 경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가난하다는 점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자신의 재능이란 유일한 밥줄인데도 이를 통해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들의 재능기부가 당연시되어 버리면 예술가들에게 정당하게 돈을 주고 예술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변질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생계는 엉망이 되어버리겠지요. 언젠가는 예술이라는 재능기부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예술을 할 시간이 없어져 버리게 되는 역설적이고도 슬픈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재능기부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게 되겠지요. “에이, 어차피 그림 많이 그리는 거, 한 장 더 그리면 어디 덧나나?”
▲ MBC 프로그램에 나온 공지영 작가
4. 추위 속에서도, 아름다운 행복한 왕자
그리하여 예술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행복한 왕자와 많이 닮았습니다. 예술가들은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꽤나 싼 값에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 전시회들은 소위 대형 블록버스터 전시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대부분은 공짜로 관람을 허용합니다. 음악이나 무용, 연극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실제적으로 들인 시간뿐만 아니라 밥값, 종이값, 연습실비를 합치면 관람료를 다 합친 것보다 클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피부와 눈을 떼내어 사람들에게 행복과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 고흐 <가셰박사의 초상>
행복한 왕자는 끝내 사라졌습니다. 더욱 유용하게 쓰이기 위해 녹여졌고, 납으로 되어 있으니 아마도 총알이나 농기구를 만드는 데에 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아무리 자신의 금박과 사파이어, 루비를 다 떼내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움은 다시 생겨납니다. 아니, 어쩌면 수많은 행복한 왕자가 있어서 이곳의 왕자가 한 명 죽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추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가 그렇게 춥지만 않았더라면, 혹은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행복한 왕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줄 일도 없었겠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야박하게 행복한 왕자를 녹여버리지 않았다면 왕자가 사라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가들이 이렇게 춥게 지내지만 않는다면 더욱 즐겁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나누어 달라 요청받을 때도 더욱 기꺼운 마음으로 나누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사라진 예술가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준다면 그 한 명의 예술가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추위’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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