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탕 물고 쓴 커피를 마시는 기분 <미사여구없이>

 

사탕 물고 쓴 커피를 마시는 기분

<미사여구없이>

허진원 작, 민새롬 연출

 

글_김해진

 

무대는 흰색 프레임의 액자를 연상케 한다. 관객은 동구와 서현의 과거를 들여다보듯이 액자 속을 들여다본다. 정체모를 이로부터 매일 말 없는 전화를 받는 서현의 불안한 현재는 액자 바깥으로 비어져 나온 흰색 무대에서 펼쳐진다. 액자에서 인물들의 현재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극의 마지막에 서현과 동구가 뒹구는 침대가 액자틀 근처에서 액자 바깥으로 (관객석 쪽으로, 극장 밖으로) 빠져나온다. 미래가 과거로부터 흘러나오려고 한다. 관객은 들여다보고 이야기는 빠져나오려고 한다. 그 지점에서 <미사여구없이>는 관객과 만난다. 이런 무대는 산뜻하다. 특히 흰색 프레임에 흐르는 빗방울 영상과 풍선 영상(하트 혹은 달달한 사탕을 연상케 하는)은 극을 만화처럼 보이게도 한다. 귀엽다. 조명의 변화는 섬세하다.

액자 안 깊숙이 들어간 곳, 그러니까 기억의 온실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곳에서 서현과 동구는 ‘말’을 시작한다. 서현의 기억 속에서 이들의 만남이 다시 재생되는 거다. 인물들은 말이 많다. 그리고 비가 온다.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벽의 바깥에서 인물들이 움직일 때면 몸의 실루엣이 아스라하다. 유리창의 빗물에 사람이 어룽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농구공이 튀는 소리도 들린다. 서현은 사귀고 있던 선배와 관계가 삐그덕대는 모양이다. 동구에게 하소연하고 싶어한다. 동구의 자취방에 가서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지점이 ‘여자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하는 그런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순간에 성별이 남자인 친구의 자취방에 가고 싶어진 걸까. 어쩌면 서현은 스스로의 감정을 잘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극은 귀엽고 풋풋하게 시작한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게 된다. 서현과 동구가 티격태격하는 데에는 사실 분명한 이유가 없다. 물론 서로의 신경을 긁는 말들이 오가고 말이 말을 낳아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지만 정말 중요한 무언가는 서로 말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뭘까. 남자와 여자 사이에 정말 중요한데 잘 말해지지 않는 그건 뭘까. 여기서 ‘말’로 비유된 그것을 본다. 액자 밖에서 매일 말없는 전화를 받는 서현은 그 ‘말없음’이 불안하고 공포스러운데 동구는 과거에 말이 참 많았다. 혹시 그 전화가 동구에게서 온 것은 아닐까 하고, 말없음과 말많음을 자기도 모르게 동일시한 서현은 동구와 직접 대면한 후 말없는 범죄자와 말많은 동구가 별개의 인물이란 걸 알게 된다. 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함께 말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실제적인 것이란 걸 서현은 느낀 게 아닐까. ‘말’로 비유된 그것은 어쩌면 소중한 현실감각. 공포스러운 전화가 실체가 돼버린 지금, 공허함을 채우는 동구의 ‘말’이 서현에게 절실해졌다.

이번엔 ‘사랑해’란 말을 들여다볼까. 서로 ‘사랑해’라고 말한 때가 의미심장하다.

동구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서현과 얼떨결에 섹스한 후, 우주여행을 하고 무사히 지구에 도착한 기분이라고 말한 후에 ‘사랑해’라고 서현에게 말한다. 서현이 동구의 말에 어이없고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빈정이 상한 동구는 사랑한다는 자신의 말을 철회하듯 그녀를 깎아내린다.

 

 

서현이 동구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그로부터 10년 후다. 잡지 편집장이 된 서현은 유명한 소설가가 된 동구의 작업실에 찾아와 안부를 묻는 듯 혹은 동구의 스캔들을 취재하는 듯 하다가 동구의 홀대에 마음이 상해 그만 또 싸우고 만다. 그런 와중에 동구는 하루키가 1Q84에서 언급한 작자미상의 소설 <고양이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내가 간이역에서 내렸는데 거긴 고양이들이 사는 고양이 마을이더란다. 고양이들이 양복도 걸치고 담배도 피우고 있더란다. 고양이들을 피해 조용히 숨어든 곳에서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는데 그 고양이는 ‘더러운 사람냄새가 나는데 아무도 없다’고 했다는 거다. 사내는 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기차는 이 마을에 정차하지 않더란다. 사내도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사내는 기차를 탄 사람들에게도, 고양이 마을의 고양이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돼버린 거다. 그런데 동구는 마지막에 서현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네가 아직도 그 고양이마을의 정거장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서현은 울음을 터뜨리고 그리고 말한다. ‘사랑해’라고.

동구는 섹스 후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현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동구를 보고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서현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남자를, 동구는 자기 이야기를(소설을) 들어주고 인정해 줄 여자를 기다린다. 애잔한 건, 지난 10년간 둘 모두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 하고 또 얼마간 걱정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만나지 않은 가운데 만났던 시간. 닿지 않는 가운데 닿았던 시간. 10년. 그리고 서로에게 쏟아내는 ‘가 닿지 않는’ 말들.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 ‘사랑해’란 말. 이쯤 되면 <미사여구없이>는 귀엽고 산뜻하기만 한 공연은 아니다. 극장을 빠져나오는 관객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 답은 모르겠다. 어렵다. 상큼한 사탕을 먼저 먹고 나중에 쓰고 묵직한 맛의 커피를 마시는 것 같다.

 

 

배우 김태현이 구사하는 유머러스하고 능수능란한 말의 리듬은 돋보였다. 즐거웠다. 수다스럽고 치기 어린 소설가의 캐릭터를 잘 만들었지만 한번쯤 좀 더 진실하고 조용한 모습이 강조됐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고양이 마을의 이야기를 전할 때 그런 기운을 느끼긴 했지만 좀 더 깊어져도 좋을 것 같다. 한편으론 배우 신정원에게서도 동구의 쪼잔한 소설가스러움에 대항할 편집장스러움을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긴, 만약 서현이란 인물이 스스로를 잘 몰라 방황하고 있는 거라면, 자신을 알아봐 줄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그거야말로 정말 어려운 연기일 거다. 게다가 극적 공간이 주로 동구의 자취방, 동구의 작업실로 기능하기 때문에 서현을 도와줄 극적 장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셈이다.

서현의 입장을 상상해본다. 비가 내리던 날. 서현이는 어쩌면 실연을 예감하고 우울했던 게 아니라 그 마음을 핑계로 동구를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우울한 비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비로 바뀐 건 아니었을까. 그저 어느 관객은 사랑이 뭔지 어렵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액자 속의 그 날을 다시 상상해보는 것이다. 부유하는 마음과 변화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 사진제공_한국공연예술센터

 

  필자_김해진 haejinwill@gmail.com

  소개_판단하기보다는 경험하기 위해 글을 쓴다. 공연예술을 보며 한국사회를 더듬는다. 2013년에는 인천아트플랫폼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