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4서울프린지페스티벌 : 김이령과 박민선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

2014. 8. 29. 16:31Review

 

2014서울프린지페스티벌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

 김이령과 박민선

 

 

글_이다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의 주인공은?

왕정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소수의 국가들을 제외하고 신분제가 폐지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약 20년 전의 나에게나 요즘의 꼬꼬마 숙녀들에게나 ‘공주님 놀이’는 놀이의 꽃이며, 유년의 드림랜드의 주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디즈니는 불과 수개월 전에도 또 하나의 공주 이야기를 만들어내 시장과 동심 양자를 강타하는 데 성공했다. ‘세상에나, 아직까지도 공주 모티브가 먹힌단 말인가’ 하는 충격과 더불어 아직까지 우리의 뇌리에 공주, 나아가 왕족이 선연한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게 하는 계기였다. 더군다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7세기 중반 스페인을 무대로 연극을 만들다니? 연극이 개시될 즈음 깔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Pinocchio〉의 주제곡 〈When you wish upon a star〉를 들으며 필자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1599~1660)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

 

연극 〈라스메니나스〉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동명의 스페인 회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원작 회화에 대해 간략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작 회화는 상당히 복잡한 작품이다. 전경에는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후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리타(Doña Margarita María of Austria)를 중심으로 시녀들과 난쟁이, 왕실 애완견이 놓인다. 이 작품이 특별한 점은 통념적인 왕실 초상화와 달리 작위적이고 권위적인 상징물을 동원한 ‘완성된 포즈’가 아니라, 초상화를 제작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여과 없이 그림 자체로 굳어졌다는 데 있다. 좋게 말하면 인간미, 나쁘게 말하면 어수선함이랄까. 하지만 일견 혼란스러울 수 있는 배치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어린 마르가리타이며, 여기에는 화가의 치밀한 계산이 있다.

우선 공주만 보자면 그녀는 대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가운데 전경에 집중된 스폿 라이트를 한껏 받으며 정면으로 서있다. 입고 있는 흰 드레스와 하얗게 빛나는 살결의 느낌, 가슴팍의 붉은 코사지의 대비 자체도 강렬하거니와, 좌측 위부터 아래쪽을 장벽처럼 가린 캔버스와 공주 뒤에 교묘히 설정된 열린 공간은 관객의 시선을 한동안 그녀에게 머물게 한다. 이렇게 겹겹이 회화적 장치를 설정해놓고 왜 하필 화가는 그림의 제목을 시녀들, 즉 〈라스 메니나스〉로 지었을까? 또 공주와 마찬가지로 정면 너머를 응시하고 있는 난쟁이 마리바르볼라(Maribárbola)의 존재는 대체 무어라 봐야할까?(화가의 시선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외로 하자) 이 작품의 주인공이 실은 공주가 아니기라도 한 것일까?

 

 

바보콤비

위와 같은 수수께끼는 연극 〈라스메니나스〉에서도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연극의 주요 인물들은 마르가리타 공주와 애완견이자 난쟁이 광대 마리/바르볼라이다. 이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난쟁이 인물은 분열되어있다. 애완견 마리와 난쟁이 바르볼라. 노란 종이 벤츠를 몰며 등장한 이들 인물은 얼른 보기에도 위계가 분명하다. 자신의 고귀한 신분 및 적통성을 한차례 읊고 난 공주는 마리/바르볼라에게 “나의 충실한 개”라 부르고, 마리/바르볼라는 한껏 그 앞에서 재롱을 피운다. 어찌 보면 모자라 보이기도 하다. 그는 좌우를 헷갈려한다. 공주가 왼손 하면 오른손을 주고 오른손 하면 왼손을 내미는 식이다.

사실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는 마르가리타도 마리/바르볼라에 뒤지지 않는다. “어릴 적에 보약을 잘못 먹어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해 보인다는 그는 교육자이기도 한 마리/바르볼라가 정통 발레 동작이 아니라 어딘가 이상한 몸짓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마르가리타가 연설조로 청중들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마리/바르볼라는 “개소리, 냥냥!”하며 그를 비웃는다. 여기에서 앞선 마리/바르볼라의 어리숙함은 뭔가 석연찮은 것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공주도 “개소리”가 반복됨에 따라 분노하여 무대에서 추격전을 벌인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자족적이며 그 자체로 완결된 플롯을 객석과의 엄격한 구분 가운데 관객에게 전달하는 장을 일반적인 의미의 무대라고 본다면, 〈라스메니나스〉에는 무대 외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있다. 더 정확하게는 모든 의미에서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해야 하나. 공연장 출입구에서부터 바이올린을 켜는 듯한 마리/바르볼라의 춤사위가 시작되어 극의 시작점을 모호하게 하기도 하고, 돌연 녹화된 영상이 극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극 도입부에 공간적 배경인 아스카르 궁을 암시하는 성 이미지가 활용되는 것이나 마리/바르볼라가 참관하는 프랑스어 수업이 극의 흐름을 매개하는 것이 그 예이다.

프랑스어 수업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영상 속 교사가 모나미, 몽쉘 통통 등 오늘날 국내에 친숙한 프랑스어 상표들을 낭독하면 공주가 원 뜻을 진지하게 대답하며 교사는 거기에 “아주 좋아요 Très Bien!”을 남발한다. 하지만 “얼마나 멋진 개인가 Quel beau chien!”라는 문장만큼은 다르다. 공주는 아무리 숨 가쁘도록 애를 써도 ‘chien’이라 하지 못하고 ‘썅’소리만 하는 것이다. 공주의 고귀한 이미지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수업 후 공주가 마리/바르볼라에게 “얼마나 멋진 개인가”라고 말해주어도 연극 초반에서와는 느낌이 다르다. 마리/바르볼라의 입장에서도 “개소리”의 빈도가 늘었다. 마리가 축소되고 바르볼라라는 인격체로 확정되어가는 듯하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무너진다. 주변국과의 친선유지를 이유로 마르가리타는 객석 가운데 이웃나라의 공주들을 차출(?)해 무대로 이끈다. 이들은 17세기 유럽의 공주들이 아니라 각종 애니메이션, 영화의 등장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사뭇 날카롭다. 얼음 왕국의 폐쇄정책, 아주 먼 나라의 다문화정책, 지하 왕국의 빈곤과 폭력문제. 21세기 한국의 화두이기도 한 것이다. 공주(관객들)의 대답을 유도하면서 마르가리타는 그러나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는데 백성들이 너무 한 가지 답을 요구한다 말하는 등 위정자의 모습을 숨기지 못한다. 공주로서의 진지함은 잠깐이고 그는 또 다시 객석에서부터 왕자들을 불러내어 커플매칭 이벤트를 제안하는데, 이 때 공주의 이상형은 말 그대로 너무 이상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며 차라리 속물적이기까지 한 상이다. “키 180에 75 킬로그램, 월 1000에 반포자이에 살기만 하신다면 살뜰하게 모시며 살겠습니다.”라는 말에 객석은 한 바탕 뒤집어졌다. 

  

 

그냥 거기에 있을 텐가

하지만 매칭의 결과로 공주는 홀로 도태되고, 여기에 분노한다. 조화로 장식된 사다리 꼭대기에서 참가자들 모두의 목을 베라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명령을 내리는 공주를 저지하는 것은 바르볼라이다. 일찍이 공주의 재롱둥이였던 그는 공주를 수차례 저격하면서 모 정치인의 “버스비 70원”발언을 인용, 대중을 위하는 척 그 실상에는 무지한 양면성을 지적한다. 바르볼라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그는 라스 메니나스, 곧 관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 각성의 빨간 땅콩과 망각과 피상적 행복의 파란 땅콩.

참여형 연극 〈라스 메니나스〉는 얼른 보기에 고전 회화에서 외적인 요소만 차용한 코미디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신분사회가 극 중 인물 구도에 반영되면서도 극의 흐름에 따라 현대의 쟁점이나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상표들이 드문드문 던져진다는 점에서 극의 메시지는 확실해보였다. 과거의 신분제나 다를 바 없을 오늘 여기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각성, 그리고 여기에 바탕한 주체화가 그것이다.

입장하면서도 보았던 배우들의 춤을 통해 출구로 인도받으면서 하나 둘 자리를 뜨는 관객들은 한 가지로 웃고 있었다. 각자가 말미에 들고 간 땅콩 한 알은 무슨 색인지,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모양으로 싹을 틔울지 오래도록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필자_이다

 소개_“I am......”에 해당하는 의미의 ‘이다’로 지었는데 다들 귀화 방송인 모씨를 떠올려서 약간은 슬픈 얼치기 예술학도. 느물느물 흘러가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생긴 대로 사는 게 꿈.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자유참가작

김이령&박민선 <라스메니나스>

 출연진 & 제작진

 출연진 : 김이령 박민선 / 제작진 : 김이령 박민선

 공연장소 : 서교실험예술센터 지하1층

 작품소개_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를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가 무대에 오른다. 그림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스페인의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와 우울한 얼굴의 왕실 난쟁이 마리바르볼라와의 관계가 현실에 대입되어, 사회에서 마주치는 가식, 위선 등을 풍자하게 된다. 그림 속 왕녀 마르가리타는 알카사르 궁전 안에서 성장을 하게 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바르볼라는 왕녀를 보살피는 시녀이자 왕녀의 기분을 맞춰주는 애완견이다. ‘라스 메니나스’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극찬한 진지하고도 우아한 작품으로, 관객들은 스페인 알카사르 궁전으로 초대된다.

 작가소개_김이령과 박민선은 생활예술인 김이령과 종합예술인 박민선이 함께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 둘은 고교동창이며 안은미 컴퍼니에서 기획하고 공연한 '피나 안 인 서울'을 계기로 10년 만에 재회하였다. 두 사람 모두 미술을 전공하였으나 최근에는 퍼포먼스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로는 가상관광퍼포먼스 <태국 라텍스 관광>과 <야이-씨 너 임마 2012년이었으면 아주 확 장수할 뻔 했어>가 있다.

  *김이령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Btbt8181.tumblr.com

  *박민선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Parkmin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