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변방연극제, 다큐멘터리 영화 <구름다리>를 보고

2014. 9. 15. 15:35Review

 

다큐멘터리 영화 <구름다리>를 보고

_한종선

 

<구름다리>라는 영화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떤 정해진 삶의 구조 속에서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구름다리>는 이 사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저 한편의 영화라고 단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일반 사회인들에게 노숙자들은 그저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에게 이런 낙인을 찍어버린 우리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차분히 짚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제16회 서울변방연극제를 통해서 만났다. 나는 영상 속에서 노숙인공간을 보았다. 제목에는 공간을 뜻하는 다리라는 단어만 있었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공간을 지배하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노숙인)들은 언제나 시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때가 되면 공간은(구름다리) 허물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삶도 시간이 끝나면 생을 마감하게 된다.

 

서울변방연극제 관객과의 대화 중. 패널 한종선(오른쪽), 감독 정일건(왼쪽)

 

서울역이라는 광장에서 부유하듯 떠도는 노숙인들...

노숙인들을 이야기하기 앞서 우리들이 노숙인들을 불편해 하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자고, 아무 곳에서나 노상방뇨를 하고, 언제나 술에 취해 있고, 일을 하지 않고, 담배를 거칠게 구걸(영화에서는 꼬지라고 함)하는 모든 행동들이 일반 사회인들의 도덕적인 개념과 다르기 때문에 노숙인들을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영화 속에는 3가지 유형의 노숙인들이 나온다. 나는 변방연극제 관객과의 대화에 패널로 참석하여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시간이 정지된 사람
과거의 시간에서 멈춰있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사람
주어진 시간을 다 사용한 사람

시간이 정지된 사람이라는 표현은 영화 속에 나오듯 첫 등장부터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저씨를 보고 떠올린 것이다. 이 아저씨는 변함없이 라디오를 귀에 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사회에서 살아간다. 사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지적 장애인분들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해야 살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아주 많다. 영화 속, 그 라디오 아저씨 역시도 난 그렇게 보았다. 시간이라는 것은 언제나 앞으로만 가지 절대 뒤로는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이 정지 되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두 번째로, 과거의 시간에서 멈춰있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화면 속 구름 다리위에서 노숙을 하던 12명의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몇몇은 끝까지 남아 다리 위에서 박스집을 지어 생활해간다. 영화에서 누차 강조되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자신들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가 분명하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반 사회인들에게 최대한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구름다리위에 각자가 지은 집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도 하며(물론 너무 지저분하거나 민원이 들어가게 되면 경찰이나 코레일 직원들에 의해 쫓겨 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구걸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기보다 서로가 도움을 주며 폐지를 주워 생활한다.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노숙의 삶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사회단체를 통해 조그마한 원룸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삶을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을 다 사용한 사람이라고 한 표현은, 말 그대로 인생이라는 시간을 모두 다 소진 한 노숙인을 표현한 것이다. 수많은 노숙인들이 그렇게 시간을 다 소진한 채로 거리에서 차갑게 죽어간다. 그런 노숙인들의 죽음을 자신들이 원한 죽음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속 김광일씨는 거리에서 알게 된 친구 노숙인을 먼저 저세상에 보냈다. 그런데도 그는 노숙인 삶을 이어간다. 가족에 대한 특히 자신의 형에 대한 원망에 사무친 기억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로 노숙의 삶을 이어가다 김광일씨 역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영화 <구름다리>의 한 장면

 

노숙인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여기에서 그러면 이런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적어도 조금씩은 알고 있듯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 노숙인이라는 것은 현시대에서만 존재 하는 사람들일까? 그렇지는 않다. 노숙인은 예전부터 존재 했다. 작은 부족사회가 농촌사회가 되고, 점차 도시화가 되가는 시점에서부터 존재했다고 본다. 이 시점에 인구가 증폭되고 도시화 과정에서 타의든 자의든, 그 환경에서 밀려난 이들이 노숙인이 되었다. 흔한 말로 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옛날에 노숙인들을 부랑인 또는 부랑아, 거지나 거렁뱅이라고 불렀고,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또라이, 미친놈, 근현대에선 이들을 정박아라고까지 명칭을 정해 불러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에서야 문제가 되고 있는 노숙인 문제는 어떻게 보면 사회 시스템에 맞게 노숙인들 역시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거지들과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노숙인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옛날의 거지들에게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거지들은 품바놀이 같은 광대 짓을 하며 동냥을 하였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기도 했다. 잔치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거지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시대에선 노숙인들이 있을 곳은 없다. 일반인들은 각자의 삶에 대해 앞만 보고 갈뿐 노숙인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아간다. 이 시대에서 잔치라는 것은 그럴싸한 곳에 예약을 하고 벌어진다. 노숙인들이 발길을 들일 수 없는 곳에서 잔치를 한다. 일반인들이 변해온 것처럼 이 시대의 노숙인들 역시 변해왔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불편한 존재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의 시스템 속에 갇힌 사람들

나는 노숙인들을 도심의 시스템 속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 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노숙인들이 도심 속에서 어떠한 규칙에도 규제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노숙인들의 삶이 정말 자신들이 원한 삶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거리에서의 삶이 말이다.

노숙인들이 왜 거리에서 자야하는 하는 것일까? 거리에서 자는 사람들을 모두 노숙자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자는 것이 노숙인들의 자유라고 말하기 이전에, 노숙인들이 왜 거리에서 잘 수밖에 없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나라 시스템 상에 커다란 문제는 뒤돌아서거나 멈춰서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경쟁구도라는 것이다.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지금 당장 먹고 살돈도 없는 상황에서 월세를 내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월급은 한 달 후에나 나오고, 지금 당장은 쓸 돈도 없고, 바로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일이라고는 노가다라는 막노동밖에 없으며, 그런 일 조차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신하기 때문에 꾸준히 일을 할 수도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삶에서 월세가 밀리다보면 자연스레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거리의 삶에 익숙해지다 보면, 노숙인 스스로가 모든 것에 지쳐가고 의욕을 잃게 되었다는 신호가 아닐까?

노숙을 하는 것은 자유라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어디서든 노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노숙이냐라는 것이 핵심이다. 노숙자에게 지금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비와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자신만의 안전한 보금자리라고 본다. 그다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만의 일자리일 것이다. 이런 것이 완벽히 구현 된다면 그래도 그들이 노숙자가 되려고 할까?

 

도덕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불편한 시각은 서로간의 다른 도덕적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구걸을 하는 노숙인들은, 그 행동 자체가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계활동인데도, 일반인들은 그저 놀고먹으려는 심보라는 눈으로 바라보며 불편해 한다. 노숙인들의 삶에서 술은 빠질 수 없으니 항상 술에 취해 있는 모습에 충분히 불편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 술은 어찌 보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그나마 생명을 지피고 있는 원동력일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모든 노숙인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불편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구름다리>에서 보았다. 이들처럼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있다. 노숙인들이 노숙을 하는 것에 대해 자유라고 말하기 전에,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죽어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자유라고 말 할 수 있는지부터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하지않을까? 우리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청하지 않는가? 우리는 일반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본다. 노숙인들이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노숙을 하는 상황인데도 그것이 자유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잠재적 노숙자

공간과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굴fp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젠가는 모두 사라진다. 영화에서 보듯, 노숙자들이 쫓겨난 텅 빈 구름 다리위에는 비둘기때 한 무더기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일반인들이 불편하게 바라보는 노숙자도 사람이고 우리들도 사람이다. 우리 역시 노숙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과부화가 걸린 지금 이 도심 속 시스템이 개혁되어 안정되지 않는 이상 우리들은 잠재적 노숙자이고, 도심 속 시스템에 갇혀 살아가는 불안전한 미래일 뿐이다.

 

필자_한종선

소개_ 하나.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의 피해생존자이며, 아버지와 누나는 형제복지원에서 겪은 일로 정신이상자가 되어 현재까지도 정신병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2년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였고,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공저)에서 글과 그림을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시설에서는 형제복지원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시설에서 생활해본 당사자로써 이런 인권유린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시설 안에서 살아가는 최약층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나는 이런 희망을 품고서, 국가폭력과 시설의 근본적인 잘못 때문에 생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나가고 있다.

. 언젠가는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조그마한 시골집에서라도 단란하게 살아가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
관객과의 대화 사진촬영_유영록
영화 스틸컷_변방연극제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mtfestival&categoryNo=114

 [작품소개]  

<구름다리>

일시: 2014년 07월 23일 오후 08:00 - 2014년 07월 23일 오후 09:00
내용: 제16회 서울변방연극제 새연극학교 공동체 다큐상영 (98분)
장소: 삼일로 창고극장

감독 정일건 
제작 푸른영상       
촬영 정일건  
편집 정일건        
번역  강지현

출연 김광일, 김신영 외

SYNOPSIS
신영씨는 매일 라디오를 통해 날씨와 교통정보를 확인한다.
폐암 환자인 김씨 구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박씨는 거리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신씨는 박씨의 적응을 돕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서울역에 살고 있다. 

 

연출의도
서울역 노숙인들 사이에 구름다리라고 불리는 인도육교에는
오래 전부터 종이박스와 나무로 만든 집들이 있었다.
노숙인들은 항상 역사 밖의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구름다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특별히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거리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할지 모를 이들에게
구름다리는 집이자 생계의 터전이었고, 또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도시가 지속되는 한 피라미드의 가장 낮은 곳을 버티고 있는
노숙의 시간도 계속될 것이다.
 

[정일건 감독 소개]

FILMOGRAPHY

2009 대추리에살다 (다큐멘터리, 68분, dv) 연출, 촬영, 편집  
      -2009부산국제영화제, 2010인디다큐페스티발, 2010서울인권영화제

SHORTS 단편
2006 대추리전쟁 (다큐멘터리, 40분, dv) 연출, 촬영, 편집
     - 2006인디다큐페스티발, 2006서울인권영화제, 2006부산국제영화, 2007서울환경영화제 

 [푸른영상 소개]

‘푸른영상’은 카메라를 통해서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머리나 기술보다는 ‘가슴과 발’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 자본과 시스템으로 큰 작품을 하기 보다는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1991년 결성한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이다. 통일•노동•빈민•환경•여성 등 다양한 사회문제와 우리 이웃들의 삶을 기록하면서 역사와 사회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1998년 대책 없이 길거리에 내몰린 상계동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을 시작으로 <명성, 그 6일의 기록>, <행당동 사람들>, <송환>, 변영주 감독의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 정일건 감독의 <대추리에 살다> 등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과거,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며 한국 사회의 묵묵한 기록자로써의 역할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