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3. 00:13ㆍFeature
관객 여러분 혹은 한 분,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연극 연출하는 이경성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작품이 아니라 편지글을 통해 ‘당신’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최근 공연계에서 일어난 사건 한 가지에 대해 당신의 의견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9월 세 명의 연출가(김정, 송정안, 윤혜숙)가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의뢰로 팝업씨어터라는 형식(극장이 아닌 카페나 일상의 공간에서 게릴라식으로 벌어지는 공연)의 작품을 의뢰받았습니다.
그런데 첫 작품인 김정 연출의 <이 아이>라는 공연에서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주최 측은 공연을 방해/중단 시켰습니다. 이후 나머지 두 연출들은 대본제출 요구를 받았고, 이에 자발적으로 공연취소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벌어진 차마 믿지 못할 극장의 처사에 대해서는 이 편지에 상세히 담지 않겠습니다. 이 세 명의 연출가가 30대 초반의 매우 ‘젊은’ 연출가였다는 점도 굳이 이 글에서는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자칫 사태의 본질이 단순한 세대 갈등으로 비추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당신’의 의견이 가장 궁금한 이유는 이러한 ‘검열’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제한시켰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알 권리도 침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공연이 사전에 차단되었기 때문에 당신은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겁니다.
오늘의 연극에서 ‘세월호’를 연상시키면 왜 안 되는지 납득되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그것의 부당성을 설파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에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연극을 공연했을 때 그것의 적절성, 진정성, 예술성을 관객인 당신이 스스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판단할 기회조차 박탈해버린 한국공연예술센터의 ‘폭력’에 대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극장이 관객을 기만하고 관객의 지적 능력과 가능성을 무시한 무지막지한 폭력이 ‘당신’에게 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장면과 내용이 부적절하고 설익었다는 판단이 든다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비판을 하던, 항의를 하던, 다시는 공연장을 찾지 않던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당신이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를 극장이 철저하게 사전 차단한 결과로 당신의 반응까지 특정 테두리 안으로 통제해 버린 처사입니다.
당신의 알 권리를 박탈한 주최 측은 언젠가 당신의 설 자리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하여 저는 이번 사태를 ‘당신’에게 알리고 ‘당신’의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당신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의견’이야 말로 사실은 그들이 두려워 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당신의 의견을 전해주세요.
P.S 이런 사태가 생기고 나서야 이렇게 당신에게 몸을 낮추어 미안해요.
2015.11.12.
이경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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