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3. 01:45ㆍLetter
5월 축제를 마치고 6월 레터를 쓰며, 7월 축제를 마치고 8월 레터를 쓰겠다고 했는데 또 늦어버렸습니다. 대충 8월에 프린지페스티벌을 마치고 레터를 쓰는 척해봅니다.
누군가 근황을 물으면 일이 많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합니다. 5월 축제로 돈을 조금 벌었고, 7월 축제를 통해 어떤 자긍심을 얻어갈 수 있었다면, 8월엔 작품세계를 넓히는 일이 있었거든요. 한 달 사이에 기획 겸 연출로 참여한 공연 2편을 새로 올리고, 군산과 수원에서 기타도 치고 왔습니다. 주말마다 공연을 올리고 주중엔 프린지에서 5년 만에 자원활동가를 했어요. 하루 하루의 일정은 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쉬는 날 없이 두 달을 달리고 나니 몸이 퍼지고 말았습니다. 뭐 다 변명이겠죠.
전업 예술가로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전 그것이 마치 무수히 많은 겸업을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로 각자의 작업으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맞춰 일을 또 만들어내곤 하니까요. 이날은 내게 다른 회의가 있어서, 저 날엔 상대가 수업이 있어서, 언제는 누가 지방 일정이 있고 어느 주는 아예 공연이 있어서 안 되는 날들이 반복됩니다. 어떤 변명들로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다 보면 자주 미안해지고 때로는 내게만 이 일이 소중한가 싶어 속상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해하는 수 밖에요. 그런 너그러움만이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된 일정으로 지치겠거니, 어떤 일에 몰입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이 필요하겠거니, 일이 아닌 생활을 챙기는 날들이겠거니, 마음을 달래는 때가 필요하겠거니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전업이지만 겸업인 사람들이잖아요.
인디언밥은 지난 달 독립예술집담회를 열었습니다. 포럼의 무게감을 내려놓으(려 애쓰)며 우뭇가사리 콩국을 나누어먹는 자리였어요. 제 외갓집이 있는 삼천포에서는 여름이면 잘 먹는 간식이거든요. 시원한 콩국물에 우뭇가사리를 넣어 먹으며, 축제를 통한 공동체가 가능할지, 각자 경험한 공동체성은 어떤 것이었고 무엇이 이를 가능케 했을지 얘기 나눴습니다. 프린지의 네트워크 회복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만큼 프린지 얘기로 기울긴 했지만 뭐 어떻습니까. 조금은 부족한 진행에도, 맛있는 걸 나누어 먹으며 고민을 나누는 자리 자체가 중요한 거죠. 준비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드러누워 버리기도 하고, 셋업하다 숙취 때문에 말 그대로 드러누워 있기도 했지만 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얘기해봅니다. 변명인 줄 알지만, 알면서 속아주는 것들이 필요한 법이죠.
진세 작가님이 강사가 되어 프린지 미학 워크숍을 진행해준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묻더니, 관용적인 태도의 리뷰쓰기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마냥 좋은 얘기를 쓰자는 제안보다, 어쩌면 그것이 구조적인 관점을 더 필요로 하는 작업이 될 지 모른다고 말할 때 저는 조금 혹했어요. 우리가 어떤 작품을 지적함으로써 만족하기보다 그 작업의 한계를 만든 예술 생태계의 구조를 파악하고, 보다 관용적인 태도로 글을 쓸 수 있다면, 함께하는 동료를 지적함으로써 내 노고를 전시하는 대신 서로의 변명에 기꺼이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겸업 편집위원인 저의 레터 펑크에도 너그러움을 부탁드려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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