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8. 17:12ㆍReview
2010한국마임 극장공연 리뷰
「감옥」 세번째 이야기
마임극단 동심 - 숨 그리고 숨
상상바람 - 집과 나
고재경 - 선Ⅲ
글_ 조원석
우석레퍼토리극장 앞, 원석과 동이가 만났다. 둘은, 둘 다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눈인사도 하지 않았고, 악수도 하지 않았다.
“오늘만 보면 돼.” 원석은 동이의 표정을 보았다.
“그래.” 동이는 웃었다.
“아쉽지?” 원석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전혀.” 동이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숨 그리고 숨>이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렸다면, <집과 나>는 그보단 작고 소중한 일상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고, <선Ш>는 섬세하고 내밀한 내면을 그리고 있었다.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공연들이 다 비슷하게 보여.” 원석은 극장을 나서며 기지개를 켰다.
“다 마임이잖아. 저기 포스터에 씌어 있잖아. 한국 마임 축제.” 동이가 극장 문에 달린 포스터를 눈으로 가리켰다.
“알아. 그래도 뭔가 아쉬워. 넌 어땠어?” 원석은 포스터를 보지 않았다.
“나? 공연이 다 비슷하게 보였어 그래서 재미있었어.” 동이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비슷한데 뭐가 재미있어? 또 이상한 소리 한다.”
“연예인 닮은 사람을 찾는 방송도 있잖아. 심지어 애완견이랑 주인이랑 닮은 사진들도 인터넷에 있던데. 그런 것, 사람들은 좋아해. 나도 웃음이 나오더라.”
“그거랑 공연은 좀 다르지 않아?”
“다르겠지. 그렇게 차이점을 봐. 비슷한 점만 보지 말고.”
“비슷하다는 건 꼭 그런 뜻은 아니야. 재미없다는 뜻이지. 마임의 동작들은 재미있는데 그 동작들이 얘기하는 건 다 비슷하고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거야.”
“글쎄 진실에 가까울수록 다 비슷해지지 않을까?” 동이는 진실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 내가 진실을 본거야? 난 진실을 본 적이 없어. 이건 사실이야.” 원석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쩌면 넌 진실을 봤는데 그것이 진실인지 모르고 지나쳤는지 모르잖아? 예술이 뭘까? 그것이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예술가란 진실을 찾기 위한 예민한 촉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걸 거야. 그런 촉수가 없는 사람들은 진실이 바로 앞에 나타나도 알아채지 못하겠지.” 동이에게 ‘진실’이라는 단어는 불에 달군 낙인이었다. 자신의 입술에서 진실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온 몸이 낙인에 찍힌 양 화끈거렸다.
“네가 본 것을 얘기 해줘. 나, 마임은 잘 모르겠다.”
동이는 원석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였다.
“나도 마임은 잘 몰라. 단지 마임을 통해 본 것은 모순이었어. 마임은 움직임이야. 움직이지 않는 마임은 없어. 움직이면 공간 속에 사물과 인물이 나타나. 그리고 그 사물과 인물들을 이용해서 사건을 만들어내지. 신기하게도 책상의 색깔이 무엇인지, 옆에 있는 아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볼 수는 없지만 책상이 보이고, 잔소리를 하는 아내가 보인다는 거야. 마임이스트가 만들어 낸 것은 책상이나 아내가 아니라 책상의 존재이고, 아내의 존재야. 모순은 여기에 있어. 관객이 책상과 아내의 존재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무대 위에 구체적인 책상이나 아내가 없었기 때문이지. 지금 너는 나를 보고 있고, 만질 수도 있어. 파란색 잠바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나는 마임을 했던 사람이고, 네가 써야할 리뷰를 도와주기 위해 만나는 사람이지. 하지만 너는 나의 존재를 보고 있지는 않아.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아마 너는 나를 떠올릴 거야. 그때 너에게 떠오른 나의 모습이 나의 존재인지도 몰라. 마임이스트가 사물과 인물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죽은 자를 떠올리는 방식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임이스트의 움직임은 관계야. 책상과의 관계, 아내와의 관계를 움직임으로 표현하면 그 앞에 책상과 아내가 나타나지. 내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 할아버지는 항상 내 곁에 있어.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거나, 들에 핀 꽃을 따 주거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 주거나 해. 그것이 나에겐 할아버지의 존재야. 부재를 통해 존재를 느끼는 것과 잃었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같다고 봐. 이것이 마임을 통해 본 모순이야.”
“ 왠지 슬퍼지네. 하지만 어쨌든 아직 너의 존재를 볼 수 없어서 다행이다. 그동안 공연 보느라 힘들었지?”
“ 아니, 나도 도움이 많이 됐어. 사람들이 왜 여행을 떠나는지 알 것 같아.”
“ 왜? 여행 떠나게?”
“ 아니, 다시 마임을 할 것 같아.”
“ 다행이다. 언제 공연하면 불러 리뷰 써 줄게.”
“ 그땐 같이 공연을 보지 못할 텐데.”
“ 그럼 공연 안 보고 너 보지 뭐.”
“ 그래 보러 와. 이제 갈게. 그동안 즐거웠어.” 동이는 원석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받은 원석의 손은 차가웠다. 동이는 자신의 손이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지하철이 을지로 3가를 출발할 때 동이는 출판사 편집부장이 보낸 전파를 받았다. 원고교정의 진행 상황을 묻는 부장에게 동이는 내일 오전에 출판사로 가져가겠다는 전파를 보냈다.
동이는 문을 닫았다. 방은 더 한층 견고해졌다. 동이는 책상 의자에 앉아서 소설 ‘감옥’ 속으로 들어갔다.
「 나는 지금껏 나를 가두는 창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과의 인연은 짧았고, 사랑을 할 땐 증오도 했다. 우정은 거리두기에 심혈을 기울였고, 모든 일에는 일탈이 있었다. 나는 자유를 꿈꾸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갇히지 않기 위해 나를 가두었고, 나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 창살을 만들었다. 감옥은 좁았고, 창살의 틈은 넓었지만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벌이다. 나는 간수이자 죄수였다. 아마도 나는 나를 지독히 사랑했나 보다.」
동이는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동이는 마임을 하고 있었다. 마임의 제목은 ‘침묵’이다.
- 完
조원석의 '열심히 쓰는 글'
2010한국마임 극장공연 리뷰「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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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026-1107 우석레퍼토리극장
1105-1106 프로그램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여러가지들, 사랑, 이별, 희망, 죽음...
우리들의 마음이야기
출연 : 이경식
상상바람 - 집과 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상황들을 마임으로!
출연 : 이태건
고재경 - 선Ⅲ
혼돈속의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아련한 기억속에 혼재하는 추억들
출연 : 고재경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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