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춘천의 ‘아르숲’에 스미는 봄, 공간의 힘!

2013. 10. 25. 08:40Feature

 

 

춘천의 ‘아르숲’에 스미는 봄, 공간의 힘!

- 지역예술창작공간 탐방기

 

글_김혜연

 

  햇살 좋은 10월 둘째 주 일요일 오후, 서울을 떠나 도착한 춘천의 창작공간 ‘아르숲’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좌 00여관 우 00모텔 사이, 별별 사랑이 싹트는 모텔촌 한 가운데였다. 아이들은 앞마당에서 뛰놀고 알록달록한 건물과 커다란 멍멍이 조각상 (‘바우’라는 이름의 작품) 때문에 잠시 멍해졌을 무렵, 옛 동료이자 친구가 반갑게 맞미해주었다. 안녕, 도히도히 도희씨! (지난 예술가 엄마의 육아일기기사 참조 ->indienbob.tistory.com/732 )

도희씨는 ‘아르숲’의 새 매니저이다. 만나자마자 이곳저곳 소개해주는 모습에서 설렘 가득한 새내기의 기운을 느꼈다. ‘아르숲’은 춘천문화재단에서 유휴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공간 사업이다. 2011년 11월 ‘갤러리 아르숲’이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뒤, 춘천 지역 청년예술가를 위한 창작지원공간, 지역주민들도 참여하는 생활문화공간으로 뿌리를 내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한 고민은 건물 곳곳에서 쉽게 마주하였다. 1층 갤러리와 야외설치공간을 잇는 통로, 곧 비게 될 2층과 옥상, 뒤뜰을 변신시킬 계획, 3층 입주 작가(시각예술) 5인을 위한 레지던시, 넓은 앞마당에서 ‘아르숲다움’을 느꼈다. 엄한 곳(?)에 위치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가와 예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열린’ 공간으로 얼마나 많은 ‘실험’을 해왔을지, 소중한 시간의 흔적들을 남몰래 어루만졌다.

 

 

3층에 다다랐을 때, 한 입주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조각가인 고중흡 작가의 공간이었다. 한두 명 들어가면 꽉 찰 작은 공간이었지만, 활짝 열은 문과 작가의 환한 미소만으로도 이 레지던시 공간이 지향하는 바를 눈치 챘다. 게다가 이곳에 온지 한 달 남짓인 매니저와 살갑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주목하였다. 아르숲의 레지던시는 현재 시각예술작가를 중심으로, 선정이 되면 최대 3년까지 작업실을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인상 깊었던 까닭은, 예술가들 또한 교류의 한 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점이었다. 아르숲 공간 조성, 레지던시 개방, 프로그램 진행과 같이 ‘함께’ 아르숲을 이끄는 주체들 중 하나가 바로 입주작가들이었다. 개인 작업과 전시 지원에 그치지 않고, 춘천 예술가가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방법들을 ‘레지던시 사용 조건’이 아닌 ‘협업관계’로서 풀어나가는 중이었다. 지원만으로도 좋은 곳이지만 더 많은 기회와 관계를 접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경험이어서 좋다는 작가의 말에 흥겨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이 날 앞마당에서는 10월 동안 임시로 운영하는 ‘프리마켓’이 한창이었다. 먹거리를 파는 탈학교 아이들부터 수공예 창작품을 파는 작가들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자리한 천막 사이로 어른과 아이들이 즐거운 주말을 보내는 중이었다. 현장을 옥상에서 바라보며 도희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즐거운 이야기보다는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 쪽이 많았다. ‘어떠한 창작공간이 좋은 공간인가?’가 대화를 이끌었다. 나 또한 공간과 연이 닿아있는 사람이라 (서울시 창작공간이자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교예술실험센터’의 민관 거버넌스격인 공동운영단 멤버로 활동 중이다. 최근 큰 어려움이 이곳에 발생하였는데,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와 의견을 인디언밥에 소개하고 싶다.) 도희씨의 고민과 바람 하나하나를 잘 붙잡았다.

좋은 기획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람이다. 공간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좋은 매개체이다. 현 시각예술 중심인 공간 (도희씨는 공연예술이 익숙한 사람이다.) 운영에 대한 어려움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벌써 다음 꼬리들로 뻗어나가는 중이었다. ‘아르숲’ 공간 안팎을 활용하여 다양한 예술과 조우할 계획, 청년음악가들이 부족한 것에 대한 고민, 대기업이 운영하게 될 창작공간에 대한 기대와 우려, 다른 창작공간들과 지역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하였다. 안심이 들었다. ‘아르숲’은 고민 많은 좋은 기획자를, 춘천 사람 도희씨는 채워나갈 일이 많은 좋은 공간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1층으로 내려와 이것저것 맛난 먹거리들을 먹었다. 역시 문화나 예술은 현장에서 마주하는 때가 가장 신선하다. 흔해진 서울의 프리마켓(또는 야외장터) 풍경과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사람이 바글바글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보다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표정과 몸짓에 밴 여유로움 때문이었다. ‘레어 아이템을 사겠다, 하나라도 더 팔겠다, 몇 시에 이 프로그램을 해야한다.’라는 예민한 기운대신 주말의 한가로운 나들이처럼 느껴졌다. 공간 운영진도, 입주작가도, 마켓 참여자도, 구경 온 지역 사람 사이에 경계가 없었다.

아르숲을 책임지는 강승진 정책기획팀장은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아르숲’은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역할과 더불어 춘천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지역사회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춘천 사람들은 예술의 즐거움을 누리는 순환 과정을 통해 생활 속 예술이 흐르는 지역사회 조성에 집중해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큰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러한 창작공간들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빈 땅이 있으면 건물을 짓고, 건물이 비면 곧장 다른 건물 짓기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건물은 믿을 만한 자산인가보다. 가져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 확실하니 어림잡아 추측만 할 따름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빈 건물을 허물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 또한 많이 만난다. 주로 예술, 대안, 지역, 소통, 나눔, 공동체와 같은 가치들을 풀어내는 ‘공공의 문화공간’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바람직한 흐름이 부디 유행이나 밑져야 본전 식으로 문을 열었다 닫는 일이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공간, 건물을 민간에서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관에서 무상임대로 위탁 운영하는 창작공간들이 생겨나지만, 문제는 공간을 대하는 태도들이다. 행정적 절차에 따른 성과와 긴 호흡으로 공간에 문화를 입히려는 계획이 부딪힌다. 예산 편성에 따른 정당한 이유와 역사와도 같은 문화를 일궈내기 위한 마음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행정은 편의와 쉽게 타협하지 말고 창작공간에 적합한 평가지표들을 만들어야 하며, 창작공간들은 가치만으로 설득하지 말고 각 공간만의 특성을 갖고 뿌리내리는 일들을 추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양측에서 중요시하는 지역사회와 연계하며 진정한 문화예술을 퍼트릴 자신이 있는지를 충분히 검토하였으면 한다. 다행히도 춘천의 창작공간 ‘아르숲’ 지킴이들이 이를 잘 알고 있어서 또 한 번 안심하였다.

춘천의 한 모텔촌의 빈 건물이었던 곳에 어른만을 위한 봄에서 모든 세대가 누리는 봄이 스미고 있다. 많은 고민을 하면서 주변을 조금씩 누그러트리는 건강하고 건전한 문화로 뿌리내기기를 희망한다. 예술가와 지역사회에 적극 다가가는 공간이면서 예술을 기반으로 문화를 만들어내는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을 기대한다. 진짜배기 창작공간의 힘을 보여 달라!

 

 

 필자_김혜연

 소개_서울프린지네트워크 출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