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공간, 몸, 그리고 춤

2009. 4. 10. 14:1807-08' 인디언밥

‘자국’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공간, 몸, 그리고 춤

  • 김민관
  • 조회수 419 / 2008.09.11

 몸을 더듬는 과정, 몸의 자국들을 되짚는 과정, 몸을 가만히 접어 올리며, 그 빈 공간에 채우는 공기의 체적만큼이나 새롭게 전유되는 과거의 기억, 몸에 어린 현실의 온도...


 <자국>에서, 몸의 기억이 주는 자장들은 꽤나 정교한 체계 속에 선연한 자취들을 남기고, 시공간과 맺는 복잡한 구도의 양상을 갖고, 단순히 춤을 춘다기보다는 위치 지어지는 몸과 행위의 반복 속에 나타나고 있었다.

 기억의 재생으로 인한 환영적인 세계라고만 하기에는, 지난한 일상의 몸짓 가운데 어느 순간 다가오는 명확한 체감온도가 덧대어진다는 점에서, 그만큼 몸의 자국은 수동적인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절대적인 것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무대 내 벽 뒤에서 홀로 출현한 여자는 누군가를 품에 안고, 공간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몸짓 기호를 만든다. 다시 벽 뒤로 들어가 나올 때, 그녀의 손을 붙들고 그녀를 이끄는 누군가의 존재가 현전할 때, 이는 현재로, 또 기억으로, 그리고 온전한 과거가 된다.


 그녀는 현재 존재하는 자인가, 현재 전해지는(나타나는) 자인가? 즉, 그것은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서의 현재인가, 단지 기억인가? 현존과 현전의 사이에서 그것은 모호한 경계를 빚으면서도, 그녀와 맺는 관계는 그 선후관계의 엄밀한 판단을 조심스레 무너뜨리고 있었다.

 


 한 여자가 어느 상대방의 체적을 고려한 어루만지는 손의 위치지음 뒤에, 그 안에 포근히 안착되는 그 상대방으로서의 다른 여자는 조용히 그 자국을 벗고, 또 다른 곳에 눕고, 그리고 그녀를 좇아 몸을 기대며, 관계 맺는 한 여자, 이러한 반복된 흐름은 공간의 분절에 따른 위치지음과 맞물려, 비슷하지만 다른 층위들을 쌓아 간다.


 전자의 여자가 공간이 주는 몸의 기억에서 출발한다면, 후자의 여자는 그에 따라 선명히 재생되는 과거의 인물로 상정되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 후자의 여자는 몸이 갖는 기억 세포의 되살아남을 겪으며, 전자의 여자가 위치한 기억의 공간에 위치하면서, 현재에 위치한 존재로서 몸의 기억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선후관계를 따지기 어려운 것처럼, 주체와 타자로서의 구분 또한 없다. 마치 이미 '상대방'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 정확히 정합되듯 몸의 기억은 날카롭고도 강하지만, 한편으로 상대방은 누군가의 틈입에 맞춰 그 멈춘 몸에 작동을 시작하고, 상대방의 몸의 체적에 몸을 온전히 싣고, 둘의 관계 맺음의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살과 살의 부대낌은 조심스럽지만, 완전히 허상은 될 수 없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이면서도, 현재 둘에게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스파크이기도 하다.

 


 사실 반복된 양상의 몸짓 기호는 공간에 따르고 있지만, 그것이 모두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일상의 영역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알기 어렵다. 그것은 공연 중·후반에 접어들며, 차츰 색을 입고, 선명해진다. 내말 들으라는 몇 마디 잔소리 이후, 그 뒤편에서 몸의 기억을 따라가는 몸짓들이 이어지고, ‘다시 싫어 무슨 말을 해도 안들을 거야’라는 또 한 명의 여자의 말은 일종의 응수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현실에서의 둘의 관계(그것은 과거의 어느 한 사실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를 단서로 드러낸다.


 둘의 관계는 셋의 양상으로 바뀌어 있고, 셋이 같이 추는 춤은 해변에서의 손을 흔들고, 앙증맞은 동작들을 취하고 하며, 앞서 군데군데 드러난 비슷한 몸짓들을 어느새 우리 인식 속에 과거로 돌려놓고 있다.


 또한 '백만 송이 장미로 피어 날리는', '별똥별로 내리는' 꿈은 손으로 튕기고 정적인 상태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동작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 듯 보인다.

 말하자면, 추억과 꿈, 관계의 공유는 이 셋이 각기 다른 공간에 위치하면서 다시 만나면서 드러나는 기억의 자취의 전제 조건이었던 셈이다.

 


 공간이 주는 기억은 이들이 무대 곳곳에 서서 동네 한 군데씩을 말하고, 다시 자리를 옮기고 다른 동을 말하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와 앞서 거기서 가리킨 동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무대 곳곳을 기억이 어린 특정 장소임을 부각시킨다. 동 이름에 더해, 가족 관계를 언급하며, 공간의 기억을 조금 더 구체화하고 복합된 것으로 확장한다.


 사실 이러한 위치지음의 놀이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생활 동태나 환경을 나타냄은 아니지만, 조금 더 보편적인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갖는 기억과 맞닿는 면이 있다. 동이 갖는 특별한 기억,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이 파생되고 있다는 믿음 체계를 완전히 버릴 수만은 없는, 그런 단순한 사실들이 인지되면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중에는 조명이 발하는 무대 앞 셋의 추억이 맴돌던 한 곳에 머무르며, 동의 이름에 따른 몸짓을 끊임없이 순환하며 반복하는 여자, 그리고 앞서의 가만히 서로를 어루만지는 둘의 관계는 어둠 속에 잠겨 들며 그 자취를 조용히 흩뿌려 놓고 있었다.


 과감 없는 동작들의 거창함 뒤에 가려진 허구의 이미지들의 생산은 자꾸 춤의 정처 없는 갈 길을 노정하며, 소모적인 공연을 양산해 내곤 한다. 자꾸 그래서 진정 춤을 보는 혜안을 제시해 줄 공연들은 가뭄에 콩 나듯 찾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자국”은 자꾸 생각나게 하는 더딘 흐름 속에 일상의 자국들을 차용해, 다양한 몸짓 기호들을 춤의 잔잔한 파동과 흐름 안에 담아내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은 담백하면서도 쉬이 볼 수 없는 것이고, 다시 촘촘한 안무의 촉수를 뻗치며, 온전한 기억의 자국으로 우리를 되짚어 오는 것이다.


김민관  mikwa@naver.com

보충설명

일 시: 2008년 8월 19일-20일
장 소: 포스트극장
공연팀: 극단 노뜰
제작및기획 극단 노뜰 | 작/연출 정영두 | 사운드디자인 Wan-qian Lin | 무대디자인 인혜란 | 조명디자인 이현지 | 의상디자인 최인숙 | 연출부 윤상돈 김대한 엄주영 | 배우 이지현 임소영 이은아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8 참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