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극단이 된 피란민들

유랑극단이 된 피란민들
  • 조원석
  • 조회수 348 / 2008.11.20

 

전쟁과 춤이 만났다. 만난 곳은 고양 아람누리 새라새 극장, 이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연출자 김민정 씨다.

요즘 성격차이로 결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전쟁과 춤의 성격차이보다 더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감싸주거나 인내해야 할 것이다. 감싸주거나 인내하는 힘은 전쟁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춤에서나 찾을 수가 있는데, 이 부분이 참 곤란하다. 전쟁과 춤의 괴리가 너무 크다. 어떻게 전쟁을 긍정하고 인내할 수 있을까? 정작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떠나고 있지 않은가. 전쟁에서 멀리, 최대한 멀리, 전쟁이 없는 곳으로. 인내는 눈을 뜨고 하는 것이지 눈을 감고 인내할 대상을 잊는 것이 아니다. 춤이 아무리 성격이 좋다고 해도, 전쟁은 그 성격 좋은 것으로 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제 의문이 생긴다. 전쟁과 춤은 왜 만난 걸까?


 전쟁은 만나고 싶어 만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둘의 만남은 어쩔 수 없는 만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피란길을 떠나는 것이다. 춤은 이 어쩔 수 없는 전쟁과의 만남에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은 이 상황을 춤으로 이겨낸다.


 춤은 전쟁을 긍정하지 않는다. 춤이 긍정하는 것은 삶이다. 피란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배고픔을 느끼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식사 준비를 할 때,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장면을 춤으로 표현한다. 춤은 허기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허기진 상황을 긍정한다. 전쟁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피란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긍정한다. 여기까지는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피란민 사이에서 작은 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피란민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싸우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싸움이 곧 춤이고, 춤이 곧 싸움이다. 이것은 폭력을 긍정하는 것일까? 물론 싸움하는 장면이 아름다울 수 있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순간 폭력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몸의 동작만이 뇌세포를 자극한다. 액션의 미학. 하지만 이 연극은 싸움이 아니라 전쟁을 다루고 있다. 액션이 아니라 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액션을 다루고 있다. 춤의 미학이 아니라 액션의 미학이다. 다른 부분은 연극이 춤이 된 경우지만 이 부분은 액션이 춤이 된 경우이다.


 ‘떠나는 사람들’의 춤은 침묵을 닮았다. 침묵은 견디는 것이다. 전쟁에 대해 침묵하고 힘든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침묵이 거리두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 거리두기는 화를 낼 상황에서는 눈물을 짓게 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미소를 짓게 한다. 슬퍼하는 것은 화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은 힘든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다. 이러한 춤에 대비되는 것이 음악이다. 무대 뒤편에 비계를 설치하고 복고풍의 옷을 입은 악단이 서있다. 리듬은 흥겨운데 소리의 질감은 구슬프다. 그 소리가 즐거웠던 한 때를 찍은 오래된 사진 같다. 특히 트럼펫 소리와 보컬을 맡은 정마리의 목소리는 무대 밖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무대 안으로 들어와 잔잔히 고인다. 그 고인 소리가 눈물로 뚝뚝 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춤이다. 음악은 흥겨운 리듬 밑으로 애잔한 슬픔이 흐르고, 춤은 슬픈 상황 속에서 가벼운 스텝을 밟는다. 이 대비로 인해 음악과 춤이 조화를 이룬다. 이 조화 속에서 춤이 지니고 있는 침묵이 극대화 된다. 잔인한 전쟁 속에서 밟는 스텝이 너무나 가볍다. 전쟁에 대한 침묵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있을까? 그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그것은 ‘떠나는 사람들’의 ‘떠남’ 때문일 것이다. 유랑극단이 ‘떠남’을 ‘정착’으로 삼았듯이, 어느새 피란민들도 ‘떠남’을 ‘정착’으로 삼는다. 이 ‘떠남’이 가지고 있는 슬픔. 이 ‘떠남’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할 ‘떠남’이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떠남’을 ‘정착’으로 삼았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웃옷을 올려 얼굴을 가린다. 죽은 자의 얼굴을 가리듯이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 지금 떠나는 사람 앞에서 자신들도 결국 떠나야할 사람들이란 걸 되새기는 걸까? 전쟁은 떠남을 강요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 떠났던 사람들 앞에 죽음이 찾아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떠남’에 ‘정착’한 유랑극단이 ‘떠남’을 안고 살듯이, 사람들 역시 ‘죽음’을 안고 사는 것이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결국 떠나야할 사람들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사는 것. 그러면 화를 낼 상황에 슬퍼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보충설명

* 작품명 : 떠나는 사람들
* 일 시 : 2008년 11월 1일(토)~11월 2일(일)
* 장 소 : 고양 아람누리 새라새극장
* 제 작 : 무브먼트 <당-당> http://cafe.naver.com/seouldancehall
* 참 여 : 안무/연출 김민정, 영상/기록 조득수 서진화 하야태준, 조명디자인 유은경, 무대미술 하수민, 무대감독 안치윤, 사진 최홍준, 의상 김현아, 음향 박세일 송우현, 조명감독 성은선, 조명크루 정성욱, 디자인 양승욱, 기획 이수진, 진행 김소연
* 출 연 : 무브먼트 <당-당> 동인
김현아(배우), 방현혜(무용가), 정마리(보컬리스트), 최진한(무용가), 장현국(무용가), 하진선(무용가), 김준희(무용가), 박은미(무용가), 백종승(배우), 손민효(배우), 나기환(배우), 서재영(배우), 조정원(배우), 신주호(배우), 정아영(배우), 이현경(배우), 최훈건(특별출연, 어린이)
* 킹스턴 루디스카
최철욱, 오정석, 정은석, 박헌상, 최문주, 서재하, 유선화, 이석율, 이종민, 한국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