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제18회 서울변방연극제 <25시-극장전>

2017. 6. 26. 12:11Feature


제18회 서울변방연극제가 서울의 극장과 광장, 대안공간에서 6월 26일부터 2주간 개최됩니다. 변방연극제는 지난 17회(2015년) 때 “십오원오십전(예술감독_임인자)” 이라는 주제어로 열렸고, 격년의 형식으로 바뀌어 올해 “25시-극장전(예술감독_이경성)” 이라는 주제어로 관객들을 만나게 됩니다.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은 프리뷰 코너를 통해 18회를 맞이하는 서울변방연극제의 작품들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디언밥의 편집인인 동시에 변방연극제의 축제 드라마터그로 새롭게 합류한 전강희 필자가 기고한 2017 서울변방연극제 미리보기! 작품에 대한 ‘나’ 의 체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생각들이 여러분의 축제 관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제는 이제 시작입니다. 


-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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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광장 사이,

6개의 극장에 올라가는 10개의 작품들에 대한 단상

2017 서울변방연극제 프리뷰


개폐막식이 열리는, 어제의 광장과 오늘의 광장 사이, 여섯 개의 ‘극장’이 있다. 이곳에서 10개의 공연이 올라간다. 개막식 <25시-극장전>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부인 광화문 광장에 쌓여있는 여러 개의 레이어들을 뚫고 혹은 그 위에 올라서서 세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개인의 시선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양평동 공장건물을 개조한 갤러리, 대학로의 블랙박스들, 마로니에 공원 앞 야학에 위치한 강당에서 올라가는 공연들은 동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함께 나눈 고민의 산물들에 관객들이 시선을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각자의 극장에서 어떤 언어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들의 상상력은 변방에 자리하고자하는 플랫폼과 어떻게 조우하는가? 축제 준비를 시작하던 무렵 어렴풋했던 것들이 축제가 코앞에 닥친 지금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본 것에 대한 메모 몇 개를 여기에 남긴다.


<킬링타임>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은 가해자의 언어에 집중하고 있다. <commercial, definitely>, <킬링 타임>, 최근에 있었던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까지 이런 맥락의 작품을 세 개나 무대에 올렸다. <가해자 탐구>의 경우,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 같다고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극이 진행되는 동안 가해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고 동의가 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그 순간의 나를 인지하는 것이 불편한 공연이었다. ‘여당극’의 배우들은 이러한 공연에 어떤 태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특히 세월호 재판과정에서 나온 말들을 편집해서 만든 <킬링타임>에서 배우로서, 극중 인물로서 스스로를 어느 지점에 위치시키고 있는지. 또 혜화동1번지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이후의 연극, 그리고 극장’, 검열에 맞서 싸운 광장극장 ‘블랙텐트’, 이번 서울변방연극제의 ‘25시-극장전’까지 주제 의식이 강한 플랫폼을 거치면서 공연자체가 어떻게 확장되어가고 있는지.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이다. 



<노동집약적 유희 2017>

극단 ‘丙 소사이어티’의 <노동집약적 유희>를 처음 보았던 시기는 2015년 겨울 ‘인천아트플랫폼’에서였다. 그 후 2016년 ‘아오병잉페스티벌’에서 레크리에이션이라는 부제를 달고 한 번 더 공연이 있었다. 최근에는 종로구의 보신각종 앞에서 야외 공연형태로 관객을 만났다.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해서 이제 필요 없어질 무대 설치물인 대형 게임판을 알바노조에게 기증하려고 했다는 연출가의 말에서, 정확히는 ‘알바’라는 단어에서, 처음 이들을 보았던 때가 떠올랐다. ‘丙 소’는 연출가 송이원을 제외하고는 연극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만든 극단이 아니었다. 대체로 공연이 있는 날,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치지 않고, 일정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학생들이 송이원이 무언가를 한다니 같이 해보자,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모인 단체였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노동집약적 유희>가 4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요리사가 되었고, 학원 강사가 되었고, 대학원생이 되었고 혹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라 – 어둠 너머의 목소리>

세계각지에서 활동 중인 인권운동가 34명의 목소리가 담긴 극이다. 미국의 케리 케네디는 2년여 시간에 걸쳐 이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 후 칠레의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손에서 오랜 시간을 거친 후 희곡으로 재탄생했다. 희곡의 지문은 “First Voice, Second Voice... / Woman makes a gesture...”처럼 아주 간단한 문장 몇 개가 전부다. 연습 장면을 보며 목소리에 집중하는 이 극이 다른 문화권의 소리와 억양으로, 차이가 느껴지는 미세한 몸짓들로 채워질 때 어떤 질감으로 다가 올 것인가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무대를 채우고, 다양한 음색과 몸짓에서 흘러나온 에너지가 객석으로 넘어가는 상상도 해보았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가 전하는 34인의 목소리에는 무엇이 담길까? ‘처음 텍스트를 집어 들었을 때 극중 인물들을 희생자로 여기고 연기 계획을 세웠지만, 인물에 다가가려 노력하다보니 그들이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여기게 되었다’는 한 배우의 말이 단서가 될 것이다. 


<케미코후모와>

사토코 이치하라가 이끄는 일본의 주목받는 젊은 극단 ‘Q’의 작업이다. 제목 케미코후모와는 영어로 치자면 Pointless Tale of Kemiko로, 의미 없는 말장난 같다는 뜻이다. 한자어를 풀어보면 ‘털이 아름다운 여자의 털 없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정확한 우리말 표현은 아니라고 한다. 극 초반에, ‘나’에게 ‘또 다른 나’가 “모든 사람은 진짜 가죽 구두를 신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 그대로 완벽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다. 이 말에 도달하기 위해 극이 전개되는 방식, 주인공 여배우가 취하는 전략이 흥미롭다. 쓸데없는 말을 계속해서 쏟아놓거나, 발작을 일으키거나,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은 논리적이지 않은 전략들이 이어진다. 이들의 바로 윗세대이고, 스승이면서, 현대 일본 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 토시키 오카다가 표현하는 여성상과 비교되어 자주 언급된다고 한다.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진 여성이 아닌 여성이 표현하는 여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작품이다. 일본의 평론가 치카라 후지와라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함께 하기로 하였다.


<이방인의 만찬>

‘창작집단 푸른수염’의 단원들이 한국에 정착해 자국의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작품이다. 이들에게 이방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옳은지 단원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기에 모든 비난을 감수하려고 한다.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실제 인물의 발언을 무대에서 그대로 재연하는 버바텀 양식을 취한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우리가 보기를 원하는 모습만이 아닌 그대로를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방인은 이렇다. ‘한국을 싫어할 수도 있다. 완벽하지 않는 한국어도 한국어이다. 여러 인종이 섞여있는 단체 속에서 동등한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배경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배려가 필요하다. 선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등등이다. 연출가 안정민은 볼테르의 명언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를 예로 들며 성원권을 인정하는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공연이 마치 초상화를 바라보는 것처럼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는 공연의 제목이자 극단의 이름으로 연출가 강화정이 오랜만에 발표하는 작품이다. 무대에 올라가는 공연 자체에서 제목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면 움직임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4명의 배우들은 일상적인 단순한 움직임을 반복한다. 모든 움직임의 처음과 끝은 강렬한 의지로 채워져 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행위는 없다. 일상적인 움직임을 무대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자유롭지만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어 고독하다. 강화정은 사이보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 공연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편리해진 세상 속에서 인간은 자유롭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살던 모양새와는 다른 삶에 적응해야하므로 고독하다. 기계화된 세상 속에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놓이는 몸은 고독하다. 

 

<슬픈 짐승-답장>

동독의 작가 모니카 마론의 소설 『슬픈 짐승』에서 시작했다. 작가에게 보내는 연출가 동이향의 답장과도 같은 공연이다. 떠나간 사랑에 대한 기억을 온 몸으로 반추해내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에 끌렸다고 했다. 나에게 동이향은 연출가보다 극작가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그녀가 무대 위에서 구사하는 언어들이 일상어와는 다른 문학성이 강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은 숨소리, 속삭임, 중얼거림처럼 흔적 같은 말들뿐이다. 동이향은 몸과 맞닿아있는 언어를 발견하고 싶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바뀐 몸의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작품은 연극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몸을 통해 나오는 것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출발점과도 같다. 연출가의 발걸음에 동갑내기 김현영 배우가 함께 한다. 소설가에게 연출가가 보낸 답장처럼, 연출가에게 배우가 답을 보내고 있다.


<몸으로 거론한다는 것>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장현준의 작업을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와의와의과의과같이>에서였다. 세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선채로, 순차적으로 앞 사람의 행동과 발언을 모방하는 과정이 계속되는 공연이었다. 물론 당연히 똑같은 모방은 일어나지 않았다. 몸도, 말도 계속 흩트려지며 우스꽝스럽기도 안쓰럽기도 애잔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올해 초에 올라간 <삼각구도>의 첫 장면에서 비슷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장현준 혼자서 어떤 통 위로 말없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몸짓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지만 5년 전에 비해 견고했고, 진중했고, 엄숙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장현준은 사회적인 이슈, 재난에 몸을 통해서 다가가는 과정을 탐색중이다. 움직임의 변모가 무대 위에서 그대로 노출되는 것처럼 재난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도 그대로 공연 안으로 들어온다. 이번 공연은 그 동안의 작업들에 대해서, 어떤 실패의 과정에 대해서 장현준이 쌓아온 과정에 대해 고하는 렉처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연극의 3요소>

극단 ‘0set’은 <구일만 햄릿>, <법 앞에서>, <이것이 대학이다>를 만든 연출가 신재를 중심으로 뭉친 신생 극단이다. 연출가의 전작 속 주인공들은 해고 노동자, 건물에서 부당하게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 대학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을 했던 학생이었다. 연출가는 작품을 구상할 때에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자신에게서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이번 소재는 극장이다.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극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연극의 3요소 ‘극장, 배우, 관객’을 이들의 입장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배우와 장애가 없는 배우가 출연하여 ‘접근한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인식한다는 것, 다가간다는 것’에 대해서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 연출가 신재의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이번 무대는 또 어떤 형식을 취할지 궁금할 것이다. 많은 자본이 투입된 공연이 아니기에 공연장은 소박하지만 공간분할을 세련되게 연출하는 작품을 계속해서 선보였다. 극장이 아닌 건물의 대강당의 모습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지 기대해본다.


<워크숍 다큐극장-휴먼 액트>

Human Acts는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영문 제목이다. 독일의 연출가 카이 투흐만이 이 책을 이용해 워크숍을 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워크숍의 출연진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있다. 각자가 『소년이 온다』를 읽고 감상문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2주간의 워크숍이 시작될 것이다. 카이 투흐만은 대안적인 역사기록의 방법으로 다큐멘터리 연극에 접근한다. 공식적인 역사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사적인 역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최근 중국에서 진행한 몇몇 작업들도 역사기록에 대한 작업이었다. 한국에서는 다섯 명의 출연진들과 민주주의와 관련된 여러 가지 운동에 대한 경험들을 나눌 것이다. 사적인 경험을 통해 연극적인 재료들을 구하고, 이를 더 큰 맥락 안에 놓인 연극 장면으로 구성해내는 것이 목표이다. (글_전강희 : 서울 변방연극제 사무국장, 축제 드라마터그) 

 


▲축제 참여 아티스트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_장현준, 신재, 동이향, 송이원)


 

*사진제공 >> 서울변방연극제 사무국

**서울변방연극제 블로그 바로가기 >>> http://blog.naver.com/mtfestival


 


▲2017 서울변방연극제 축제일정표 (6.26 -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