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임영준 출연 / 하수민, 김정 연출 <임영준 햄릿>

 

 

애도의 연극, 연극적 애도

<임영준 햄릿>

임영준 출연 / 하수민, 김정 연출

 

 

글_임승태

 

<임영준 햄릿>의 리뷰를 의뢰받았을 무렵, 한 외국인 연극학자와 만날 약속이 있었고, 그가 한국의 번역극이나 문화상호주의 연극을 보고 싶어 했기에 나는 이 공연을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불안했다. 아슬아슬하게 일정이 어긋나지만 않았어도 훨씬 더 유명하고 검증된 공연을 택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사계절 연극제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봄 공연을 놓친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내가 관람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다행히 공연은 내게도 손님에게도 흡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물었다. 왜 햄릿이어야 하느냐고. ‘왜, 햄릿이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라고 대답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일단 <햄릿>이야 말로 연극과 애도라는 주제에 관한한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텍스트라고 대답했다. 그날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기에 이 글에서 못 다한 얘기를 조금 더 풀어보고자 한다.

 

 

<햄릿>이 연극에 대한 연극이라는 사실은 그 유명한 극중극을 떠올려 보는 것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다만 메타극(metatheatre)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라이오넬 에이블(Lionel Abel)이 이 작품에 대해 언급했던 한 가지 내용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햄릿은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극중 인물 스스로 ‘세상은 연극’(theatrum mundi)이라는 인식 하에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또한 이 극의 다른 등장인물들 역시 적극적으로 플롯을 꾸미고 다른 인물을 조종하고 움직인다. 내 생각엔 바로 이러한 특성이야말로 <햄릿>을 연기하고 연출하는 연극인들을 자극하여 여러 가지 연극적 실험을 이어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임영준 햄릿>은 공연 중 반복되는 여름 노래 메들리만큼이나 밝고 경쾌한 톤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과장된 쾌활함 사이에는 데뷔 10년차 연극배우 임영준의 자기 연민이 언뜻언뜻 배어난다. 하라는 <햄릿> 대신 자신의 데뷔 10년 기념 팬 미팅을 제멋대로 진행하지만, 정작 스판덱스 반바지 하나 입고 있는 배우의 행색은 우습고 또 서글프다. 근육과 살이 떨리고, 물인지 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액체를 튀기며 자신의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배역도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배우를, 심지어 그의 공연을 이미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몰라본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햄릿 배우여, 이런 일로 슬퍼하지 마시라. 실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햄릿을 찾아온 비극 단원들이 소년 배우들에게 밀려나 유랑 생활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햄릿>은 지극히 가족극이기도 한만큼 <임영준 햄릿>에 배우의 부모가 (영상으로나마)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모의 등장은 그토록 당당하던 임영준을 한순간에 조그맣게 만든다. 선왕의 유령이 복수를 재촉할 때 안절부절못하는 왕자처럼 임영준은 허상에 불과한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날 때 ‘쥐구멍’으로 숨어 들어간다. 흥미로운 건 이 상황이 계획된 것임을, 심지어 그 영상을 임영준 본인이 직접 내려가 찍어온 것을 알면서도 그의 반응을 보며 관객도 적잖이 긴장하게 된다는 점인데, 그건 아마도 관객 다수를 차지한 임영준의 또래들이 비슷한 심정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나를 낳았을 때보다도 더 나이를 먹도록 여전히 변변한 자리 없이 제 앞가림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머지않아 TV에 나오는 성공한 배우가 되겠다는 임영준의 다짐을 들으며 관객들은 TV라는 말을 대신할 각자의 단어를 속으로 되새긴다.

 

 

아무튼 이 연극은 배우 임영준에 대해, 그가 해온 연극에 대해 말하며 <햄릿>의 메타극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적잖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으로만 70분을 채웠다면 그의 열성 팬이나 친구들을 제외한 나머지 관객이 끝까지 공감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제작팀의 지인이 아닌 이상 이 소규모 연극을 보러 올 정도의 관객은 이미 연극에 대한 애정 혹은 애증을 가지고 있을 터이니 무대에서 되풀이되는 연민의 정서가 특별할 건 없다. 모든 연민이 자기 연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배우로 살기의 고됨만 있었다면 “왜 햄릿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관객이 공연의 향방을 의심하기 전에 두 연출가는 애도라는 또 하나의 주제 선율을 적절히 등장시킨다. 애도에 주목하는 것은 라깡의 해석을 따르지 않더라도 적어도 2014년 이후의 한국 <햄릿> 공연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복수를 실행하지 못하고 끝까지 괴로워하는 햄릿의 말과 행동은 비평가들이 오래도록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지만, 우리 사회는 참사와 그로인한 막대한 슬픔을 맞닥뜨렸을 때 비로소 이 인물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국내에서 제작된 <햄릿>은 아버지와 누이를 잃은 인물의 슬픔을 종종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병치시켰다. 비록 얀 코트(Jan Kott)가 이 말을 하고도 반백년이 넘게 흐르긴 했지만, 세월호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비로소 우리의 “동시대인”이 되었으며, 애도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대상을 향한 것이 되었다. 그날 이후 유령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기억하고 애도해야할 대상이 누구인지 찾으라고 요청한다.

 

 

무대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던 임영준은 “배고프다”란 말과 함께 컵라면을 먹기 시작하는데, 이로써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참사를 언급한다. 배고픈 예술가의 식상한 상징일 수도 있었던 컵라면 장면은 전동차 효과음 소리와 함께 1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십대 정비사를 떠올리게 한다. 부정적 지표에서는 OECD 으뜸을 놓치지 않는 대한민국이기에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일은 이 나라에서는 유감스럽게도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공교롭게 세월호 희생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1997년생이었던 김 군의 유품 가방에 들어 있었던 컵라면은 많은 사람에게 슬픔과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하여 임영준이 컵라면을 먹는 행위는 자신의 배고픔을 드러내기보다 김 군이 먹지 못한 컵라면을 대신 먹는 하나의 제의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순간 임영준이 햄릿을 연기하는 목적이 단순히 모든 남자 배우의 로망이라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애도하고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죽음에 있음을 알린다. 개인적 차원의 살풀이로 시작한 이 연극은 어느덧 사회적 차원의 씻김굿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한다.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책임감 때문일까. 임영준, 그리고 김정, 하수민 두 연출가는 셰익스피어 숭배자들이 보기엔 텍스트를 띄엄띄엄 읽고 껄렁껄렁하게 공연을 만든 듯 보일지 몰라도 실은 꽤나 성실한 모범생에 더 가깝다. 공연의 첫인상은 대사를 이곳저곳에서 마구잡이로 발췌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이내 햄릿의 주요 대사가 조목조목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가장 유명한 제4독백이 빠질 수 없다. 임영준은 오디션을 보는 듯 여러 가지로 연기 톤을 바꿔가며 이 독백을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낭송한다. 그중에서도 햄릿이 단도를 꺼내들기 직전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왜 <햄릿>이 지금 여기서 공연되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누가 견디겠는가, 세상의 채찍과 모욕을,

폭군의 횡포를, 가진 자의 오만함을,

실연의 아픔을, 법의 더딤을,

관리의 교만을, 유덕한 사람이

무지렁이들에게 받아야 하는 모욕을.

이 단도 한 자루면 자신을 말끔히

청산할 수 있는데.

 

여기서 집중적으로 언급되는 사회적 부조리는 왕자라는 지위에서 쉽게 되뇔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차라리 백성을 개(돼지)로 여기는 거트루드가 그때나 지금이나 더 현실적이다. 일단 왕자가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아니면 연극을 통해 세상의 아픔을 간접 경험해서라고 해두자. 중요한 건 이 대사가 셰익스피어 당시의 관객도 4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관객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임영준 햄릿>이 공연된 2017년 여름에 이 대사는 구체적으로 구의역 김 군의 이미지로 구체화됨과 동시에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 가진 자의 갑질, 약자에게만 엄격한 법 따위를 관객으로 하여금 떠올리게 한다.

위 대사는 공연의 정확한 워딩을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졸역을 덧붙였으나, 적어도 이 독백의 첫 마디는 <임영준 햄릿> 프로덕션의 것을 직접 인용해야 한다.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 그동안 살펴본 <햄릿> 번역서와 공연에서도 “To be, or not to be” 를 이 만큼 적절하게 옮긴 사례를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느냐가 먼저냐 죽느냐가 먼저냐가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첫 행에 너무 힘을 다 써버린 걸까. 다음 행을 “어느 것이 더 ‘사나이’다운가”로 택한 것은 아쉽다. 임영준의 팬들이야 이 또한 너그러이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햄릿의 질문은, 비록 임영준이 무대에서 쉼 없이 남성미를 풍겼더라도, 사나이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몇몇 번역본에서 사나이라고 번역한 원문의 단어는 “noble”이다. 고귀함 또는 고결함이 더 이상 남자 귀족을 위한 가치가 아닌 이상 “사나이”는 적절하지 않다. 남성 관객이 객석의 반에 반도 채우지 못하는 우리 연극계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가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의 일상적 질문이라는 사실이 “왜 햄릿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나머지 부분을 구성한다. 이 질문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 임영준의 질문이자 햄릿을 연구하며 비정규직 교육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경력직만 찾는 구인 공고 앞에서, 무서운 속도로 사라져 가는 통장 잔고 앞에서, 오르지 않는 급여와 오르기만 하는 전월세금 앞에서 이 질문을 떠올린다. 아프다는데 그러니 청춘이라는 둥 붙잡아 주지는 못할망정 더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둥의 정신승리법을 알려주는 기성세대는 슬픔의 원인을 제공하고선 위로하는 척하는 클로디어스를 닮아 있어서 더 밉살스럽다. 다만 그러하더라도 임영준과 함께 햄릿의 질문을 되뇌는 동안 우리 모두는 어찌어찌 여전히 살아남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존재하는 동안 이 우울한 질문이 계속되겠지만, 어쨌거나 질문함으로써(quero) 나는 존재한다(ergo sum).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 그 날까지는 먼저 간 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몫까지 살아낼 책임이 주어져 있다. 선왕의 유령은 햄릿에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말한다. 햄릿 왕자도 마지막 순간 호레이쇼에게 살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살아남거나 사라지는 것은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이든 더 고귀한 삶을 향해 가는 길 어디쯤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관문일 뿐이다.

<햄릿>은 보면 볼수록, 특히 우리 삶을 밀착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이 다루는 슬픔의 크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내내 <햄릿>만 하겠다는 사계절 연극제의 구성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가을에 돌아올 햄릿이 또 어떤 질문을 던져올지 기대하자. 당장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일단은 이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보자.

 

▲<임영준햄릿>이 상연되는 연서동 공간 소극장 입구 (출처 : 사계절연극제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제공 >>> 아라리오 뮤지엄 

**사계절 연극제 SNS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ssfwtfestival/

 

 

 필자_임승태

 소개_연극에 대해 이런저런 글을 씁니다. “한국 <햄릿> 상연에서의 광증”, “오필리아와 가상의 꽃” 등의 논문을 썼고, 공연한비평 드라마인(www.drama-in.kr)이라는 글쓰기 인큐베이터를 운영합니다. 드물게 드라마터그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