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가 블랙리스트를 말한다] 2. 잘 모르겠는데요, 피해자예요?

 

 

[프린지가 블랙리스트를 말한다]

 

 

2. 잘 모르겠는데요, 피해자예요?

 

[프린지가 블랙리스트를 말한다] 연재를 통해 프린지가 지나온, 아니 지금도 진행중인 블랙리스트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검열과 배제’에 대한 감각, ‘예술 하는 삶’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블랙리스트의 상흔을 살피고 당사자로서 저항의 동력을 생성하고자 합니다. 

 

글_김민수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스태프)

 

모르겠는데요, 피해자예요?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며 자취방을 뺐다. 본가의 소파는 안락했다. 지금도 노트북을 안고 반쯤 누워있다. TV에선 영화 <기생충>의 경제효과에 대한 MBN뉴스가 한창이다. 내 옆에 앉은 경상도 출신 60대 보수정당 지지자 두 분이 알면 고개를 저을 글을 쓰려니 난방비라도 더 보태야 하나-하는 부채감이 든다. ‘20대 남성의 보수화’ 같은 단어가 어울릴 형제와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더 끌어당긴다. 내가 만드는 축제도 돈이 되긴 하냐는 질문에 대충 웃어 넘긴다. 무서운 게 많을 때는 모르는 척, 해맑은 척하는 게 좋은 탈출구가 되어준다.

 

<사진출처_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페이스북>

 

법은 모르겠는데요, 누가 피해자예요?

 

<김기춘 조윤선 등 대법원의 파기환송 긴급 토론회>에 다녀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판결에서 직권남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은 아니라며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한 대법원판결을 규탄하는 토론회였다. 법학자, 역사학자, 예술가 등이 모여 나누는 얘기들을 절반쯤만 알아들으면서 앉아있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적용된 주된 죄목은 ‘직권남용죄’였던 것 같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아래 공무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를 얘기 나누었다. 법은 물론 어려운 한자어만 나와도 사고가 느려지는 나는 더듬거리는 기분으로 많은 이슈를 건너다볼 수 있었다. 

대법원은 김기춘 전 실장 등 피고인들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해 지원배제를 지시한 것은 직권 남용에 해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통령부터 문체부 산하 기관까지 내려오는 국가기관 간 공모를 중심에 두지 않아 이를 ‘국가의 범죄’ 로 보지 못했다. 그에 따라 ‘형법 상 직권남용죄’에 집중하며, 이미 작성된 명단을 송부하는 행위는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명단송부는 지원배제를 위한 일련의 행위로 연결되어있다. 또한 김기춘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이 퇴임한 이후 범행에 대해 공범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였으나 퇴임 이후에도 그가 지시한 검열시스템은 열심히 기능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침착하게 화가 나 있었다. 대법원판결에서 헌법 체계의 근본적인 법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든지, 헌법 자체가 권리를 좁게 해석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든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이라는 이름의 형법이 필요하다든지 많은 얘기가 오고 갔다. 

그 와중에 나의 의아함은, 이 사건의 피해자가 예술인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는 것이었다. 상급 공무원이 그 아래 공무원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건지 아닌 건지 싸우는 모양새가 너무 이상했다. 그건 마치 내 자취방에 도둑이 들어 빈털터리가 됐는데, 도둑질을 도와야 했던 운전기사의 권리가 침해당한 것인지 아닌 지로 재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운전기사를 응원하는 것뿐이라는 기분이 들자, 문득 응원받는 공무원이라는 장래희망이 생기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보냄으로써 지원을 배제 시킨 것이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고 보고 파기했다는 건 더 큰 의아함이었다. 그러니까 이게…의무는 아니지만…의무 없는 일은 또 아니고…그러니까 뭐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고 갔다. 도대체가 잘 모르겠는 것 투성이였다. 

 

예술은 모르겠는데요, 당신도 피해자예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2년차 스탭인 나는, 불과 두어 달 전부터 프린지가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온통 우습고 슬픈 얘기들이었다. 함께 소통해왔던 예술위 직원을 걱정하는 지원배제 대상자가 있었고, 내부적인 성찰을 먼저 해왔던 이들이 있었다. 자기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이어가겠다는 무모함과 그 와중에 다원예술계를 복원하기 위해 고민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앞에서 얘기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토론자로 함께한 신은실 영화 평론가는 ‘순수예술에서 지원사업배제는 굶어 죽으라는 것과 같다’ 고 얘기했다. 그것은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뿐 아닌, 내가 손을 얹고 있는 공연예술계와도 닿아있는 얘기였다. 아니, 그것은 예술계를 넘어 공적 자금이 투여되는 모든 사회 전반에 연결돼있었다. 그럼에도, 대법관 소수의견 중엔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문화예술인에게 보조금 지원을 배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내가 예술을 잘 몰라 이런 문장에 마음속 균열을 느끼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사실 이런 시선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순수예술이나 기초예술 같은 단어가 허울일 뿐이라는 칼럼에서, 내가 만든 잡지나 공연, 전시를 보고 누가 그걸 돈 주고 보겠느냐는 가족의 목소리에서, 어쩌면 내 내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내가 예술 따위를 저버린다면 나는 이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토론자였던 이양구 극작가는, 누구도 블랙리스트의 피해자가 아닐 수 없다고 얘기했다. 8개 부처에서 8000여 명의 명단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학술 연구 용역비까지 2만여 명의 리스트가 기능했다고 지적했다. 국가보조금이 지급되는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 사찰이자 감시였던 것이다. 문체부에서 송부하지 않으면 국정원에서 보고하니, 각 기관에서 선제적으로 보내야 했던 리스트였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잃어왔던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릴까?

 

저는 모르겠는데요, 나는 피해자예요?

 

바쁜 것 없는 와중에, 며칠에 걸쳐 글을 썼다. 자꾸만 손을 놓게 되는 까닭이었다. 이 막막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여전히 난 모르겠다. 거대한 폭력 때문인지, 평생을 무서워했던 권위인지, 부정당한 나의 예술인지. 

오성화 대표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국민으로서 거부당한 경험이었다고 얘기했다. 국민으로서 존재를 지우는 이러한 행위들은 개인으로서는 견뎌내지 못할 거대한 국가폭력이었을 것이다. 발제자였던 오동석 교수는 이 사건을 내란죄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참절할 목적으로 협박에 가까운 행위를 통해 헌법 질서를 위태롭게 했다는 시선이었다. 크고 무서운 말을 들으면 슬쩍 발을 빼게 된다. 그저 나의 막막함이 저 폭력에 조금은 기대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 권위의 메커니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두 차례 공공기관에서도 일한 적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웃기지 않는데 웃는 것을 심하게 잘하는 사람이었다. 청와대의 지시가 각 부처로, 또 각 기관으로, 그리고 심사에 참여한 개인으로 내려오는 과정은 어쩌면 그런 이들의 덕이었을지 모른다. 그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는 판결 앞에서 나 같은 사람들은 면죄부를 얻은 걸까? 그저 과도한 감정이입이라고 퉁치고 외면하려 애쓴다.

나는 나름 인디펜던트하게 음악을 만들지만, 홍대 부근 클럽에 소속된 적이 없고, 미디어아트 팀의 일원으로 활동하지만 갤러리나 주류 미술계와 닿아있지 않다. 내가 프린지에서 스태프로 일하게 된 것 역시, 예술가로서 나 같은 이들에게 프린지가 소중한 곳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사태는 다원예술지원정책을 비롯해 많은 토양을 고사시켰다. 이는 단순히 내가 잘하지 못해서 인정받지 못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것은 적극적인 부정이었다. 

이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다시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무서운 게 많을 때는 모르는 척, 해맑은 척하는 게 좋은 탈출구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