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떠나고 사라지며 발화되는 것들 <46일째 인디여행>

2021. 12. 10. 14:41Review

 

 

떠나고 사라지며 발화되는 것들

 

-홍대앞 ‘한잔의 룰루랄라’를 기억하는 공연 <46일째 인디여행>-

 

오재아

 

죽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의 근본일까. 사람도, 공연도, 공간도 죽음으로써 그것의 살아있음을 증명해낸다는 사실이 슬펐다. 사라진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다만 그 시절에 함께 머무르던 사람들의 기억이 지나가버린 시간을 지탱한다. 그러나 사라짐은 사람, 공연, 공간의 유약함을 드러내지만,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은 그 연약함을 끌어안으며 그럼에도 기억될 수밖에 없었던 대상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홍대앞 공연장이자 카페이고, 음식점이자 만화방이었던 ‘한잔의 룰루랄라’. 많은 아티스트들의 아지트가 되어주고 늦은 밤 지친 사람들이 음악, 그리고 맥주 한 잔과 함께 쉬어가던 곳.

룰루랄라는 이제 사라졌지만, 그곳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애틋하게 남아 있고, 그 기억에 대해 말을 옮기는 이들의 그리움으로 나는 그곳을 감각한다. 룰루랄라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일은, 그 공간을 만들고 지켜온 사람들의 온도를 느끼게 한다. 그 공간이, 그곳에 있던 예술가가, 나아가 음악이, 사람들의 생에 미친 영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청년예술기획팀으로서, 이 이야기를 공연의 형태로 담고자 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쉽게 부서진다

 

“룰루랄라가 없어지면 나는 어떡하지? 아직도 알 수 없다. 그 많은 향유자와 창작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씨클라우드가 사라지고 바다비가 문을 닫을 때도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항상 궁금했다. 이제는 안다. 그 많던 사람들은 공간과 함께 사라진다. 그것이 슬프다.”

(김사월, <사랑하는 미움들> 중)

김사월 산문집에서 한잔의 룰루랄라에 대한 글을 보았다.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에 나는 그 슬픈 얼굴을 직접 목도한 것처럼 마음이 아팠고, 그곳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재현하고 싶어졌다. 사라짐이 그토록 슬플 수밖에 없었던 룰루랄라에서의 지난 날들이 그리웠고, 다시 돌아오기를 소망했다. 룰루랄라와 같은 공간이 지금도 우리 곁에 많이 존재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꿈과 슬픔을 노래하고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는 사라진 공간에 대한 창작자와 향유자의 슬픔을 진정으로 마주하고자 했다. 공간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같은 슬픔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면서, 홍대앞 공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이야기하고 싶었다. 향유자는 지날 날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젖어들고, 룰루랄라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그러한 공간의 소중함을 느끼며 홍대앞 생태계 유지에 대한 뜻과 마음을 모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가본 적 없는 공간에 대한 그리움

 

한잔의 룰루랄라가 사라지던 2019년, 룰루랄라는 음악가들과 함께 작별공연인 <45일간의 인디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가본 적 없는 공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46일째 인디여행>을 시작했다. 한잔의 룰루랄라 이성민 사장님(룰장님)과 만남의 약속을 잡고, 룰루랄라에서 공연했던 아티스트와 연락을 취했다.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 떠났다.

처음에는 외부인과 같은 우리가 룰루랄라를 기억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꼭 타인의 고향에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어렵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 공간에 많은 사람들의 그리움과 애틋함이 묻어있음을 알게 될수록 더욱 진심을 담아 공연을 올리고 싶어졌다. 그토록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울렸던 공간을 우리의 공연으로 다시금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어쩌면 이 공연을 통해 넓은 시간대의 사람들이 홍대앞 공간, 그리고 공간 자체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다시금 소중한 마음들을 품에 안고, 우리는 먼지 쌓인 간판을 고쳤다. 곰인형과 앨범, 만화책과 수입맥주병을 모았다. ‘공간이 사라진 것에 대한 슬픔’을 주제로 마임 영상을 촬영하고, 한잔의 룰루랄라에 어울리는 잔을 만들었다. 룰루랄라에 두고 온 그들의 기억에, 진심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사진1. &amp;lt;46일째 인디여행&amp;gt; 현장사진 _필자제공
사진2. &amp;lt;46일째 인디여행&amp;gt; 현장사진_필자제공

 

하나의 동그란 세계

 

룰장님과의 인터뷰를 거쳐,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애리, 김사월, 천용성님을 공연에 모시게 되었다. 룰루랄라에서의 첫 공연을 열었던 씨 없는 수박 김대중 님을 만났고, 낮시간 비어있는 룰루랄라를 연습실처럼 사용했던 대중님은 ‘한낮의 룰루랄라’의 따뜻한 햇살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중님은 룰루랄라에 처음 온 그날을 재현하며 무대를 열었다. 애리님은 룰루랄라가 사라진 뒤 ‘이제 어디에서 친구들을 만나지?’ 하고 슬프고 막막한 마음을 느꼈다. 많이 울고 웃었던 그의 아지트, 룰루랄라를 떠올리며 그만의 목소리로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룰루랄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던 김사월님께 룰루랄라는, ‘파도가 왔다갔다 하면서 바닷가 생물들이 자연스레 생기고 없어지며 만들어진 하나의 바다 생태계’였다. 누군가 모래를 주고 물을 준다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자연의 것이었고, 그 소중했던 공간을 떠올리며 슬프고 아름답게 노래했다. 룰장님께서 지금까지 룰루랄라가 있었다면 공연했을 것 같은 뮤지션으로 이야기해주신 천용성님은, 본인에게 아지트와 같았던 ‘황이네’를 포함하여 공간과 관련된 음악을 불러주셨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룰루랄라가, 그것이 안 된다면 지금의 홍대앞 공간들이 계속해서 현재형으로 존재하기를 기도했다.

그곳을 기억하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무대 위에서 듣고자 했다. 김사월 떼창콘서트를 떠올리고, 도마님이 건네주던 청국장을 기억하며, 아직까지도 룰루랄라 그릇과 맥주잔에 밥과 술을 먹는, 그리고 아직도 가끔씩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잔의 룰루랄라는 이들로 만들어진 공간이었음을 새삼스레 느꼈다. 아티스트는 무대 위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고, 무대 아래의 관객들은 함께 추억했다.

룰루랄라에서 나아가, 우리는 홍대앞에 대해 떠올렸다. 하나씩 사라지는 홍대앞 공간과 함께 바스라지는 우리의 기억들에 슬퍼했다. 대화하고, 같이 음악을 듣고, 일을 꾸밀 수 있는 시간들도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끼고 아쉬워했다. 그런 한편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고, 또 새롭게 생겨나는 공간들을 떠올렸다. 룰장님이 진행하고 계신 ‘여기저기 룰루랄라’를 비롯해, 아직도 홍대앞에서 노래를 모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오늘의 기억들처럼, 앞으로도 우리가 홍대앞에 모여 음악과 기억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룰루랄라를, 그리고 홍대앞을 지켜온 사람들의 마음이 공연이라는 시간 속에 모여 하나의 동그란 세계를 이루었다. 동그란 세계 안에서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공연은 순간적이고 이내 사라질 시간들이기에, 우리는 더욱이 바라게 되었다. 홍대앞을 향한 사람들의 걸음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기를.

사라진 공연에 대해 편지를 남기듯, 공연을 기획하던 이야기들에 대한 영상을 만들었다. 기타의 울림통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영상의 처음과 끝처럼, 우리도 한잔의 룰루랄라라는 공간과 46일째 인디여행이라는 공연 속에서 나와야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억과 사람과 노래가 있다. 오늘처럼 사라짐을 다시 기억할 수도 있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그 일들을 다시 꾸밀 수 있다. 또 하나의 동그란 세계를 꿈꾸며 계속해서 노래 부를 수 있다.

 

사진3. &amp;lt;46일째 인디여행&amp;gt; 포스터

 

또 한번 떠나고 사라지며 기억되는

 

소리는 한 사람의 몸을 떠날 때 비로소 발화된다. 한 사람을 떠난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피부에 부딪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 마찰이 빚어낸 하나의 생태계가 있었다. 우리는 그 생태계를 ‘떠나고 부딪치고 사라지는’ 공연으로 또 한 번 기억하고자 했다. 아티스트의 고유한 음성과 기타소리,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바스락거리는 움직임, 그곳을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 우리는 이 소리의 흩어짐으로 룰루랄라라는 공간을 다시금 가늠할 수 있었다. 사라지고 죽고 없는 것들로부터 그 공간의 살아있음을 느꼈다. 지금의 터를 잘 지키고 확장해 나가며, 앞으로도 홍대앞 생태계에서 우리가 술 마시고 눈을 맞추어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소망을 담아 지금은 사라진 우리의 공연, <46일째 인디여행>을 잘 놓아주기로 한다.

 

필자소개

오재아_미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공연소개


<46일째 인디여행>
일시 : 2021.10.29.금.19:30-22:10
장소 : 벨로주 홍대
출연진 :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애리, 김사월, 천용성
주관: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본 공연은 서울문화재단 도시문화LAB [Out : 학교/장르 밖으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