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멸감을 삼키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만나면 좋은 친구>

2022. 1. 13. 14:08Review

 

 

모멸감을 삼키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만나면 좋은 친구: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  리뷰

 

글_남하나(불나방)

 

#노동자의 하루 : 엄마로부터 

대형마트에 일하는 엄마는 아웃소싱으로 계약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 나이 많은 여성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목청을 높여 앞에 진열된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그녀는 여름, 겨울 상관없이 두꺼운 가디건을 입고 냉동실과 냉장실을 넘나들며 차디찬 얼굴에 억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객을 응대하는데 배테랑이 되었다. 꼬박 8시간을 서서 이리도 열심히 일하는데는 매출 달성의 압박이 존재한다. 대형마트에 위치한 매장들 사이에서는 월매출을 달성하지 못하면 매장이 자동적으로 퇴출된다. 언제든지 내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협 속에 대다수의 중년여성 노동자들은 제대로 쉬지도 않고 일을 한다. 브랜드가 다른 정육코너, 생선코너, 과일코너 등이 살기위해 그들 사이에 기쎈 경쟁이 시작된다. 더 많은 할인, 1+1으로 유혹하며 고객에게 다가간다. 치열한 경쟁 가운데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눈치껏 쉬고 눈치껏 밥을 먹어야 한다. 

 

2021년 상반기, 엄마는 직장의 상사로부터 갑작스러운 부당해고 통지를 받았다. 매장 내 직원들간의 불화가 발생했는데 그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돌렸다. 총괄 매니저는 제대로 된 경위를 조사하지 않고 젊은 직원의 말만 믿었다. 소히 알랑방귀를 잘 뀌는 사람의 말만 들은 것이다. 매니저는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권력을 이용해 손쉽게 제거했다. 억울한 그녀는 하루에도 12번씩 솟구치는 화를 억누르면 대책을 강구했다. 본사와  아웃소싱 회사는 딱히 해결책을 내놓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분노를 삭히며 대면회의를 진행했고 주변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억울하고 힘든 과정을 온전히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다행히 짧은 시간 내 사건을 해결하고 복직했지만, 그간의  정신적, 신체적 상처가 질병으로 나타나 오랜기간 병원을 오갔다. 

 

그 누구도 그녀의 고통을 보상해주지 못했다. 아웃소싱을 통해 계약한 그녀는 노조에 가입할 수도 없다. 노조로 가는 길 자체가 그녀에게 존재하지도 않았다. 순박한 그녀는 그저 복직에 감사할 뿐이다.

 

#노동은 무엇인가요? 

내가 알고 있는 ‘노동'을 의미를 찾아보면 인간답게 살수 있는 기본권인 인권과 붙어있다. 근로기준법에는 ‘기본적 생활을 보장'이 법령에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그만큼 생존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행위인 ‘노동’, 하지만 인간다움에 있어서 만족하는 노동환경은 그리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기업과 노동자의 계약 방식에 따라 보이지 않는계급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처우가 달라지기도 한다. 시청 주변을 있자니 인간다움을 박탈 당한 존재들은 투쟁 전선에 뛰어들어 차디찬 길거리에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노동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있다. 동질감을 가지고 연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 나는 그들의 절박함이 때로는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1.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법령 &gt; 본문 - 근로기준법(공식 사이트)

 

#환한 미소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 

때는 2012년, 어느날 뉴스에서 방송국이 파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송국이 파업이라고? 가능한가? 당시 파업이라는 단어도, 파업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나에게는 다소 의아한 광경이었다. 특히나 방송국에 다니는 사람도 없고, 언론인도 없었으니 맨날 티비만 주구장창 보던 어릴적 나에게 방송국 파업이 생소했다. 텔레비전에는 그날의 현장의 모습들이 정신없이 송출되었다. 어디서 본 듯한 기자, 앵커들이 방송국 주차장  바닥에 앉아 피켓을 들고 아우성 쳤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절박함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화면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잠시 뿐 그 이후 파업의 결과에 대해서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 않았다는 듯이 다시 방송은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또 다시 티비를 보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사진2. &lt;만나면 좋은 친구: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gt; 출처_엘리펀트 룸&nbsp;ⓒ박태양

 

화려한 포스터와 함께 꽤나 긴 제목을 가진 <만나면 좋은 친구 :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이하 <만나면 좋은 친구>은 유추할 수 있듯이 모 M방송사에서 일하는 기술자 청년 A씨의 삶을 경유하며 본 국내의 정권, 언론, 방송국 그리고 그 속의 노동의 문제점을 집중조명한다. 첫 대사 "1984년 10월, 미래의 노동자 A씨가 태어납니다."로 시작하는 공연은 마치 직업이 점지된 사람처럼, 자서전을 읽듯이 과거에서부 현재까지 A씨가 살아온 그날의 기억, 그날의 사건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까지 수 많은 정권 아래 노동자들 간의 투쟁과 언론의 비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만나면 좋은 친구>의 슬로건을 내걸 듯 공영방송이 가진 깨끗하고 친근한 이미지에 가려진 은폐된 이야기는 점점 드러날 수록 극장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점진적인 개혁을 일어나는 것 같지만 오히려 퇴보하는 상황이 지금의 현실과 오버랩 되면서 한국 사회의 폭풍같은 변화에  A는 그저 미약한 존재로 위치해 있다. 그의 존재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노동자가 된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꿈을 쫓아 들어간 애니매이션 회사의 노동착취, 방송국의 내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중차별, 각고의 노력 끝에 정규직이 되었지만 인정받지 못한 경력을 따라온 호봉과 함께 2012, 2017년에 진행된 두 번의 파업까지 거센 폭풍우를 겪은 그에게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정치 편향적인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국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시위에 나간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려져 있다. 누구는 시위를 나갔고 누구는 나가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흘긴 눈으로 쳐다본다. 이야기의 중반에 어떤이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2016년, 방송국의 한 조연출의 자살이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강도 높은 노동, 폭언, 해고, 임금 회수가 같은 상상 이상에 횡포적인 시스템에 떠밀려 죽음을 선택했다. 방송은 그의 죽음을 단 4일동안만 애도했다. 그의 이야기는 또 다시 고요한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다. 

 

“ 2021년, 10월 17일 오늘도, 노동자 에이씨 이야기는 진행중이다. “ 

 

아직도 그들은 조용히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모멸감을 겨우 삼키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일어나기 위해 움직인다. 지금 3번째 진정서를 제출했고, 노동청의 결과문을 또 다시 기다린다고 한다. 마지막씬에서 그들은 노조를 찾아가 도움이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건조하고 밋밋한, 마치 세상의 순리인냥 무력함을 가중시켰다. 또 한 번, 따분하고 흘긴눈이 나를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허무하고 허탈한 그들의 뒷모습이 소품으로 나온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만 같다.  

 

사진3. &lt;만나면 좋은 친구 :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nbsp; 차별 진정 건&gt; 출처_엘리펀트 룸 ⓒ박태양

 

#그녀의 이야기 = A의 이야기

 

마트에서 일하는 중년 비정규직 노동자, 방송국에서 일하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청년이 가진 젊음을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미비하고 어린존재로 위치시키고, 나이 많은 신체의 부족함을 내세워 약하고 부족한 존재로 중년을 위치시키는 사회, 기업에 자리잡힌 위계적인 구조 속 착취와 희생을 강요하고 차별을 응당 감수해야했던게 비정규직 노동자, 조금은 다를 거라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면 생각하지만 똑같이 보호받지 못하는 그래서 씁쓸한 위치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작품과 현실에서 만났다. 조금은 서글프다. 나아진게 없으면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공연은 마지막까지 현실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분법으로 나누기 보다는 서로를 조금은 보듬어 줄 수 있는 거대한 이슈 뒤에 가려진 노동자의 얼굴을 살펴봐주길 바라는 듯 여운을 남기며 메세지를 전달한다.

 

 오늘 또 우리는 한가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면서 지금의 현실을 나 또한 다시 마주한다. 중간 중간 대사와 장면을 통해 때로는 자조적으로 느끼기도 하고 마음 한켠에 반성과 미안함 복합적인 감정들이 휘몰아 친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쓴약을 입에 머금은 감각이 든다. 물을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모멸감을 가지고 돌아간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현재 MBC에 다니는 프리랜서 출신 노동자 A씨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방송국 비정규직 노동자, 똑같이 보호받지 못했던, 그러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만 하고 보호하지 않았던 정규직 노동자, 노무를 무기로 사용하는 대기업으로서의 방송국, 혹은 언론, 그런 언론을 장악하려 블랙리스트를 작동시켰던 정권, 그렇게 노동과 노동자를 늘 '나중'으로 밀어내고, 지워왔던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을 발화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작업이었습니다.
여전히 A씨는 MBC로 부터 진정서에 대한 답변을 받지 못했고, 방송국은 방송노동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방송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자가 노동자를, 노동자와 노동자와 서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송국 내 위장 프리랜서 문제
방송현장 노동착취 문제
비정규직 및 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
노동현장에서의 생명 안전 문제 등등,
방송계 뿐만 아닌, 아직 산적한 수많은 노동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앞장서 고민하며 연대하고, 알리고, 활동하고, 싸우고 계신 많은 분들께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빚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연포스터 &lt;만나면 좋은 친구: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gt;
혜화동1번지 7기동인 2021 가을페스티벌 법rule
<만나면 좋은 친구 :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
2021.10.18. - 10.24 평일 20시 토일 15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1984년 10월, 미래의 노동자 A씨가 태어납니다.
A씨는 미래에, 한 방송국에 프리랜서 기술자로 입사하게 됩니다.
지금도 그 방송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연극은 2021년, 현재의 노동자인 A씨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만든 연극입니다. A씨의 이야기를 빌려 이야기하는,
한국의 이야기입니다. 정권과 언론과
방송국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방송국의 이름은 MBC입니다. 실제 방송국입니다.
여기 나오는 일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방송에는 안 나올 수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작/연출 김기일
출연 김보은, 이기석, 최귀웅
조연출/영상/무대디자인 정인혁
조명디자인 이세영
사운드디자인 박종현
포스터디자인 정호연
오퍼레이터 류가빈 이혜주 표경빈
사진 박태양
주최/주관/제작 엘리펀트룸
후원 서울문화재단

 

필자소개

남하나(불나방): 프로N잡러, '불안'을 키워드로 개인의 서사를 수집하는 시각예술가이자 독립예술축제를 만드는 기획자, 인디언밥의 편집위 등 이일 저일을 합니다. 실수와 오타를 반복하지만 예술계 안에서 글로 이미지로 기록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