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천한마당축제4-상처는 어떻게 무늬가 될 수 있을까

개쏭의 2009 과천 한마당 축제 공연 보기  2

 

프로젝트 모 <무늬> 

 

상처는 어떻게 무늬가 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따뜻한 태양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조용한 한밤의 풀벌레소리

이른 가을의 귀뚜라미 우는 소리



여치과의 곤충들은 겉날개와 속날개가 둘 다 있다.
그들은 겉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속 날개로 몸을 감싸고 소리를 낸다.
연주의 고통이 없기에, 그들은 흥겹게 풀잎을 뛰어다니며 노래를 한다.
귀뚜라미에게는 속날개가 없다.
귀뚜라미는 맨살에 진동하는 날개가 닿기 때문에
그의 배를 잘 보면 잔 상처와 점막처럼 둘러진 투명한 피를 볼 수 있다.

귀뚜라미의 여린 피부는 언제나
상처와 그 상처에 스민 핏물이 고여 있다.

상처.

프로젝트 모, 그들은 상처에 대해 말한다.
과천 한마당 축제의 장, 시민회관 앞 중앙 공원의 놀이터에서는 이날,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상처들에 대한 수많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꼬마의 상처, 청년의 상처, 장년의 상처, 노인의 상처가 그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들려진다.

해가 저물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다섯 명의 공연자들이 놀이터 곳곳에 매달려있다. 마치, 울고 있는 귀뚜라미처럼, 미끄럼틀 위, 둥그런 터널 속, 나무 사다리 한켠에 매달려서 소리 없이 울고 있다. 그렇게 매달려있다가 힘이 다한 듯 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픈 내색도 없이 다시 자기가 매달려 있던 자리로 기어 올라간다. 그들이 발 디디고 있는 사회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매달려있던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맨바닥에 떨어진 고통도 모르고 다시, 다시 기어 올라간다.
끝도 없이 들려오던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에 대한 목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동시에 상처 입은 공연자들, 아니, 귀뚜라미들이

하고 떨어진다.
흐리게 비추이던 조명마저 꺼진다.

다시 조명이 들어오고, 목소리로 들려오던 하나하나의 상처가 그들의 몸짓을 통해 구현된다. 상처의 쓰라림의 몸짓들이 여러 소품들을 통해 표현된다. 찢어진 시험지, 집어던진 가면, 흑백사진이 되어버린 엄마의 웃는 얼굴... 그 각각의 소재 속에서 공연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휘청거리고, 쓰러진다. 그 모습에는 우리가 살아가던 날들, 내뱉지 못한 상처의 흔적이 겹쳐있다.

슬픔은 사랑 이외의 어떤 손이 만지기만 해도 피를 뿜는 상처이고, 또한 사랑의 손이 닿을 때조차 아픔은 느끼지 않을 지언정 똑같이 피를 뿜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中
 

상처받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희미하게 자신의 상처들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 잊고 살던, 아니 잊은 듯이 살아가려고 했던 그 상처들이 떠올라 가만히 앉아있는 내 몸 속 뒤틀린 혈관들이 쓰려온다. 그 상처를 질타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남의 상처를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바깥 피부에는 희미한 흔적조차 지워진 나의 상처에 피가 스민다.
오스카 와일드가 상처받은 영혼을 끌고 감옥 속에서 펜을 부여잡듯, 그들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춤을 춘다. 마치 귀뚜라미가 쓰라려하며 울듯, 그들은 팔을 뻗고, 스텝을 밟고, 다시 쓰러진다.


공연장소인 놀이터는 그러한 상처의 춤이 펼쳐지는 장이다. 한낮, 아이들이 신나게 놀던 놀이기구들은 이들에게는 매달려 있어야할, 기어 올라가야할 가파른 벽과도 같다. 상처는 놀이터마저 바꾸어 놓았다.
이 진탕 같은 세계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그들은 오랜 옛날의 놀이터를 기억해낸다. 술래잡기, 그네타기, 얼음땡, 미끄럼틀타기. 그들은 모여서 조금씩 웃고, 조금씩 흥을 돋운다.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굳은 얼굴이 풀려간다. 조금씩, 조금씩, 더 가벼워진다. 웃으며 달려가고, 신이 나서 미끄럼틀을 탄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가볍게, 이제 그들은 조금씩 바람을 밟고 날듯이 뛴다.
어린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사회를 놀이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속 서리가 내린 거인의 성에 푸른 가지가 돋게 하는 어린아이의 힘을, 이들은 표현한다. 아니, 그 표현 속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조명이 꺼진다. 다시 어둠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처의 어둠이 아니다. 조용히, 불꽃이 일렁인다. 불꽃은 하나, 둘, 늘어나 춤추듯 흔들린다. 아름답게 원을 그리는 불꽃 때문에, 이제 어둠은 상처가 아니라, 그 어둠 때문에 불꽃이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캔버스이다. 형형색색의 폭죽이 빛난다. 마치 한낮의 태양빛처럼, 피에 젖은 귀뚜라미들의 날개를 보듬는다.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다시 춤출 수 있도록.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귀뚜라미는 낮에 울지 않는다.
밤에 비벼 소리를 낸 연약한 몸체의 상처를 낮의 따뜻한 햇볕에 말린다.

상처는 어떻게 무늬가 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따뜻한 태양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상처를 무늬로 만드는 귀뚜라미의 노래

귀뚜라미는 그렇게, 상처를 매만지며 노래한다.

그러나 잊지 말자. 내 속의 어린아이를 나무 위로 올려줄 수 있는 것은, 상처 입은 거인-지금의 나라는 것을.


 

인디언밥의 '필자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개쏭과 강말금의 축제탐방기 2탄

지난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09에 이어, 이번에는 제13회 과천한마당축제를 다루려 한다. 두 필자가 4일간 과천한마당축제를 둘러보고, 눈에 띄거나 마음에 담은 작품들을 리뷰형식으로 보고할 예정이다.

 

과천한마당축제
마당극, 거리극, 야외극을 중심으로 한 야외공연예술축제로 시민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큰 잔치이다. 예술의 아름다운 눈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이와 아울러 '살아있음'을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축제가 열어준다는 생각으로 열리고 있다.
2009. 9. 23-27 www2.gcfest.or.kr/

프로젝트 모 <무늬>
각박한 현실에 직면하여 숨막히게 살아가는 일상인들의 공간에, 자유를 갈망하는 상처(무늬)많은 예술인들이 어린이 놀이터에 우연히 모이게 된다. 상처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던 이들이 함께 소통한 후, 상처(무늬)를 치유하고 다시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
프로젝트 모는 기존 극장 공간을 탈피한 대안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통해 일상의 공간이 특정 공간으로 변화하는 공간 개념을 지향한다.
2009. 9.24-25 club.cyworld.com/projectmo2009


글 | 개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