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다원예술연속포럼「피지컬씨어터, 몸으로 말하다!」 - 새로운 개념 vs 멋대로의 창작

2011. 8. 13. 12:59Review

제 1차 다원예술연속포럼 「피지컬씨어터, 몸으로 말하다!」
 - 다원예술, 피지컬 씨어터, 몸말 : 새로운 개념 vs 멋대로의 창작

 

글_ 김민관

 

지난 713() 오후 4시경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열린 다원예술연속포럼 1, ‘피지컬 씨어터, 몸으로 말하다!’를 정리해 본다.


 



 

다원예술의 개념이 만든 담론의 장

첫 번째 발제로 말문을 연 것은 연극평론가 김소연이였다. 그는 다원예술이라는 개념과 다원예술의 여러 특성을 나열하는 측면이 지금 생각하면 장들을 연결시키는 데 유용했다는 생각을 피력했는데, 이는 다원예술이 하나의 장르가 아닌, 여러 장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 장들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고, 또 하나의 개념 안에서 담론의 장을 펼치게 만들었다는 함의로 파악된다.

축제 운영 방식의 측면이 다원예술의 특성을 낳기도 한다
. 가령 김소연 평론가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주요한 특징으로 꼽은 개방성이 다원예술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활동을 인정하고 북돋아주는 역할, 다원예술을 지원하는 기금이 페스티벌에 많이 돌아간 것은 페스티벌이 갖는 실험성과 개방성으로 인해 다원예술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개별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다원예술의 작품들이 (다원예술이 아닌 다른 작품들을 포함한) 축제에 끼치는 영향 또한 크다.

가령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에서 피지컬 씨어터라는, 장르라기보다 개념에 가깝고 영역을 구축하기보다 그 자체로 화두를 던져 몸이 공연예술에서 어떤 지점으로 드러나는지를 가늠하는 (현실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는) 기회를 비로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몸꼴의 공연 외에도 여러 작품이,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이 고수해 온 블랙박스라는 공간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사회를 맡은 홍은지 연출은 90년대는 담론이 형성되기도 전에 현장에서 온 몸으로 반응하는 시기가 아니었나 싶고, (규정되지 않은 새로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몸의 공간성을 다루는 몸꼴(윤종연 대표)

윤종연 연출이 이끄는 극단 몸꼴은
몸의 꼴’, 곧 몸을 기반으로 해서 시작한다윤종연 연출은 감상적이고 음악적인 리듬에만 기대는 움직임이 아니라 사유하는 몸을 많이 생각한다. 이는, 현대 마임의 시작 프랑스의 에티엔 드쿠르(Etienne Decroux)의 메소드이자 이야기이다.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몸의 공간성으로, 또 리듬을 가지고 어떻게 드러나느냐의 문제는 늘 고민의 대상이자 시작점이었다 

가령 인지에 대한 공간은 기본적으로 위를 보는 것이고 그에 맞춰 거기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고민하면 아래를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극 안으로 오는 장치로, 우선 공간을 트이게 해준다.

이러한 과정의 행위들을 통해 배우가 생각하고 있다는 흐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고, 단순한 감정을 지정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내면의 심리와 갈등_반동 현상을 끌어내는 그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리얼리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는 심리가 억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초기 대사가 없는 몸의 표현이되 내러티브를 강조하다 보니 몸짓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이 협소해졌다. 그래서 다시 공간과 몸, 몸과 몸의 관계 등의 내러티브의 반대편에 있는 측면에서 다시 출발코자 노력 중이다.


 

이어서 그는 극단 몸꼴의 지난 주요작인,리어카 뒤집어지다오르페영상을 보여줬다. 몸꼴은 8월에 준비하는 공연으로, 문래동의 이야기·역사, 사회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여러 작가들이 만나서 하나의 움직임으로 펼쳐 보려 하고 있다.
 

홍은지는 발제 이후 예술이 가려진 것 이면의 진실을 찾는 노력에서 나아가는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현장의 관객에 침투하는 방식, 유영봉 

유영봉은 다원예술이라는 말에 대해 단지 막연히 쫓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뿐이지 거부감은 없다. 자신이 정통 연극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업에 관한 설명이 상대방에게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는 반면 다원예술이라고 설명하면 상대방이 이해를 해서 다원예술이라는 용어가 유용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렇다면 다원예술은 규정되지 않는 영역에서 나아가, 규정받을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영역으로 남는 것일까?


한음파의 잔몽이라는 앨범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미술·밴드 등과 함께 공동 창작의 방식을 선택, ‘프로젝트 잔몽이 출발하게 됐다. 먼저 이야기 소재를 제시하면 현장에 나가서 앙케트를 통한 이야기를 발굴해 오고 창작의 재료로 삼는다.



그는 스페이스 꿀’(한남동 소재)에서 한 얼마 전의 작업들의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관객이 많을 때 게릴라적으로 관객에게 침투, '놀자 판'을 만든다는 매우 간소하고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소개했다.

그는 작업을 설명하기 전에 공간에 누군가 등장하면(더불어 누군가 그것을 보면) 연극이 시작된다는 피터 브룩의 말을 인용하여 공간과 신체 간의 관계가 생기고, 사건이 발생하면 연극이 된다는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공간의 발굴을 작업에서 중요한 초점으로 둠을 이야기했다
 

주어 온 소품들, 가령 석유통을 잘라 도색하고 그것을 배우의 마스크로 사용하면 배우는 그에 맞춰 움직임을 찾아가며 몸 자체가 바뀐다는 생각을 전했다. 옷을 입혀 놓으면 캐릭터가 오히려 생겨난다는 것이다. 오브제들은 극 속에서 일종의 텍스트인 셈이기도 하다.

가면과 얼굴 간 연기 공간이 생겨나게 되고, 하나의 신체에서의 틈도 그러한 공간으로 설명했다.

 

 

규정되지 않는 것들의 미학

대표적인 마임이스트로 꼽히는 에티엔 드쿠르(Etienne Decroux)조차 마임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작업을 규정하는 것 원하지 않았다. 윤종연 역시 자신에게 붙은 신체극이라는 타이틀이 이후 자신을 규정짓는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김소연은 반면 다원예술이란 용어에 묶이는 것으로 인해 동떨어진 작업들이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음에 대한 장점을 들었다.

유영봉은 관객과의 거리를 가장 중요시하고 무대미술을 해왔는데, 이는 작업할 때도 역시 적용된다. 거리 연극의 보편성은 모두가 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에게 에너지를 받고 싶고, 극장 공간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규정되지 않은 것들로부터 틈새를 넓혀가고 싶은 생각은 늘 생긴다고 한다.

 

피지컬 씨어터와 다원예술 간 함수

피지컬씨어터페스티벌이 왜 다원예술과 인접되는 것인지, 주제로 던진, ‘몸으로 말하다에서 단지 몸 하나를 가져왔을 뿐인데, 이것이 다른 장르와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건 연극 문법과는 다른 문법을 추구한다는 지점에서 상대적으로만 성립할 수 있는 주제다. 페스티벌 자체가 가진 정체성, 작품들을 최소한 프레젠테이션 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페스티벌 안의 단순한 부대행사로 자족적 기능을 하는 것 아닌가, 또는 왜 다원예술을 굳이 끌고 왔을까 하는 여러 의문이 들었다.

어쨌거나 뚜껑을 열어보니 김소연 연극 평론가가 주로 연극이 펼쳐지는 극장 공연에 대한 시선을 블랙박스라는 동일한 무대에서 연극 외의 무엇인지 모를 장의 공연들을 흥미롭게 보았다는 이야기와 페스티벌을 통해 그것들을 묶어서 비교하며 면밀히 고찰했다는 이야기(자세히 풀어 낼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다른 두 페스티벌 참가자가 자신의 작업 세계, 내지는 창작 메소드를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페스티벌이 다원예술을 일견 촉발시킨다는 전제는 두루뭉술하다. 그렇다면 페스티벌은 기획자의 몫인가, 아님 페스티벌이 발생되고 있는 것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인가? 그러니까 페스티벌(기금이 투여되는) 외에 다원예술의 장은 없는 것일까?
여기서 다원예술은 장들을 섞이게 만드는 생성의 역할을 말하는 것인가? 아님 들어올 수 없는 공연들을 들어오게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인가? 전자와 후자는 분리되어 고찰되어야 한다.


다원예술을 이야기했지만, 다원예술이 무엇이라고 정의되지 않았고, 다원예술이 흘러간 정황들을 흘려 놓기만 했을 뿐이다. 피지컬 씨어터에 대한 접근도 되지 않았고, 아무래도 많이 허하다.

창작 메소드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개념의 정의는 면밀해야 하지만, 창작의 정의는 솔직한 것들, 우연한 것들, 예술가란 매체가 구체화된 것이면 되는 것이다. 굳이 개념적으로 첨언하자면, 개념은 사후적 종합과 분석, 언어적 진단이지만, 창작은 언어를 비껴나고, 우선 행해지는 것이고, 비언어적 발생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원예술에 대한 개념은 흐릿했는데, 그저 몸과 연결된 창작 방식을 설명해서, 그 자체로는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유영봉의 언어에서 다원예술이라는 잡히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징후들이 흘러 나왔는데, 글로써 구체화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미술을 하다 밴드와 또 배우와 작업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체험한 것들, 관객과 개방적으로 만나는 거리극을 지향하게 된 동기와 욕망들, 가령 무의식적인 기제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사고의 종합을 이룬 장르들과의 융합적 아이덴티티를, 이후 그의 작업에서 찾아보고 싶은 그러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뭔가 다른 것을 장들이 섞이는 지점에서 찾아보자는 하나의 전제를 달아두자는 것이다. 그래서 페스티벌이 유의미한 지점으로서, 단지 작업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또는 여러 다른 작업들을 포석해 두어 비교케 하는 시선의 다양성을 실천하는 게 아니라, 장들이 섞이는 장을 만드는 나름의 메소드 방식을 긍정하며 그러한 차원에서 페스티벌이 다원예술을 촉발시키는 힘을 준다는 앞서 이야기된 전제를 나름 풀어 다시 정의해 보는 것이다.

 

제 1회 다원예술연속포럼 - 피지컬씨어터, 몸으로 말하다!
2011 0713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다원예술연속포럼은 공연예술축제인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서울 변방연극제>이 함께 진행한다. 다원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하고, 이것을 토대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 이다. 이 포럼을 통해 다원예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있는 축제들이 협력하여 각 축제의 특성에 맞는 발제를 함과 동시에 창작작업의 사례들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함께 교류한다. 또한, 비상업적이고, 소규모 협업을 통한 작업을 하고 있는 지금의 다원예술의 현실에서 창작자들이 예술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공유하고, 궁극적으로 관객개발을 위한 어떠한 노력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추후일정
제 2차 다원예술연속포럼 
독립예술집담회 - 독립예술 어디까지 왔니? (주관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8월 17일(수) PM2 ~ PM5  @프린지클럽 (서교예술실험센터)
사회 : 홍은지 / 패널 : 김재엽, 박해성, 신혜원, 심은용, 오성화, 정진세, 조혜연, 차지량

이 포럼은 '독립예술축제'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독립예술 저변 확대를 위해 생존해온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노력에 대한 자문에서 출발합니다. 독립예술에 있어 축제란 무엇이며 일회적인 에너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일상 속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독립예술가들이 체감하는 삶의 발언을 들어봅니다. 이에 연극인, 시각작가, 뮤지션, 기획자 등 다양한 패널들이 '독립예술'이라는 물음표를 갖고 독립예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상에 대해 진단합니다.


 

필자소개_ 김민관

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예술뉴스채널 아트신 운영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
artsce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