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연극 꼭 보세요 7월 31일까지 - 극단 다리「없는 사람들」

2011. 7. 23. 18:42Review

이 연극 꼭 보세요 7월 31일까지
- 극단 다리「없는 사람들」

글_ 강말금 


공연이 끝나고 극장에서 인디언밥의 아아시를 만났다
. 리뷰를 써도 되냐고 물었다.
아아시는 흔쾌히 수락했다. 고마웠다.

공연을 보면서 내내 그 생각했다. 빨리 리뷰를 쓰자. 좋은 리뷰를 써서,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몇 명이라도 연극을 더 봤으면 좋겠다. 내 하찮은 글이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공연은 참 드물다.

 

 

아침에 팥빙수를 먹으면서

공연을 본 날 아침, 친구랑 팥빙수를 먹었다. 우리는 만나면 발가락부터 하느님까지 떠오르는 대로 수다를 떤다. 그 아침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연극평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얘길 했던 것 같다. 좋으면 좋아서 할 말 없고. 싫으면 싫어서 말 할 필요 없고.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좋은 공연에 대해서 왜 좋은지 얘기하는 게 평론의 할 일 아닐까. 

그 말을 듣고, 내가 평론의 할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평론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연극에 대한 글을 인디언밥에 여러 차례 기고했음에도, 이 글이 무엇을 향해야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좀 놀랐다.

좋은 평론은 잊힐뻔한 좋은 연극을 발굴한다... 그 연극이 왜 좋은지 이야기함으로서.
그 말을 되뇌이다가 생활에 휩쓸려 다시 잊었다. 그러다가 그날 저녁 연극을 보게 되었다.

 

 




이 연극에는 로망이 있다

철철 울면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연극을 보았다. 나는 이 연극의 가치를 느낀 관객으로서 말한다. 이 연극에는 로망이 있다. (나는 로망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 희망 정도의 뜻으로 쓰겠다.)

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로망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우리가 배우고 깨달은 가치와 모순되게 흘러간다. 우리는 자기 가치 자기 철학을 가지고 현실과 대적한다. 주로 진다. 질수록 더 진다. 질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진정한 적을 놓치게 된다. 칼을 자신을 향해 겨누거나 가까운 사람을 향해 겨누게 된다.

우리는 운다. 울다가 어떤 날은 가능성을 발견한다.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현실과 맞선다. 그게 안 되면 죽을 수도 있다. 죽은 것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죽어서도 안 되고, 죽은 것처럼 살아가서도 안 된다. 자신이 깨달은 미약한 가치의 힘을 믿고 견디어야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한 인간의 내밀한 로망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로망을 가진 사람이 연극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앞에 펼쳐지는 이야기인 연극은, 연극 보는 사람들의 내밀한 로망을 강화할 수 있어야한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이다.
손이 뜨거워져서, 자꾸만 있어야한다... 라고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연극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지는 무거운 임무라는 면에서, 대단한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연극에는 인간에 대한 로망이 있다. 모든 배역에게 자존심과 품위가 부여되어 있다.

가장 악한 배역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 이름도 없는 용역업체 직원인 용역의 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신부님은 저를 모욕했어요.” 그 깡패에게는 모욕을 받을 수 있는 영혼이 있는 것이다.

가장 가엾은 배역에게도 품위가 있다. 갑작스런 사고로 딸을 잃은 연희 엄마는 장례식에서 오열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입관을 보채자 그녀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왜들 이렇게 급해요. 나는 안 할래요.” 그러자 사람들은 기다린다. 그녀는 자신의 속도를 지켰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그녀와 사람들을 사람답게 했다.

가장 찌질한 배역에게도 뉘우침이 있다. 위험에 처한 친구를 지키지 못하고, 장례식에서도 도망친 영규, 친구의 첫 기일에 고백한다. “일 년 만에, 고해성사를 하면서 털어놓았어요.”
나는 영규가 그 말을 해 줘서 마음이 놓였다. 영규가 그 죄책감으로 일생을 무겁게 살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수많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트라우마라는 것을 사람들이 갖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놓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그것이 로망이다. 나는 이 연극을 만든 사람들도 같은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배우들을 위한 연극

연극배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창녀와 관련된 배역이 많은 것에 놀랐다. 대부분이 남자 작가들 연출들이 쓴 것이다. (남자배우들은 깡패와 관련된 배역이 많은 것에 놀라지 않을까?)

연극배우는 너무 하고 싶은데, 돈은 벌어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십대 때 연극을 참 많이 보았다. 여자들이 능욕을 당하는 연극이 많은 것에 놀랐다. 게다가, 그런 여자배역들에게는 자아나 영혼 같은 것도 없었다. 그 연출가들은 능욕당하는 여자들을 통해, 우리 민족이 이렇게 당했어, 혹은, 세상은 이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는, 저걸 하고 있는 배우의 기분은 어떨까를 생각했다. 나는 할 수 있을까? 라고도 생각했다.

그 스케일이 큰 리듬 연극에서, 그 여자 배역에게 영혼을 부여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 생각에는, 여유 보다는, 그 배역과 그것을 맡은 배우들을 소중히 하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연극이 세상을 모방하는지, 연극이 연극을 모방하는지 모르지만 (영화도 마찬가지) 참 영혼 없는 역할들이 많다. 그냥 보고 마음에 안 든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그 역할을 맡은, 그 역할을 또 맡고 또 맡을 배우가 세상에 대한 어떤 로망을 가지며 살게 될지를 생각하면
좀 그렇다 

이 연극의 작가, 연출님은 그 생각을 한 것 같다.
배역들이 자존심과 품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관객이라는 사람들 앞에 서는 귀한 사람.
그 사람들이 귀해져야 연극이 빛난다는 것을.

 

 

연극의 연출가는 연출을 전공한 카톨릭 신부님이다. 이야기는 철거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이 연극의 (표면적인) 가장 큰 특징이지만, 내가 쓰고 있는 리뷰의 주제는 되지 못한다. 나에게는 종교가 없고, (종교성과 숭고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래서인가, 연극을 보기 전에 선입견을 가졌다. 게다가 러닝타임이 두 시간 십오분이라고 한다. 친구들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보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연극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너무 착해서 나쁜 연극의 부류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선전적이라는 느낌은 더더욱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단점보다 더 상위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 , .

어느 날 친구와 얘기하다가, 이 진부한 단어가 생각났다. 내가 친구에게 던진 물음은, 왜 진선미 중에 진이 제일 먼저 나올까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것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진실한 것, 착한 것, 그 다음 아름다운 것.

나는 무릎을 딱 치면서, 진실해야해. 작업을 할 때 우선 진실해야 해.
그러니까, 진실한 것과 아름다운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는, 아름다운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해.
하고 말했다.

아주 그럴 듯하게 생각되었다. 이 연극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그 대화가 떠올랐다.

이 연극이 이런 저런 면에서 덜 세련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연극이 진실하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진실하다는 것은 진실한 태도다. 진실한 태도는 사는 순간순간, 작업을 하는 순간순간의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끝없는 노력이다.

내가 무릎을 딱 치면서 진실해야 해, 라고 말했을 때, 친구가 대답했다.
진선미는 일체야. 진이 선이고, 미야.

진선미는 일체다. 진이 선이고 미다...
나는 그 말을 되뇌었다.

 

이 연극은, 진실하기 때문에, 착하고 아름답다. 철거민과 성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로망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과 연극에 대한 진실한 태도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나도 이렇게 작업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연극을.
하고 생각했다.

 

 


홍보

오래 공들여 쓰지 못하고 세 시간 정도 만에 썼다. 퇴고도 못할 것 같다. 더 공들이고 싶지만, 그보다 빨리 글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731일까지. 일주일 남짓 남았다. 평일 저녁 8, 3/6, 3, 화요일 공연 없음.
장소는 홍대입구역 2번 출구 50미터 카톨릭 청년회관 CY 씨어터
티켓 가격은 현매 15,000.




극단 다리 - 없는 사람들
2011 0714 - 0731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

극작 - 김덕수

연출 - 유환민

얼마 전, 홍대 인근의 작은 용산, ‘두리반’ 식당은 농성 531일 만에 그들이 원하는 방향의 이주 대책 합의를 이뤘다. 1년 5개월여의 시간동안 ‘두리반’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의 지지로 강제 철거에 맞서 힘겹지만 즐거운 저항으로 얻은 결과다. ‘작은 용산’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두리반’의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는 비단 ‘두리반’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어느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아주 흔한 이야기’다. 

두리반에서 8차선 도로를 건너 거대한 몇 개의 빌딩을 지나면 가톨릭청년회관 ‘다리’가 있다. ‘다리’가 소개하는 첫 번째 연극 <없는 사람들>은 철거를 앞둔 서울의 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아주 흔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에는  끝까지 떠날 수 없는 사람들과 이제 그만 포기하고 떠나려는 사람들,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분명히 있는(존재하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과연 같은 시간, 이웃 ‘두리반’의 이야기처럼 희망을 만나 볼 수 있을까. 2011년 7월, 가톨릭청년회관 ‘다리’의 첫 번째 정기공연이자, 극단 ‘다리’의 초연작인 <없는 사람들>에서 서울 어느 곳,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필자소개
강말금. 서른넷. 여자. 부산. 배우. 무교. 술. 가난. 천사. 전사.